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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지하련의 우주/Jazz Life +787




여름을 특정짓는 것이 짙은 녹음과 뜨거운 열기라면, 이미 여름은 왔다. 그렇다면 사랑을 특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혹은 이별?, 아니면, 나는? 


세월은 너무 흘렀다. 나만 제외하고 모든 이들이 다 아는 사실 하나,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 


평일 창원엘 갔다. 연휴나 명절이 아닌 날 내려간 건, 거의 이십년 만인가. 지방 중소 도시에선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도 서울에선 참 낯선 풍경임을 새삼 느꼈다. 그만큼 서울 생활이 익숙해진 건가, 아니면 지친 건가.  





올해 초 새로 생긴 경상대학교 병원 앞에 이런 하천이 있었다. 조금만 가꾸면 사람들이 다닐 수 있을 것같은데, 여기 사람들은 별 관심 없을 것이다. 여기저기 공원이다 보니.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몇 장의 창원 풍경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는데, 지난 기억이 떠올라 가슴 아팠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어떤 삶 앞에서 문학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던 시절, 그 이후 나는 술이 늘었고 주사가 생겼으며 마음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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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지(理智)에 치우치면 모가 난다. 감정에 말려들면 낙오하게 된다. 고집을 부리면 외로워진다. 아무튼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것이 심해지면, 살기 쉬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이사를 해도 살기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인간 세상을 만든 것은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역시 보통 사람이고 이웃끼리 오고 가는 단지 그런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 만든 인간 세상이 살기 어렵다고 해도 옮겨 갈 나라는 없다. 있다고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나라로 갈 수 밖에 없다. 사람답지 못한 나라는 인간 세상보다 더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옮겨 살 수도 없는 세상이 살기가 어렵다면, 살기 어려운 곳을 어느 정도 편하게 만들어서 짧은 생명을, 한 동안만이라도 살기 좋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시인이라는 천직이 생기고, 화가라는 사명이 내려진다.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간 세상을 느긋하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까닭에 소중하다.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기 어렵게 하는 번뇌를 뽑아내고, 고마운 세계를 직접 묘사해내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혹은 음악이고 조각이다. 자세히 말한다면 묘사해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샘솟는다. 착상을 종이에 옮기지 않아도 보옥이나 금속이 부딪쳐서 나는 소리는 가슴속에 일어난다. 

- 나쓰메 소세키, <<풀베개>>, 7쪽~ 8쪽(오석윤 옮김, 책세상)



나쓰메 소세키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소설의 첫 문장들을 이렇게 구성했을까. 나는 몇 주째 이 문장들을 지나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그네슘 부족인지 왼쪽 눈 부근 근육들이 파르르 떨리기를 반복하고, 잇몸은 수시로 붓는다. 어깨가 결리고 입안은 헐었다.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일까, 아니면, ... 


현암사에서 나오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장만하고 싶으나, 그의 소설을 읽을 시간마저 없는 이에게 전집은 사치라는 생각에 ... ... 


비 오는 대체공휴일, 사무실에 나와 일을 했다, 하지만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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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으로 불상들이 보였다. 파란색 카디건 안에 숨죽이고 있던 땀이 올라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차가운 목소리를 가진 커피숍 아가씨가 내 대답을 받아주었다. 한남동이다. 나에게 조금 익숙한 신동빌딩이 있고 그 빌딩 일층엔 언제나 가고 싶은 와인샵이, 그 옆으론 BMW도이치모터스 한남전시장, 그리고 할리데이비슨 코리아가 있었다. 


봄이라고들 말하지만, 봄은 중년 사내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겉돌고 있기만 하다. 하긴 어느 해의 봄인들, 지쳐가는 중년을 즐거이 맞이할까. 봄은 화려한 사랑을 꿈꾸는 처녀들과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모험과 도전만 있다고 믿는 청년들만 반길 뿐이다. 


테이블 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다 주었다. 그 사이, 나는 책을 떨어뜨렸다. 고요하던 커피숍 안으로 떨어지는 책과 그 추락을 가로막은 시멘트 바닥의 저지가 울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고 카페 안엔 단 두 명만 있었다. 중년의 사내는 카페 안 인원에서 제외하고. 


결혼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드물어졌다. 거의 없어졌다. 결혼 전엔 혼자 있는 시간을 종종 견디지 못했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립기만 하다. 아내의 강권으로 아버지 수업을 들으러 가던 길이었다. 그리고 수업을 들었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진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라, 아이가 아빠를 불렀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에게 집중해라, 아빠와의 많은 교류가 아이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강사가 말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께선 할아버지를 보지 못하셨다. 아빠와 놀던 경험은 대를 이어 내려올 테지만, 나에게도 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할아버지의 부재는 우리 집의 경제적 상황뿐만 아니라 정서적 상황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커피를 급하게 마셨다. 집에서 한남동까지, 한남동에 도착한 시간과 수업이 시작하는 시간 사이의 여분은 약 이십 분 정도였으니까. 요즘 자주 왼쪽 눈꺼풀이 얇게 떨린다. 마그네슘 부족이거나 스트레스 탓이다. 갑작스레 다가온 봄 탓이다. 나는 계절의 변화가 싫고 얇아지는 옷만큼이나 불안해지는 마음이 싫다. 


책을 읽는다. 마이클 더다의 고전읽기의 즐거움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결국 사게 된 책이다. 사고 난 다음, 사길 잘했다는 위안을 안겨주었다. 분명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수십 권의 책을 죽을 때까지 사게 될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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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쓸 일이 없다보니, 영어 실력은 늘 제 자리 걸음이다. 방통대 영문과도 휴학 상태이고. 겨우 영문을 읽는 속도만 조금 빨라진 것같다. 이제서야 영어 표현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 그 동안 시간 허비를 한 셈이다. 아니면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려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든가. 


요즘 잠시 쉬는 틈을 활용에 하루에 1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아졌더라. 


외국어는 무조건 많이 들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들을 수 없었다. 고작 AFKN(주한미군방송)이었는데, 이것도 주파수가 잡히는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 나머지는 그저 어학 테잎만 주구장천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엔 들어가면 온통 다 영어다. 커뮤니티에 들어가 영어로 댓글을 달거나 게시물을 올릴 수도 있다. 영어 채팅도 가능하고. 특히 Radio Station이나 Podcast는 그 활용도가 매우 높다. 특정 Podcast의 경우에는 홈페이지에서 원고도 제공해준다. 


내가 요즘 거의 끼고 사는 APP은 Public Radio & Podcast라는 앱이다. 영어 공부를 위해 웹 방송국을 찾는 경우에는 해당 방송국 App을 설치한다. 하지만 일일이 찾아 설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방송국 리스트가 있다면 좋을 텐데. 


