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요즘 세상에 대한 생각.들.

지난 4월 중순, 4.19와 관련된 TV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문득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이들의 인터뷰는 나오는데, 왜 당시 경찰이었던 이의 인터뷰나, 자유당의 입장에서 투표를 독려했던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들의 인터뷰는 왜 나오지 않을까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생각은 한 발 더 나아가, 현대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지배와 피지배가 바뀐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에 이르렀다. 피지배의 위치에서 서서 시위를 하던 상당수가 물질적 여유,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 평온함으로 인해 스스로 지배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착각을 가지며, 자신이 언제 피지배였냐고 반문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지배의 계층은 별도로 존재하며(어쩌면 이것은 지배의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르겠다), 피지배..

질투로 가득찬 내 우울함

읽을 수도 없다. 쓰거나 생각할 수도 없다. 여기에는 클라이맥스도 없다. 안락은 있다. 그러나 커피는 생각했던 것만큼 맛있지 않았다. 그리고 내 뇌는 소멸하고 말았다. – 1933년 5월 30일, 버지니아 울프 며칠 전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샀다. 그리고 책 표지, 위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한국어판 출판 편집자의 의도겠지만, 마치 내가 쓴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향 집에는 아마 내가 고등학교 때 읽던 ‘세월’이 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이라고들 말하지만, 의식의 흐름이 아닌 소설이 어디 있었던가. 버지니아 울프,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소설가들 중의 한 명이다. 그리고 니체… 음악이 없다면, 삶은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 니체 니체와 버지니아 울프 사이 어딘가의 은하계. 내 쓸쓸한 우울함을 숨겨 두고..

사랑하는 손

사랑하는 손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안식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평화 문득 최승자의 시를 떠올렸다. 지난 2004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반복되는 실패와 상처들 속에서 나는 성숙해지지만, 너덜너덜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도 이렇게 민감하다니, … 후배가 ‘형, 아직 살아있구나’라고 했다. 벗꽃 날리듯, 내 마음이 조각조각 흩어져 날리는 풍경을 보면, 한없이 슬프기만 한데 말이다. 그래,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건 늘 상처입고 너덜너덜거릴 때일 뿐인가.

침묵에의 지향

잠자리에 일찍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늘 그렇듯이. 어렸을 때부터 마음이 가라 앉고 까닭 없이 끝 간 데 모를 슬픔으로 가득 찰 때면,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거나 글을 읽거나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악기 하나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만, 지방 중소 도시에서 자란 터라 학원도 많지 않았고 여유도 되지 못했다. 그 흔한 기타 하나를 사놓긴 했지만, 몇 곡 연습하다 그만 두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기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버린 적이 없는데.) 우울할 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았는데, 지난 연말부터 무너진 마음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쫓기듯 살아온 걸까. 아니면 게을러져서. 그것도 아니라면, 판도라의 상자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인터넷 서점에..

아슬아슬하게

새벽 2시가 지나서야 사무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축축하게 처진 내 육체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피로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집에 도착해 바로 이부자리를 펴 누워, 종일 앞을 향하던 눈은 어둠 속에서 침묵을 배우고 내 영혼은 슬픈 상상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다. 늘 그렇듯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몇 번을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 여러 번 뒤척이다 보니, 어느 새 새벽이었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육체와 영혼의 문제를 떠나, 마치 미로와 같은 우주 한 복판에 혼자 멍하게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과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를 번갈아 들으며 밀린 세탁을 했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도나텔로와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 도판을 보았다. 실은 회사 일도 했다. 딱딱하고 건조하면서 건강..

