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계절풍 속의 마르그리뜨 뒤라스

사무실을 나가기 전에 오늘 쉴새없이 불었던 가을바람을 떠올린다. "계절풍의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마르그리뜨 뒤라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을이나 겨울에 부는 바람은 늘 그녀를 떠오르게 한다. 한 때 뒤라스의 소설만 읽었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가 보다. 그녀의 책을 서점에서 본 적이 오래 되었고 그녀를 이야기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하긴 그녀는 사랑 속에서 죽었으니. 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잠시 ... 내가 그녀의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벌써 6년이나 지났구나. ... 뒤라스. 1998년 겨울. 그 겨울. ...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는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새벽 4시 담배를 사러 골목 밖 편의점 가다

골목 안 세계와 골목 밖 세계를 나누는 힘의 정체를 나는 안다. 그건 생의 두려움. 사랑의 비난. 아모르의 속임수. 모험을 이겨낼 자신이 없는 자여. 죽음을 택하라. 죽음과도 같은. 그래서 죽음과 맞바꿀 수 있는 생을 택하라. 한 손엔 담배를 한 손엔 초초한 심장을 떨리는 다리는 쉬지 않고 회전하는 지구를 밟고 서있는데 날리는 언어들 날리는 음표들 날리는 연기들 그리고 날아가는 삶 그렇게 멀리 멀리 날아가는 내 영혼

비판이론

"네오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테오도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위르겐 하버마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시장 위주의 문화가 파탄 지경에 이르렀음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의 열거한 저자들은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하나의 학파로서 이들은 천박한 대중문화를 비판한다." - 타일러 코웬, (임재서, 이은주 옮김, 나우리), 354쪽. 공개적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싫다고 한 교수는 딱 한 명 있었다. 그 이유는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예술이 자율적 양식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정치/경제적 토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유물론적 태도를 끝까지 고수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고급문화주의자이며 엘리트주의자..

스팸spam들

하루에 스팸 메일만 수십통을 받는다. 국적을 따지지 않고 들어오는 스팸 메일들. 영어. 불어. 서반아어. 외국 한 번 나가본 일이 없는 나로선 국제적인 스팸 메일들을 처음 받았을 땐 반갑기까지 했다. 흑. 스팸 메일 중 가장 많이 오는 것이 성인 스팸 메일이다. 회사 다닐 땐 근무 시간 중에 메일 체크 하기 위해 아웃룩 열었다가 황급히 마우스를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 성인 스팸 메일 때문이다. 모든 메일 계정에는 성인 스팸 메일이 뿌려진다고 보면 된다. 스팸 메일을 뿌리는 프로그램은 몇 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 이메일 리스트도 몇 만원이면 구할 수 있고. 인터넷에서 이메일을 모아다 주는 프로그램도 몇 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 그러니깐 몇 만원이면 스팸 메일 마케팅을 할 수 있다. 비용 대비 노..

창작수업

시 창작 수업이다. 5월. 1층 강의실 옆 잔디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대낮부터 막걸리와 소주를 펼쳐놓고 술을 마시고 있다. 의례 술잔 옆에는 시집이나 소설 몇 권이 나뒹굴고. 강의를 하러 들어온 교수는, 출석을 부르다 말고 고개를 돌려 창 밖으로 술판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이 수업을 들어와야할 학생들이 있음을 발견하곤 한심한 눈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쳐다본다. 이 좋은 봄날에 자네들은 강의실에서 뭐하는 짓인가. 자네들은 시를 쓸 수 없겠구만. 하곤 2시간 강의를 꼬박 채우고 창 밖 학생들의 술자리로 간다. 강의실에 앉아 있던 몇 명의 학생들도 투덜대면서 술자리로 간다. 그렇게 어느 대학 봄날 오후가 지나간다. ----------- 생각해보면, 대학 2학년 때, 군대 가기 전 낮술이 정말..

패턴 오브 라이프

패턴 오브 라이프라. 삶의 방식, 또는 형태. 여하튼 요새 꽤나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는 아침을 먹는 것이다. 아는 동생이 계란 프라이든 빵 한 조각이든 뭔가 먹는 것, 그것이 아침이라는 말에 감동을 받곤 아침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살이 조금 빠졌다. 아침을 먹으니깐 점심을 적게 먹게 되고 저녁은 8시 이전에 먹곤 그 이후로는 먹지 않는다. 두 번째는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매일 잠을 자는 시간을 측정하고 있다. 요 며칠 사이 내가 잠을 잔 시간은 8시간 30분, 9시간, 5시간, 10시간 이다. 평균 7시간 잠을 잔다. 그러니깐 7시간 잠을 채우기 위해 어떤 날은 길어지고 어떤 날은 짧아지는 것이다. 오늘 10시간을 잤으니, 분명 새벽까지 빈둥거릴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일찍 ..

봄날의 문자 메시지

군대를 벗어난 지도 벌써 9년이 지났다. 어느새 민방위이다. 넓은 영등포 구민 회관 입구 쓰레기통에다 민방위 관련 책자를 놔두고 왔다. 강당 앞쪽에 앉아 있는데, 몇 통의 전화가 왔고 몇 개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신기한 일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전화와 문자메시지. 보통 때라면 오지 않았을. 바람은 너울치듯이 나무가지 앉았다가 지붕에 앉았다가 전신주에 앉았다가, 그렇게 봄을 심어놓으면서 지나가고 도시의 퀘퀘한 매연 틈 속에서 햇살은 곧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후 두 시 반. 주머니 속의 핸드폰으로 문제 메시지 하나가 와있었다. "그대에게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멍에가 되어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 같아 미안하구요." 낯선 전화번호. 누구일까. 누구였을까. 그리고 민방위 교육 사이 쉬는 시간, 누구신가..

Edmund Burke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를 읽고 싶어졌다. 보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버크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이 비관적이며 냉정한 합리주의자로부터 시작된 보수주의는 버크 이후, 버크의 논의를 뛰어넘은 이가 없다고 한다. 그가 지적했던 지점들에서 많은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머뭇거리는 듯 보인다. 반동분자가 아니였던 버크는 프랑스 혁명 전에 프랑스 혁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예언하였고 영국 사회를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 그가 근본에 있어 비관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모든 사람이 여기 이 지상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 " (* 크레인 브린튼, , 475쪽) **** 올해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한 책이다.에드먼드 버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