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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이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모한 용기에 뒤이어 오는 경제적 고초와 무참한 절망, 패배감이 아니라 빠르고 현명한 포기였다. 그리고 그 포기 대신 내 포기는 종북들과 빨갱이들 때문으로 몰아가면 되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 정권으로 인한 것이면 되었다. 헬조선도 경제에 뛰어나지 못한 진보 정권으로 인한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엎지르진 물이고 뒤짚기엔 너무 강력하다. 그러니 왜 나에게 꿈과 희망을 밀어넣는가! 나에게 필요한 건 한 끼 밥과 자극적인 막장 드라마와 종편 TV에서 틀어대는, 나보다 불쌍하고 처참한 북한 사람들의 실상이다. 


갑자기 추워진 29일 오후 6시가 조금 지난 시간, 청계광장으로 가는 길은 을씨년스러웠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몇 블럭 떨어진 곳까지 들렸지만, 행인들은 무심하기만 했다. 죽어가던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정치는 경제를 이긴다'라고 말했지만(그래서 제대로 된 정치가 선행되어야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그런 발언 따윈 좌파 호사가들이나 좋아할 말이다. 한국에서 보수라고 알려진 이들에겐 토니 주트도 좌파로 읽혔을 것이다. 하긴 제대로 된 보수가 어디 있으려고. 내가 보기엔 조선 시대에 통용될만한 세계관과 천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흥미로운 결합이 한국 보수주의자들가 아닐까 싶지만. 


얼마 전 알게 된 한국학의 대가인 고(故) 제임스 팔레 교수는 조선을 노예 사회로 규정한다. 그는 문헌(호적부)에 기초하여 등록된 인구의 3~40%가 노비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같은 민족을 노비(노예)로 삼은 나라는 조선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조선으로부터 현대 한국은 고작 100여 년이 지났다. 그런 사회가 오백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 사회의 정신이 고작 100년 지난다고 잊혀질까. 


종종 나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들 중의 한 가지는, 참 똑똑하고 입 바른 소리도 잘 하며 뭔가 제대로 살 것같은 사람들이 꼴통 짓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 다들 현 정권의 약점을 시작 초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그냥 묻어버린 것이다. 나라의 미래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한국의 몇몇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졌으며, IMF 시기를 통해 단련되었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국민들은 개 돼지들이고 밥만 먹게 해주면 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이제 공중파는 다 잡았고 종편들까지 우리 편이니,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 어려운 고시 패스했다고, 유수의 국내외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대단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쳤다고 해서 믿어선 안 된다. 그 전에 먼저 그 사람의 생각, 태도, 성품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과연 사람들은 그렇게 할까) 


하긴 이번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세상은 아마 그대로였을 것이다. 조선소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그 곳을 오가던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저 파란 지붕을 가진 저택까지 들리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은 측은한 마음으로 파란 지붕의 안주인만 바라봤을 테니까. 세월호 아이들이 바다 속에서 죽어가고, 조선소 사람들이 갑작스레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괴되어도, 사람을 겨냥해서는 안 되는 물줄기를 사용해 결국 목숨을 잃게 만들어도, 어차피 고작 한 표 밖에 없는 선거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고 결국엔 다 종북과 빨갱이로 수렴될 족속들이니까. 


결국 다 노비들일 뿐이다. 가인 김병로(김종인 민주당 전 비대위 위원장의 조부) 선생은 보수주의자이면서 정권에 반발해 야당 생활을 했지만, 국회의원 선거 때 선거 벽보만 붙이고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아래 것들한테 어떻게 표달라고 고개를 숙이냐"는 것.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젠 한 술 더 떠, 모든 콜센터 직원들은 "갑질 해대는 고객"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주인과 노비가 만날 일은 없고 노비는 노비들끼리 서로 갑질하느라 정신없는 나라가 되었다. 세상이 이러니, 어찌 어디 촌구석에서 나고 자란 상고 출신 대통령을 주인으로 인정할 수 있었을까. 그런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과 대면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 나라의 상층부는 조선 시대 - 일제 시대 - 현대 한국을 거쳐도 변하지 않았다. 감히 어떻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노비들끼리 몇 프로 되지 않는 재물을 두고 싸우느라 정신없게 만들면 세상 관리는 편해진다. 그리고 정권에 반발하는 이들에겐 가끔 무서운 경험을 한 두번 시켜주거나, 그들에게도 재물의 안락함을 한 번 맛보게 해주면 그 뿐. 이데올로기 시대는 갔고 똑똑한 젊은이들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잘 살 수 있으니, 자 이제 밖으로, 세계로 나가라,고 하면 그 뿐이다. 걸핏하면 나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니면 사업을 해라, 그리고 망해라, 그러면 네 인생의 실패는 네 탓이니, 국가를 원망하지 말아라. 국가는 이미 이런저런 지원사업으로 결국 실패하게 될 네 사업에 돈을 주지 않았느냐.


