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모짜르트 레퀴엠 - 이스트반 케르테츠

듣기만 해도 온 몸에 전율이 일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음악이 종종 있다. 그것이 바로 이스트반 케르테츠의 1966년도 런던필과 함께 한 모짜르트 레퀴엠이다. LP로만 구할 수 있는 이 음반은 모짜르트 레퀴엠의 최고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로와 스트레스로 엉망이 되어가는 어느 목요일 오전, 사무실에 앉아 눈물 겨운 레퀴엠을 듣고 있다. 모짜르트.. 그는 살아있을 때나 죽고 난 후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같다. 유튜브 동영상에 이것이 올라와 있다니..

시간은 흐르고 봄은 올 것인가

자기 전 PD수첩을 통해 아랍 민주화 혁명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트위터를 통해 국내의 모 방송사에서는 리비아 시위대를 폭도로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어떤 이들은 1987년의 서울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 지금 이 세상이 어수선하지만, 그리고 그 어수선함 속에 깊은 슬픔도 숨어있지만, 분명 어떤 미래를 이렇게 시작되기도 한다고 여긴다. 그리고 한참 뒤 나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을 생각해본다. 놀람과 경악, 당황스러움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론은 너무 조용하다. 연예 기사 읽을 시간도 없는데, 누가 정치, 사회 기사를 클릭해서 읽을까.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에 무관심해지고 있다. 실은 주변을 돌아볼 겨..

'도전'과 '침묵'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 국내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과격한 방식의 프랑스 소설가. 20세기 후반 문학 비평의 일대 혁신을 몰고 온 지를 주도했던 인물. 이라는 소설로 여자를 긴 시간에 걸쳐 까발리기도 한 그는 정신분석학자이자 기호학자이며 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은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되었으나, 워낙 대중적이지 않고 식견있는 문학 애호가들에게조차 인기를 끌지 못한 채 곧바로 사장되었다. 그의 데뷔작은 80년대 초반에 나온 범한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실려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제 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내가 1997년에 그러했듯이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헌책방에서 쥐를 잡듯이 뒤져야 한다. 그냥 쥐가 아닌 황금으로 도배했다는..

목요일 새벽의 단상

아무 것도 서술할 수 없기 때문에 칸트의 물 자체는 라깡의 현실적인 것처럼 상징화에 저항하는 암호이고, 신(그에 관해서는 우리는 일정한 속성들을 서술할 수 있다)보다도 더 수수께끼적인 것이고, 한갓 부재의 기호이다. - 테리 이글턴, '미학사상' 중에서 약간의 스트레스, 부자연스러움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책읽기는 예전만 못하고,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다. 문장은 헛된 상상에 미끄러지고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있다. 상상의 나래란, 마치 닿을 수 없는 흰 구름과 같아서, 이 세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감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변화라는 것이 적당한 자극이 되어, 하루하루가 모험이 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테리 이글턴의 책을 펼쳐보다, 위 문장을 되새겨 읽었다. '물 자체 = 부재의 기호..

Georgia on my mind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입술이 건조해졌다. 1층 편의점에서 입술 보호제를 사왔다. 사무실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오래된 mp3를 Play시켰다. 흘러나오는 Georgia on my mind~. 내 나이 드는 건 모르고, 남 나이 드는 건 안다. 내 잘못은 모르고 타인의 잘못은 안다. 그래서 후설은 이성의 지향성을 이야기했던 것일까. 정신없이 1월 보내고 나자, 이런 저런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이기 시작한다. 어김없이 월요일은 야근이고~..

우기(雨期)의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발리에 다녀왔다. 올해 초 내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이 변화는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고 새로운 미래와 도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변화에 대해선 길게 정리하고 싶어, 반은 사적이고 반은 공적인 블로그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 대신 사진 두 장을 올린다. 아열대의 숲을 보고, 나는 아비정전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아비정전을 숨죽여 보던 시기로부터 17년이 지났다. 삶의 태도와 보이지 않는 생각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무언가를 찾아 나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이제 다시 시작인 셈이다. 이틀 동안 머물렀던 빌라의 한 장면이다. 풀장 깊이가 약 1.5미터나 되었고 수시로 다람쥐들이 놀러왔다.

2011년, 화요일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난 다음, 잠시 휴식을 취해보지만, 기대보다 늘, 언제나 빠르게 오후 1시가 오고, 오후 2시가 온다. 이 회사를 다닌 지도 벌써 2년이 넘어서고 있다. 제대로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으나, 내 뜻대로 되지도 않고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내 뜻대로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옳거나 제대로 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잠시 멈춰서서 생각하고 타인을 고려하고 이후 이어질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나이가 들수록 느려지고 조심스러워지고 걱정이 많아진다. 사무실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이제는 사라진 에어로시스템의 작은 미니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 이젠 제 수명을 다한 듯한 캔우드 리시버 앰프를 사무실에다 옮겨 놓았는데, 언제 한 번 제대로 ..

제가 가지고 있던 책을 나누어 드립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한강이 보입니다. 아침 출근길, 동쪽으로부터 몰려온 햇살에 밝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육삼빌딩을 뒤로 하고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사를 했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이사였습니다. 그리고 38년의 생을 힘겹게 지탱해주던 책들의 상당수는 이번 이사에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무지개 빛깔이 숨겨진, 어떤 면에선 당황스러운 감도 없지 않은 이사였고, 책들의 입장에선 책임감 없는 주인을 만난 탓이겠지요. 그 책들은, 내게는 물질적 욕망을 향한 폭풍우 같은 자본주의 세계가 요구하는 사고력과 실행력이 없었던 나의 아슬아슬한 삶을 증명하고 변명하던 사유의 물리적 성벽과도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 성벽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가상이었으며, 일루전이었고,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별과 같다고 여겼는지도 ..

책을 정리합니다.

두 방에 걸쳐 있던 서재를 정리하고 이사 준비를 하였습니다. 오래 기거하였던 방화동에서 노량진동으로 이사를 합니다. 서재를 가득 차지하고 있던 책들을 새로 들어가는 집에 다 넣지 못해 약 1000권 정도의 책을 베란다에 내놓았습니다. 대부분 다 읽을 책이나, 군데군데 사놓고 읽을 필요가 없어져 읽지 않는 책들도 다수 있습니다. 책을 가지고 가실 분들을 초대합니다. 즐거운 송년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 가지고 가실 책을 찜한 후에는 같이 1층까지 책들을 옮겨 폐지 수집하시는 아주머니가 가지고 가실 수 있도록 해야할 것같네요. 일시는 2010년 12월 31일 오후 4시 강서구 방화동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께는 메일을 주세요. 그러면, 제 연락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도서 종류: 인문학, 문학,..

누구를 위한 정치인이고 정부일까요?

가끔 외국의 대도시에 나가게 되면, 그 도시의 어느 쪽에는 되도록이면 나가지 마라는 주의를 듣곤 합니다. 심한 빈부격차나 인종 차별로 인해 지역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분위기(경제적 능력이나 문화자본 등으로 형성되는)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서울은? 이를 시간적인 연대로 나누어, 70년대에는 어떠했고, 80년대에는 어떠했고, 90년대, 2000년대에는 어떠했을까요?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 포털에 올라온 기사 리스트를 보다가 다소 황당한 기사를 읽고 이런 글을 올립니다.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하면서 상임위 단계에서 책정한 영·유아 예방접종비 예산 400억원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도 0원으로 책정돼 저소득층 아동들이 당장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