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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문화 +22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지음), 창작과비평사, 1997년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이라니,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이야기들도 변하지 않았으니, 좀 오래된 책이라고 그 재미와 감동은 그대로일 것이다. 또한 건축가인 저자의 글솜씨도 나쁘지 않고 내용은 어렵지 않으며 짧은 분량으로 상당히 많은 건축물들과 건축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어 여행을 좋아하거나 건축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상당히 실용적이기도 하다. 


나름 건축물들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는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간과했던 몇 개의 건축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세신궁이나 자금성 같은. 


이세 지역의 신궁은 일본의 신성함과 국가의 단일성을 과시하기 위해 기원전 1세기경에 계획되었다. (... ...) 그 옛날의 목조건물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식년천궁(式年遷宮)의 전통 덕분인데,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건물을 다시 짓고 신을 옮기는 의식을 말한다. 이세 신궁의 경우 20년마다 천궁을 했는데 천궁을 할 때는 이전 건물을 해체하고 그 터를 남겨둔다. (98쪽) 


2000여년전 지어진 목조건물이 아직도 그대로 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더구나 이 건물을 짓기 위해 해마다 나무를 심고 있으며, 그렇게 심어진 나무는 200년, 300년 후 새로 지어질 이세신궁을 위해 씌여질 것이라고 한다(아마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두 번쯤은 이세 신궁을 애니메이션 안에서 보았을 것이다). 가끔 일본이 놀라운 것은 이런 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새로 지은 건물(아래쪽)과 곧 헐릴 낡은 건물(위쪽) -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D%B4%EC%84%B8%EC%8B%A0%EA%B6%81)


베이징의 자금성은 명나라와 청나라 황제가 머물던 곳이다. 현재의 자금성은 그 규모나 크기 면에서 여느 나라와 궁궐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경복궁을 떠올리면 다소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자금성은 그대로 보존된 반면 경복궁은 그 원형이 많이 훼손되고 다른 궁궐과도 떨어져 조선 시대의 모습 그대로라 보기 어려운 면도 있어 문화재나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자금성은 명대의 성조가 20~30만 명의 민간인과 군대를 동원해 140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4년에 걸쳐 건설한 황궁이다. 청조에는 부분적인 중건과 재건이 있었을 뿐 전체적인 배치는 변동이 없었다. '천하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황제 한 사람을 받든다'라고 할 만큼 500여 년간 부단히 고쳐 지어졌고 인력과 물력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요되었다. (232쪽) 



자금성  (출처: https://en.wikivoyage.org/wiki/Beijing/Forbidden_City


자금성과 경복궁은 비슷해 보이나, 그것이 놓인 위치나 그것의 구조나 철학은 서로 다르다.  어쩌면 서로 붙어있었으나,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국과 한국 상당히 다른 나라였음을 이 두 궁궐을 비교해봄으로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조의 정도(定都) 당시의 기록을 보면 도시 설계과정의 기록이 모호해서 답답할 때가 많다. 한양의 도시 모델은 뻬이징이 아니라 <<주례>>의 <고공기>였다. 서울과 경복궁이 많은 부분에서 베이징과 자금성을 원형으로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정도전 등은 단순한 모방이 아닌 <고공기>의 논리와 도가의 원리에 의해 한양을 설계하였으므로 실제의 도시와 건축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베이징과 서울은 다른 도시이고 자금성과 경복궁은 여러 면에서 다르다. 건축형식에서도 공법은 같으나 건축미학에서는 독자의 모습을 갖고 있다. 자금성에는 인간이 만든 기하학과 빈 하늘만이 있는 반면 경복궁에는 북한산과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형국이 궁성과 하나가 되어있다. 자금성은 자연을 가지려 하고 경복궁은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한다. 자금은 스스로가 원점의 공간으로 주변의 자연에 상관하지 않는 독존의 질서를 가진 데 비해 경복궁은 주변의 토지형국과 자연의 흐름이 하나가 된 건축군을 이루고 있다. 자금성은 <<주례>>의 <고공기> 원리가 대공간군을 이룬 기하학적 질서의 공간이며 경복궁은 유교의 공간형식과 도가의 철학이 함께 한 유기적 질서의 공간이다. (238쪽 - 240쪽)

경복궁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A%B2%BD%EB%B3%B5%EA%B6%81_%EC%A0%84%EA%B2%BD.jpg)


그 다음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도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의 주거를 지배하는 아파트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은 다 사라지고 공장스러움만 남아 흉물스럽기까지 한 한국의 아파트 건물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 - 1965)의 중후반기 대표 작품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s d'habitation)은 165m의 블록에 높이 56m의 단일 건물로 337개의 주거단위를 갖고 있다. 각각의 주거단위는 복층형태이며, 총 1800여 명을 수용하는 대규모 고층 집합주거이다. 특히 이 건물은 다음과 같은 그의 다섯 가지 건축원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첫째 개방된 지층 공간(필로티), 둘째 옥상정원, 셋째 자유로운 평면, 넷째 가로의 긴 창, 다섯째 자유로운 건물 정면 

이를 통해 벽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존의 조직적 구조물에서 탈피하여,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이용해 건물의 고층화와 구조적인 독립을 가능하게 했다. (280쪽) 


1997년과 달리 지금은 워낙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기도 하거니와, 해외 여행이 일반화되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많은 건축물들을 실제로 본 이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다만 여행을 가기 전에 이런 책을 한 두 권 읽는 것이 좋을 듯하며, 이 책은 여러모로 상당히 유용한 책이다. 


오랜만에 르 꼬르뷔지에의 건물 사진을 보면서, 필로티 - 경주/포항 지진으로 널리 알려진 - 형식이 르 꼬르뷔지에의 창안임을 잊고 있었음을 알았다. 하긴 르 꼬르뷔지에의 필로티는 지층 공간의 자유를 위해 기획되었는데, 한국에서의 적용은 주차장이거나 통유리창으로 이루어진 커피숍이나 상점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르 꼬르뷔지가 지금 한국에 와서 저 무수한 빌라와 아파트 건물들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 8점
김석철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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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지음), 강주헌(옮김), 아르테, 2015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부른다

-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는 어디일까? 몽테뉴의 말대로 우리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야만일까? 그러나 레비-스토스의 생각은 다른 듯 싶다. 


