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요리와 일상

요리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 작은 소망 리스트들 중 하나는 일요일 오전 가족보다 먼저 일어나 주말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고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든든한 일요일 아침 식사로, 행복한 일요일을 보낼 수 있는 육체의 준비. 그러나 21세기 초 서울, 나는 그 무수한 나 홀로 집안들 중의 하나로, 이젠 혼자 밥 지어 먹는 것마저도 힘들어 굶거나 식당에서 아무렇게나 먹기 일쑤다. 나를 위해서 요리하는 것만큼 궁상맞은 짓도 없다. 요리란 참 근사하고 아름다우며 행복한 행위인데, 나를 위해 뭔가 만들고 있노라면 참 서글픈 생각이 앞선다. 나에게 그런 요리의 기회가 자주 찾아오길 기대할 뿐이다.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테터앤미디어에서 명함을 보내주었다. 근사한 명함..

어느 오후 12시

사무실 근처 중국집에서 마파두부밥을 시켜먹었다. 맛이 없었다. 소스는 (마치 내 감정의 쓰잘데없는 거미줄처럼) 형편없이 끈적거렸다. 밥은 퍼져있었고 고통스러운 밍밍함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말없이,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들어 입 안으로 퍼다 넣었다. 육체적 시간의 불규칙함은 정신적 긴장을 무너뜨린다. 무너진 마음의 긴장은 몇 달 동안 얼어있다가 이제서야 겨우 녹아 한껏 봄날의 투명을 자랑하고 싶지만, 산짐승, 산새가 들지 않는 냇물의 쓸쓸함과도 같다. 1999년 12월 25일의 연주 동영상을 보면서, 내 20대를 돌이켜보며 회한에 잠긴다. 일본어는 거의 하지 못하지만, Port of Notes의 보컬리스트의 목소리가 참 좋다. 참 좋다. Port of Notes / ほんの少し

아이폰 오케스트라

제안서 작업이 하나 있어, 새벽까지 문서 작업을 하고 있다. 잠시 쉬면서 기사를 보다가 '아이폰녀'라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낚였다는 기분이 들었다. 실은 포털 사이트들로 뉴스 채널이 몰리게 되자, 도대체 제대로 된 기사를 읽을 일이 없어졌다. 결국 나의 선택은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것이었지만, 요즘 사람들 중에 누가 종이 신문을 사서 읽을까. 그런데 종이 신문 기사들도 나중에는 포털 사이트들에서 노출되는 기사 마냥 엉망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 (요즘 기자들 기사 너무 쉽게 쓰고, 그렇게 쉽게 쓰는 기자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받는다. 진지하게 바른 말하면서 깊이 있는 글을 쓰면 확실히 온라인에서는 매장 당한다. 실은 그런 기사는 그 누구도 클릭하지 않기 때문이다. 클릭당하지 않은 탓 그런 기사는 인정받지 ..

현재와 과거

역사 전체로 보자면, 안정적인 성공을 구가했던 시기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전쟁과 정치적 갈등, 계급 갈등의 연속이었다. 요즘 한국을 보면, 나라와 국민의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는 당장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인가에 정부와 정당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당장 눈 앞의 돈에 온 신경을 두고 가족이, 친척이, 이웃이 어떻게 소외당하고 망가지는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란 우리가 지내온 세월의 결과물이다. 현재를 탓한다는 건 우리의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며 우리의 반성을 부르는 행위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누구도 과거를 뒤돌아보지 않고 반성하지도 않는다. 실은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반성을 하는 것과 그것으로 현재를 변화..

논리와 현실, 그리고 우리 삶의 불투명성.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내 나이를 떠올리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자 아팠다. "상이한 두 개의 세계에서 일했습니다. 국영은행 시절 나는 국가의 돈을 가지고 화폐와 대출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최우선 순위는 다음과 같았어요. 첫째, 이 정책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둘째, 이 정책은 기업과 노동을 위해서도 유익할까? 그리고 세 번째 순위에 가서야 이 정책이 은행에도 유익할 것인가를 따졌습니다. 사적 자본을 위해 일할 때에는 우선 순위가 전도되었어요. 이 정책이 은행에 유익할까에 대한 질문이 우선이었지요." - 에드가 모스트(동독 출신의 경제학자), 자서전 '자본을 위해 봉사한 50년' 중에서 인용...

저주받은 성, 파블로 네루다.

