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새, 하일지

지하련 2000. 5. 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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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지(지음), <<새>>, 민음사, 1999.





과연 우리들은 우리들의 바램대로 행동하고 말하는가? 오늘날의 우리들은 고작 스스로 결정 내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할 뿐이다. 그리고 이 욕망(믿고 싶어함)은 거대하고 천박하기 그지없는 현대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왜냐면 진실을 숨길 수 있는 건 새로운 거짓말이기 때문에. 거짓된 사랑, 거짓된 행복을 진실이라고 믿음으로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것이 진실이라며 최면을 걸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대의 키치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획득한다. 그 의미가 거짓이며 자기기만이더라도 우리들은 키치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것이 적어도 덜 고통스럽고 덜 외롭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새'는 A의 운명을 뜻한다. 그리고 그 운명 이란 소설의 시작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그래서 이 소설 속의 그 누구도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두 이미 정해 진 자리에 서있을 뿐, 독자는 정해져 있는 소설을 읽을 뿐 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란 A가 몇 몇의 여자들을 정해져 있는 순서대로 만나 몸을 껴앉고 키스를 하는 곳이며, 그 외의 부분이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다. 왜냐면 그만큼 A의 인생이, 우리들의 삶이 아무런 의미 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몇 명의 평론가들은 이 소설이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뒤엉켜있다고 하겠지만(그러면서 자신들의 현학적 취미를 뽐내겠지만), 과연 그 가상의 세계가 현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일까? 불행하게도 이러한 구분은 이 소설에서 아무런 쓸모도 지니지 못한다. 이미 A의 운명을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이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A의 모든 행동들이란 외부의 사건에 대한 반발작용임으로 해서 바깥의 세상은 더욱 철저하게 A를 정해진 게임의 규칙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결국 우리들은 한 마리의 새들이다. 각각 정해져 있는 길 위에 서서 끊임없이 새와 부딪히며 결국 새가 되었거나 될 것이다.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다거나 도망치고 싶은 현 실이 있다거나, 현실의 그 어떤 것이 자신의 행동을 규정하 는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검은 새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