"계몽시대의 철학이 인류 역사에 존재한 모든 사회를 비판하며 합리적 사회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면, 상대주의는 하나의 문화가 권위를 앞세워 다른 문화를 재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을 거부했다. 몽테뉴 이후로, 그의 선례를 따라 많은 철학자가 이런 모순에서 탈출할 출구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하지만 이 상대주의가 우리의 일상에선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대체로 우리 주변 대부분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바 상대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더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선택받은) 문명 세계에 살고 있으며 (우리들과 다른) 이방인들은 야만의 세계에 속한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바 야만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 문명과 얼마나 가까운가를 보여준다. 가령 장신구 문화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야만의 형태다. 이제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나, 애초에 주술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루비는 유해한 기운을 물리치며, 사파이어는 진통효과를 지니고, 터키옥은 위험을 미리 알려주며, 자수정은 그리스어 '아메두스토스'의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술기운을 쫓아낸다고 수 세기 전까지 믿었기 때문에 그런 보석들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비싸게 거래되었다는 것을 요즘에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 91쪽 


장신구는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더구나 그 부분은 내가 '야생의 사고pense'e sauvage'라고 칭했던 것이 생생하게 지속되는 부분이다. 우리 시대의 여성도 귀걸이를 착용한다. 그런 여성이나, 그런 여성을 바라보는 남자도 불멸의 물질로 소멸하는 몸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장신구가 물렁물렁한 곳을 딱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 93쪽 


이와 반대로 우리 스스로 야만적 형태, 주술적 방식을 사용하기도 한다. 꽤 당혹스러운 방식이어서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최근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곤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반문하기까지 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산타클로스가 디종 성당 앞 광장에서 불태워졌다. - 디종, 1951년 12월 24일

- 12쪽 


일종의 화형식이었는데, 보수적인 가톨릭의 입장에서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의 문화였으며 천박한 자본주의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종교 당국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며 종교적 가치가 없는 신화를 대중의 머릿 속에 심어주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불순하게 '이교도화'하려는 시도를 신랄하게 규탄했다. 

-11쪽 


확실히 산타클로스는 이교도적이고 지독히 상업적이다. 그것에는 종교적인 것은 없다. 산타클로스를 두고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당국(프랑스 가톨릭)의 입장은 이해되고 당연해보이긴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이 행위가 얼마나 고대적이며 주술적인 것인가를 드러낸다. 


식인풍습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식인풍습이 일종의 약탈이나 살인 행위의 일종일 것이라 여겼던 나에게, 실은 '사랑과 존경의 표현'으로서의 식인 풍습은 매우 의외였다. 내 생각은 더 나아가 성경에서 언급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이것이 내 살과 피라고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이어졌다(<<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 성경의 일부 이야기들은 얼마나 닮아있는가).


민족학자들은 그 지역에 들어가 다른 가정 하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배를 받기 전에, 구루병이 만연한 부족사회의 식인 풍습이 있었다. 가까운 친척의 시신을 먹는 것이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한 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고인의 살과 내장 및 뇌를 익혀 먹었고  빻은 뼈를 채소와 함께 조리해 먹었다. 여성이 시신을 잘라내서 조리하는 역할을 맡았던 까닭에, 시신으로 여성이 감염된 뇌를 다루는 과정에서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것이고, 신체적 접촉으로 인해 어린 아이에게도 옮겼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었다.

- 123쪽 

(* 구루병 - 우리에겐 광우병으로 잘 알려진 '크로이츠 펠트야코프 병'을 의미함. 양의 경우에는 '진정병scrapie'라고 함. 지연성 바이러스로 인한 퇴행성 질환이며, 식인 풍습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짐)


구루병의 원인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식인풍습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알게 된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먹다'와 '성교하다'라는 단어가 문명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언어에서 같은 단어로 사용된다는 것이나. 모권제 사회에 대한 추측은 잘못된 정보라는 언급은 기억해둘만 했다. 


민족학 연구가 발전하면서, 한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모권제의 환상에 종지부가 찍어졌다. 부권제 아래에서는 당연하지만 모권제 아래에서도 권력은 남성의 몫이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권제에서는 어머니의 남자 형제들이 권력을 행사했고, 부권제에서는 남편이 권력을 생사한다는 게 유일한 차이였다.

- 154쪽 


이 책에 실린 레비-스트로스의 글은 대부분 저널에 실렸던 것이라 그 길이가 짧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무척 시사적이면서도 그 소재나 주제가 흥미로워 추천할 만하다. 


내 경우엔 이 책을 다소 급하게 읽긴 했으나, 오귀스트 콩트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언급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 콩트의 책을 읽지 않았고 그 위상에 대해서 생각해본 바가 없었으나, 콩트의 실증주의적 태도가 후대 학문에 꽤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콩트가 이야기했던 그 이론들이 지금도 유의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아래는 니콜라 푸생의 <에코와 나르시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 메모해둔다. 


Echo and Narcissus

Nicolas Poussin(1594-1665), oil on canvas, 74 cm* 100 cm, 1630, Louvre Museum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무엇보다 그림의 구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선이 분산되며 서로 멀어진다. 나르키소스의 두 다리는 오른쪽을 향해 벌어졌고, 두 팔은 서로 반대방향을 향한다. 다른 두 인물, 즉 숲의 요정인 에코와 장례의 횃불을 쥐고 잇는 푸토의 몸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런 분산은 그림에서 윗부분을 차지한 나뭇가지에서도 반복된다. 이런 분산 방향은 메아리(숲의 요정 에코는 나르키소스를 사랑했지만 거절당하자 슬픔으로 몸은 없어지고 메아리가 되었다 - 옮긴이)의 청각적 현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메아리는 소리의 원점에서 점점 멀어지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라지지 않는가. 보들레르의 유명한 시가 그렇듯이, 감각적 자료들 간에 연상되는 이런 조응(correspondance)으로 푸생의 그림에서는 멜랑콜리, 즉 일정한 배색 효과로 강조된 회상에 젖은 서글픔이 느껴진다.

- 144 ~ 5쪽 



푸생의 그림에서 주조를 이룬듯한 분산이 온갖 모습으로 나타난다. 멍청한 듯 하면서도 기막히게 놀라운 일을 해내는 메아리의 물리적 현상에 내재된 분산이다. 따라서 메아리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산책자와 여행자를 유혹한다. 푸생의 그림이 요정 에코와 초자연적 세계의 작은 특사(푸토)가 취한 상반된 방향을 강조함으로써 명백하게 드러낸 분산이기도 하다. 에코는 일관된 단조로운 색조로 이미 자신과 하나가 되어버린 바위의 형상으로 땅을 향하고 있다. 이런 대비가 구도와 색이란 상보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에코 요정의 헛된 회상과 나르키소스의 숙명적인 오해, 그리고 메아리의 무익함과 전능함을 하나의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 152쪽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 10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강주헌 옮김/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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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힐리즘과 문화(Nihilism en Culture) 

고드스블룸(Johan Goudsblom) 지음, 천형균 옮김, 문학과지성사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49쪽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 죽는다. 자신이 이상주의자인지 현실주의자인지, 고전주의자인지 낭만주의자인지, 플라톤주의자인지, 반-플라톤주의자인지. 심지어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들 중에서도 이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동시에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를 알지 못한다. 