봄, Spring

어쩌다 보니, 내 마음은 아무도 찾지 않은, 어두운 해변가로 나와 있었다. 행복했다고 여겨지던 추억은 이미 시든 낙엽이 되어 부서져버렸고 미래를 기약한 새로운 기억은 만들어지지 않은 채, 파도 소리만 요란했다. 텅~ 비워져 있었지만, 채울 것이 없었다. 저 끝없는 우주에는. 죽지 않기 위해 죽은 자의 노래를 듣는다. 오랜만에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은 언어를 지나 사랑에 가 닿았다. 쓸쓸한 사랑에.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고 여기고 있지만, 막상 표피가 두꺼워진 것 이외에 달라진 게 없었다. 비워져 가는 술잔, 늘어나는 술병 사이로 언어는 가치없이 뚝뚝 부서져 술집 나무 바닥에 가닿아 사라졌다.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왜 사람들이 낯선 죽음을 택하는지 이해할 수도 ..

어느 일요일의 닫힌 마음

일요일의 평온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내 마음의 무너짐은 거침없이, 일상을 불규칙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고, 자주 불투명한 인식과 판단, 혼란과 착오, 표현력의 빈곤과 부딪히게 만들었다. 생각이 사라지는 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 존재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데카르트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삶이 한 번도 명증한 확실성 위에 있었던 적이 없었고 그저 그렇다고 여겼을(인식했을) 뿐이고, 데카르트도 그랬을 뿐이다. 플라톤의 번역서 한 권을 사러 나갔다. 광화문으로. 근처 흥국생명 빌딩으로 향했다. 망치질 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적인 설치 미술이자 공공미술(public art)이다. 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유명세를 치를 만 하지만, ..

4월 중순, 비가 내리자 대륙 깊은 사막 먼지 냄새가 났다.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를 본 지도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로드 무비Road Movie의 대명사였으며, 롱 테이크의 교과서와도 같은 장면들이 나온다. 이 영화의 OST는 컬렉터의 표적이 된 음반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영화 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작 오래된 영화나 뒤져 다시 보는 정도다. 회사에 남아 일을 하는 월요일 밤. 내일 중요한 고객사와의 미팅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 ... 올해 초 한 번 다운된 기분은 쉽게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몇 달째 이르는 듯 싶다. 이번 주중엔 하루 정도 휴가를 내서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 와야 겠다. 나스타샤 킨스키도 이제 40대인가. 아니면 50대인가. ... ... 젊음이 사라지는 자리에 삶의 안락이 깃들어야 하는데, 그러기가 참 어려..

어느 월요일 새벽

일본의 어느 공장에서 나온 지 30년은 더 되었을 파이오니아 턴테이블은 잘만 돌아가는데, 중국의 어느 공장에서 나온 지 불과 10년 남짓 지난 티악 시디플레이어는 요즘 들어 자주 지친 기색을 드러내었다. 하긴 나도 요즘 너무 지쳐버렸다.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고 싶지만, 쓰러지지 않는 걸 보면 나이를 괜히 먹은 것 같지 않다. 작은 회사에 들어와서, 기획에, 홍보마케팅에, PM에, 경영 관리에, 인사에, 영업에, …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왔다. 그런데 요즘 문득 내 자리가 과연 어디인지 궁금해졌고 끝없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고객사를 2배로 늘렸지만, 온전히 내 성과로 보기 어렵다. 문서 작성이야 도가 텄지만, 과연 문서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가에 대해서도 이젠..

내 마음의 이파리

4월의 투명하고 쾌적한 햇살이 푸석푸석하게 말라 거칠어진 내 볼에 부딪쳐 흩어졌다. 하지만 햇살 닿은 곳마다 어둡게 부식되어갔다. 내 마음이. 대기가 밝아지는 만큼, 딱 그 만큼 내 마음의 어둠은 깊어졌다. 봄이 싫은 이유다. 태어나 꽃을 꺾어 본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지만, 선량한 꽃들은 나를 피하며 저주했다. 어둠은 깊어지며, 눈물을 흘렸고, 달아오른 고통은 고여있는 물기를 발갛게 데우며 온 몸을 축축하게 젖게 만들었다. 변하는 계절이 싫은 이유다. 변하는 마음이 싫고 늙어가는 생이 싫다. 싫어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딱 그 만큼 세상은 밝아지고 투명해지며 높아져 간다. 아니 높아져갔다. 이미 죽은 이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살아있는 이들의 글에서 풍기는 생명력이 가지는 밝음은 마치 끝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