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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풍 속의 마르그리뜨 뒤라스

사무실을 나가기 전에 오늘 쉴새없이 불었던 가을바람을 떠올린다. "계절풍의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마르그리뜨 뒤라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을이나 겨울에 부는 바람은 늘 그녀를 떠오르게 한다. 한 때 뒤라스의 소설만 읽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가 보다. 그녀의 책을 서점에서 본 적이 오래 되었고 그녀를 이야기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하긴 그녀는 사랑 속에서 죽었으니. 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잠시 ... 내가 그녀의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벌써 6년이나 지났구나. ... 뒤라스. 1998년 겨울. 그 겨울. ...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고종희

고종희(지음),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한길사(2004년 초판 1쇄) 오랜만에 국내 저자가 쓴 꽤 좋은 미술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시대로 일컬어지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작품 활동을 했던 여러 화가들의 초상화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많아도 특정 시대나 특정 장르에 대한 책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르네상스 시기의 초상화는 ‘본질적으로’ 권력의 양식이다. 이는 종교 권력이 물러나고 세속 권력이 이를 대체해 나가는 시기에 일어나는 일로서 연대기적으로 초상화 양식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직까지 로마의 영향권 속에 있었던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뉴욕삼부작, 폴 오스터

폴 오스터(지음), 한기찬(옮김), 뉴욕 삼부작 The New York Trilogy, 웅진출판, 1996 초판2쇄. 어둠 속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밀어 넣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때, 내 실수와 과오, 내 조그마한 상처, 또는 내 고귀했던 사랑마저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렇게 되었을 때, 왜 누군가가 날 찾는 것일까. 소설은 누군가를 계속 찾아 다니다 그 누군가를 잊어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실은 오래 전부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고 그것을 그 스스로 선택했으며 그렇게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제 날 찾는 따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 전부터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들의 것임을. 그..

박물관의 탄생, 전진성

전진성(지음), 박물관의 탄생, 살림, 2004. 초판 알튀세르가 강압적 국가 기구(Repressive State Apparatus)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Ideological State Apparatuses)를 이야기했을 때, 그는 우리의 삶 전체가 정치적인 기구들에 의해 둘러 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의 삶 전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알튀세르에게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정치적인 것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가족, 학교, 미디어 등을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로, 어쩌면 군대, 경찰 제도보다도 더 위험한 기구들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은 분명 알튀세르의 기여라고 해야 할 것이다('아미앵에서의 주장'(솔출판사, 현재 절판)에서 여기에 대한 알..

라파엘전파, 팀 베린저

라파엘전파 - 팀 베린저 지음, 권행가 옮김/예경 팀 베린저(지음), 권행가(옮김), , 예경, 2002년(초판) 예쁜 그림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라파엘전파. 대다수의 미술사가들이 그 가치를 폄하하고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미술, 그래서 '위선과 기만'의 시대로 알려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미술 양식.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라파엘 전파 화가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 어쩔 수 없이 그 가치를 인정해주기에는 그들의 작품들이 그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서술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를 시작으로 존 에버릿 밀레이, 번 존스, 매독스 브라운 등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존 버거

존 버거(지음), 김우룡(옮김), , 열화당, 2004년 초판. 신분증을 보여주기 위해 돈을 지불하려고, 혹은 열차 시간표를 확인하느라고 지갑을 열 때마다, 나는 당신 얼굴을 본다. (중략) 가슴속 지갑 안에 들어 있는 꽃 한 송이, 우리로 하여금 산맥보다 더 오래 살게 하는 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 11쪽 저녁이 올 때마다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거울 속의 저 라일락 가지처럼 자리한다. - 70쪽 * *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지 않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는 과연 몇 명쯤 될까. 매번 마주하게 되는 마을이며 사람들이 낯설더라도 움츠리지 않고 이방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어버리지 않는 이는 몇 명이나 있을까. 존 버거의 은 정해진 방향을 가지지 않는 작은 글 모음이다. 정해..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 데니스 N.T. 퍼킨스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 - 데니스 N. T. 퍼킨스 지음, 최종옥 옮김/뜨인돌 데니스 N.T.퍼킨스(지음), 최종옥(옮김), 섀클턴의 서바이벌 리더십, 뜨인돌출판사 살아가는 건 어떤 것일까. 조선 시대에 태어난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그 고장을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뜻밖의 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는 삶을 살다가 죽을 것이다. 근대자본주의문명은 삶을 전투로, 극한 상황으로,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겨우겨우 살아나갈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니스트 섀클턴은 실존인물이며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이다. 그는 643일간 남극 대륙 속에서 죽음을 넘나들며 28명의 대원들을 무사히 귀환시켰다. 이 책은 이러한 섀클턴의 남다른 지휘력에 대한 책이다..

한겨레문화센터 열번째 강의 - 19세기 미술

19세기 - 라파엘전파, 사실주의, 인상주의. 19세기를 특징짓는 인물이 있다면 그건 '찰스 다윈'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19세기의 학문이나 예술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할 때 찰스 다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19세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존 파울즈의 속에서 주인공의 이름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다윈일 정도이니, 그가 19세기 후반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치즘도 다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세기는 여러모로 양 극단을 달리는 시대이다. 이러한 분열의 증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영국이다. 영국 런던의 뒷골목은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사람들이 움막 같은 집에서 살며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만연하..

노동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제레미 리프킨(지음), 이영호(옮김), , 민음사, 1996(1판), 2001(23쇄)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실업이 어떤 이유로 생겼고 이 현상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는 없는 듯하다. 2004년 7월 현재 전체 실업률은 3.5%였다. 그리고 청년(15세-29세) 실업률은 7.6%였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를 참고한다면 한국의 실업률은 해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상시 구조조정 체제가 구축되어가고 생산성 향상과 노동 유연성 확보라는 미명 아래 이제 노동자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 책이 나왔을 1996년에 읽었다면 설득력이 없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2004년에 읽은 이 책은 한국의 상황을 적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