고드스블룸이 니힐리즘을 문화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분석하고 정리하고자 한 것은 현대에 이르러 니힐리즘이 일종의 문화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 대중화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에서 문화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이 속에서 니힐리즘의 문제를 거론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니체의 니힐리즘에 많은 할애를 하고 있지만(그 정도로 니체와 니힐리즘을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가장 고귀한 가치는 상실되어 버렸다. 그 가치들은 평가절하되었다. 존재의 목적도 상실되어가고 있다. 존재의 목적에 대한 문제도 모두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있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니힐리즘이다. '진리의 세계'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에 관한 모든 글이나, 진리로 인정되고 있는 모든 것이 허위임을 그것은 일깨워주고 있다. 니힐리즘은 '무'에 대한 감정, 즉 '허무감 pathos in vain'을 통해 절정에 도달하는 하나의 계시이다. 

- 61쪽 


특히 '진리 추구'라는 관점에서의 니힐리즘에 대한 접근(니체에 기대어)은 이 책의 내용을 진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니힐리즘은 이 시대의 저변 문화가 된 것처럼 보인다. 


한 때 나는 '니힐리즘'이라는 단어가 더욱 유행할 것이라 여겼다. 동시대의 많은 이론들이 니힐리즘을 부추기며 '무가 바로 진리'라는 걸 대변하는 듯, 기존의 질서, 학설, 태도를 거부하고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렇게 요란하게 발언하는 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을 이어갈 때, 허무주의가 우리 시대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종교를 찾을 것이고 새로운 중세가 올 것이라고. 


체홉은 이 사태를 이미 예견한다. (실은 19세기 이후 많은 예술가들과 작가들이 니힐리즘을 노래했다)


모든 감정과 사상은 나와는 상관없이 존재한다. 과학, 연극, 문학, 제자들에 대한 나의 모든 비판 속에서, 그리고 모든 정경 속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분석가조차도 발견할 수 없었던 일반적인 개념이나 살아있는 인간의 신으로 불리는 것까지도 상상으로 그릴 수가 있다. 

그것마저도 없다면, 있는 것은 오직 무 뿐이다. 

이 극빈과 심한 질병과 죽음의 공포가 몰고온 환경이나 인간의 영향이 한때 내가 생활철학으로 받들고, 나의 존재의 의미와 즐거움을 찾았던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산산이 파괴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지쳐버렸다. 그렇다면 생각하고, 말하는 것조차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조용히 앉아서 나에게 닥쳐오는 것을 맞이할 생각이다. 

- 안톤 체홉, <<음울한 이야기>>(272쪽에서 재인용) 


고드스블룸의 입장은 니힐리즘에 대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의 연구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원하는 뉘앙스를 풍기지만(종종 니힐리즘이 가진 부정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그것에까지 이 책은 이르지 못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자신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드러내었다기 보다는 니힐리즘을 둘러싼 니체와 다양한 작가와 학자들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이지만, 니힐리즘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의외로 책 읽는 속도가 빨랐는데, 저자의 풍부한 인용과 깔끔한 정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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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통해 배우기 위한 전략 Strategies for Learning from Failure 



에이미 C. 에드몬슨(Amy C. Edmondson)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의 아티클 제목이다. 

노트를 정리하다가 메모 해놓은 것이 있어 블로그에 옮겨놓는다. 

동아비즈니스리뷰에 번역되어 실린 아티클을 읽었다. 

(실패사용설명서 - 줄기찬 실험이 성공을 낳는다, 동아비즈니스리뷰 2011년 12월 2호, 통권 95호


혁신적인 조직을 꿈꾼다면, 실패에 대한 조직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글쎄다. 추천할 만한 아티클이다. 


영문 아티클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메모 내용이다. 


*** 



첫째 실패가 항상 나쁜 건 아니다. 실패는 나쁠 때도 있지만 불가피한 때도 있다. 심지어는 바람직할 때도 있다. 둘째, 실패를 통해 발전하는 길이 쉽지 않다. 효과적으로 실패를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는 조직은 흔하지 않다. 



실수 

- 예방가능한 실패

- 복잡성으로 인한 실패

- 똑똑한 실패 (Sim Sitkin(듀크대 교수)의 용어)



실패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문화

- 업무 범위를 정확히 정의한다.

- 실패를 보고하는 사람을 치하한다.

- 한계를 인정한다.

- 참여를 독려한다.

- 범위를 설정하고 자신의 업무를 자신이 책임지도록 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블로그에 올라와있는 에드몬슨 교수의 인터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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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패를 편하게 여기는 문화..... 에 속하는게 한국 사회 내 제가 겪은 조직 문화 중 아무것도 없어서 저는 아직은 비관적이네요 ㅎㅎㅎ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

    • 저도 비관적입니다. 그래서 좀 관심을 가져볼까 하고 있어요. ~~ 해외에선 관련 컨퍼런스도 있고 하던데 말이죠.



요즘같은 시기에 지속적인 경쟁력나 경쟁우위를 이야기하는 건 좀 뒤떨어져보인다. 왜냐면 경쟁우위는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술의 발달 속도가 빨려졌고 핵심 인력의 변동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회사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 앞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아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보다 더 나은 기술에, 낮은 가격력으로, 더 뛰어난 디자인으로 경쟁사 우리 고객을 만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맥그래스(Rita Gunther McGrath)의 '일시적 경쟁우위'는 이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015/06/28 - [책들의 우주/비즈] - 경쟁 우위의 종말 The End of Competitive Advantage


오늘 오랜만에 경영전략과 관련된 아티클을 읽었다. 


'제대로 실행되는 전략 만들기(Creating a Strategy That Works)'는 수립된 전략과 실행 간의 갭을 줄이고 어떻게 역량에 기반한 경쟁우위를 확보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글이다.


간단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피할 수 없는 역량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 다시 말해 다양한 경쟁 분석 기법으로도 분석되지 않는 경쟁우위를 만들고 그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게 쉬웠다면 다 했을 것이다. 


 



S&B에서는 이를 위한 실행 방법으로 5가지를 제안한다. 


- Commit to an identity 

- Translate the strategic into everyday 

- Put your culture to work 

- Cut costs to grow stronger 

- Shape your future 


Commit to an identity에 대해서는 아래 문장을 인용한다. 


The identity of a successful company aligns three basic elements: a value proposition(how this company distinguishes itself from others in delivering value to customers): a system of distinctive capabilities that enable the company to deliver on this value proposition: and a chosen portfolio of products and services that all make use of those capabilities. (성공적인 기업의 아이덴터티는 세 개의 기본 요소로 이루어진다: 가치제안(어떻게 한 기업이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함에 있어 그 자체로 다른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 기업이 이 가치 제안을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독자적인 역량 시스템: 그리고 그들의 역량 모두를 사용하여 만든 선택된 상품과 서비스 포트폴리오.)



