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55

마음, 나쓰메 소세키

마음 -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마음, 나쓰메 소세키(지음), 김성기(옮김), 이레 1.나쓰메 소세키, 무려 1세기 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시대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근대성(modernity)의 본질을 간파한 것이리라. 이번 소설도, 내가 이전에 읽었던 소설과 비슷하게, 큰 사건이 없이 한 편의 풍경화처럼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소설의 전반부는 나와 선생님이 만나고 가깝게 되는 과정을, 소설의 후반부는 선생님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 부분은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나머지 한 부분은 독백에 가까운 편지로만 구성된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대화가 아닌 '글로 씌어진 편지'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리고 ..

오쿠이 엔위저의 '앤드로 모더니티 andromodernity'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는 광주비엔날레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큐레이터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니콜라스 부리요Nicolas Bourriaud가 기획한 '얼터 모던 Altermodern' 전(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의 카탈로그에서 네 개의 모더니티를 제안하였고 그 내용을 오늘 읽은 '시선의 반격' 도록에서 김현진의 글에서 확인했다. 간단하게 인용하자면 이렇다. 오쿠이 엔위저는 모더니티를 서구 1세계의 supermodernity, 아시아의 고속개발국가들의 andromodernity, 이슬람권의 speciousmodernity, 아프리카의 aftermodernity로 분류.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는 자신의 글에서 네 개의 서로 다른 모더니티의 모델을 규정하면서 한국, 중국, 인도와 같은 나라들..

초겨울 출근길, 가방 속 두 권의 책.

읽을 책이 많아도, 계속 새 책에 손이 가는 건 예전부터 읽어온 습관 탓이다. 1주일에 1권 이상은 읽어왔는데, 올해 들어 한 달에 2권 이상 읽지 못하고 있으니. 하지만 손의 습관은 1주일에 1-2권씩 새로운 책 표지에 살갗이 닿아야만 손의 마음은 놓이는 것일까. 바람은 무척 차고 일은 많고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들 중의 하나가, '비밀 없는 사람이 되자'였는데 그게 참 쉽지 않다. 강상중의 신간 '살아야 하는 이유',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 ... 참, 일본은 대단하기도 하면서 신기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미 백 년 전에 20세기 후반에 최초로 마주하게 되는 현대적 모더니즘(contemporary modernism)을 보여주고 있고, 그 옆에서 ..

내 마음의 건축 - 상권, 나카무라 요시후미

내 마음의 건축 - 상 -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다빈치 정통 현대건축의 금욕적인 표현에 건축가들이 이제 더는 주눅들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순수한 것'보다는 이것저것 뒤섞인 혼성품이, '정확하고 깔끔한' 것보다는 적절히 타협한 것이, '쉽고 단순한' 것보다는 한 번 비튼 것이, '분명하게 표현된' 것보다는 애매한 것이, (... ...)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보다는 관습적인 평범한 것이, 배제하는 것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혁신적이면서도 남겨진 흔적을 지닌 것이, 직접적이고 명쾌한 것보다는 모순에 가득 차 있으며 불분명한 것이 좋다. 나는 명확한 통일감보다는 너저분해도 생동감 있는 것을 중시한다. 나는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이중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나는 의미가 명료한 것보다는 의미..

바로크 - 근대와 중세의 종합

찰스 테일러의 에 나오는 주석인데, 바로크Baroque 문화, 혹은 시대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이렇게 메모해 둔다. 미술사 뿐만 아니라 문화사나 지성사에 있어서도 바로크 양식은 매우 중요하다. 고대와 대비되는 근대, 그리고 현대적 삶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는 근대, 그리고 바로크는 그 근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적 양식이기 때문이다. 찰스 테일러는 루이 뒤프레(Louis Dupre')에 기대어 바로크에 대해 언급하였고, 아래 내용은 그 각주이다. 그리고 이 글은 기억의 보조적 수단으로서의 저장이다. 이 각주에서 엿보이는 뒤프레는 바로크에 와서야 중세적 질서가 근대적 질서 속에 종합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종합의 긴장이 바로크 양식을 이룬다는 것. 일견 타당하기도 하지만, 너무 중세적 질서의 영향력을 ..