글이 두서 없다. 아이를 안고 소리를 질렀지만, 청계광장의 많은 인파와 바로 옆 종로 거리의 행인들의 극명한 대비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그 사이 이태원에선 할로윈 파티로 즐겁게 보냈을 청춘들을 떠올리면, 글쎄, 우리에게 따뜻한 변화라는 것이 올까. 전투력을 잃어버린 야당 국회위원들과 너무나도 예의바르고 신중한 대선 후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아무 생각없는 대통령을 불쌍한 사람으로, 그녀를 조종한 최 모 여인만을 공격하고, 그 대신 그 둘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정부 여당, 검찰, 국정원 등에 대해선 아무렇지 않은 듯 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고 단풍 구경을 간다. 마치 느리게 가열되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그렇게 이 나라는 무너지고 국민들은 사라지고 대신 영악한 주인들과 바보같은 노비들로 채워진다. 조선 시대처럼. 


한동안 임진왜란 뒤 무능하기만 했던 선조는 왜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었는데, 왕과 사대부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상부상조했던 것이다. 왕은 사대부들에게 학문을 배웠고 사대부들은 끊임없이 왕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대부분의 왕들은 사대부들보다 똑똑하지 못했으니까. 왕이 사라진다는 건 사대부들에게 치명적인 일이다. 그들이 가진 권세와 재물은 왕의 대칭구도로 인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임을.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능한 대통령으로 인해 국회의원들과 감찰 기관들, 행정 각료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며 부를 축적할 수 있으니까. 서로의 약점을 숨기고 미래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변화할 것같으면 충분히 미디어를 통한 세뇌와 다양한 색깔론과 종북몰이, 그리고 부정적인 수단이 마련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법률은 촘촘하게 정권에 대드는 이를 잡아가두기에 충분하다. 어차피 노비들은 노비들일 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매질과 약값, 또는 기름진 고기를 주면 그 뿐이다. 그러니 상고 출신 대통령에겐 대들어도 무능한 대통령을 감싸고 그녀를 조정했다고 여기지는 무녀까지 배려하는 것이다. 


그래도 청춘들은 10월의 마지막 일요일 할로윈을 즐기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어제 청계광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사람들이 이것밖에 없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나라란 없고 대통령의 의사결정은 신뢰를 잃었다. 그야말로 위기상태다. 한국은 북과 대치하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내려오기라도 하면 그냥 끝이다. 그건 북 때문이 아니라 미국은 신속하게 답 없는 한국을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이라도 미국은 눈 밖에 나있는 북을 공격하면 그 뿐이다. 딱 1주일이면 충분하다. 일본은 그 상황을 즐길 것이며 중국은 이미 끝난 북의 일부를 가지고 갈 것이다. 사람들은 욕을 하고 비난을 하지만, 말 뿐이다. 헬조선이라고 하면서 헬조선의 연휴를 즐긴다. 나라 걱정한다고 하면서 집 안에서 뉴스만 본다.


변화는 움직이는 자들로 인해 만들어진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최저지지율은 5%대 였다. 지금 대통령의 지지율은 10%가 넘는다. 확실히 노답이다. 내가 이렇게 길게, 두서없는 글을 이유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짧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길기 때문이다. 이와 똑같이,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은 이들이 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제대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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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경제’ 이야기가 나오고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IMF 이후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이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이명박 정권 이후에는 구조조정은 기업/산업의 일종의 문화가 된 듯싶다. ‘위기’라는 단어가 나오기만 하면 ‘구조조정’, ‘대량해고’, ‘대량실업’이 나온다.(1)


그리고 은연 중에 주류언론에서는 ‘정치’의 문제를 ‘경제’의 문제로 옮겨버린다. 