위에서 나열된 각각의 방안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System으로 기업 내에 자리잡아야 한다. 그래서 결국엔 culture에 방점이 찍히는 건 아닐까 싶다. 


아래는 역량(Capabilities)에 대한 포스팅과 전략 실행이라는 책에 대한 리뷰다. 전략이 없는 기업은 없다. 그냥 전략 수립만 전문적으로는 컨설팅 회사에 전략 수립을 의뢰해도 된다. 아니면 자문을 받아도 되고. 심지어 정부 기관에서 알선해주는 컨설팅 서비스를 받아야 될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실행(execution)이다. 아무리 좋은 전략도 제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 없다. 실은 쓰레기 같은 전략이라도 실행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결국, 실행의 문제이고 제대로 된 실행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기업 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 * 


2014/11/01 - [Business Thinking/전략경영] - 경쟁 우위와 동적 역량


2014/02/14 - [책들의 우주/비즈] - 전략 실행 - CEO의 새로운 도전 (Making Strategy Work), 로렌스 G. 히레비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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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 조너선 콧(지음), 김선형(옮김), 마음산책 




1978년 '롤링스톤'지와의 인터뷰를 그대로 옮긴 책이다. 약 12시간에 걸친 인터뷰 중 일부만 '롤링스톤'에 실렸고 지난 2013년에서야 인터뷰 전문이 이 책을 통해 공개되었다. 책의 원제는 <<Susan Sontag: The Complete Rolling Stone Interview>>.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팬들에게야 반가운 책이 되겠지만, 이 책은 매우 밀도가 떨어진다. 도리어 인터뷰를 하는 '롤링스톤'의 조너선 콧이 두드러져 보일 정도다. 


이 책에 대한 가디언의 기사 댓글에서처럼, 그녀는 다소 과대평가된 측면이 없지 않다. 수전 손택은 감각적인 평론가다(이론가나 철학자가 아니라). 하지만 그 감각이란 깊이 있는 사색이나 통찰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재료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에 있다. 그녀의 평론들이 한결같이 흥미로운데, 그것은 정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접근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수전 손택을 알고 싶다면, 이 책 말고 다른 책들, <<은유로서의 질병>>이나 <<해석에 반대한다>>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그리고 이 책들을 읽고 수전 손택에게 흥미를 느낀 이들에게도 이 책, <<수전 손택의 말>>을 권하진 않겠다. 조금 읽다가 건성으로 읽고 말았다. 잡지의 특성 탓일지도 모르겠다.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전 손택의 여러 저서들과 신변 잡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다양한 문학, 영화, 예술 작품들이 언급되지만, 정말 '언급'만 될 뿐이다. 


그리고 1978년의 인터뷰인지라, 지금 읽기엔 흥미롭지도 않다. 도리어 수전 손택의 한계를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알게 된다고 할까. 다시 말해 그녀는 시대를 가로지르기보다는 그 당시의 문화예술 트렌드를 읽고 정리하고 해석하는 평론가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할까. 도대체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뭔가 시사적인 내용을 찾기 어려운 인터뷰라니... 실망스러웠다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수전 손택의 말 - 6점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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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과연 그럴까? 1년에 한 번 정도 문화예술 관람을 하는 사람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 '영화'를 빼고 통계를 낸다면? 여기에다 뮤지컬을 뺀다면? 나는 솔직하게 사람들은 문화예술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보다 문화예술과 친해지길 원한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예술적인 것은 어디에나 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아래의 건물같은. 



현대모터스튜디오(보도자료 인용)



현대자동차가 문화예술에 보여주는 최근 행보는 무척 흥미롭기만 하다. 현대차는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에 10년간 120억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금액이나 기간 면에서 국내 최대, 최고 규모다. 그들은 국내 다른 기업들이 산하 문화관련 비영리 법인을 통해 지원하고 운영하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그리고 파격적으로 순수 예술을 지원한 것이다. 그들은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이와 비슷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올해 초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과 11년 후원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는 아예 미술관 같은 건물 하나를 오픈했다. 이름하여 '현대모터스튜디오'. 1층에는 스튜디오, 2층에는 도서관과 카페, 3층부터 5층까지는 자동차 갤러리로 구성된 이 공간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작으로부터 첨단 기술이 적용되는 최근 자동차까지, 현대차만의 기업의 아이덴터티를 살리면서 놀랍도록 예술적인 분위기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영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은 UVA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2층에는 자동차와 관련된 전문 서적들과 자료들이 비치되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1층 - 스튜디오, UVA의 작품. 




2층 - 라이브러리의 일부. 






강남 도산대로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는 자동차와 관련된 모든 것을 문화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자동차를 일종의 이동 수단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미 차는 그 수단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2층 - 라이브러리의 일부


제임스 딘을 생각하면, 포르쉐 550 스파이더를 연결짓듯이, 자동차는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현대차가 꿈꾸는 것도 그냥 자동차가 아닌 문화 아이콘,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브랜드가 아닐까. 


현대모터스튜디오 3층부터는 자동차 갤러리가 시작되는데, 가장 흥미로운 녀석은 Car Rotator다. 이것을 중심으로 다음 포스팅에서... (생각보다 쓸 내용이 많다. ㅡ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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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찬물 끼얹는것같긴한데.. 현차가 한다고하니 좋게 볼 수 없네요

    • 그래도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은 탓에, 현대차의 이런 노력을 무시할 순 없을 듯해요. 동시에 소비자에게 인정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거의 모든 면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이상적이긴 하지만..) : )




작년 가을에 읽은 기사인데, 메모해둘 필요가 있어 여기 옮긴다. 머니투데이의 유병률 기자의 인터뷰 기사로, 구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준영씨(구글 검색팀 테크니컬리더 매니저)를 만나 구글의 '경쟁'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아래 인용문들은 기사 내 이준영씨의 언급들이다. 


기사: 경쟁이란 무엇인가? - [유병률의 체인지더월드]<66>韓 첫 구글러 이준영씨 "구글은 전쟁터"




"이 곳에서는 360도 성과 평가를 하지요. 전후좌우 바로 옆에서 평가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동료들이 적나라하게 리포트를 하고, 내가 그걸 다 받아 보게 됩니다. 이게 왜 무서운가하면, 상사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동료들 눈은 속일 수가 없거든요.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에요. 그러니 알아서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는 거예요. 발전하지 않으면 1년만 지나도 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역할이 주어지지 않지요."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가 하기 참 어려운 일이다. '평가'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발전을 도와주기 위한 '평가'라면 어떨까? 기사 내내 이러한 평가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평가 시스템을 몇 번 겪어보면, 부담 없이 상대를 칼 같이 평가하게 됩니다. 철저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주는 것이 결국 그를 돕는 것이고, 나도 사는 길입니다. 누가 나 자신에 대해 나 이상으로 꿰뚫고 평가해주면 그것이 나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지요."



