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49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展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展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2007. 6. 26 - 9. 30 덕수궁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프라도 미술관 등과 함께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은 유럽 여행을 갈 경우 반드시 들려야만 하는 곳들 중 한 곳이다. 그러므로 유럽에 관심이 많다거나 안목 있는 미술 애호가라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놓칠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귀도 레니, 루벤스, 렘브란트, 반 아이크, 벨라스케스 등 미술사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화가의 작품을 한국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보러 가라고 이야기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오치균 -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

오치균 -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 Oh Chi Gyun - Azaleas and Winter in Sabuk 2007. 9. 6 - 9. 26 갤러리 현대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생각에 잠겨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전시 도록을 펼쳐보면서 그 때의 느낌을 되새겨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참 어려운 일이다. 쉽지 않은, 어려운 일 앞에 서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는 것이 낫다. 끊임없이 포기하다 보면, 더 이상 포기하지 못하는 지점에 이르게 되겠지. 여름이 오면 진달래가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지듯이. 오치균의 두터운 색채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가까이서 보면 두텁게 칠해진 물감들만 보이고 멀리서 봐야만 형태가 보인다. 그는 보는 이에게 ‘적당한 거..

황혜선 - 기억의 창, 이화익갤러리

HAESUN HWANG 기억의 창 황혜선 2007.9.12 - 10.2 이화익갤러리 www.leehwaikgallery.com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아파하고 숨을 쉬며 움직인다. 이러한 운동이 끊김 없이 흘러간다는 점에서 때로는 당혹스럽고 때로는 놀랍다. 황혜선의 비디오 아트는 시간과 운동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지만, 그 전에 그녀의 시선은 디테일한 일상의 무미건조함에 대한 반발로 구성된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해진 비디오 아트를 넘어선 낯선 즐거움을 안겨준다. ‘기억의 창’이라는 제목에서 환기하듯이, 그녀의 이번 전시의 주된 테마는 일상의 기억들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다양한 매체와 작업 속에서 우리에게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인해 그녀의..

조숙진 전, 아르코미술관

Sook Jin Jo A 20 Year Encounter with Abandoned Wood: Selected Artworks from New York 아르코미술관. 8.31 - 9.30 만남이란 가슴 떨리는 신비다. 그 신비가 소란스런 대학로 한 가운데로 왔다. 흐트러진 질서와 무표정한 낡은 빛깔들로 채워진 나무들이 우리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조숙진의 작업은 세월의 파편 하나하나를 안고 쓰러져 시간의 먼지를 먹고 있던 나무 조각조각들 꺼내어 다시 구조화한다. 그런데 그 구조화는 ‘공간’(컨텍스트) 속에서의 ‘설치와 해체’(텍스트화) 속에서 이루어져, 가변성과 우연성을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열려있는 성격은 관객과의 참여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메타포를 지니게 된다. 나무의 상징은 복합적이다..

아트는 없고 투기자본만 있다

현재 미술 시장을 보면 한편으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어제 헤럴드 경제에 실린 기사는 한국 미술 시장이 얼마나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가를 진단하고 있다. 혹시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바로 구입하지 말고 2-3년 정도는 미술에 대해서 공부하고 난 뒤에 구입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투자가 먼저'가 아니라, '작품 감상이 언제나 먼저'임을 깨달아야 한다. 미술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시장이고 장기적으로는 매우 유망한 시장이다. 프랑스인들은 미술 작품을 구입한 후 손자에게 물려준다고 한다.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작품이 마음에 들어 구입한 것이니, 기분 상하지 않고, 한 100년 정도 지나면 가격은 자연스레 오르기 마련이니깐.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집 안에 미술 작품 하나 둘 걸..

예르벤퍼 숲 속 나무들의 낮은 속삭임

예르벤퍼 숲 속 나무들의 낮은 속삭임 - 시벨리우스, 작품 75번 - 다섯 개의 피아노곡 조금의 미동(微動)도 없이 투명한 유리창 너머 우두커니 서, 사각의 방 안을 매섭게 노려보기를 몇 주째, 여름날의 대기는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다. 어디에서 저런 열기를 가지고 오는 것인지, 쉴 새 없이 내 육체를, 내 영혼을 끝없이 높은 여름 하늘의 노예로 만들며, 날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 끄트머리에 어색하게 튀어나온 동아시아의, 온대성 기후에서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는 작은 반도 가운데 위치한 거대 도시의 여름을 견디게 하는 것은 대륙의 반대편, 대지의 대부분이 산과 숲, 호수로 이루어진 나라 사람의 100년 전, 작은 피아노 음악들이었다. 빵과 버터를 위한 음악 언제부터였을까. ‘예술가..

디 워 - 마케팅의 승리

‘영화 스크린 쿼터제’로 영화인들이 데모할 때쯤이었다. 나도 한 때 영화광이었고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으며 시나리오를 쓰던 때가 있었음을 떠올리면서 친구와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나와 논쟁이 붙었던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 8mm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며 대학 때는 단편 영화를 찍고 다녔다. 그러나 나는 직장인이었고 그는 번역가였다. 영화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나는 영화인들이 아예 보기도 싫다는 입장이었고 그는 이해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직도 나는 스크린 쿼터를 주장하는 영화인들이 보기 싫다. 한국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성공적인 상품 중의 하나인 ‘영화’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보호하기 위한 ‘스크린 쿼터제’를 주장하면서 ‘문화’니, ‘예술’이니 해대는 모..

와인 문화와 산업

와인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지 이제 이 년이 다 되어간다. 마시는 술의 종류에 따라, 술 마시는 공간, 먹거리, 분위기가 달라진다. 분위기로 보자면 겨울의 사케가 단연코 1위다. 여름의 차가운 화이트와인도 좋지만. 시원한 생맥주 또한 괜찮다. 그렇다고 지글지글 고기 안주에 소주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와인만큼 그 나름대로의 격식과 문화를 가진 술이 있을까. 이러한 '격식과 문화'가 작은 문화를 산업으로 만들고 관련 시장을 확대시키고, 전문가와 관련 아카데미를 만든다. 그리고 현재 전세계 인구 100명 중 1명이 와인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술이라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관대한 한국이 왜 술 마시는 것과 관련해 와인 만큼의 문화나 산업이 없는 것일까.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소주'와 관련된 ..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쿠르베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쿠르베 "어떤 세기의 화가가 그 이전 세기나 미래의 세기의 사물을 재현한다는 것, 즉 달리 말해서 과거나 미래를 그린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역사적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당대적인 것이다. ... 또한 나는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현실적이고 실재하는' 사물들의 재현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화란, 어떠한 단어 대신에 모든 가시적인 대상으로서 구성된, 전적으로 물질적인 언어이다. '추상적인' 대상, 눈에 보이지 않으며 실재하지 않는 대상은 회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 쿠르베,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1861년 12월) 중에서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오랜만에 미술에 대해서 잠시 끄적여 본다. 로만..

예술의 우주 2007.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