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356

흡혈귀의 비상, 미셸 투르니에

흡혈귀의 비상 -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은주 옮김/현대문학 흡혈귀의 비상, 미셸 투르니에(지음), 이은주(옮김), 현대문학 '독서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이 한국적 상황 속에서 온전한 의미의 '독서노트'로 읽혔으면 좋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문학평론가들이 써대고 있는 비평문들이 미셸 투르니에의 독서노트 수준이라도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최근 내 기억에 그런 평론은 없었다. 도리어 난삽하고 정의되지 않는 개념어들의 나열이고 시덥잖은 작가의 작품을 띄워주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다. (젊은 평론가일 수록 이런 경향 더 심해지니 어찌할 노릇인지.) 이 책을 읽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독자에겐 이 책은 어렵고 지루하며 도통 모르는 작가들과 작품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러..

아르네가 남긴 것, 지크프리트 렌츠

아르네가 남긴 것 -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사계절출판사 아르네가 남긴 것 지크프리트 렌츠(지음), 박종대(옮김), 사계절 아래 인용이 이 소설과 관련될 수 있을까. 아마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킬 인용이 되지 않을까. '아르네'라는 유약하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소년을 등장시켰을 뿐이지, 이 소설은 '왕따'에 대한 내용이며, '무책임한 아이들'에 대한 초상화이다. 어린이의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은 도덕적 천함을 나타내줄 뿐이다. 보쉬에는 단호하다: "어린이는 짐승의 삶이다." 베륄은 가능한 더 멀리 간다. : "어린이의 상태는 죽음 다음으로 인간 본성의 가장 상스럽고 천한 상태이다." 파스칼로 말하자면, 그는 추론에 의하여 - 섬세한 정신인가 기하학적 정신인가? - 어린이의 상태의 끔찍함을 ..

나스타샤, 조지수

나스타샤 - 조지수 지음/베아르피 나스타샤, 조지수(지음), 베아르피, 2008 철부지 같은 생각이겠지만, 나는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순간이 다시 오더라도 지금의 내가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99%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후회한다’ 따위의 표현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 철부지 같은 생각이겠지만, 나는 내 깊고 처참한 후회의 심정을 그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각오(혹은 행위)로, 후회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텅 빈 심야의 카페에 혼자 앉아, 몇 병의 맥주에 취해, 문득 내 삶이 후회스럽다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취기 탓인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애의 실패 탓인지, 아니면 늘 최선을 다해 온 일상이 어떤 성공을..

고목탄, 나카가미 겐지

고목탄 - 나카가미 겐지 지음, 허호 옮김/문학동네 고목탄(枯木灘) 나카가미 겐지(지음), 허호(옮김), 문학동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이복동생 히데오를 돌로 내리쳐 죽이고 감옥에서 살다가 나온 아키유키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카가미 겐지는 알고 있을까? 하긴 알든 모르든 내 삶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런 류의 소설은 좋지 않다. 누군가의 비밀스럽고 슬프고 고통스런 삶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런 소설은, 일본의 신화에서 기인한 스토리라는 평자의 의견을 무색하게 만들며, 결국 뒤죽박죽인 가계도에서 벌어지기 마련인 갑작스런 파국을 소설의 말미에 배치함으로써 희망이란 피묻은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강요하듯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싫다. 그..

페스트, 알베르 카뮈

페스트 -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책세상 페스트 알베르 카뮈(지음), 김화영(옮김), 책세상 이 주었던 그 강렬한 충격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리고 카뮈의 를 읽었다.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주제 사라마구의 를 읽고 난 후였다. 도시에서 일어난 어떤 질병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두 소설은 흥미롭게 교차되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가 의사 아내의 눈을 통해 묘사되듯, 카뮈의 에서는 의사인 리유를 통해 보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는 와 비교해,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사변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질병으로 인해 폐쇄된 도시의 풍경을 묘사하지만, 그 속에는 극적인 사건보다는 질병과 죽음이 일상이 되어가는, 우울한 도시 풍경 뿐이다. 젊은 카뮈에게 '어떤 절망적 위기 앞에서 인간은 어떤 행..