Public Radio & Podcast은 수백개 이상의 웹 방송국 목록을 카테고리별로 제공해준다. BBC나 CBC는 별도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고, 그 외 클래식음악, 재즈/블루스, 뉴스와 좌담, 락, 그 외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방송국을 찾아 들을 수 있다. 아니면 자신이 직접 해당 방송국을 등록할 수도 있다. 


Podcast의 경우에는 분야별로 제공해주고 있다. Art&Life, Books, Business&Economy, Careers, Education, Food, Health, History, Kids&Family, Literature, Music, ... ... 등등. 


이 어플리케이션 하나면 거의 대부분의 라디오방송과 포드캐스팅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에는 NPR를 주로 듣다가 요즘에는 CBS의 Radio One과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를 즐겨 듣고 있다. 영어 공부용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는 CBS를 듣고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거나 할 경우에는 클래식 전문 라디오를 듣는다. Capital Public Radio의 Classical 채널은 선곡이 무척 좋다. 그리고 말도 없이 음악만 계속 나온다. (누가 미국 라디오에는 음악 중간 짜르고 광고 나온다고 했던가!!) 클래식 음악 팬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포크락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WFDD - Wake Forest's Music이 좋다. 


나도 모든 채널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서핑하듯 들어보고 결정해보길. ~ 






다운로드 :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nprpodcastplayer.app (google play) 



* * 


리뷰를 올리고 관련 APP 리뷰들을 찾아보니, 역시 이 APP이 최고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지금 듣고 있는 채널은 KPBS - Classical San Diego다. 샌디에고에 위치한 방송국으로 웹사이트를 통해 방송 중인 내용을 알려준다.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작곡가나 연주자, 작품명을 알고 싶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꽤 유용하다. 


KPBS http://www.kpb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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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4. 08 



어느 아침. 여긴 멀구나, 집에서, 그대에게서, 우주에서, 마음에서,
풀잎소리에서, 미소에서, 저 아름다웠던 시절로부터 여긴 참 멀구
나, 너무 멀리 왔구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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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禁酒)가 금주(琴酒, 거문고와 술)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보니, 한달 이상 술을 마시지 않은 게, 그 때 이후로 처음인 것같다. 나 혼자만의 사랑에 빠져, 나 혼자 발광하다가 차였을 때. 그리고 한참 후 그 때 그 소녀를 다시 만났는데, 그 땐 왜 계속 만나지 않았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그 소녀 참 좋아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나, 잘난 척하지만, 내 깊숙한 곳엔 어떤 컴플렉스가. 결국 그런 문제와 부딪힌다, 그러니, <<하나비>>같은 영화만 좋아하는 것이다. 막판에 가서 폭발하곤 끝장내는. (하긴 컴플렉스 없는 현대인이 어디 있을까. 거대 도시에서의 삶,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강력한 경쟁을 경험한 지 이제 고작 150년 정도 되었는데, 저 오래된 농경생활에서 벗어나...)  


침묵의 끝은 폭발과 함께 오는 정지. 


한 달 정도를 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번 일은 3달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런 직업적 불안정함이 나는 이제 싫다. 몇 군데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볼 예정이다. 사업을 꿈꾸지만, 지난 일 년 간 경험을 돌이켜볼 때, 나는 아직 사업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고 결정내렸다,고 여긴다. 


그 사이 책 읽는 눈과 글을 쓰는 손, 그대를 만나러가는 발, 화사한 색을 마주 하는 가슴,들이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 먼지를 치워주던 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21세기. 


불가피한 이유로 한 달 반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지금, 술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나를 보며, 스스로 신기한 듯, 묻곤 한다. 정말 술 생각이 없는 거야? 


실은 도망치고 싶은 거다. 어쩌면 모든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은 거다. 다원주의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개인주의는, 결국 힘없고 어리석은 개인에게 거창한 자유(결국엔 전혀 자유롭지 않았던)와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자신과 무관한 사건들에 대해서까지)을 묻는다. 결국 자유를 누리고 책임을 다하려면, ... 글쎄, 의외로 어렵고, 화가 나고, 불공평하고, 뭔가 저질러야만 할 것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결국 자유도 버리고, 책임도 버린다. 그냥 시키는 대로 사는 거다. 


하지만 나는 무뇌아가 아니다. 


비 속 바람에 우산이 날렸고 나는 없는 힘마저 꺼내 우산을 잡았다, 그렇게 그 때 사랑을 잡았다면, 그렇게 기회를 잡았다면, 그렇게 탁월한 선택을 했다면, 그 아름다운 우산은 날아가지 않았을 텐데, ... 어느 사월 월요일, 비가 왔고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멈추고, 어둠이 내려오고, 동화책을 읽어달라던 아이가 잠에 들고, 의미 없는 잔소리를 하던 아내가 아이 옆에 눕는다. 


아, 그런데, 이 노래, 너무 좋기만 하다. 금주琴酒를 하지 못하고 금주禁酒를 하는 중년에게, 이런 애잔한 노래가 어울리는 법이다. 더 늦기 전에 춤도 배우고, 악기도 배우고, 사랑도 배워야겠다. 더 늦기 전에, 사랑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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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드러낼 때, 사람은 아름다워진다. 그제서야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상처 없는 사람 없고 상처로 아파하고 고통받지 않는 사람 없다. 상처는 영광이자 추억이고, 회한이며 깊은 후회다. 상처는 반성이며 아물어가며 미래를 구상하고 펼쳐나간다. 상처 안에서 우리는 단단해지며, 성장하고, 한 발 한 발 걸어나간다.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프지만, 언젠가는 아련하게 아름다워진다, 처절하게 그리워지기도 하며, 눈물겹도록, 상처,들 속에서 나는 너를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내 속에 너를, 타자를 키우게 된다, 같이 살게 된다. 


그렇게 타자들이 쌓여 상처는 너에 대한 예의가 되고 세상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된다. 한때 우리 젊은 날을 물들였던 절망과 분노는 상처 속에서 더 깊어지다가, 끝내 상처로 인해 사랑으로, 희망으로, 용기로 거듭난다. 


나는 어제도 상처 입었고, 오늘도 상처 입으며, 내일도 상처 입겠지만, 상처는 끝내 아물 것이고 오늘의 고통이 내일 나를 만들 것이다. 그러니 상처, 나는 너이고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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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죽이지 말아요. 난 지금 사랑에 빠졌거든요.

Don't Kill Me, I'm In Love



그러게, 사랑에 빠진 이를 죽이는 건 아닌 것같다. 하지만 그것이 불륜이라면. 레이몽 라디게의 소설 <<육체의 악마>>가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위험한 사랑만큼 진실해보이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위험한 사랑을 했듯, 젊은 날 우리는 모두 금기된 사랑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이 지나고 벚꽃이 피고 가늘기만 한, 얇은 봄바람에도 그녀의 손톱 만한 분홍 꽃이파리가 나부끼는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나는 애상에 잠기지 않, 아닌 못한다. 생계의 위협이란 이런 것이다. 


새장 속의 새를 아들은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새 한 마리 사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들마저도 남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거다. 




