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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가령 부자와 빈자가 있다고 칩시다. 돈이 아니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지적인 부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 불러보자고. 이 경우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전 총리)는 가난하지. 나는 부자고(웃음). 내가 보기에 TV는 지적 빈자를 돕고, 반대로 인터넷은 지적 부자를 도왔어. TV는 오지에 사는 이들에겐 문화적 혜택을 주지만 지적인 부자들에게는 바보상자에 불과해. 음악회에 갈 수도 있고, 도서관을 갈 수도 있는데 직접적 문화적 경험 대신 TV만 보면서 바보가 되어가잖소. 반면 인터넷은 지적인 부자들을 도와요. 나만 해도 정보의 검색이나 여러 차원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 하지만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지적인 빈자들에게는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미쳐요. 이럴 때 인터넷은 위험이야. 특히 블로그에 글 쓰는 거나 e북으로 개인이 책을 내는 자가 출판(Self Publishing)은 더욱 문제요. 종이책과 달리 여과장치가 없어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선별과 여과의 긴 과정이오. 특히 쓰레기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지적 빈자들에게는 이 폐해가 더 크지. 인터넷의 역설이오."

-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인터넷도 사라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 조선일보. 2012년 7월 6일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 현재 있는 것을 부정하면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텐데. 


종이책과 전자책은 대결하는 것일까? 실은 그렇지 않다. 종이책 읽는 사람은 전자책도 읽는다. 똑같이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사람과 인터넷을 보는 사람은? 


이건 좀 다르다. 책과 인터넷은 확연히 다르고, 이 둘은 똑같은 기준에서 비교하기도 어렵다. 도리어 전자책(e북)이 좀 나을 텐데, 내가 앞서 언급했듯이 이 둘 또한 본질적인 측면에서 대결 구도로 보기엔 문제가 있는 듯하다. 도리어 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건 일종의 마케팅이 아닐까. 불편하고 값비싼 LP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듯, 종이책도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단지 생산량이 줄긴 할테지만. 


종이책의 생산량이 주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게 e북 때문이라고 하면 뻔한 거짓말일테고. 첫 번째 이유로는 책을 읽는 사람의 절대 수가 줄고 있다(이것은 세 번째 이유와 겹친다). 두 번째는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책이 지닌 가치가 많이 희석되고 있다(예전엔 미디어의 한정적이었으나, 지금은 '정보를 얻기 위한 책'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가 존재한다) . 세 번째는 책 대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늘고 있다. 영화를 본다든가, TV를 본다든가 하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첫째 책을 읽기 위해선 최소한 몇 십분 이상 집중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21세기적 삶에서 이런 시간을 구하기란 참으로 어려우므로), 둘째 하나의 지식을 단편적 정보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를 갖춘 지식 꾸러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셋째 지속적인 독서는 논리적 체계나 구조를, 언어를 통해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에코가 지적하는 바는, 내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인터넷을 통한 지식 습득은 단편적 정보를 얻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 내 앞에 단답형 문제가 있다고 하자. 그 문제의 답을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것은 책도, 백과사전도 아닌 인터넷이다(확실하게!). 하지만 그것이 주관식이라면, 그것도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이러면 사정은 달라진다. 


종종 인터넷은 무수한 하이퍼링크를 통해 체계를 가진다고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질서를 가진 가치 체계가 아닌, 가치가 무너진 수평적이고 균등한 체계이며, 그것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의 몫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터넷 초창기에는 이를 새로운 혁명 공간으로 인식하고 열정적인 이론가들과 실천가들이 인터넷을 통한 변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아직도 인터넷에 그러한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다시 부언하자면, 어느 것이 중요한 정보이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은 정보인지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에코가 인터넷은 지적 부자를 돕지, 지적 빈자에게는 해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그는 인터넷 전에 책을 읽어야 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종이책이 더 좋다고 하겠지만, 전자책으로 읽는 것에 대해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의 키워드가 있고 그 키워드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때, 인터넷은 너무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쏟아낸다. 그 때 우리는 그 많은 정보들 중에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하고 중요한 정보를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목을 기르는 것, 그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책이 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지적은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다. 



* 자기 전에 그냥 노트해본다. 예전에 나는 종이책에 대한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다. 



2009/11/08 - [책들의 우주] - 종이책의 미래를 지켜라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사무 자동화가 되면서 종이 사용량이 줄었다고 여기겠지만, 실은 더 늘어났다. 아무리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밝은 날 종이로 보고 읽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모노클이라는 잡지가 있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나도 근사한 종이 잡지 하나 창간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2011/09/27 - [책들의 우주/문학] - 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는 종이잡지, 모노클(MONO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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