生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

생은 다른 곳에 -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까치글방 生은 다른 곳에 밀란 쿤데라(지음), 안정효(옮김), 까치 이 소설은 ‘봄을 사랑하는 남자’ 뿐 아니라 ‘봄의 사랑을 받는 남자’라는 의미도 되는 야로밀(Jaromil)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의 표면에 드러나는 것일 뿐. 이 소설은 젊음과 그 젊음이 염원하고 갈구하는 혁명에 대한 알레고리이며 모호한 관찰이며, 작가와 허구적 목소리의 뒤섞임이다. ‘생은 다른 곳에’. 프랑스 학생들이 소르본느의 벽에다 이렇게 낙서를 했다. (… …) 그 까닭은 참된 삶이 다른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길바닥에 깐 돌들을 뜯어내고, 자동차들을 뒤집어엎고, 바리케이드를 일으켜 세우며, 그들이 세상에 등장하는 방법은 시끄..

복화술사들 -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 김철

복화술사들 - 김철 지음/문학과지성사 복화술사들 -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 김철(지음), 문학과지성사 ‘애국가’의 작사자로 알려진 좌옹 윤치호(佐翁 尹致昊, 1865~1945)는 그의 나이 18세가 되던 1883년부터 1943년까지 무려 60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132쪽) 그의 일기는 순한문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사 년 후 순한글, ‘국문’으로 일기를 쓴다. 하지만 ‘순한글 문체로 사 년 남짓 일기를 쓴 후에, “Corean”은 어휘가 풍부하지 않아서 말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윤치호’(135쪽)는 영어로 일기를 쓴다. 그가 ‘처한 언어적 환경은, 근대 국민 국가의 수립 과정에서 이른바 ‘국어national language’, 혹은 ‘공..

캐비닛, 김언수

캐비닛 - 김언수 지음/문학동네 , 김언수(지음), 문학동네, 2006 쉽게, 아주 짧은 시간에, 힘을 거의 들이지 않고 다 읽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잘 읽히고 종종 흥미 있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신기하고 낯선 스토리였지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스토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단지 이러한 스토리로 소설을 쓸 생각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확실히 나라면, 이런 소설을 쓰지도, 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책 뒤에 실린 심사평의 일부는 동의할 수 있었고 일부는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 이들의 높은 평가과 찬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평가들이 많았고, (심각하게)스스로 내가 이상한 독자나 평자가 아..

프랑스적인 삶, 장 폴 뒤부아

프랑스적인 삶 -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밝은세상 프랑스적인 삶 Une Vie Francaise 장 폴 뒤부아(Jean-Paul Dubois) 지음, 함유선 옮김, 밝은 세상 1. 한 치 앞 미래를 보이지 못한다. 그저 예측할 뿐이다. 과거시제 형 소설이 가지는 매력은 여기에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그러한 소설은 미래에 대한 숨겨진 공포를, 아찔함을, 내일을 향해 발을 내밀기가 무섭다고 독자를 향해 중얼거리는 양식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일의 삶을, 고통스럽고 미련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양식이다. 90년대 이후, 한국의 과거 시제 형 문학(후일담 소설/시)은 과거의 파란만장한 열정과 시행 착오에 대해서 끊임없이 합리화하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그것에 ..

라틴아메리카의 고독, 가브리엘 마르케스

가르시아 마르케스 - 송병선 엮어 옮김/문학과지성사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 문학과 지성사, p.187) (이 글은 수 년 전에 작성한 글이다. 외출하기 전에 다시 다듬어 올린다.) 최근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어느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와 시장 사이의 모순이 현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며 시장은 인간을 사적인 고객으로 취급하지만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문제에 책임을 질 줄 아는 공적 시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장의 전면적 지배는 곧 민주주의의 붕괴를 초래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 새로운 시대의 세계의 정치적 상황을 예리하게 지적해낸 이론으로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슬람문화권과 기독교문화권의 갈등은 이미 여러 전쟁을 통해 확인되었고,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