최근 ‘한국 조선업의 위기’를 보도하는 기사들을 보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조선업이 위기에 빠진 것은 경영 상의 잘못된 의사 결정, 안일한 경영 관리, 정부의 산업/기업 리스크 관리 부재, 장기적 산업 전망 부재 등 이것저것 뒤섞인 것이다. 솔직히 경험이 없지만 고부가가치 영역(해양플랜트)으로 도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미 몇 해 전에 올해와 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 예측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대응도 없었다. 


이미 구조조정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그런데 너무 선정적이다. 이제는 자살, 강도 같은 제목을 단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언론인가 싶다.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언론들은 몇 개의 기업이 문을 닫고 몇 명이 대량 해고되었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하지만 그 기사들을 채운 문장 속의 비극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얼마나 많은 작은 회사들의 사장들이, 얼마나 많은 집들의 아빠들이, 얼마나 많은 집들의 엄마들이 고통 속에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선 말이 없다. 


이젠 구조조정으로 인한 작은 회사의 폐업이나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는 당연한 일이 된 것인가? 


그래, 당연한 일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그 다음은? 개성공단에 입주해있던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자살 시도까지 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미 비극은 시작되었고 어차피 그들의 문제라고 여기는 것일까? 그렇듯 조선소의 문제도 그런 것일까? 


언론들은 ‘어떻게 구조조정했다’고 말하지, 구조조정 속에서 회사를 잃어버린 작은 회사의 사장이나, 직장을 잃어버린 가장과 그 가정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 이 무슨 또 다른 비극이란 말인가. 이젠 모두가 통째로 쓰레기가 되고자 작심한 듯 보인다. 


이제 경기 불황은 일상이 되었고(어떤 이유로 불황의 일상화가 시작되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 일상이 된 경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직장이 없는 사람들을 자영업자, 혹은 개인사업자화시키고(창업 독려로),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면서, 능력 없는 개인들은 도태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초래하게 될 국가적, 지역적, 사회적 비극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그것에 대한 계획은 있는지에 대해서 그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다. 마치 전쟁 같다. 누가 쏘았는지 모르는 총탄에 맞아 반신불구가 되더라도, 그저 시절 탓으로 돌리고 마는. 전쟁의 비극이 한국에서 불황이라는 이유로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혹시 이것이 잘못된 귀결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국가 산업의 근간을 이루었던 조선산업의 위기는 충분히 예측되었다. 하지만 그냥 방관했다. 그리고 단란했던 소시민들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이 나라는 참 이상하다. 책임질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평범한 시민들이 자리 잡는다. 언론도 책임 지지 않고 정부도, 기업 리더들도 책임지지 않는다. 언론은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몇 명이 잘렸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정부는 기업 리더들 탓으로, 전세계적인 경기 불황 탓으로 돌릴 것이다. 기업 리더들은 그냥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만이다. 어차피 자신들은 전략적 경영을 한 것이니. 낙하산 인사들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것이고,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은 월급 없인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분산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국은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가를. 장기적으로 모든 이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지, 그런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하고 하나하나 실천해야 한다.(2)



* *


(1) 이번 구조조정은 민심을 의식한 보수 정권이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친 것이 주요 원인들 중 하나다. 그리고 이들 기업 리더들에 낙하산 인사들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알고 있을까. 


(2)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 되기 전에 이를 예측하고 선제적 대응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하긴 이건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이번 산업 위기 사태는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 문제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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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쓸 일이 있어 아침부터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한다. 몇 개의 관련 기사와 책들을 이리저리 펼쳐놓고 있다, 잠시 쉬어가는 겸, 쓸 원고와는 아무 관련없는 책을 펼쳐 읽는다. 에밀 부르다레의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그리고 그 속에서의 문장들.


조선에서 소녀와 숙녀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적령기가 되면 계집 아이는 곧 결혼하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다시피 총각은 결혼할 때까지, 즉 열다섯에서 서른 살까지 어른으로 보지 안고, 매사에 논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그들은 혼인할 때까지 등 뒤로 머리를 땋고 다닌다. 망사 말총 모자[갓]는 결혼하고서 상투를 틀 때나 쓰게 된다.
조선 부인의 경우 만약 그녀가 지적이고 남편이 방탕하지 않다면, 가정에서 상당한 권위를 누리며 종종 남편보다 더 강인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부인은 습관에서든 이타주의 때문이든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고, 불행과 역경에 호락호락 체념하지 않는다. 그녀는 악착같이 일해서 비참함을 이겨낼 것이지만, 낙심하거나 게으른 남자는 싸우기보다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을 택한다. 여자들은 대개 고생이 많다. 아이들조차 남성이 우월하다는 관념을 일찍이 배우고, 자기 어머니를 아버지보다 덜 존중하게 된다. 그래도 모성애는 조선인에게 현실의 슬픔을 잊게 해주며, 모든 고통의 무게를 덜어준다. 어머니는,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이, 이웃집 자식보다 더욱 귀엽고 잘나 보이는 자기 자식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고통을 삭인다. 집안일을 할 때도 그녀들은 큰 띠로 둘러메는 식으로 아기를 등에 업고서 일을 한다.
- 에밀 부르다레,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140쪽, 글항아리


