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55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지음)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몬드리안의 은 이러한 이념의 회화적 대응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재현적 요소도 없다. 그것은 서로 단지 네모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추상적 창조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어 모방으로써의 예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이제 창조로써의 예술만이 남게 되었다.(307쪽) 이렇게, 묵시록적으로 끝나는 이 책은 단순히 서양미술사에 대한 소개나 이해로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양식, 하나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상학적 해석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예술(혹은 예술 작품..

건축예찬, 지오 폰티

건축 예찬지오 폰티(지음), 김원(옮김), 열화당 너무 늦게 이 책을 읽은 걸까. 나는 지오 폰티가 적어나가는 건축과 예술의 새로운 표현들을 접하며 건축이 왜 예술과 멀리 떨어지게 된 걸까 하는 의심을 했다. 아마 한국에서는 건축 관련 학과가 예술대학과 멀리 떨어진 탓이 클 것이라는 추측만 했고, 예술의 역사에서 건축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이 책, 놀라운 책이다. 지오 폰티는 우아하게 건축과 예술을 찬양하며 현대적 예술이 지향해야 되는 바를 이야기해준다. 건축 속의 침묵으로 인해 건축을 사랑하라. 그 속에 건축의 목소리와 은밀함과 강한 노래가 감추어진 침묵으로 인해 (17쪽) 기계는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학의 소산이다. 건축은 꿈의 소산이다. 꿈과 같이, 건축은 움..

행복한 연인, 쿠르베

The Happy Lovers Gustave Courbet, oil on canvas, 77*60cm1844 외근 후 바로 퇴근하는 길, 서점에 들려, 참 오랜만에 미술 잡지 한 권을 샀다. 그리고 내 눈을 사로잡은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하나. 행복한 연인. ... 뭔가 작위적인 느낌을 풍긴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랑하고 있다, 혹은 있을 것이다. 적당히 흥분해 있으며 이미 마주 잡은 두 손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음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는 내 사랑의 단어가 그녀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음을 기뻐하고 여자는 이 남자를 가졌구나 하며 안도의 미소를 띈다. 그들 뒤 배경은 먼 듯 가까운 듯 흐릿하고 군데군데 보이는 붉은 빛은 화창하던 오후가 끝나는 어느 무렵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포도주..

침묵의 시간,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

침묵의 시간 Tiempo de Silencio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Luis Martine-Santos(지음), 박채연(옮김), 책세상 먼저 이 책을 번역한 박채연 교수(서울디지털대학교)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보낸다. 그녀의 번역이 정확한지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을 번역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번역을 했고 출판까지 이룬 것에 대해 독자로서 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 스페인 소설의 기원’이라는 찬사를 받는 소설이지만, 실은 한국 독자에게 동시대 스페인 소설가는 낯설기만 하다. 소설은 현대적 서술 기법들이 망라되었으며, 게으른 독자를 쉽게 무시하고(그런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지도 않겠지만), 종종 문장 하나는 너무 길어져 독자의 집중을 요하기까지 하니(아니 번역된 소설이 이래서야..

루쉰(노신),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며칠 전 서가에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을 보았다. 여기서 '보았다'는 그 책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의미이지, 그 책을 다시 읽었다는 건 아니다. 반가웠다. 대학 시절 한 번 읽었고, 직장을 다니면서 또 한 번 읽었다. 이번 가을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루쉰(노신)의 마음도 요즘 내 마음 같았을까. 대학시절 '아큐정전'을 읽었으면, 그 짧은 소설이 가진 거대한 힘 앞에서 나는 절대 이런 소설은 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동시에 우리 시대는 루쉰의 시대가 아니므로, 그런 소설을 쓸 생각도 하지 않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도는 법. 우리 시대가 다시 이렇게 어두워지리라 누가 생각했을까. 잘못된 것일지라도 과거는 흐릿해지며 아름다워지기 마련이고, 그 과거 화려했던 이들은 다시 한 번 누군가에겐 ..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육후연 옮김/인디북(인디아이) 도련님나쓰메 소세키(지음), 육후연(옮김), 인디북 - 이 소설에 대해 간단한 평을 쓰려고 인터넷서점을 검색해보았더니,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 나오고 있었다. 그 전집을 보고 있으니, 이젠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오에 겐자부로 소설 전집이 떠오른다. 그 때 그, 오에 전집을 다 사둘 걸,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살 생각은 없다. 이미 소세키의 소설 다수를 구입한 터라, 소세키를 읽을 때마다 사서 읽는 편이 좋을 게다. 이 책은 소세키의 소설들 중 가장 대중적인 책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꽤 유쾌하고 작은 소극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대로 소세키의 다른 소설들에서 보여주었던 바, 지식인의 고뇌, 현대적 삶의 쓸쓸함, ..

기다림 망각, 모리스 블랑쇼

기다림 망각 - 모리스 블랑쇼 지음, 박준상 옮김/그린비 기다림 망각 L'attente L'oubli 모리스 블랑쇼(지음), 박준상(옮김), 그린비 장르가 불분명한 이 책은 모리스 블랑쇼의 일종의 에세이다. 일종의 연애담으로 읽어도 될 것이며, 문학론으로 읽어도 되고, 인생에 대한 태도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차피 모리스 블랑쇼 연구자가 될 턱 만무하고 어려운 철학 용어나 문예 이론을 들이민다고 해서 이해될 리도 없다. 이 책 속의 그도 그녀를 향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그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죽고 사라져야만 비로소 의미가 드러나는 법이다. 망각. 그리고 그 드러나는 의미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언어이거나 문학이거나 예술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와 그녀를 통해, 모리스 블랑..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 조중걸 지음/지혜정원 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조중걸(지음), 지혜정원 읽고 난 다음 서평을 쓰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 대한 소개 대신 무조건 '읽어라'라고 하는 편이 낫고, 몇 문장의 인용은 도리어 책에 대한 누(累)가 되어 인용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서평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글이란 서문 일부의 인용 정도가 되지 않을까? 언어학, 인류학, 기호학 등의 연구에 매달렸던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통찰에 준해 현대의 형성에 공헌했다. 그러나 이것들이 현대라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것들 역시도 현대의 한 현상일 따름이다. 이 책은 이러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 게오르그 짐멜 지음, 윤미애 외 옮김/새물결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지음), 김덕영, 윤미애(옮김), 새물결 국내에서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 ~ 1918)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저조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는 철학을 연구하였으며(신칸트주의자이면서 니체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에 있다), 사회학, 미학, 문화비평을 아우르며, 동시에 그의 글들은 대부분은 현대 문명이나 문화, 대도시 사람들의 마음/정신, 일상, 태도, 형식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고, 그의 문장은 짧으면서 뛰어난 문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런 글을 썼다는 점에서 놀라움마저 불러일으킨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발터 벤야민 이전에, 그 누구도..

에드워드 호퍼, <여름실내>

Edward Hopper Summer Interior 1909, Oil on canvas, 24 x 29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따갑고 건조한 여름 햇살이 방 한 가운데로 내리꽂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울 정신적 의지는 지난 밤에 사라져버렸다. 꿈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환상이거나. 만일의 경우 그것은 최악의 현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며 앞으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다. 너무 가지런한 실내가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뜨거운 여름날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에게 오래 전부터 빈혈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