나라고 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냐만은,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다. 사는 게 그런 게 아니다, 라고 중얼거리지만, 그런 게 아니면 도대체 무언가. 인류가 신을 만들고 종교를 만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종류의 악행들의 시작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지배자가 되기엔 어리석기만 하다. 다행인 것은 어리석다는 사실을 현대의 이론가들은 희미하게 깨닫기 시작했으니. 


새장을 보면, 늘 막스 베버가 떠오르고 구조주의자들이나 비트겐슈타인을 생각하게 되는 건, ... 내가 너무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는 걸까. 


아니면 새장 속의 자유마저도 부럽게 느끼는 걸까.


지난 봄날, 그 하늘거렸던 사랑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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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많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다. 마흔이 지난 후, 일만 한 듯 싶다. 한 때 미술계에 발 담근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 전시를 보러 가는 횟수도 줄었고 미술계 사람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돌이켜보니, 내 잘못도 많은 듯하여 마음이 아프다. 지난 1년 간 대형 SI프로젝트 내 단위시스템 PM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전체 프로젝트 관점에서의 단위 시스템에의 접근,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PM으로서 인력 채용과 관리 등 많은 부분에서 그동안 내 장점으로 부각되었던 것들이 단점으로 드러나 더욱 힘들었다. 


잠시 쉬면서 지난 1년을 되새기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배워야한다는 건 늘 힘들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끊임없이 변화할 수 밖에 없고, 과거의 나를 부정해야 한다. 미래라고 해봤자 불과 몇 십년인데, 계속 변화시켜야만 한다. 현대란 유동적인 것이라고 했던가. 하긴 지그문트 바우만은 아예 '액체근대'라고 했으니. 


1년 만에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면서, 과연 나를 채용하기 위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만한 이력서인가 돌이켜보았다. 늘 채용이 결정되고 난 다음 이력서를 냈다. 단 한 번도 이력서를 먼저 제출하고 입사한 적이 없다.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인데, 그러기엔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다. 


이래저래 고민 많은 3월이다. 잠시 쉬고 있던 영어 공부를 하는 중인데, 언어는 참 부단히 배워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여유가 된다면 몇 달 영어 연수나 갔다 오면 좋겠다. 



거의 반 년만에 교외로 나들이를 했다. 아직 서해 바다 바람은 차기만 했다. 중고차라도 하나 구입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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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땅은 단단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게다. 그냥 조용히 반 나절 정도 내리다가 그치는 비라면, 곧이어 햇살이 비친다면, 그 위로 이름 모를 들짐승이 다니고 초록빛 풀들이 자라난다면, 분명 땅은 단단해질 것이다. 


하지만 며칠째 쉬지 않고 폭우가 내린다면, 땅은 단단해지는 대신, 패이고 상처 입고 무너질 것이다. 


일도 그렇다. 어떤 종류의 일들은 자신을 성장시키지만, 어떤 종류의 일들은 포기하도록 만든다. 바쁜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는 중인데, 마무리도 너무 어렵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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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억해둘 만한 해가 되었다. 2016년, 아직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고 주말에 쉰 적이 없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음 뒤, 몸져 누워 나가지 않은 때를 제외하곤. WLB(Work & Life Balance)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던 때가 부끄러워졌다. 


일요일 출근 전, 르 클레지오를 짧게 읽었다.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동떨어진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스물 여덟 무렵, 자신만만하게 젊은 날의 르 클레지오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놀라웠던 데뷔작, <<조서>>, 그 이후의 슬프고 감미로웠던 <<홍수>>, <<사랑하는 대지>>, <<물질적 황홀>> ... 십 수년이 지나고 노년의 르 클레지오는 서울에 와서 살기도 하고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제 르 클레지오는 내 일상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내 탓도, 세상 탓도 아니다. 애초에 이렇게 설계되어 있었다. 거대한 인과율 속에 우리는 잠겨 있고, 그 체계가 실재하는 것이든, 상상적인 것이든 상관없다. 꿈 속에 있으면 그것이 실재라고 믿듯, 우리는 새장을 벗어날 수 없고 언어를 버릴 수 없다. 쓸쓸한 1월이고 슬픈 겨울이다.  



모든 것은 자리를 바꾸고 움직이고 서로 침투하며 수정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존재하며 모든 것은 명백하다. 만약 죽음이 한 인간이기를 그치는 것을 뜻한다면 세계의 이 모든 광경은 죽음의 광경이다. 사실적이며, 실제로 있는, 효과적 죽음, 지울 수 없고 단단하고 정확한 죽음, 저항할 수 없고 바꿀 수 없으며 떼어낼 수 없는 죽음의 광경, 바라보는 수백만 개의 눈, 무한히 많은 눈들의 비전이요, 또 그 눈들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시선인 죽음의 광경이다. 

- 르 끌레지오, '침묵' 중에서 (김화영 옮김, 세계사)




J.M.G. Le Clézio, portraits (1963 à gauche, 2011 à droite). Sourcing images : "L'Express", 1963. "Le Monde", 2011 (archives Vert et Plume) 

출처: www.the-plumebook-cafe.com/jusqua-la-fin-du-mond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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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휴일.퇴근길.여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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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흔적


새해 아침 게으른 커피 한 잔 손열음의 쇼팽 이안 맥퀸의 속죄 도널드 바셀미와 몇 개의 펜 낡은 다이어리 그리고 견디기 힘든 일상의 스트레스, 하지만 올해에는 내 삶을 사랑해보기로 하자. 






1월 2일, 출근 






1월 2일, 퇴근 





어떤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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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가여운 아침의 풍경, 

모두들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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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진 못했지만, 가을과 겨울 사이 몇 권의 소설들을 읽었다. 루이지 피란델로의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 조나선 사프란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김연수의 <<7번 국도>>.  이 밖에도 몇 권의 책을 읽었고 짧게나마 리뷰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글은 형편 없고 독서의 질은 끝 모를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책을 읽긴 했다. 의미과 무의미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독서였다. 왜 나는 갑자기 이렇게 소설책들을 많이 읽게 된 것일까. 


원하지 않는 일들이 연거푸 초가을부터 초겨울 사이 일어났다. 주말 없이 사무실에 나가고, 밤 늦게 퇴근하는 생활이 반복되었고 욕 먹으면서 일을 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급여가 밀렸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나는, 그들의 불성실함 대신 출근하지 않는 불상사를 염려했다. 실은 이때 반대로 움직여야만 했는데, 그러질 못했고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았다.


