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49

Flight To Denmark , Duke Jordan Trio

Flight To Denmark Duke Jordan Trio Steeple Chase, Denmark 눈으로 뒤 덮인 숲 속에 한 남자가 서있다. 두꺼운 외투에, 끝이 뾰족하게 솟은 모자, 둥근 안경, 두 손은 외투 주머니에 꽂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쌓인 눈의 울퉁불퉁함 때문인지, 사진을 찍은 사람이 약간 비스듬하게 카메라를 쥐고 있는 탓인지, 이 남자의 서 있는 포즈가 약간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 불안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흰 색으로만 채색된 그림 한 가운데 어정쩡하게, 잘못 자리잡은 듯한 그 남자의 이름은 듀크 조단(Duke Jordan). 1922년 태생의 그는 1940년대 후반 찰리 파커 쿼텟(Charlie Parker Quartet )에서 활동한 것으로 잘 알..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생애와 작품에서 단절이 없었다는 것은 희귀한 일입니다. 모든 것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가 어린시절에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어휘 하나는 쥬피터 교향곡에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모차르트는 실생활에서는 자신이 처리할 수 없는 일들과 부딪혔던 반면에 자신의 예술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장악했습니다.”(아르농쿠르) 출처: 고싱가숲(http://www.gosinga.net/archives/432)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을 때면, 그 순수함이 도리어 낯설어지기까지 한다. 삶의 문제와는 무관한 듯한 그의 음악은 유미주의적이다. 그래서 계속 빠지는 것일까. 아르농쿠르의 저 대답은 너무 마음에 든다.

예술의 우주 2007.12.25

Contemporary Istanbul 2007 art fair

오늘 오후 2시에 출국한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가 다시 이스탄불로 가는 여정이다. 이스탄불 공항 세관에 낼 서류들을 준비하고, 짐을 꾸렸다. 우습게도 해외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 때문에 해외에 처음 나가면, 계속 일 때문에 나가게 되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하긴 내년에도 계속 일 때문에 나가게 될 예정이니. 이번 일을 준비하면서 영어가 조금 늘긴 했으나, 아직 간단한 생활 영어 수준이다. 가서 어떻게 설명은 할 것같은데, 행정적인 절차가 다소 걱정이긴 하다. 영문 보도 자료도 만들어야 하는데, 미처 챙기질 못했다. 의외로 할 일이 많아, 시간에 쫓겼다. 그 사이, 돈을 벌기 위해 원고 집필 때문에 더 바빴다. 또 감정적인 혼란 상태에도 여러 번 빠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

예술의 우주 2007.11.26

루시와 그녀의 시간 Lucy and Her Time, 최재은, 로댕갤러리

Lucy and Her Time 최재은 - 루시의 시간 2007. 9. 21 ~ 11. 18 로댕갤러리 국내 대부분의 미술 잡지에서 이번 전시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만 보자면, 높은 평가와 호응을 얻은 전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비평적 관점에서의 접근일 뿐, 일반 대중이 보고 공감하고 호응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전시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모호하고 추상적인 작품들 속에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를 끌어내기란 다소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Lucy라는 이름은 1974년에 발견된 화석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 화석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으로, 25세 정도의 여성에, 키는 약 107cm, 몸무게는 28kg, 약 3백 20만년 전에 살았던 원시 인류의 화석이다. 특히 루시의..

미술 시장에 대한 메모 1

월간미술 10월호를 읽다가 메모해 둔 것을 포스팅한다. 미술시장이 팽창하는 것은 한편 대단히 고무적이지만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너무 상업적으로 끌어가려 해 안타깝다. 나는 그림을 남에게 선물한 적은 있지만 판 적은 없다. 공급이 제한된 상태에서 수요가 있는 물건이 세월이 흐르면서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은 당연한 경제 원리다. 하지만 그림은 재테크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신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문화는 보다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트렌드에 따른 상업적인 접근보다 그림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안목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 권기찬(오페라갤러리코리아 대표), 월간미술 2007년 10월호 사실 역사가 깊은 외국의 경매에도 가격 담합이나 조작은 있어왔다. 피터 왓슨이 ..