"모든 동료들이 나의 적입니다. 한 팀원이 '당신은 A, D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B, C는 잘 하는데'라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칩시다. 그런 의견이 여러 사람에게서 나오면 객관적인 자료가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극복을 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내 능력의 문제점을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의 기업에선 이러기 쉽지 않다. '못하고 있는 것을 못한다'라고 하면 도리어 못한다고 지적한 내가 미안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만 쌓이고 발전은 없는 상태가 지속되면 조직이 위험해진다. 그러다 보니, 지적한 뒤에는 발전을 위한 세미나나 책을 추천하지만, 이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엔 어떻게 수용하고 긍정적인 효과로 연결시키는가 하는 태도의 문제이거나 기업 문화의 문제다. 

 


"여기서 경쟁이라는 것은 서로 밟고 억누르는, 그런 경쟁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나의 능력을 키우는 것을 말하죠. 경쟁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아질 수 있는, 내가 나의 단점을 극복하고 발전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10명이 함께 일할 때, 그 중에 특출 나게 리더십을 보이는 친구가 있다면, 동료들로부터 피드백을 잘 받을 것이고, 그는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가 리더가 되었을 때 동료들은 아무도 반감을 가질 수 없지요. 설령 더 늦게 들어왔고, 더 어려도 말이죠. 왜냐하면 자기들이 그를 그렇게 리더로 만든 것이니까요. 매일매일 매 프로젝트가 그렇게 서로에 대한 피드백에 의해 진행됩니다. 그러니 합리적인 협업이 가능하지요." 



이 기사의 내용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평가가 있으면 이에 따르는 보상과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인사 평가 제도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있는 마당에, '360도 성과 평가'는 오래된 방식 중의 하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어떤 업무를 잘하고 어떤 업무는 못한다'라고 정확하게 말해주고(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이를 들은 이는 이 조언을 받아들여 모자라는 업무 역량을 끌어올리던가(주위에서 이를 도와주고), 아니면 잘하는 사람에게 해당 업무는 넘기는 식의 기업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참 어려운 고민이긴 하지만.  






덧글. 

해가 갈수록 '정보 과잉'은 심각해지고 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동시에 내가 습득하고 정리해야 될 정보도 기학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되도록이면 이 블로그가 잡다한 자료 창고가 되지 않고 깔끔한 리뷰나 정리된 생각을 담는 곳이 되었으면 바라는데, 쉽지 않을 듯 싶다. 나에겐 블로그가 정보를 축적하고 정리하며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인 탓에. 이런 기사 인용 포스팅을 되도록이면 자제하고 싶은 마음에 이 문장들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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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 저렇게 평가하면 회사의 발전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할맛 안날것같아요..ㅠ

    동료 무서워서 말도 못나눌듯...ㅜ

    • 기본적으로 동료과의 신뢰가 있어야 저러한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실은 '평가 제도'가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어서, 평가 제도 무용론이나 '360도 다면 평가' 평가 제도를 개선하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런 평가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도 서로의 부족한 점을 알려주고 서로 도와주는 문화가 된다면, 저런 평가 같은 건 필요없을 지도 몰라요. ~...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워서.. ㅡ_ㅡ;; 저도 고민스럽다보니, 위 기사가 확~ 와닿더라고요. ~ 댓글 감사합니다. : )

  • 네병 2014.02.06 20:32 신고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평가라는 것이 달갑지 않죠;
    쉬운게없어요~

    • '평가'가 참 어렵죠. 그런데 유형이든 무형이든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고 거참... 저도 월급쟁이인데, 밑에 구성원들이랑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여기는데 ... 어려워요.. ㅎㅎ


많은 기업들이 변화와 혁신을 노래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한 두 번 창업의 현장에 동참했고(결국 변변찮게 끝나긴 했지만), 여러 조직에서 다양한 업무 경험을 한 끝에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그 다음이 전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최근엔 사람만큼 전략도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사람이 중요한 기업이라면, 자연스럽게 기업 문화에 대해 고민한다.   


오늘 읽은 'Build a Quick and Nimble Culture'라는 짧은 글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HBR Blog에 올라온 인터뷰로, 얼마 전 <<Quick and Nimble: Lessons from Leading CEOs on How to Create a Culture of Innovation>>을 낸 Adman Bryant와의 대화를 옮긴 글이었다. 이 짧은 인터뷰에서 기억해둘 만한 내용을 아래에 옮긴다. 


 문화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culture really does drive everything). 


- '관리자는 결과에 중점을 두지만, 문화는 자연스럽게 결과를 이끌어낸다(Managers do focus on results, but I think culture drives results). 


- 기업 문화를 만드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부서 장벽(Silos). "Silos are what topple great companies". 


- 기업 성과를 측정하는 가치 기준은 세 개이거나 그 이하여야 한다. CEO는 이 세 개의 가치를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So keep things simple, and keep repeating it'. 


- 이메일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것은 기업 문화를 해친다. 'the endless CC:loops'를 벗어나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문화는 사름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 관리자와 구성원들은 진실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를 'adult conversations'라고 말한다. 


- 'user manual'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성향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는 일종의 '사용법'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짧은 글이지만, 나에겐 꽤 울림이 컸다. 최근 나도 이메일이나 메신저에 자주 의존하고 얼굴을 대고 이야기하던 예전 습관을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상황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지만, 기업문화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내 행동이 그리 바람직해보이진 않는다.


기업 문화 구축은 CEO부터 움직여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가치이고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어딘가를 향해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다. 기업 경영이 참 어려운 일이지만, 최근에는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원문 : Build a 'Quick and Nimble' Culture 


Adam Bryant의 책 

Quick and Nimble: Lessons from Leading CEOs on How to Create a Culture of Inno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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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잘 키우진 못해도 죽이지는 않는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 반 년 이상을 버틴 난초들에게 물을 주었다, 어제 밤에.


업무 시간 중에 화분을 들고 화장실까지 옮겨 물을 주는 건 민폐인지라,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하게 될 때 물을 준다. 입주해 있는 다른 사무실에도 난 화분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물을 주는 것일까? 