내가, 우리 팀이 맡은 부분은 종속적 시스템인지라 타 시스템이 끝나야만 처리되는 일이었지만, 다른 시스템들은 우리와 무관하게 미궁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께서 입원하셨다. 고향에서 서울로, 다소 생소한 병명으로 송파구에 있는 큰 병원으로 와서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 여의도 사무실과 서울 동쪽 끄트머리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몇 주간 했다. 그 사이 회사에선 나를 대신할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지 못했고 대신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수술은 잘 끝나, 아버지께선 다소 고통스러우나, 약간의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다. 미궁으로 빨려들어가던 주 시스템 개발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프로젝트는 내가 맡은 부분만 남는 상황이 되었다. 스트레스와 부담감은 끝없이 치솟았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이들마저 그만 두겠다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었)다. 그냥, 계속 해왔던 것처럼 욕 먹으면서 일 하는 것. 


이전 회사들을 다니면서 WLB(Work-Life Balance)를 이야기하곤 했는데, IT 프로젝트들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알려진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에선 '일과 일상 사이의 조화'란 불가능하다, 불가능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이상한 상황 속에서 '다들 원래 이래', 그러면서 그걸 묵묵히 견디며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다들 SM인 걸까. 얼마나 험난한 일을 거쳐왔는가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하는 걸까. 그런 고난 거쳐 성공했다고. 뭔가 이상하지만, 나 또한 그러고 있(었)다. 


우리들의 목표, 우리들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스무살 때는 뭔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든다. 대단하다고 여겼으나, 다들 평범했고 똑똑하고 영특하다고 여겼으나, 현실적 영향력은 없었다. 그저 다들 별 볼 일 없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늦었지만, 지금 사무실로 나가 저녁에 돌아올 듯 싶다. 26일도, 27일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1월 안에 내가 맡은 이 일들이 끝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뭘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했다. 스트레스로 인해 술을 마시면 폭음을 하게 되고 내 일상을 망가뜨렸다. 내년 2월, 편안한 마음으로 술을 마실 수 있기를 기대해보기로 하자. 전시도 좀 보고 여행도 다니고 ... 그게 가능할련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계절 사이에서 내가 읽었던 소설들의 짧은 느낌을 덧붙인다. 


피란델로의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에선 주인공 파스칼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사랑은 잃어버렸지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던 과거의 인생과는 결별할 수 있었다. 하나의 상처는 또 다른 상처로 해소된다.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는 현대 예술에 대한 코메디이고, 사프란포어는 특유의 형식 속에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 울컥하기도 했다.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저널의 찬사와 달리 약간 맥이 풀리는 느낌이랄까. 그만큼 이슬람의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김연수의 <<7번 국도>>는, ... 아직도 출판되고 있다느 것이 의아스러웠다. 이십대 중반 김연수가 쓴 소설이고 형편없었다. 실은 내가 이 소설을 잘못 구입한 것이다. 


좋은 일이 뜸하다. 기쁜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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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순간순간 묻지만, 답은 없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움직여야만 한다. 설령 그게 잘못된 방향일지라도. 그게 삶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노력하는 것, 정성을 쏟는 것과 무관한 게 삶이다. 하지만 원하고 노력하고 정성을 쏟는다. 이게 또한 삶이다. 그러면 나는,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술이나 마셔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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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많은 눈 속의 내키지 않은 출근길. 작고 낡은 검정 타이어를 끼운 초록 빛깔 마을버스가, 빠르게 떨어져 쌓이는 눈송이들을 아주 느리고 무겁게 밟으며 힘겹게 경사진 도로를 올라왔다. 누군가가 바쁜 출근길에 왜 이렇게 마을버스는 안 오는거야라고 말했지만, 정류소에 있던 다른 이들의 입술, 목, 눈꼬리, 머리, 다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못했다, 숨을 헉학대며 버스가 왔다. 계속 눈이 내렸다. 출근은 시작되었지만, 변하는 건 없었고 우리들 모두 내일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어쩌면 오늘 모두 다 죽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건 사랑하던, 했던 그녀도, 한때 믿는다고 착각했던 하나님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나를 찾는 걸까, 정말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 사람들을 모르겠다, 모른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없었다. 그렇게 실패하며 나는, 우리는 늙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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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태산같고 시간은 쏜살같다. 몇 달 사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쓸쓸하기만 초겨울, 눈발이 날리는 강변 도로를 택시 안에서 잠시 졸았다. 나는 아주 잠깐, 졸면서 기적과도 같이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다. 


며칠 전 가로수를 찍었다. 무심하게 계절을 보내는 은행나무의 노란 빛깔은 어두워지는 하늘과 차가워진 대기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끌어당겼다. 그 가로수 밑에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얇은 몸매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녀가 연신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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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놓고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평균 퇴근 시간 밤 10시. 그래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이토록 많은 일들이 필요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면서, 한정된 시간과 자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어떻게든 일은 끝내야 하니, 밤 늦게, 주말까지 나가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정말, 주말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매일 평일이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하지만, 그래도 조금 늦게 나갈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다니. 





고향에 가면 늘 바다 앞 횟집엘 들린다. 서울에도 회를 곧잘 먹는 편인데도, 고향집에 가면 회만 찾는다.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 ... 


전생에 바다 물고기였던가, 다음 생에 진짜 향유고래가 되려고 그러는 것인지. 




가끔 핸드폰 사진이 잘 나올 때가 있는데, 이런 어슴프레한 저녁 때이다. 이런 바닷가 앞에서 몇 달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언제쯤 될련지... 


오늘 퇴근이 밤 11시였고, 그래도 일을 끝내지 못하고 온 탓에, 내일 7시 정도 출근하려고 한다. 과연 지금 잠을 자곤 일어날 수 있을까. 올해 가을 이렇게 일을 하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실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 탓에,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흐르고 프로젝트는 끝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 벌써 새벽 1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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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1시에 퇴근하곤 오늘 8시에 프로젝트 사무실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 혼자 저녁을 먹고 서점에서 두 권의 수필집을 산다.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굳어졌고 프로젝트 걱정, 미래에 대한 염려, 세상에 대한 불안, 가족에 대한 책임,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젠 잠마저 쉬이 들지 못하는 중년의 초가을. 장석주의 <일요일의 인문학>, 헬렌 맥도널드의 <메이블 이야기>을 충동적으로 사선 내 마음이 물렁해지고 내 몸이 사랑으로 물들고 세상으로부터 온전한 내 전부가 자유로워지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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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출근을 했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을 홍수 난 강물처럼 흘러갔고 바람은 여름을 버리고 가을을 택했다.  끝내 프로젝트 사무실에서 내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빌딩 근처 커피숍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토니 주트의 책. 내가 앉은 네모나고 긴 테이블 주위, 둥글거나 네모나거나 가볍거나 무겁거나 따뜻하거나 차겁거나, 모든 테이블에는 다들 연인이 흔들리는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답게 보이진 않았다. 나는 끝내 사랑을 믿지 못할 나이가 된 것이다. 마르케스라면 노년의 사랑도 가능하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사랑을 잃어버린 후이거나 사랑을 믿는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니 사랑을 믿다가 끝내 사랑하지 못한 이에게는 차라리 사랑은 없다고 믿는 편이 살아가는 데 더 용이할 것이다. 마치 사랑은 자동차 같은 거라든가, 아니면 강아지 같은 거라든가... 즉물적이거나 동물적인 것.  