“똥과 창자 그리고 자존과 해방” - 안창홍, 정복수 전, 갤러리아트사이드

안창홍 정복수 “똥과 창자 그리고 자존과 해방” 2007. 10. 17 – 10. 30 Gallery ARTSIDE 우리는 하루 24시간 동안 몇 마디의 욕을 할까. 욕을 하지 않는다면 욕을 하고 싶은 상황엔 몇 번 처하게 될까. 그리고 이를 내 인생 전반으로 확장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삶이란, 실은 고귀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애초 시작부터 수십억 마리의 정자들 속의 우연한 한 마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어떤 필연성이나 목적성 없이 그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허무주의는 이미 우리 현대인에겐 익숙한 삶의 양식이자, 정신적 태도이다. 하지만 누가 감히 그런 양식과 태도를 드러낼 수 있을까. 그러나 현대 예술에 있어서 이 허무주의의 유/무는 매우 중요하다. 대..

김아타의 '온 에어(On Air) 프로젝트:뉴욕 타임스 스퀘어'

* 회화가 단색회화(모노크롬)와 텅 빈 캔버스를 지나쳐서, 더 이상 사유하기(thinking & meditation)를 그만두었다면, 이제 사진과 비디오가 그 사유와 명상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회화는 계속 사유하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가 비디오로 명상하는 경우를 보여준다면, 김아타의 저 사진은 사진의 명상을 보여준다. *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의 범위는 비주얼 콘텐츠 뿐만 아니라, 그 콘텐츠를 담고 있는 TV 브라운관이나 낡은 TV 외장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백남준 이후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은 비디오를 사유의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으나, 백남준은 그와는 달리 비디오/TV 라는 그 매체 자체에 매료당했다. 그래서 정신없고 현란한 백남준의 비디오 콘..

예술의 우주 2007.11.15

부유 - 중국미술의 새로운 흐름, 국립현대미술관

부유(浮游) - 중국미술의 새로운 흐름 FLOATING - New Generation of Art in China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07. 8. 17 - 10. 17 아직도 중국이라고 하면 품질 좋지 않은 싸구려 제품을 떠올리는 것이 먼저다. 아니면 서울 근교의 공장 지역에서 마주치게 되는 중국인을 떠올린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중국을 단편적으로만 학습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여기고 만다. 장 샤오강이나 유에 민쥔 정도는 알고 있을지 몰라도, 현대 중국 예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장 샤오강의 높은 작품 가격은 전 세계 화교 자본의 영향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서울의 우리가 현대 중국 예술의 수준을 이해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있었던..

장 뤽 고다르와 영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약간 읽기 불편한 번역이긴 하지만, 꾹 참을 수 있는, 국내 저널에서는 읽기 힘든 생소한 칼럼들의 모음. 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를 읽는다. 나에게 익숙한 이름들: 노암 촘스키, 장 브리크몽, 레지 드브레, 존 버거. 하지만 나를 감동시킨 건 기 스카르페타의 ‘장 뤽 고다르’. 영화에 대한 내 생각 - 그것은 시작하자마자 자본주의 앞에서 몰락해버린 예술, 혹은 예술가에 대한 저주다. 스크린 앞에서 이제 누구도 예술을, 영혼을,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돈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리고 예술 영화의 정신은 스크린에서 사라지자마자, 그 영상 이미지는 시간 위에 수놓아지는 서사를 시적인 감수성으로 육체를 바꾼 채, 미술관의 작은 브라운관..

예술의 우주 2007.10.24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갑자기 찾아든 가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육체와 영혼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진정시키란 구름이 가뜩 끼어있는 서울 하늘에서 별빛을 발견하는 것처럼 어려운 종류의 일이었다. 갑작스런 계절의 변화는 자주 격렬한 심리적 불안과 섬세하고 민감한 우울을 동반한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초월적 실체, 또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시대는 니체와 프로이드로부터도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의 니체만큼 신을 갈구했던 이도 없었을 것이다. 프로이드는 아예 영혼의 신비를 없애버렸으며, 젊은 루카치는 심리학의 발달을 비난했다. 하지만 ‘종교는 아편’이라며 공격했던 마르크스는 종종 나에게 그만큼 종교적인 사람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하지만 종교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