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345

마담 보바리,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 Gustave Flaubert, (박동혁 옮김, 하서. 1990) * 1856년, 플로베르가 35세 되던 해 나옴. 그러나 뭐라 해도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 불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의지했던 모든 것들이 차례로 무너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하지만 만일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면, 열정적이고 품위 있는 성격, 천사와 같은 시인의 마음, 하늘의 마음, 하늘을 향해 애조띤 축혼가를 부르는 청동 하프 같은 마음, 이런 것들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왜 만나지 못했겠는가? 아! 모든 것은 다 틀렸다! 일부러 애쓰며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거짓이다! 어떤 미..

이별연습, 로랑 모비니에

이별 연습 - 로랑 모비니에 지음, 이재룡 옮김/현대문학 Apprendre 'a finir 이별연습 로랑 모비니에 지음, 이재룡 옮김, 현대문학 오늘, 광활한 대륙에서 밀어닥친 차갑고 건조한 바람들이 검은 아스팔트 위를 낮게 깔려 지나가는 순간, 지친 표정들로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를 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난 당신을 알아요’라고 큰 소리로 부를 뻔했다. 다행히도 난 황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고 그녀는 날 보지 않고 오던 길처럼 나머지 길도 그렇게 걸어갔다. 우리는 때때로, 아무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하는, 이야기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한때 그것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에 대한 강력한 부정, 또는 누군가가 내 말을 듣게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루바이야트, 오마르 카이얌

루바이야트 -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지음/민음사 The Rubaiyat of Omar Khayyam E. Pitzgerald. 이상옥 옮김, 민음사 세계시인선 12 오, 지옥의 위협이여, 천국의 기약이여! 한 가지는 확실하오, 인생은 덧없는 것 이 한 가지 분명하고, 나머지는 거짓일세 제 아무리 고운 꽃도 지고 나면 그만이니 - 63편 19세기에 번역된 11세기, 또는 12세기 아랍의 시집. 그러고 보면 거의 천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 옛날, 같은 하늘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법한 곳의 시인의 시집이 후에 유럽에서 번역되어 나왔을 때, 사람들이 보였을 감동이나 열광을 생각을 해보면, 이 세계가 아무리 많이 변했다고들 하나, 이 인생들의 본질적인 영역의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로잡힌 영혼, 라니츠키

사로잡힌 영혼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서유정 외 옮김/도서출판빗살무늬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 빗살무늬 재미있게 읽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다. 그것은 라니츠카가 생각하는 문학이나 예술과 내가 생각하는 그것들과 많은 부분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작가들을 자기애에 가득찬 인물로 매우 공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이거나 자기애에 대한 판단이나 간략한 상황 설명만 있을 뿐, 깊은 분석은 없다. 분명 수긍할 만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냥 자기 생각나는 대로 서술했을 뿐이다. 자기 느낌대로. 라니츠키의 문학에 대한 사랑은 무척 감동적인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 작가나 예술가들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에 대한 아무런 통찰도 없어 보인다. 그는 삶과 유리된, 세계와 유리..

공중곡예사, 폴 오스터

공중 곡예사 -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열린책들 폴 오스터, Mr.Vertigo, 열린책들. '공중곡예사'라는 번역 제목은 썩 성공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미스터 버티고'나 '현기증씨'가 낫지 않을까.(그만큼 이 소설 속에서 '현기증'이라는 소재는 매우 중요하다. 소설 속에 아주 짧게 언급되지만, 주인공 인생에 있어 한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거리감'이다. 가령 고등학교 때 친구가 건네준 빨간 포장의 말보루를 가슴 깊숙이 삼키고 난 다음 펼쳐지는 거리 풍경과 팽창하는 동공과의 거리 변화 따위나 대학 때 옆에 사모하는 여자를 앉히고는 연거푸 데킬라 스트레이트 잔을 여러 잔 마시고 손을 뻗쳐 그 여자의 얼굴 위로 갖다댈 때, 손가락 끄..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페터 한트케

페터 한트케,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문학동네. 힘들게 읽은 작품. 몇몇 뛰어난 문장들이 눈에 보임. 그러나 전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그냥 일반적인 소설 읽듯이 읽어선 접근하기 어려움. 구성의 치밀함이 있는 듯 하나, 그것을 알기에는 지하철은 무척 안 좋은 공간이었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당한 텍스트는 헐리웃 영화인 듯함. 이 소설, 무척 재미없음. 예술이 대중과 멀어지는 이유는 그 어떤 것도 이 세상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데, 페터 한트케의 작품도 여기에 포함됨. 최근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예술이 스스로의 담을 쌓고 그 속에서 완결된, 무척 행복한 자기 변명의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책벌레, 클라스 후이징, 문학동네 책벌레를 읽었다. 정독 요하는 책이다. 하지만 건성으로 읽었다. 문장이 좋지 않았고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스타일도 흥미진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하나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스토리와 하나의 말많은 양탄자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무척 치밀한 구성이었지만, 나는 한 권의 소설을 원했지, 자신의 주장을 담은 논문을 원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책은 과연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서 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일까. 한동안 이 고민을 해야할 것이다. 에코의 이 한 권의 책에 대한 것이듯, 진시황제가 모든 책을 불 태웠듯이, ... 책은 무척 중요한 것인데, ... 2002년..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이경림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 이경림 지음/이룸 파란 하늘이 위로, 약 이십킬로미터 정도 끝없는 우주 쪽으로 올라갔다. 그랬더니 조금 넓어진, 또는 매우 넓어진 하늘을 메우기 위해 공기들이 이리저리 재빨리 움직이며 바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해마다 삼월 초면 이런 일이 생기곤 했다. 하늘이 먼저 움직이고 뒤따라 공기들이 움직였다. 옷깃 사이로 공기들이 밀려들어왔다 밀려나갔다. 꼭 파도 같았다. 방 구석 오래된 책장 속에서 '정원'을 페이지 속에 숨긴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숨긴 정원의 크기를 가늠할 방법은 없었지만 내가 책을 들고 흔들자, 우수수 작은 나무며, 푸른 잔디며, 둥글고 맨들맨들한 돌맹이들이 떨어져내렸다. 꼭 한겨울 함박눈처럼 내려 금새 방을 가득채웠고 열린 창을 넘어 골목길을 채우기 시작했다. ..

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문학과 지성사 나는, 내가 읽으면서 몽상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쓰려고 한다. 나는 몽테뉴, 루소, 바타유가 시도했던 것에 완전히 감탄했다. 그들은 사유, 삶, 허구, 지식을, 마치 그것들이 하나의 몸인 듯 뒤섞었다. 한 손의 다섯 손가락들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다. - 제 32장, 292쪽. 소설 1 : 이제 소설은 몽상과 개인의 독백만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소설에 있어 Reality란 실제의 세계(real world)를 반영할 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게 있어 진실한 것, 하나의 고백(confession)일 경우에 Reality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인과란 무시해야하는 것이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우리들의 영혼을 위해 달콤하고 지적인 사랑의 단어들은 전통적인 소..

우연, 르 클레지오

르 클레지오, 우연, 앙골라 말라, 문학동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르 클레지오는 그러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신비, 어떤 매혹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신비와 매혹이 현대 문명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까지도 시적인 풍경으로 묘사한다. 무척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르 클레지오의 화법이나 문장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꽤나 지루해할 만한 소설이다. 지극히 현대적인 소설이긴 하지만, 그것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고 프랑스에서도 무척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일 것이다. 다음 기회에 르 클레지오의 문학 세계를 다룬 글을 올릴까 한다. 따지고 보면 르 클레지오의 문학 세계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