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문학과 지성사 '은밀한 생' 이후 읽는 키냐르의 두 번째 소설이다. 전체가 거의 다 하얗게 보이는 드라이포인트. 빛에 잠식된 난간의 받침살들 뒤로 한 형상이 보인다. 나이 든 남자의 모습이다. 지그시 감은 두 눈, 흰 턱수염, 다리 사이에 들어가 있는 손, 테라스 위, 로마, 황혼녘, 하루 중 제 3의 시간, 저무는 태양의 황금빛 광휘에 휩싸여, 그는 자유로움과 살아있다는 행복에 흠뻑 취해 있다. 포도주의 몽상 사이에. (78쪽) 기대한 만큼 감동적이지 않고 프랑스 내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점이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그가 바로크 시대를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그의 소설은 전혀 바로크적이지 않다. 극중 주인공의 판화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