어느새 월요일 정오가 되었다. 아름답던 기억은 술에 취한 박제가 되었고 술자리에서 일찍 떠난 이는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향기롭던 청춘의 의미가 사라지자 시간은 정지되었고 색들은 그 다채로움을 잃어버렸다. 도톰한 입술에서 저주스런 비린내가 가득했다. 2015년 한국 서울. 나는 그가 아니고 그녀는 없었다. 


가끔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감에 휩싸이지만, 나는 어느 새 그 곳을 지나쳐가고 있었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어느 월요일, 나는 그 무시무시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화요일에 이 글을 공개모드로 바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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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바쁘고 정신 없다. 8월 내내 책은 거의 읽지 못했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회의들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예상과 달리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모호성과 변동성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일정은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대해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대비해놓고 이해관계자들에게 프로젝트 위험 상황임을 알려야 한다. 


일처리라는 건 결국 모호성과 변동성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위기 순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는 걸까. 아니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에 있는 걸까. 실은 이 상황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한 게 크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기 전에 협조가 필요한 파트에 강하게 어필해야 하는데, 이 어필을 약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은 협조한 필요한 파트도 자신들의 업무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상황은 쉽지 않다. 





그리고 밤이 왔고 나는 퇴근을 했다. 지루한 일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린다. 세상이 불확실해지고 우리들 인생도 불확실해진다. 마음도 불확실해지고 존재하지 않는 꿈에 모든 걸 맡기게 된다. 로코코의 세계다. 여성들의 화장술이 발달하고 사랑의 미사어구가 넘쳐난다. 그리고 화장술이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고 감미로운 언어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세상은 어떻게 되고 나는 어떻게 될까. 


다행인 것은 나는 화장술을 모르고 감미로운 언어 구사엔 취약하다. 하지만 가끔 존재하지 않는 꿈에 모든 걸 맡기고 싶다. 그러고 보니, 편한 마음에 술 한 잔 한 것도 참 오래되었구나. 


두서 없이 블로그에 포스팅한다. 일이 어수선하니, 글도 마음도 어수선하다. 빨리 일이 마무리되고 이 시절도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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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유적이란, 비-현실적이다. 마치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만, 기억에 남지 않고 현실과는 무관하거나 반-현실적이다. 가야 시대의 고분 위로 나무 하나 없는 모습을 보면서 관리된다는 느낌보다는, 신기하게도 나무 한 그루 없구나, 원래 묘 위엔 나무가 자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생각은 논리와 경험을 비껴나간다. 그 당시 인구수를 헤아려보며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사람들이 며칠 동안 일을 했을까 생각했지만, 이 역시 현실적이지 못했다. 


자고로 현실은 돈과 직결된 것만 의미할 뿐, 나머지는 무의미했다.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20대 때 알았더라면, 나는 돈벌기에 집중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이 점에서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은 우리에게 너무 많은, 그러나 불편하기만 한 비밀을 알려준 셈이다. 


여름휴가다. 





사람들은 바다로 들어갔지만, 해변 근처만 얼쩡거릴 뿐, 깊은 바다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아예 걸어다녔다. 바닷물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은 좋았지만, 그건 떠있다는 기분보다는 내 눈높이로 낮은 파도가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파도는 햇살을 머금고 소리를 내며 내 눈 앞까지 와서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내 눈 앞에서 사라진 것들은 참 많았다. 사라진 것들의 목록을 적고 싶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일 뿐, 그것들이 걸어나와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는 기억되지만, 실현되지 않고 개념은 절대로 개별화될 수 없다. 






아들에게 공룡발자국을 설명해주었지만, 그에겐 너무 어렵거나 너무 낯설거나, 무서운 것이었다. 공룡은 사라졌고 흔적으로만 남았다. 가끔 우리의 영혼이 분자, 원자 따위까지 쪼개질 수 있다면, 그것들이 공기 속에서, 혹은 시간에서 서로 연결되어 사유할 수 있다면, ...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던 사이에 아들은 저 멀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해변을 따라 나있는 나무 산책로는 아이가 뛰기엔 다소 위험해보였고, 아마 이 사소한 위험이 그를 자극했을 것이다. 





여름휴가 때마다 도서관으로 가던 버릇은 여전해서 휴가 마지막 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원래 계획은 휴가지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지만, 그건 너무 사치스럽고 공허하기만 한 상상일 뿐이다. 


요즘 자주 내일이 두렵고 무섭다.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사십대가 되었고 사십대가 되자 무력하기만 한 나를 보고 있을 수 조차 없다. 그런데 아마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애초에 이 나라의 시스템이 잘못 설계되거나 사소한 설계 변경들이 모여 문제 해결력은 커녕, 장애 처리에서만 모든 자원이 소비되기에 이르렀다. 시스템의 문제이니,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시스템을 설계하고 도입한 자들은 이미 없고 그걸 운용하는 이들은 경험 없는 초짜들이거나 낙하산들이다. 아니면 그렇게 스스로를 포장하고 언론들이 뒷받침해준다. 언론들은 연일 정부를 비난하지만, 그 비난도 계산된 정치적 타협일 뿐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을 게다. 


여름휴가를 다녀왔고 여름휴가가 끝났다. 난생 처음 모든 이들이 가는 7월말 8월초에 휴가를 갔다왔다. 어느새 나는 지워졌고 그 자리에 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휴가를 떠나기 전 로또 한 장을 구입했는데, 5등도 되지 않았다. 뭔가 운 좋게 당첨된다면 ... 참 좋을 텐데, 아마 모든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겠지. 실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하여 삶이 개선되거나 계단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현대 자본주의는 그렇지 못하다. 마치 르네상스에서 중세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이랄까. 소란스럽게 세속화에 열광하며 계량적 가치와 도구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졌던 근대인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할까. 


토니 주트의 <<20세기를 생각한다>>를 휴가 내내 읽을 계획이었나, 겨우 몇 장 읽었을 뿐이다. 다만 그의 놀라운 시각은 20세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 한국은 파시즘 국가에 가깝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파시즘의 메시지임을 알게 되었다. 파시즘 정당은 하층 계층의 미묘한 심리을 자극하여 지지를 얻고 확고한 신념이나 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태도만 공유할 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정당도 여기에 속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는 마르크주의를 억지로 연장시키는 것일 뿐, 마르크스와는 별 관련없다. 유태인이 20세기 초 유럽에서 희생당한 것은 유태인들만의 커뮤니티를 고수하면서 정치 권력에는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 동시에 그 당시 가장 우아하고 세련된 독일어를 구사하던 그들이 도리어 희생되었다는 아이러니. 그리고 홀로코스트를 현대 이스라엘은 아주 흥미롭게 정치전략에 결부시켜서 미 유태인 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은, 아마도 토니 주트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피곤하다. 집에 오자마자 몇 시간 낮잠을 잤고 다시 잠자리에 들 것이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내일은 무섭다. 달리기를 해야 하고 무조건 1등을 해야만 한다. 사십대에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이십대엔 몰랐다. 이제 오십대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조만간 리뷰를 써서 올리겠지만, 강력 추천한다. 일종의 20세기 지성사, 사상사가 될 법한 이 책은 20세기를 리뷰하면서 현재를 다시 읽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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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글을 참 멋지게 잘쓰시네요~
    저책을 장바구니에 살며시 담긴했는데.... 읽기는 쉬울려나 모르겠습니다.

