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55

시간과 존재에 대한 예술 - 온 카와라 & 로만 오팔카

살아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심장이 뛰고 내 혈관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성을 만나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걸까? 그렇다면 살아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는 일종의 가상이거나 허위일 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 그리고 그 인생을 둘러싼 모든 사건들이 시뮬라크르일 지도, 나란 존재하지 않고 나란 누군가의 눈에 비친, 누군가의 생각과 언어에 의해 형성된 어떤 픽션일 지도 모른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내 것이 아닌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늘 내가 생각했던 것은 어긋나고 내가 한 말은 오해되고 내 글은 무시되고, 내 사랑이 번번히 막다른 골목의 시궁창에 빠지게 될 지라도, 나는 내 인생을, 내 존재를..

루이스 부르주아: 추상 展 - LOUIS BOURGEOIS : Abstraction

LOUIS BOURGEOIS : Abstraction (루이스 부르주아: 추상) A P R I L 2 0 - J U N E 2 9, KUKJE GALLERY 나는 그녀의 상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았지만, 그녀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그녀의 작품은 무미건조한 물음표에 가까웠고, 그녀를 향한 찬사와 열광이 되레 이상하게 여겨졌다. 결국 그녀 작품에 대한 비평을 찾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그녀 작품들. 내가 남성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나보다 훨씬 더 건강해서 그런 것일까. 읽어도 선뜻 그녀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는 매우 건강해서 병적인 나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가 관심을 가졌다는 기하학에서 영향 받았다..

바람, 그리고

시간들이 색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 이들은 바로 인상주의자들이다. 시간 따라 변하는 색채의 현란함, 그 현란함이 가지는 찰라의 쓸쓸함, 그리고 쓸쓸함이 현대인들의 피부를 파고 들어 삶의 양식이 되었음을 깨닫게 해준 이들은 인상주의 이후의 모더니스트들이다. 그리고 그 쓸쓸함은 본래적인 것이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견고한 피부를 만들고자 한 이들이 초기의 모더니스트들이라면, 그 쓸쓸함으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순간의 희열 속에 온 몸을 던지는 것이 후기(post)의 모더니스트들이 아닐까. 고객사를 가다 오는 길에 어느 집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붉은 잎사귀를 찍는다. 하나는 내 혓바닥 같다. 다른 하나는 누구의 혓바닥일까. 지금 나는 누군가의 혓..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버지니아 울프

, 버지니아 울프(지음), 정덕애(옮김), 솔, 1996년 문학비평가들이 쓴 문학에세이들 대부분이 그들이 가진 편협한 이론적 시야에 갇혀 일방적인 해석의 늪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하고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 반면, 작가들이 쓰는 에세이는 적어도 작품이나 작가를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때로 더 뛰어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 산문집 또한 그러하다. 19세기, 20세기 영국 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도 그녀의 문장은 독자를 배려하며 독자의 눈길 앞에 순결한 그 하얀 살결을 드러내며 초봄의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위장(僞裝)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공손함이 너무나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통과 의식을 던져 버..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마리 앤 스타니스제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Believing is Seeing 마리 앤 스타니스제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현실문화연구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두 번 적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적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책에 대한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는데, 다들 찬사 일변도여서 이건 아닌 것같아 여러 번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라면 원고지 10장 정도의 분량과 슬라이드 20개만 있으면 이 책에서 다루어진 내용의 다섯 배 많은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그러고 보면 다들 현대 미술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발레리 산문선, 폴 발레리

발레리 산문선 폴 발레리 지음, 박은수 옮김, 인폴리오. 솔직히 이 책에 대해 소개하라며 한 시간의 시간을 준다면, 혹은 원고지 30매를 채우라고 요구한다면, 아마 나는 한 시간 내내 책의 일부분을 읽어가거나, 책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 적을 것이다. 아마 몇몇 이들에게 이 책은 수다스럽고 장황하며 뜻모를 말만 나열하는 책이겠지만, 몇몇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고 아름다우며 읽어가는 도중, 아! 아!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 책들 중의 한 권일 것이기 때문이다. 의 한 구절을 옮긴다. 나르시스를 사모하는 한 님프의 대사다. 가엾게도 ... 내 자매들아, 죽다니? ... 우리는 죽지 않는 여신들, 부질없게도, 부질없게도 죽지도 않고 아름답기만 하니; 우리에게는 사랑도 없고 죽음도 없구나 욕망도 괴..

고전주의적 현대 양식 '모더니즘'에 대한 보충 설명

* 모더니즘을 고전주의라고 평가했는데, 어떤 분께서 낭만주의적 양식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어 그것에 대한 언급입니다. 모더니즘에 대한 평가 작업은 현재 진행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더니즘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보면서 낭만주의적 양식이라 판단내리기 쉬워보입니다. 그동안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고전주의란 세상이 어떤 확고하고 고정불변된 원리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 태도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이 창조될 때 그 예술 작품들을 고전주의적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전주의 양식은 예술의 역사 속에서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따져도 그리 오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바로크 고전주의'는, 지적하신대로 고전주의 속에 편입시키기 매우 애매합니다. ..

지나간 미래, 라인하르트 코젤렉

지나간 미래 - 라인하르트 코젤렉 지음, 한철 옮김/문학동네 지나간 미래 Vergangene Zukunft 라인하르트 코젤렉 Reinhart Koselleck 지음, 한철 옮김, 문학동네 겨우 이 책을 다 읽었다. 대중 교양서라고 하기엔 너무 전문적이고 그렇다고 손을 놓기에는 너무 흥미진진했다.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이라는 방대한 사전의 편집자로 유명하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그리 유명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몇 달 동안 이 책을 잡고 있었는데, 읽고 난 다음 느낀 바를 크게 아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역사 서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 실제 경험한 사실, 목격자의 증언, 또는 사료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역사 서술은 ‘서사’와 ‘..

세잔

세잔 Cezanne 창해ABC북 모더니즘을 새로운 형태의 고전주의라고 지칭하는 까닭에는 폴 세잔과 같은 예술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인상주의 사이에서 시작해 위대한 고전적 양식으로 귀결되는 그의 예술 세계는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미술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조화이다”라고 생각했고 ‘회화에서 추구하는 진실은 현실에 대한 일루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확신에 이르는 작업’이라고 믿었다. Table, Napkin, and Fruit (Un coin de table) 1895-1900 (150 Kb); Oil on canvas, 47 x 56 cm (18 1/4 x 22 in);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

벌거벗은 내 마음, 샤를 보들레르

벌거벗은 내 마음 - 샤를 보들레르/문학과지성사 , 샤를 보들레르 이건수 옮김, 문학과 지성사 종종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구한다. 이럴 때는 우리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모순으로 가득차있다고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키스를 받고 나선 사내의 트럭이 얼마 가지 못한 채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나 사람과 부딪히거나 몇 년 동안 준비해온 사업이 사소한 법률 조항 하나 때문이거나 어떤 이의 꾐에 의해 모든 걸 날려버리게 될 때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구하기 마련이다. 과연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이 책은 현명한 답을 주지 못한다. 예술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작 이 책의 저자는, “세상은 오해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