백 여년 전 조선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머니만 존재하는 나라, 조선. 그건 지금도 그럴까.

종일 서재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같다. 가끔 원고 청탁을 받다 보니, 원고 쓰기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에밀 부르다레의 책, 그 명성에 비해 국내 독자에게는 잘 읽히지 않는 듯하다. 하긴 구한말 조선에 대한 역사책도 많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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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2011.7.9 - 9. 19, 국립중앙박물관


의궤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란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란 뜻이다. 왕실과 국가에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후 준비, 실행 및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의궤는 철저한 기록 정신의 산물로서 예禮를 숭상하는 유교 문화권의 핵심 요소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국가의 통치 철학 및 운영체계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의궤는 왕의 열람을 위해 제작한 어람용(御覽用)과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한 분상용(分上用)으로 구분되어 5~9부 내외가 제작되었다. 통상 어람용은 1부를 제작하는데, 외규장각에 있던 의궤는 대부분 어람용이라는 데 그 중요성이 크다. 어람용을 분상용과 비교해 보면 필사, 재료, 장정 등에서 그 수준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급 종이에 해서체로 정성껏 글을 쓰고 안료로 곱게 그림을 그린 후 고급 비단과 놋쇠물림으로 장정한 외규장각 의궤는 당대 최고의 도서 수준과 예술적 품격을 보여준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서양이 최고였고 동양은 전근대적이며 뒤떨어진 곳으로 여겨졌으며, 학교 선생님들의 말 속에, 우리가 배웠던 교과서 속에서도 그렇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서양에서 정치적 권력과 헤게모니를 쥐었던 이들은 군대를 보유한 왕이거나 종교의 힘에 기댄 성직자들이었고 이 추세는 18세기 계몽주의가 등장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즉 한 나라를 가지려면, 군대를 일으키거나 종교에 호소하면 되었습니다. 일반 대중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어떤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말이죠.

하지만 조선은 달랐습니다. 왕이 있었으나, 정치 권력과 헤게모니는 사대부가 가지고 있었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식으로 왕을 폐위할 수 있는 지식인의 나라였습니다. 이 사대부 지식인들이 의지했던 것은 군대나 종교가 아니라 유교라는 지식으로 축조된 어떤 세계관이었습니다. 마치 마음 속의 성벽과도 같은 세계관이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숟가락과 젓가락이 아닌 칼과 포크로, 다 익히지도 않는 고기를 먹던 유럽인들은 미개한 족속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요?

최초의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이웃 나라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음식에 손을 대지 않으면서 젓가락으로 식사를 하고, 매일같이 목욕을 하며 몸을 청결히 하던 일본인들에게 놀라게 됩니다. 그들 눈에 일본은 문화와 격식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일본을 무시하고 깔보던 조선인들로서는 상상하지 못할 생각을 네덜란드 선교사들이 하게 된 것이죠. 

거대한 나라 중국은 기원 전부터 유럽에 알려져 있던 제국이었으며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일본은 근대 유럽과의 활발한 무역으로 알려지고 있었으며, 세계 권력의 중심을 향해 이동해가고 있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19세기 인상주의 미술 등장에 일본의 우키요에가 영향을 끼쳤을 정도로 일본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어땠을까요? 영,정조 시대 이후 조선은 안동 김씨를 위시한 사대부 집안의 섭정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제국이었고, 동아시아를 둘러싼 외교 지형 변화에 현명한 대처를 하지 못했으며, 민중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서양인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조선인들이 찾아왔다.우리가 그들을 전혀 해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자, 그들은 소심했던 태도를 버리고 교육이 부족해 비롯되는 결점들을 드러냈다.과연 그들의 행동은 일본인의 품위와 세련과 거리가 멀고 중국인의 아첨과도 달랐다.그들은 거칠고 조심성 없으며 매우 불결하다.
- 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살림출판사)