    • 책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전문적인 연구서적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읽기 어렵진 않습니다. 다만 한 세기를 여기저기 오가며 서술되기 때문에 문맥을 따라 읽는데,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순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있지만, 매우 천천히 읽게 되더군요. 벌써 한 달째 잡고 있습니다. 뭐, 읽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지만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





벨앤세바스티안... the boy with the arab strap. ... 그들의 신보 나오는 것도 신경쓰지 못할만큼 늙었다. 둔해졌다. 흘렀다. 조용해졌고 약해졌다. 뜸해졌고 사라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타소리는, 드럼소리는, 시디 음반 안에서 시간 정지 중이었는데... 나는, 그는, 그녀는, 우리는 한 번 마주쳤던 따스한 눈길을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못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사랑도 식상해지기 마련인 어느 7월 여름밤... 문득 시디 속에 갇혀있던 사랑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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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놔노 2015.08.31 18:36 신고

    나도 이 앨범 좋아한다우.

    • 팝 앨범 산 지도 몇 년이 지난 것같아요. 벨앤세바스티안 신보도 나오고 국내 공연까지 했다는데, 저는 알지 못했죠. 그런 소식 알려주던 사람들 다들 어디로 간 건지.. 크크.. 가을 가기 전에 술 한 잔 합시다. 저는 요즘 여의도에 서식 중인지라~ ㅎㅎ



내 베개. 몽테뉴. 그를 베고 누울 때면 계몽주의의 슬픈 결말이, 현대의 지나친 오해가, 한 번 실현된 적 없는 계몽적 이성의 기획이 떠오른다. 아무도 몽테뉴를 읽지 않은 반도의 여름 속에서, 그 누구도 찾지 않는 마음의 감옥 속에서, 몽테뉴를 베고 가끔 노래를 부른다. 잊혀진 계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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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할 때면, 혼자 나가 햄버거를 먹고 프로젝트 사무실로 돌아온다. 재미없는 일상이다. 근사하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많고 긴장을 풀 수 없다. 잘못 끼워진 나사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퇴근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요즘은 ... 조용한 단골 술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조용하면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이니, 다소 시끄러워도 혼자 가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가끔 바Bar같은 곳을 들리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샐러리맨이 가서 맥주 한 두 병 마시기엔 눈치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퇴근길. 나에게도 다시 해가 뜨길 꿈꾸어 본다. 뭔가 다시 시작해야 겠다. 다시 준비하고 다시 노력해야지. 결국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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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이런저런 고민에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잠은 오지 않고... 그는 원두커피 원액이다. 차가운 물에 그를 섞어...서... 그녀같은 얼음을 넣어 마셨다. 추운 초여름 밤인가, 아니면 쓸쓸한 늦봄 밤인가. 바람 한 점 없는 도시에 내 마음만 바람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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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티 2015.06.27 11:15 신고

    주름과 이정복의 시집은 같은 책을 갖고 있고요 채호기의 시집은 비교적 최근 책인가요?박청호는 모르는 시인입니다.
    그런데 시집 제목이 끌리는군요. 치명적인. 저는 이 말은 늘 체게바라와 함께 떠올립니다. 치명적인 순수함. 그의 여정들, 타협을 몰랐던. 그런 사람들은 마흔을 넘겨 살기가 힘들더라고요. 예수도 그렇고. 윤동주와 전태일이 그렇고.또 시몬느베이유도 있군요. ( 어느 포스트에선가 시몬느 베이유의 '중력과 은총' 본 적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책이 찍힌 사진은 무조건 확대해서 책 제목 확인하는 버릇이 있어요)
    창원분이시더군요. 저는 마산출신입나다.저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문학을 전공했고요. 마산이나 창원의 어느 길에서는 어쩌면 스치기도 했을 인연일 수도.있겠어요.
    제가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칠 때 별명이 하루살이였어요.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인데 한치 앞을 생각을 안 한다고.
    생각 그거 별 쓸모없다, 저의 표어랍니다. 이리 나이 먹은 제가 저는 쫌 자랑스럽답니다.
    주인장님도 고민거리가 있을 땐 그냥 무심히 걷거나 잠을 잘 수 있다면 잠을 자거나 아이들이나 부인과 수다를 떨거나
    그리 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주제 넘지만 감히.



    • 마산이시면, 동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시절 고등학교는 다들 마산에서 나왔으니깐요. 주름은 몇 장 읽다가 말았어요. 질 들뢰즈는 아직 읽지 못한 철학자입니다. 문학으로 읽기에도 애매하고 철학으로 읽기에도 애매해요. 시집들은 대부분 옛날 것들이지요. 박청호의 첫 시집인데, 그 땐 반짝했지요. 그 이후 후속타가 없었고 뭐랄까, 팬심을 불러일으키는 시집이 아니었던 터라 ...
      고민거리가 있을 땐 모르는 사람과 술 마시는 게 최고였던 것 같아요. 저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저를 타인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망각, 또는 거리두기와 객관화를 동시에 ...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너무 위험한 짓이죠. ㅡ_ㅡ;
      채호기의 시를 좋아라 했는데... 요즘은 거의 읽지 않아요. 확실히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기엔 나이도 많이 들었고 돈벌이가 쉽지 않네요. ~ ㅎㅎ 장난과 수다는 일종의 의무사항이 된 터라, ... 고민과는 무관하죠. 기혼자의 고민이라는 게 대체로 가족과 관련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ㅋㅋ 더운 날씨,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 되시고요~.

  • 느티 2015.06.30 23:46 신고

    동문일 리는 없겠어요. 저는 여고를 졸업했거든요. 마산의 고등학교들이 다 산등성이에 있으니 교실에서 바라보던 합포만
    바다에 대해서는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겠군요. 해가 떠오를 때, 저녁 무렵, 흐린 날 비오는 날 그 각각의 물빛 말입니다.
    서울 가서 처음 몇 달은 바다가 보이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어쩌면 바다는 핑계고 그 추위와 무지막지한 남자애들과 하루도 쉴새없이 터지던 최루탄과 뭐 그런 낯선 것들이 적응이 안 됐던 것도 같아요. 들뢰즈는 저도 아직 잘 몰라요. 남편이 좋아하는 철학자지요. 타인과 얘기하기. 대학 4년 간 마산까지 오는 버스 안에서 그 대여섯 시간 동안 옆 자리에 앉은 사람과 얘길 나눠 본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컴퓨터라는 공간에선 이러고 있네요. 비가 내리고 집 뒤 논에선 개구리 울고 내일도 종일 비 내리면 뒹굴뒹굴 무슨 책을 읽울까, 두근거리며 존 버거와 겐자부로와 베네딕토 16세의 여러 책들을 생각해 보는 밤입니다.