회사 직원이 많을 땐 서른 명 가까이 들어와 있기도 하는데, 그 누구 한 명 화분에 관심 기울이는 이가 없다. 정치도, 회사도, 우리 마음도 매말라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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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옮긴지 10개월이 지났다. 회사를 옮겨도 내 고민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전 회사는 웹서비스 회사라 다소 반복적이었다면, 이번 회사는 에이전시인지라 좀 활동적으로 변했다고 할까. 그런데 전 회사나 이번 회사에서의 내 고민은 역시 '리더십'과 '사람'으로 모아졌다. 이건 모든 회사의, 모든 관리자의, 경영진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의 최대 고민은 '사람'이다. 에이전시 특성 상 좋은 사람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다. 우리는 언제나 좋은 사람을 채용하길 원한다. 하지만 대기업과 비슷한 급여를 맞춰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업무은 고되기 일쑤이니, 좋은 사람이 지원하는 경우도 드물고 좋은 사람이 와서 오래 있는 경우도 드물다. 고된 업무를 거치고 난 뒤 좋은 사람은 더 좋은 직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늘 사람이 고민이다.  


다행히 영업 상황이 나쁘지 않아서 계속 직원 채용 공고를 내고 있긴 하지만, 쉽지 않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웹/인터넷 관련 인력'의 스펙이 무척 좋았고 지원자들도 많았다. 대형 SI나 포털 사이트는 여전히 좋겠지만, 중소 벤처의 경우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결국 뭔가 방향을 정하긴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 첫 번째는 꿈 많은 신입 직원을 뽑아서 최고로 키우자,  두 번째는 탁월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한 번 들어온 친구는 계속 회사를 다니게 만들자 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고민해보고 시도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이 고민들과 관련해, 얼마 전에 읽은 'Six Components of a Great Corporate Culture' 은 기업 문화의 기본적인 사항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아래는 회사 경영진들과 고민을 나눈 슬라이드들 속에 요약한 내용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블로그에 실린 아티클을 부분 인용한 것이니, 그냥 아티클을 바로 읽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기업 문화, 만들기는 어렵지만, 한 번 만들어고 그것이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만큼 강력하게 경쟁우위를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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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can account for 20~30% of the differential in corporate performance when compared with ‘culturally unremarkable’ competitors” 

기업 문화는 문화적으로 평범한 경쟁 기업과 비교해 보았을 때, 기업 성과의 20~30%의 격차를 만들어낸다.

- James L.Heskett 


- Vision

Oxfam : “a just world without poverty”

A vision statement is a simple but foundational element of culture.(비전 문구는 단순하나, 문화의 근본적인 구성요소이다)


- Values

Google’s Value : “Don’t be evil”

But they are also enshrined in their “ten things we know to be true.” http://www.google.com/about/company/philosophy/ (구글의 비전은 ‘사악해지지 말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우리가 있는 바 진실한 열 가지’를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 Practices

If an organization professes, “people are our greatest asset,” it should also be ready to invest in people in visible ways.(만약 어떤 조직이 ‘사람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한자면, 구체적인 방식으로 사람에 대해 투자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 People

The best firms are “fanatical about recruiting new employees who are not just the most talented but also the best suited to a particular corporate culture”(최고의 기업들은 새로운 구성원을 채용할 때, 탁월하게 재능 있는 사람을 채용할 때뿐만 아니라, 그들의 특별한 기업 문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들을 채용했을 때에도 열광적이었다.)


- Narrative

Any organization has a unique history - a unique story. And the ability to unearth that history and craft it into a narrative is a core element of culture creation.(어떤 조직이든지 그들만의 역사 -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 이야기에 스토리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은 기업 문화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 Place

…, but on clear answer is that place shapes culture. 

Place - whether geography, architecture, or aesthetic design - impacts the values and behaviors of people in a workplace. (장소(환경)는 작업환경에서의 사람의 가치나 태도에 영향을 끼친다)






의자를 뒤로 돌려 창 밖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보기엔 근사해보여도, 요즘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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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아 2013.08.08 15:11 신고

    와.. 정말 공감 100% 아니 200%!
    꿈 많은 신입 사원, 그리고 조직 고유의 기업문화 창조.
    이 두 가지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싶어요..!



 

항공기 충돌을 빚는 전형적인 인간역학은 열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을 피곤하게 몰아붙인 탓에 유발되는 의사소통 단절이다(글래드웰Gladwell의 2008년 자료). 사고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유형은 사람이 빚은 실수가 연거푸 7번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가 지식이나 조종기술의 오류인 경우는 별로 없다. 팀워크와 의사소통의 오류이다.
1988년에서 1998년 사이 대한항공의 충돌사고는 항공업계 평균보다 17배나 더 많았다. 조사요원들은 한국의 사회적 상황이 조종석에 그대로 재연된 것이 근본원인임을 발견했다. 사회적으로 격이 높은 기장에게 다른 조종사들은 직설적이지 못하고 정중한 말로만 이야기했다. 결국 기장 혼자서 항공기를 조정하는 격이었다. 현대의 제트항공기들은 안전한 비행을 하려면 2~3명이 조종팀을 이뤄서 조직적으로 비행에 임해야 한다. 조종기술의 개별적인 훈련 분량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대한항공의 사고기록이 항공업계 평균수준으로 내려왔다. 에일턴Aleton(보잉Boeing의 자회사)에서 파견된 전문가들이 조종사들 간의 인간역학을 대등한 사람들의 팀으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 찰스 펠러린, <<나사, 그들만의 방식>>(김홍식 옮김, 비즈니스맵) 42쪽-43쪽



얼마 전 읽은 아티클에서 ‘축구는 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것’이라는 거스 히딩크 전 국가축구대표팀 감독의 언급을 읽고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개뿔 같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한국의 많은 회사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는지 아는 까닭에, 입으로 하는 것 이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건 바로 태도의 변화다.

직급을 단순화하고 회의 문화를 바꾼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해마다 부즈앤컴퍼니(Booz & Company)에서 발표하는 글로벌혁신(Global Innovation)에 대해 조사해 발표하는데, 올해 글로벌 혁신 조사 보고서의 제목은 흥미롭게도 ‘왜 문화가 중요한가(Why Culture is Key)’였다.

그런데 (기업)문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뭐 하는가? 변해야 하는 걸.

자신은 변하지 않고 남만 변하길 바라는 문화가 한국 사회 전반을 물들이고 있는 상황 - 자기가 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불륜 - 에서 일개 기업 차원에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수직적 문화 속에서 태어나 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도리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것이야 말로 도리어 이율배반이 아닐까.