이 시각의 차이는 조선 후기의 사대부들에게 명확한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음에 분명했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상당수의 지식인들에게 지지를 받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반대로 서구 열강들의 눈에는 조선은 무시해도 될 작은 나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는 옆 나라 조선은 자신들의 발전에 방해가 될 가시같은 존재였을 테니, 어떻게든 자신들의 지배 아래 놓아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삼아야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외규장각 의궤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9세 중엽 조선은 서양 선박의 빈번한 출몰과 통상 요구, 영국 프랑스 연합군의 베이징 점령과 러시아의 연해주 진출 사건 등의 대외 정세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더불어 청에서의 천주교 탄압 소식과 유생들의 위정척사 운동 전개는 결국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이어졌다. ‘병인박해(1866년)’라 불리는 이 탄압으로 9명의 프랑스 신부들과 수천 명의 신도들이 처형당했다.

1866년(고종3) 10월, 프랑스는 천주교 탄압사건을 구실로 조선을 침략하여, 이른바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프랑스 극동 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이 이끄는 7척의 군함은 강화도를 점령한 후 서울로 진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흥선대원군의 굳은 항전 의지와 한성근,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의 분전으로 김포의 문수산성과 강화의 정족산성 전투에서 참패를 당하였다.

같은 해 11월 11일, 조선 침공의 무모함을 깨달은 프랑스군은 강화도의 장년전, 외규장각 등 모든 관아에 불을 지르고 퇴각하였다. 프랑스군은 조선군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혀 퇴각하면서 대량의 은괴와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를 비롯한 189종 340여 책, 기타 자료 등을 약탈했다. 그들은 외규장각에 대한 방화로 그 곳에 남아 있던 수많은 귀중 서적들이 불길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다.


의궤는 그렇게 프랑스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씨 조선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긴 일제 식민지를 거쳐 대한민국이 건국되지만, 우리들의 현대사는 전쟁과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와 초기 여러 정부를 거쳐오면서 조선은 버려야 하는 전근대적 전통이 되었고 소수의 학자들만이 조선을 되살리고자 하였을 뿐입니다만, 서구의 문화적, 학문적 전통만이 우리들의 살 길이라고 여겼던 대다수의 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아마 조선의 전통을 이야기하는 학자는 앞 뒤가 꽉 막힌 나이든 노친네 취급을 받지 않을까요), 군사 정권의 정부 관계자들에게 오래되고 낡은 조선의 책들은 무시해도 좋을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요? 더구나 외규장각 의궤는 병인양요 당시 불에 타 소실된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1975년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의 외규장각 의궤 발견은 우리에게 조선에 대해 새롭게 보게 만든 계기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 이후 수 십년 동안 외규장각 의궤 반환 운동이 이어졌고 그 결과, 올해 초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만에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슬픈 귀환인 셈이죠. 그 사이 나라는 세 번 바뀌었고, 그 의궤를 만들었던 제국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전시된 의궤들에게 마음이 있다면, 조선의 후손들이 살아남아 그 대지 위에 세워진 건물 안에 전시된 의궤를 보러 온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역사란 마치 거대한 강물과도 같아서 이 땅이 살아있는 한 끝도 없이 흘러갈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외규장각 의궤 반환과, 반환된 의궤 전시가 지난간 우리 과거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 우리 전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도록 한 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외규장각 의궤가 만들어졌을 조선 후기, 조선의 종이는 세계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전통 종이를 만드는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종이 장인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없었던 탓입니다. 왕실에서 책을 손수 만들던 몇 되지 않던 나라에서 이제는 고급 종이를 수입해 오는 나라로 변했으니깐요. 고급스러운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도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주말미술여행'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 글은 '올댓 주말미술여행'에도 함께 올랍니다. ^^

"올댓 주말미술여행 출시"

미술 전시 정보/리뷰, 미술 서적 및 미술 관련 칼럼 등으로 이루어진 '올댓 주말미술여행'이라는 어플을 출시하였습니다. 이 어플은 SKT의 지원을 받아 TNM에서 제작한 콘텐츠 어플입니다. 매주 업데이트를 할 예정으로 있으며, 금요일이나 토요일, 이 어플로 주말에 가볼 만한 전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많은 이용 바라며, 주위에도 많이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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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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