저주받은 城 파블로 네루다 지금 (추원훈 옮김) 내가 걷고 있는 동안 보도블럭은 내 다리를 두들겨 패고 있고, 별들의 찬란한 빛은 내 눈을 부숴뜨리고 있다. 창백한 그루터기만 남은 밭에 자욱을 남기고 비틀거리며 가는 마차에서 밀알이 떨어지듯 갑작스레 내게도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오오 누구도 결코 챙겨 놓지 않은 길 잃은 생각들, 말이 내뱉어졌다면, 느낌은 내부에 남아있는 법. 여물지 않은 이삭, 악마는 그것을 공간에서 발견할 테지, 나는 망가진 눈으로 그걸 찾으려 들지도 발견하지도 못하리라. 나는 망가진 눈을 하고 끝없는 길을 쉬임없이 간다… … 왜 생각의 길을, 왜 헛된 삶의 길을? 바이올린이 부서지면 음악이 죽어 버리듯 내가 손을 움직이지 못할 때면 내 노래도 감동을 주지 못하리라. 내 가슴 깊은 ..

2월 26일: 구로디지털단지, 어느 스타벅스 안에서.

쓸쓸하고 우울한 따뜻함으로 채워진 대기가 건조한 빛깔의 벽과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둔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반사하는 유리로 지어진 빌딩 사이로 내려앉고 있었다.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 날씨지만, 이름 없는 행인들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딱딱한 염려가 섭씨 10도를 넘나드는 대기의 온도로 녹아 사라질 거라 믿는 듯 보였다. 신도림에서 미팅을 끝내고 구로디지털단지로 왔다. 노트와 펜을 샀다. 이동 중에, 아무렇게나 들른 가게에서 노트와 펜을 살 때면, 어김없이 여행을 떠나기 전의 기형도가 떠오른다.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세월’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법한 과거의 인물이 되어버렸고, 기형도가 파고다 극장에서 그의 조용한 생을 마감할 때보다 더 나이가 든 나에게, 세상..

2010년의 지향 - 내 삶의 制約

계획이 필요 없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것처럼. 아니 그렇게 믿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하였습니다. 시간이란 부정되어야 할 어떤 것이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과 질료를 나누고 질료 속에 형상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질료 속에 숨어있던 형상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변화이고 운동이라고 여겼습니다. 근대적 의미의 운동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가능태(dynamis)와 현실태(energeia)의 구분이 나옵니다. 이미 목적(telos)이 정해져 있습니다. 단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가능태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태로 옮겨갈 뿐입니다. A위치에서 A’로의 ..

웹 개발자 구인

어쩌다 보니, 이런 글을 블로그에 올리게 되네요. 제가 관여하고 있는 회사에서 웹개발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헤드헌팅사를 통해 무려 수십명의 이력서와 10명 정도를 면접을 보았으나, 나오기로 한 분이 사고를 당하는 등, 구인에 심각한 애로를 겪고 있네요. 주 개발 언어는 ASP 입니다. 그 외 개발자의 요구 조건입니다. ASP / PHP 개발 능숙자 HTML, JavaScript, css 능숙자 MS SQL, Oracle, MySQL 등 DBMS 설계 및 운영 가능자 웹, DB서버 구축 및 유지 가능자 프로젝트 실무경력 2년차 이상으로 실무 수행가능한 분 (대리급 ~ 과장급)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및 친화력을 겸비하신 분 --- 우대 사항 --- (웹에이전시 경력자로) 프로젝트 경험이 많은 자 플래시, 플렉..

어느 일요일의 이야기

1. 쓸쓸한 하늘 가까이 말라 휘어진 잔 가지들이 재치기를 하였다. 죽음 가까이 버티고 서서 안간힘을 다해 푸른 빛을 받아내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허공 가운데, 내 마음이 나부꼈다. 2. 익숙한 여행길의 낯선 파란 색이 건조한 물기에 젖어 떠올랐다 검은 빛깔의 지친 아스팔트가 습기로 물들었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실룩거리는 엉덩이 위로 한 다발 꽃들이 피어나 꽃가루를 뿌렸다 붉은 색에 멈춰선 도로 위의 자동차 속에서 사내들이 내려 소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고 아직 어린 나는 공포에 떨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기 시작해 내 눈물은 강이 되어 내 육신을 싣고 아무도 없는 바다를 향해 떠났다. 3. 나에게 혼자냐고 물었다. 그녀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