    • 가장 오래 탔던 버스는 약 13시간이었습니다. 이른 오후에 출발해 다음 날 새벽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저도 옆 자리에 앉은 이와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은 없어요. 대신 한 번은 중앙 통로 건너편 자리에 나란히 40대 중반의 남자와 30대 초반의 여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긴 했습니다. 그 땐 그들의 이후가 궁금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젊은 시절, 삶의 신비 같은 게 있다고 여겼는데, 그런 신비로움이 살아지는, 그 속도만큼 이 세상에 익숙해졌다는 것이겠지요.
      산복도로를 한 번쯤 가고 싶은데, 고향 내려가선 영 갈 일이 없네요. ㅎㅎ

      제 주위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소설 같은 인생들을 살았던 터라, ㅡ_ㅡ;;

일이 바빠서 - 이것도 핑계일 지 모르겠지만 -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다 보니, 책읽기, 글쓰기가 형편 없어졌다. 며칠 사이로 좋은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다음에 링크를 달아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페이스북을 하다보니, 정리되지 않은 단상을 올리고 그것으로 끝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글의 길이가 짧아지고 깊이는 얕아졌다. 여튼 그런 단상들 중 일부를 아래와 같이 옮긴다. 여유가 된다면 관련된 책들도 몇 권 읽고 길게 정리하고 싶지만, ... 늘 생각에만 머물 뿐이다. 


*  *  


정치에 대한 글을 적었다. 야당의 모습을 보면서 한심해서 적은 글이다. 몇 주 전에 적은 글이라 시의성이 떨어진다. 얼마 전 원내대표가 된 이종걸 의원은 한순간 언론에서 자신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건 (너무 불행하고 슬펐던) 장자연 사건으로 모 신문사 대표를 공격하자 그 신문사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그 이후 자신의 기사는 그 어느 신문사에서도 보도되지 않았다고.


언론에서 다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언론은 중요하다. 하지만 언론을 믿을 수 없다. 언론 기사들을 분석해 문재인 의원과 김무성 의원에 대한 우호적/부정적 기사를 나열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이와 똑같이 여당과 야당도. 


사람들은 언론을 믿는다. 나같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언론을 믿지 않고 아주 비판적으로 접근하지만, ....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 한국 사회에 극히 희박하다는 사실을 심정적으로 동의하게 되자, 절망적으로 변했다. ㅜ_ㅜ 


아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    * 


정당 정치 시스템이라는 게 있을 지 모르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쟁력은 10:1인 듯 싶다. 새누리당은 일 잘 하는 사람도 많고 컨셉도 잘 잡는다. 전략도 잘 세운다. 확실히 목적 지향적이다. 다만 그 목적이 국민 대다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 혹은 소수의 이들만을 위한다는 점. 보수를 표방하지만 전혀 보수스럽지 못하다는 점.\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나라 군대같다. 다양한 계파들이 존재하고 이들 간의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나온다. 끊임없이 친노가 공격 대상이 된다. 결국 대통령 탄핵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되나. 열린우리당까지 가야 되나. 결국 형식적으로는 뭉쳤으나, 나머지 부분에선 뭉치지 못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에게는 시스템이라는 게 없다. 일 잘하는 젊은이들을 끌어당길 동력도 없고 새로운 컨셉도 제시하지 못한다. 더구나 너무 오만하다. 비난할 줄만 알지, 문제 해결에 대해선 빵점이다. 여당과 동의하면 비난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결정내리지 못한다고 내부에서 비판한다. 문재인 대표가 오만한 게 아니라, 정부와 여당이 최악의 행정과 정치를 하고 있으니, 무조건 이긴다고 믿고 있는 정치인들로만 모여 있고, 이런 정치인들의 모임의 대표가 문재인이니, 그도 오만한 사람이 된다. 


결국 차기 대선주자 1위를 공격해 끊임없이 끌어내리기를 하고 있다. 정말 한심한 정당이다. 내가 보기엔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는 그 어떤 이보다 문재인의 살아온 행적이 나아보인다. 중도를 표방하지만, 보수스럽고 종종 과격한 발언까지 나온다는 점에서 정치적 컨셉을 찾기 어렵다. 부산의 모 의원은 과격 보수처럼 여겨진다. 결국 권한을 얻고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이다. 늘 국민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은 말 뿐이다. 말이라도 해야, 능력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능력 있지만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능력이 없다. 더 큰 일은 새누리당은 끊임없이 젊은이들이 끌어당기지만(이준석이나 손수조),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직도 동교동계 이야기가 나온다. 헐~ 도대체 이들의 평균 나이는 몇 살인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헤쳐 모여야 된다. 강력한 리더십과 정당 시스템을 마련해야 된다. 결국 키는 문재인 대표일텐데, 그는 신중하나 결단력이 없고 쓸모없는 말을 하진 않으나, 모든 이들이 원하는 정치적 제스추어에는 약하다. 그리고 옆에서 코칭해줄 만한 능력자도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없거나, 아니면 도리어 너무 많은 것이다.


*  *  


정치적 제스추어에 있어선 이재명 성남시장이 단연코 최고다. 그의 정치적 감각은 탁월하다. 야당에 이런 감각을 가진 이가 2-3명만 더 있어도 기대해 보겠건만.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 시장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정치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열심히 투표하지만, 실제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질 때 그 정치의 실질적 혜택을 보게 될 이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다. 젊은 층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세계는 조각나고 조각난 세계들은 서로의 세계에 무관심해질 것이기에. 


*  * 

인문학자들의 무책임함은 그들 특유의 비현실성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그들은 최신이론의 수입자 혹은 해석자로만 있을 뿐 지금 여기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서 한 마디도 못하거나 할 생각이 없거나 하더라도 형편없는 글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한때 탈정치화를 이야기하던 일군의 학자들이 있었다. 탈정치화가 불러올 현실적 파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학문수입상으로서의 입장만 고수했다. 그들은 그 때도 대학교수이고 지금도 대학교수다. 그 때 나도 그런 류의 논문과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앞으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더라. 그 이후 대단한 연구서가 나온 것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학자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학문 수입상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그리고 학생들을 닥달하고 자신의 무식함을 최신 수입 이론으로 가린다. 그들은 젊음 옆에 서서 젊음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인문학을 죽인다. 죽어가는 인문학은 인문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 교수들의 문제이고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문제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닥힌 삶의 문제이지, 이론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지도, 알 필요도 없다. 