하지만 대한항공의 사례에서 보듯이 ‘격의 없는 대화’는 기업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끄러운 축구 경기장에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발이 아니라 입을 사용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는 기업에서도, 조직에서도, 작은 팀 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격의 없는 대화’를 위해 기업은 공적인 의사소통 채널이 아니라 사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활발하게 조직화하여야 한다. 가령 타 부서와 함께 점심 식사 시간이나 비공식적인 사내 커뮤니티 활동을 장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리더는 구성원들이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법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구성원은 리더의 이야기를 중간에 자르지 못하지만, 리더는 원하는 언제든 구성원의 이야기를 중간에 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종 수평이고 수직이고 관계없이 밀어붙이는 전략도 필요하다. 특히 작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창의적인 조직에서는. 그러나 이를 모든 조직으로 확대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

The Global Innovation 1000 2011: Why Culture is Key
http://www.booz.com/global/home/what_we_think/featured_content/innovation_1000_2011 
- 위 사이트에 가면 부즈앤컴퍼니에서 발간한 자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 격의(隔意)란, 서로 터놓지 않는 속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 찰스 펠러린의 '나사, 그들만의 방식'은 조직 경영, 리더십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전해줄 수 있는 책들 중의 한 권이다. 읽기에 다소 어렵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끝까지 읽기를 권한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리더의 유형에 대해 스스로 한 번 묻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사, 그들만의 방식
찰스 펠러린 저/김홍식 역/박기성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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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에 이 세미나를 듣고 정리 노트를 만든다는 것이 벌써 2달이 흘렀다. 관련 자료도 찾아보면서,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도 적용해볼 요량이었으나, 내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듯싶다. 실제로 많은 이들을 설득해 추진해본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당장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더구나 CoP 참여에 대한 유무형의 인센티브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정리 노트 만들기를 계속 미루지 않았나 싶다.

한국정보산업연합회에서 주최한 7월 정례세미나 주제로 ‘성과 중심의 학습조직[CoP] 추진 방안’을 한국투자증권의 김명수 팀장의 강의로 듣게 되었다. 사무실 근처라 택시 기본 요금만으로도 세미나 장소에 갈 수 있었다. 젊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였고 회사에서 실제 의사결정을 행사할 수 있는 경영진으로 여겨졌다.

KMS는 IT시스템으로만 접해본 나로서는 조직 문화와 구성원의 업무 태도로 연결되는 KMS는 생소했지만, 무척 바람직해 보였다. 실은 업무와 관련된 모든 IT시스템은 도구Tool일 뿐이라서, 아무리 좋고 비싼 걸 구축해놓는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태도가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이다. 반대로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만 있다면, 간단한 게시판 하나만으로도 대부분의 의사소통과 업무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의 자료에는 ‘학습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하며 따라서 모든 학습 자원과 학습 활동을 업무와 연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학습의 결과는 성과로 연결되고, 이 성과가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선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된다고 언급되고 있다.

업무 프로세스 과정 속에서 문제 해결, 업무 처리, 이슈 해결을 위한 학습 과정이 소규모 학습 조직 주도로 이루어지고, 이러한 성과가 축적되어 조직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 때의 학습 조직은 CoP라고 한다. CoP는 Community of Practice의 약자다. 

CoP의 구성은 회사 내에서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구성된다. 비공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에는 CoP 활동이 활발해질 수 있으나, 어학이나 자격증, 혹은 취미와 같이 회사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예가 많다. 대신 공식적으로 구성되는 경우에는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 의지가 약한 경우가 있어 활성화에 많은 어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강의 대부분은 CoP 활성화와 실제 추진하였을 때의 어려움, 그리고 실제 사례로 모아졌다. 기억에 남는 것은 CoP의 리더가 중요하다는 것, CoP 구성원들 간의 적극적인 의사소통 활동, CoP 활동에 대한 기업의 금전적/비금전적 지원 프로그램 등이었다. 특히 대웅제약의 CoP 사례는 매우 흥미로웠다. 이 사례는 국내 KMS 사례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사례들 중의 하나여서 검색 사이트에서의 검색만으로도 충분한 자료를 구할 수 있을 정도다. 대웅제약 영업 파트에서는 최고의 영업 성과자들이 자신들의 분신을 만드는 CoP를 운영했다. 즉 최고의 영업사원들이 자신들의 영업 방법론을 자신들의 분신들에게 전수해주었고, 다시 이 분신들이 최고의 영업 사원으로 성장하였고, 이들이 다시 분신들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CoP 활동 이후, 대웅제약의 영업 실적은 큰 폭의 상승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미나를 다 듣고 난 다음, KMS는 유형의 지식이 아닌 무형의 지식(암묵지)를 조직 구성원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전파하는 ‘문화 시스템’라는 생각을 했다. 이는 IT 시스템이나 인프라가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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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과연 이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걸까?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인간은 맨 먼저 무엇을 할까?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우리 인간은 그 새로운 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설명한다. 그러다가 그 설명하기에서 막히면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만들어 붙인다. 즉 이 세상은 우리의 언어와 같이 보이고 표현되고 구성되어 있다. 이 세계는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을 위시한 현대 철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보고 경험한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고 옮긴다. 딱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만큼만 옮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는 없는 세계이다. 종종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가령 누군가가 오백년 전에 '아파트'와 같은 주거 시설을 생각했을 수 있다. 그 때는 '아파트'라는 단어가 없었으므로, 아마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고 이에 설명을 붙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표현할 수 있는 세계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단어나 개념, 표현의 창시는 주로 예술가의 몫이다. 그들의 주도로 이 세상은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진다. 또는 이런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는 푸른 색도 있고 푸르딩딩한 색도, 푸르스름한 색도 있지만, 이런 단어가 없는 나라에서는 없는 색이다. 이와 반대로 그 나라에는 있지만, 우리 나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하나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 말에서 다른 말로의 완벽한 번역이란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에 다른 문화를, 다른 삶의 태도를, 다른 가치관을 가진다. 그리고 다르게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 심지어 동물 울음소리도 다르게 듣고 다르게 표현하지 않는가.

각각의 언어마다 그 언어에 대응하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는 다른 나라와 겹치지 않는 특별한 영역이 존재한다. 그 영역은 우리 인류가 확장할 수 있었던 세계 인식의 한 극점을 이루고 있다. 사용하고 있는 언어만큼만 세계를 바라보고 그렇게 살아간다. 

고유한 언어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언어를 보존해야 하고 그 언어를 계속 사용하고, 뛰어난 예술가들이 나와서 그 언어로 새롭고 창조적인 언어적 구조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단일 언어로 향해 가는 듯 싶다. 그러면서 우리 인류는 전체적으로 한 발 한 발 뒤로 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순간에서 우리는 한 때 알고 만지고 느낄 수 있던, 경험했던 어떤 세계를, 어떤 영역을 잃어버리고 있다. 

딸기님의 <기후 변화로 언어가 사라진다>는 그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그런 예는 역사적으로 무수하게 많았다. 이에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는 <언어의 죽음>이 있다. 이 외에 언어의 생성, 소멸에 대한 책들은 여러 권 나와있다.


언어의 죽음
데이비드 크리스털 저/권루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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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어의 죽음 쌓아두고 못 보고 있어요... ㅠ.ㅠ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인가, 그 책도 아주 좋아요.