칼스텐 해리스Karsten Harries 교수와의 인터뷰

며칠 전에 올린 칼스텐 해리스의 글에 이어, 다시 한 편 더 올린다. 전문 잡지에 오래 전에 실린 글은 구하기 어렵다. 좋은 글들이 많지만, 누군가 꺼집어 내지 않는 이상 누구도 찾아보지 않게 된다. 블로그에 누군가의 글을 그대로 옮기는 일이 드문데, 자주 그래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된 일인지 좋은 글 보기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느낌 때문이다. (내 게으름이 한 몫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래 글은 월간미술 2002년 2월호에 실린 글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적절한 시각과 평가를 가진 칼스턴 해리스의 인터뷰이다. 지금 읽어도 놀라운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필독을 권한다. - 2002년 2월 월간미술 게재. 독일 철학, 미술사, 건축 이론, 그리고 현대 과학의 역사에 걸친 광범위한 지식..

Pierrot Le Fou 미치광이 삐에로 : 현대 영화의 자의식

Pierrot Le Fou 미치광이 삐에로 (France-Italy 1965) 감독: Jean-Luc Godard 주연: Jean-Paul Belmondo, Anna Karina 영화가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벨라스케즈Velazquez에 대한 엘리 포레Elie Faure의 해석으로 시작해서 이브 클랭Yves Klein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장 뤽 고다르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며, 영화가 ‘글쓰기’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1965년도의 영화로 믿기지 않을 정도의, 다양한 장르적 실험으로 채워져 있으며 랭보와 셀린느를 오가며 글과 영화,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감독의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의 자의식이 용납되지 않는 작금의 영화들 속에서 누벨 바그의 놀라움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

모더니티의 다섯 개 역설, 앙투안 콩파뇽

모더니티의 다섯 개 역설 - 앙투안 콩파뇽 지음, 이재룡 옮김/현대문학 지난 가을에 두 번이나 정독한 책이다. 국내에 출판된 책들 중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가장 훌륭한 참고서로 읽힐 이 책은, 불행하게도 아무런 주목도 못 받은 것처럼 보인다(일일이 신문이나 잡지 서평을 찾아보지 못했지만). 두 번이나 읽었지만, 그간 서평을 쓰지 못했던 것은, 서평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서평이라는 낯익은 접근방식은 이 책이 가지는 유용함을 깎아 먹을 가능성이 더 높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서문 - 현대적 전통, 현대적 배반 새로운 것의 권위: 베르나르 드 샤르트르, 보들레르, 마네 미래에 대한 종교: 전위주의자들과 정통주의 이론과 공포: 추상파와 초현실주의 바보들의 시장: 추상표현주의와 ..

리네케 딕스트라 Rineke Dijkstra

리네케 딕스트라. 1959년 네덜란드 Sittard에서 출생한 사진 작가. Evgenya, Induction-Centre Tel Hashomer, Israel, March 6, 2002 Evgenya, North Court Base Pikud Tzafon, Israel, December 9, 2002 삶은 늘 변화하고 우리도 변한다. 성격이 변하기도 하고 외모도 변하고 사는 것도 바뀌고 심지어는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이들마저 있다. 성형 수술을 하여 얼굴 뜯어 고치고 이민을 가, 모든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이들마저. ... ... 하지만 변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모더니티의 특징 중의 하나는 '변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존재(Being)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 ..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조중걸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 조중걸 지음/프로네시스(웅진)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조중걸(지음), 프로네시스 ‘키치’(Kitsch)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키치’를 ‘이발소 그림’으로 이해하는 것은 키치를 설명하기에 구체적인 스타일이 있는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어떤 인식론적 태도라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카르스텐 해리스도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저자들은 키치를 이발소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인식론적 태도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키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영국 경험론을 이야기하고 현대 물리학과 현대의 추상 미술의 기원을 탐구해야만 한다. 이를 다 설명해야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실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