최근에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생계를 핑계로 무책임한 기사들을 쓰고 있다. 이 사회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이들이 언론이 되고 있다. 한 때 나락에 빠진 한국 사회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기 위해 언론인들이 발 벗고 나선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으니 ... .... 


실은 모든 이들이 월급을 핑계로 사소하지만 거대하게 무책임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그게 모여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무책임한 투표 탓에 우리는 한국 사회가 전형적인 후진국적 사건사고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무언가에 대해 책임 지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알아야 그것이 잘못되었을 때 대처할 수 있다. 즉 모르니 대처할 수 없고, 그러니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그 파장이 큰 것일수록 리더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하물며 작은 회사의 팀장이 지는 책임, 대표가 지는 책임의 무게도 가볍지 않은데, 한국은 큰 조직의 리더가 될수록 무책임해지고 무식해진다. 이것이 한국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요즘 한국 사회도 이렇고 나도 이렇구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기분... 언제쯤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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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주도권싸움 2015.06.05 09:11 신고

    모 주도권싸움이죠. 서로간의 앙금이 있는 상태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해 뭉친거라서...
    문재인은 대권을 잡을수 있는 두번의 기회를 날려버린거죠. 당대표를 박지원에게 양보안한것
    선거에 진후 바로 사퇴안한것 두가지를 모두 거부하고 호남여론이 나빠진다는걸 예측못했다면 정말 정치력이 없다는 증거고 예측하고도 그리했다면 대권보다는 친노의공천이중요하다고 생각한거죠
    현재 문재인 지지율은 계속 하락중이고 끝났다고 봐요
    이재명 안철수 박원순 반기문 손학규정도가 대권후보인데 총선은 망할게 확실시 돼고 일말의 희망이 있는게 대권인데 정말 희박하네요
    어차피 이리된거 차라리 분당하는것도 야권쪽에서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정책연대나 대권연대만 하면돼지 굳이 같은 당에서 니꺼니 내꺼니 싸울 필요가 없죠

    • 정치력 부재가 큰 일인 듯합니다. 정치력이 부족하면 서로 대화를 해서 풀어나가는 지혜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없고요. 저도 차라리 분당해라는 쪽으로 기울더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몇 장의 사진, 몇 줄의 문장, 몇 개의 단어, 혹은 유튜브에서 옮긴 감미로운 음악,으로 내 삶을 포장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진 못했다. 점심 식사를 하고 한강시민공원까지 걸어나갔다. 더웠다. 근처 직장인들은 빌딩 앞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짙게 화장을 하고 곱게 차려입은 처녀는 향수를 뿌린 흰 와이셔츠 총각을 향해 윙크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평일 점오의 한강변은 텅 비어 있었다. 멀리 강변북로가 보였고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물 위로 유람선이 지나갔다. 이상하고 낯선 모습이었다. 원래 이런 모습이었겠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풍경이겠지만, 약간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지나치게 낯선 풍경은 이국적이나,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와 우리를 두려움와 공포로 둘러싼다. 어쩌면 그건 그건 이 세상에 어제까지 있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의 그런 것과 비슷해 보인다. 


그렇게 이 지구에 인간들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평화로울까. 지구 상의 모든 존재들이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도시의 비둘기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으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지구 창조의 순간이 가졌던 평화를 연상시킬 것이다.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묘하고 이상한 평화.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 평화를 경험하는 순간, 숨막히는 듯한 공포를 느낄 것이고 우리의 사랑은 산산조각날 것이다. 지금 우리를 지탱하는 사랑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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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녀들도 사랑을 잃은 날 밤, 쉬지 않고 울 것이고 결국엔 사랑을 믿지 못한 채 늙어갈 것이다. (이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지 


몇 개의 카페를 보내고 난 다음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선 밖이 잘 보였다. 카페 밖엔 사람들이 없었고 까페 안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스타벅스 특유의 소란함이 커피 향 사이로 밀려나왔다.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나는 내 고요한 휴식을 취하러 왔단 말인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카페에서 혼자 시간 보내기를 잘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두 세 시간 동안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고 온다고 하지만, 나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하지만 미련스럽게도 자주 시도하지)


2.

카페의 소란스러움은 가라앉은 척 했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사물들의 소리와 뒤섞이며 공명했다. 소리들은 일정한 패턴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딪혔다. 내 귀를 귀찮게 했고 얼굴을 때렸으며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창 가 자리를 앉으려 했지만, 슬픈 5월의, 따가운 햇살은 커다랗고 투명한 창을 그대로 지나 내 몸을 데웠다. 결국 그늘진 안 쪽 자리로 옮겼다. 


둥근 테이블에 앉아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했다. 뭔가 근사한 문장을 적고 싶지만, 문장이 근사할 땐 오직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사랑을 얻어낼 때 뿐이다. 문장은 차분한 사랑의 확신 속에서 대기 속으로 흘러나와야 하고 그녀는 그 흘러나오는 문장의 모습을 보아야만 한다. 이 순간, 진짜 사랑은 시작된다,고 믿었지만, 그 때 내 나이 27살이었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3.

중년의 사내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두리번거릴 때, 그는 우연히 마주 치는 시선 속엔, 늘 말 못 할 비밀이 있거나 흐느적거리는 슬픔이나 터놓고 내뱉고 싶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확고해질 때면, 황급히 책 속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옆자리에 앉은 이에게 다가가지 않는 용기를 발휘했다. 다행한 일이다. 


4. 

우리는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타인이라고 여기지만, 언젠가부터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그건 나도 그들에게 익명이고, 그들 또한 나에게 익명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익명을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자아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거대한 자아는 목적 없이 대도시의 대기 속을 새벽까지 떠돌다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꿈 속으로 사라지겠지. (아, 지금은 아닌가)    





5.

카페에서 혼자 오래 앉아 있는 법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어떤 휴식들이 필요해서지만, 휴식을 취하고 나오는진 모르겠다.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하기도 하고 가방에서 읽던 책을 꺼내 펼치기도 하지만, 1시간 이상 버틴 적은 없다.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집중해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결국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지만, ... 재미없는 풍경 속으로 내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다.


6. 

하지만 가끔 근사한 향기를 가진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가끔 삼성동에 갈 일이 있으면 에스프레사멘테 일리를 들리곤 한다. 길을 가다 무심코 들렸다는 듯 성의 없는 목소리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러면 정말 근사한 커피가 나온다. 





7. 

쓸쓸한 일요일이다. 블로그에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몸은 피곤하기만 하다. 나라는 엉망이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알고 있을 텐데, 저러는 걸까. 아니면 정녕 모르는 걸까.


최근 들어 자주 주말에 나가 일하게 된다. 단기 목표는 있으나,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진다. 마음은 아직도 스무살 때처럼 정처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는데, 술 마실 친구들도 드물고 술 마시는 것도 부담스러운 노화가 시작되었다. 거참. ... 어느새 일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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