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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오오누키 에미코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 오오누키 에미코 지음, 이향철 옮김/모멘토 , 오오누키 에미코 지음, 이향철 옮김, 모멘토. 사사키는 다른 많은 학도병과 마찬가지로 강경한 반전론자였다. 그는 전쟁의 승리에 도취된 일본인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제 2차 세계대전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348쪽) 사사키 하치로오. 1923년생. 토오쿄오제국대학 졸업후 1943년 12월에 학도병으로 징병되어, 1945년 2월 20일 특공대원으로 지원했다. 1945년 4월 14일 특공대 임무수행 중 전사. 향년 22세. 해군 소위였다. (333쪽) 나에게 ‘카미카제’(특공대)는 2차 대전 말기 미쳐버린 일본군 최후의 발악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흐린 바다 위를 나는 프로펠러 비행기. 그리고 멀리 보이는 미군함. 날아오는 총알..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박찬국(지음)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 박찬국 지음/동녘 박찬국(지음), , 동녘, 2004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조차 느낄 틈도 없이 쫓겨 다니는 현대의 직장인에게 하이데거의 철학은 사치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하이데거에게 만한 텍스트도 없었을 것이고 그만큼 현대인이 당면한 근본적인 질문을 잘 드러내준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반 일리치이지 않은가. 이반 일리치로서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하이데거의 철학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이데거가 현대 문명에 대해 끔찍한 생각을 했다면, 나는 도리어 하이데거의 철학을 알게 되면서 끔찍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삶의 문제는 철학으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성을 가진 실천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 취했노라

고대의 길과 근대의 길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양재역 사거리에서 강남역 사거리 사이의 길들은 곧지만, 늘 막혀 있다. 느리고 뚝뚝 끊어지는 경적 소리와 숨 넘어 가는 엔진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고대의 길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익히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차지만, 근대의 길엔 늘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곧지만 호흡하기 힘든 분위기로 내 삶을 옥죄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6월 3일 금요일 밤 10시. 무릎엔 아무런 상처도 없지만, 실은 영혼의 무릎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도망가지도 못하도록 나를 몰아 붙였지만, 실은 늘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 때까지 나온 시집의 첫 장 중에서 가장 멋지고 우아한, 그러면서도 한없이 슬픈 것은 장정일의 시집이다. 늘 도망 중이라는. 발 한 쪽을 앞으..

하프시코드

틀어놓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온 하시프코드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깊이 잠든 도시의 한 모퉁이를 하나둘 천천히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날 새벽은 때로 공포스럽고 때로 두려우며 때로 슬프다. 잠 자는 것이 두렵다. 논리적으로 따져묻기 시작해보면, 삶이란 것도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삶이 아는 것처럼 흘러가지 못하듯... 내 공포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시작해 내 주위를 가득 메운다. 한 몇 주일 정도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살고 싶다.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앙드레 말로와 나

공부를 띄엄띄엄한 탓에, 길고 체계적인 글에 약하고 외국어는 그저 읽을 수준 밖에 되지 못한다. 국제 행사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고 이런저런 일 탓에 불어 공부를 놓아두고 있었던 터라 간단한 인사조차 가물가물한 지경인데, 이번에 들어오신 선생님들 인사 드리러 가야한다. 몇 시간만 하면 간단한 회화 정도를 될 것같기도 한데, 오늘 밤엔 밀린 일도 하고 불어 공부도 해야한다. 오늘 가자는 걸 내일로 미루었다. 헐. 앙리 고다르는 세계적인 학자인데, 국내에선 인지도 낮다. 브라질에서 오신 에드손 로사 드 실바 선생도 브라질에선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는 분이라, 브라질 대사관에서 협회로 연락이 왔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의 인문학 지식인층은 너무 얕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세상에나, 앙드레 말로를 ..

여자

내가 사랑했던. 지금도 사랑하는 어떤 여자. 그런데 과연 사랑하는 걸까. 눈만 감으면 생각나고 힘들 때면 생각나고 행복할 때면 생각나고 비가 올 때도 생각나도 언제가 생각나긴 하지만, 그런데 과연 그녀를 사랑하는 걸까. 사랑은 언제나 유리창 같아서 보기엔 투명하고 순수해 보이지만, 얇은 망치 하나로 깨지는 게 사랑인데, .. 과연 난 그녀는 사랑하는 걸까. 현실의 삶은 너무 거칠고 힘들어서, 그냥 손을 놓아버리면, 그냥 놓아버리면 속이 편할 어떤 것이어서, 그 속에서 유리창 같은 사랑을 난 지킬 수 있을까. 내 꿈은 내가 손수 잡은 갤러리에 그녀의 작품을 내 손으로 직접 걸어, 내가 전시 평을 쓰고 잡지 잡아 인터뷰 하고 .. 그런게 꿈이었는데, ... 그게 가능할까. 하긴 가능은 할 꺼야. 대신 그녀가..

마이 포지셔닝, 잭 트라우트/알 리스

마이 포지셔닝, 잭트라우트, 알 리스 지음, 윤영삼 옮김, 다산북스 당황스러운 책을 집어들고 '그래, 세상은 이랬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나의 성실성보다 다른 사람의 힘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든 타인의 힘에 기대려는 시도를 하려고 마음 먹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자들이 원하는 것은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혼자서 성공하는 경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의 저자들은 매우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을 형편없는 책으로 치부하고 그냥 내던질 수도 있고 기막힌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노트를 해둘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후자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먼저 어떤 성실성..

블루오션전략, 김위찬/르네 마보안

블루오션 전략 Blue Ocean Strategy, 김위찬, 르네 마보안 지음, 강혜구 옮김, 교보문고 “블루오션 전략은 기업으로 하여금 경쟁이 무의미한 비경쟁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유혈경쟁의 레드 오션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게 한다. 즉, 경쟁자를 벤치마킹하거나 줄어드는 수요를 경쟁업체와 나누는 대신, 수요를 늘리고 경쟁으로부터 벗어나는 전략이다.” 말 뿐인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책들보다 뛰어나다거나 대단한 접근법을 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책의 효용성은 많은 시행착오 끝에 도달하게 새로운 차별화되고 새로운, 그래서 경쟁자가 진입하기까지 다소간의 시간이 걸리는 어떤 시장에 도달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법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에서 인용한 문장처럼 경..

에드워드 호퍼

Evening Wind, 1921, etching,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유화에서는 부드럽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에칭 판화에서는 거칠고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호퍼의 세계란 도시의 쓸쓸함이다. 그리고 그것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난 쓸쓸해'라고 인정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편안함을 던져준다. 그러나 그 뿐. 호퍼는 그 곳에서 멈춰 서서, 그저 쓸쓸하고 외로울 뿐이다. 왜 쓸쓸한 지, 왜 외로운 지 알지도, 알려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래 보고 있으면 지루해지고 과연 쓸쓸한 건가 되묻게 된다. 이것이 에드워드 호퍼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