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666

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문학과 지성사 나는, 내가 읽으면서 몽상할 수 있는 그런 책을 쓰려고 한다. 나는 몽테뉴, 루소, 바타유가 시도했던 것에 완전히 감탄했다. 그들은 사유, 삶, 허구, 지식을, 마치 그것들이 하나의 몸인 듯 뒤섞었다. 한 손의 다섯 손가락들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있다. - 제 32장, 292쪽. 소설 1 : 이제 소설은 몽상과 개인의 독백만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소설에 있어 Reality란 실제의 세계(real world)를 반영할 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에게 있어 진실한 것, 하나의 고백(confession)일 경우에 Reality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인과란 무시해야하는 것이며 이리저리 방황하는 우리들의 영혼을 위해 달콤하고 지적인 사랑의 단어들은 전통적인 소..

1월 1일

며칠 동안 술에 쩔어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나에게 새해 축하 메세지를 보내온 이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했다. 새해라. 시간의 구분이 뭔지 모르겠지만, 다들 새해라서 계획도 세우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어차피 또다른 꿀꿀한 해라는 실체(본질)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계획이나 마음 가짐도 다 부질없는 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겠다. ByTheWay, 오늘부터 신년연락이나 해볼까나.

우연, 르 클레지오

르 클레지오, 우연, 앙골라 말라, 문학동네 인생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르 클레지오는 그러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신비, 어떤 매혹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신비와 매혹이 현대 문명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까지도 시적인 풍경으로 묘사한다. 무척 아름다운 소설이지만, 르 클레지오의 화법이나 문장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꽤나 지루해할 만한 소설이다. 지극히 현대적인 소설이긴 하지만, 그것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이고 프랑스에서도 무척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설일 것이다. 다음 기회에 르 클레지오의 문학 세계를 다룬 글을 올릴까 한다. 따지고 보면 르 클레지오의 문학 세계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루이지 피란델로

아무도 아닌, 동시에 십만 명인 어떤 사람 -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김효정 옮김/문학과지성사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926.(김효정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9) 살아가는 게 버겁다. 소박하고 순수하던 고대의 풍습은 시간의 바람 속에서 먼지가 되고 훗날 그 먼지들을 모아 새로운 성(城)을 쌓지만 그 성은 우리가 지어, 들어가지 못한 채 버림당하는 곳으로 남겨진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선량한 우리, 아벨에게서 왔지만 그가 가졌던 양들은 이제 우리에게 남아있지 않고 그 몇 천년 동안 푸른 언덕이며 깊은 호수며 그 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새와 물고기들은 몇 미터의 높이로 쌓인 먼지들의 먹이가 되어버렸다. 아,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모스카르다...

칼의 노래, 김훈

칼의 노래 - 김훈 지음/생각의나무 김훈(지음), , 생각의 나무 내 몸 속에, 내 가슴 속에 죽여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소설의 짧고 단단한 문장들 틈 속에서 소리죽여 울어야만했다. 하지만 죽여야할 것들은 죽임을 당하기 전에 내 몸 속, 내 가슴 속에서 날 공격했고, 소설 속 화자인 이순신이 죽여간 왜며, 부하며, 조선포로며, 전과를 말해주기 위해 짤려져, 소금에 절여진 머리통 위로 내 얼굴이 떠올랐다. 말은 비에 젖고 청춘은 피로 젖는구나 젊은 왜가 칼에 새겨놓은 저 글귀는 이내 내 영혼을 파고들고, 나를 버려도 내 육체를 버리지못함이 한없이 슬프고 내 몸짓들의 까닭없는 부정들이 날 공포 속으로 밀어붙인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신현암/강원/김은환

, 신현암. 강원. 김은환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브랜드를 가진다는 것은 이러한 공감과는 다른, 한 기업의 생존이 걸려있는 중요한 문제이며 하나의 브랜드를 가지고 유지해나간다는 것은 뛰어난 전략 뿐만 아니라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일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최근까지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브랜드에 대해 소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대기업이나 일반 소비자와 직접 부딪히는 기업들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국내의 브랜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새삼스럽게 브랜드의 중요성에 대해 간략하지만,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있는 책이다. 많은 브랜드들에게 어떤 위기가 닥쳤는가, 그리고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가부터 브랜..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 사이언 그리피스

, 사이언 그리피스 엮음/이종인 옮김, 가야넷, 2000년 예전에 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이 책도 그와 비슷한 책이다. 하지만 라는 책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오고 간의 대화들의 깊이가 그들의 가지고 있는 명성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경우가 눈에 띈다.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책이 나온 것만으로도 뜻깊은 일이지만) 그에 비하면, 이 책은 매우 잘 구성된 책이다. 이 책은 런던타임즈가 21세기를 맞이하면서 30명의 학자들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 프렌치 앤더슨, 칼 제라시, 갤브레이스, 아마티아 센, 노엄 촘스키, 스티븐 핑커, 케빈 워웍, 셰리 터클, 프랜시스 후쿠야마, 슬라보예 지젝, 일레인 쇼월터, 아서 C. 클라크, 대니얼 골먼, 안드레아 드워킨, 리처드 도..

가을 오후 햇살들의 침입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쓰러지는 그대의 그림자는 나는 보았다. 하지만 그대 쓰러지는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나는 8차선 중앙선 위로 달려드는 나비떼에 쌓여, 끝내 질식사한다. 가을 오후 햇살들이 몰려다니며 서울 여기저기를 황폐하게 만들고 쓸쓸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고 끝없는 젊음의 터널 가장자리로 우리들 인생을 몰아내고 나, 끝내 질식사 한다.

바빌로니아사람들의 "사랑의 병"

환자가 가벼운 기침을 계속하고 말문을 닫을 때가 많으며, 혼자 말을 자주 하고 이유도 없이 웃는다. ... 보통 때에도 풀이 죽고 목이 조이는 듯이 느끼며, 먹고 마시는 것에 아무런 즐거움도 발견하지 못하고 커다란 한숨을 쉬면서 줄곧 '아아, 불쌍한 내 마음이여!"만 읊조리는 경우, 이 환자는 사랑의 병을 얻은 것이다. - 기원전 3천년경, 메소포타미아 어느 석편에 정의된 사랑의 병. **** 몇 천년 전 고대인들이 정의한 사랑병 환자. 그 매력적인 풍경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