    • <사라져가는 목소리들>도 한 번 찾아봐야겠군요. 저도 쌓여있는 책들.. ㅜㅜ.. ...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은 이미 절판되었네요. 쩝... 거참, 절판된 책 reprint하는 서비스나 ebook 재판매 서비스가 필요할 때입니다.



홍대서 '하나 둘' 짐싸는 예술가들…'예술의 거리'에 무슨일이? 이라는 SBS의 뉴스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진실 한 가지를 보여준다.  대학로를 만든 것은 지금은 이전한 서울대학교와 무수하게 많았지만, 지금은 얼마 남지 소극장들이었다. 인사동을 만든 것은 지금은 얼마 남지 않은 화랑들과 갤러리들이었다. ... 높은 임대료와 문화예술에는 별 관심없지만, 유흥에는 관심 많은 대중들로 인해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제 홍대로 넘어가나.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곳을 특색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은 정부도, 돈도, 기업도 아니다. 가난한 예술가들과 문화를 사랑하고 예술을 흠모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머무르는 곳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자신들의 화법과 표현 방식으로 그 곳을 채색해 나간다. 아마 십 년, 이십 년이 걸리는 일이겠지. 

그리고 쫓겨난다. 그 사이 예술가들은 계속 가난하고, 애호가들은 그들을 도와줄 만큼 넉넉하게 변한 것도, 엄청난 규모로 늘어난 것도 아니다. 대신 뭔가 보기 좋은 것들이 있는 것같이 보여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 가게가 하나 둘 늘어났을 뿐이다.

쫓겨나는 풍경 속에서 부동산 소유주는 돈을 벌고 그 안으로 소비와 유흥만 꿈을 꾼다. 아마 문래동도 그렇게 되겠지. 지금이야 나름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지만, 그 곳을 아지트로 삼았을 때 얼마나 많은 공격들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런데 이건 장소를 옮겨가며 반복되는 종류의 일이 아닐까. ...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것같지 않나. 어딘가 잘못된 듯한 느낌이 들지는 않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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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수요일 ‘문화기술전망 수립을 위한 FGI’에 참석했다. 선배의 부탁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고, 단국대학교 산학협력단 & (주)JNC기획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3차 FGI였다.

2002년이었나, 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설립되고 난 다음 ‘문화콘텐츠산업 해외진출’과 관련된 정책 수립을 위한 프로젝트를 3개월 동안 수행한 적이 있어서, 그 때와 지금은 어떻게 문화콘텐츠 산업 환경이 바뀌었나 궁금했던 차에, 선뜻 응할 수 있었다. 참가 자격은 요즘 말 많은 ‘파워블로거’로. (하루 방문자 수로는 파워 블로거는 커녕, 인기 블로거에도 들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 딱히 문화콘텐츠산업과 큰 연관 관계 없는 통신 쪽 IT 기업을 다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과 블로그 등으로 순수 미술 쪽에 관여하기도 하지만, 순수 미술이나 예술이 가지는 반-상업성, 반-자본주의적 경향이 훼손되는 것이 아직은 싫다. (언젠가는 이 둘을 긍정적인 만남을 시도해야겠지만, 그 방법이 아직까지는 눈에 확연히 들어오지 않는다)

FGI에 참여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000년대 초반 한참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다가 2011년에 참석한 FGI. 거의 10여 년의 격차가 존재하건만, 불행하게도 산업 여건에는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Creativity나 Contents 산업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변하지 않았다. 다른 산업에 대한 지원 정책 수립과 Contents 산업에 대한 정책 수립은 그 접근 방식부터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방법을 찾지 못한 듯했다. 정책 수립이나 전망 예측을 위한 보고서는 다른 정책 연구 보고서와 같은 방식으로 씌어질 수 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FGI 내내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갔지만, 내가 생각했던 원론적인 이야기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토마스 엘리어트의 말대로, “우리는 탐구를 멈추면 안 된다. 탐구의 끝에서 우리는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올 것이고, 우리는 처음으로 그 곳을 알게 될 것이다.”

FGI에서 들었던 것, 그리고 문화콘텐츠 산업에 대해 내가 그 동안 생각했던 바의 종합은 아래와 같다. FGI 때에는 인터뷰가 끝날 때, 간단하게만 언급했다. 뭐, 아래 내용도 간단하지만.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기술 반대편의 어떤 곳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은 일자리를 잃어버린 노동자의 운동이었다면, 21세기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 기술에 대한 반작용은 흥미롭게도 기술 속에 묻혀서, 기술의 발달로 오해하기 쉬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왜 기술의 반작용이 나타나는 것일까? 기술이 발달할수록 우리의 삶은 윤택해지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생각은 거의 맹목적인 경향으로 현대 문명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하긴 삶의 윤택함과 영혼의 행복은 비례하진 않지만, 반대는 가능하니까. 즉 삶이 빈곤해지면 영혼은 힘들어한다. (정말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아직 여기에 대해 아무런 해답은 없다. 영혼의 행복을 찾아 삶의 빈곤함을 찾는 이성적인 기반의 자발적 요청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술 발달과 비례하는 삶의 윤택함을 추구한다. 그리고 윤택해진 후에 외롭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혼자 죽는 사람이 늘어나고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도시가 형성된다. 그리고 그런 개인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된다. 우울증, 비만, 심지어 자살까지도. 아무리 그것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주장해도, 결국에는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개인의 탓으로 돌아온다. 왜냐면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기 때문에. (현재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개인이 한 때 성실했고 책임감 있었음은 중요하지 않다. 결코.)

외로워하는 개인이 기술 발달과 삶의 윤택함 속에 찾는 것은 상처 받지 않는 행복감이다. 결국에는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파티를 하고 길드에 참여하며 사람들을 찾는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면서 친구를 만들고, 다양한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익명의) 사람들을 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 혹은 꾸며진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상처를 달랜다. 결국 기술 속에서 사람을 구한다.

사람을 구하면 난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여기에는 순방향이 있고 역방향이 있다. 먼저 역방향부터 이야기하자면, '일방적인 말하기'로만 끝나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악플이 여기에 속한다. 절대로 자신의 존재를 오프라인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온라인에서 시작해 온라인에서 끝낸다. 또는 오프라인으로까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만, 그/그녀는 오래 전부터 그/그녀를 알아왔던 사람들 사이의 그/그녀가 아니다. 한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꾸며진 그/그녀는 또 다른 자아를 이루며 자신의 외로움과 상처를 숨기며 살아간다. 현대의 무수한 예술가들이 이미 이러한 자아관을 표현하고 비극적으로 노래하였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 한껏 꾸며진 연예인에 대한 동경도 여기에 기반해 있을 것이다.)

순방향도 있다. 오프라인에서 구하지 못했던 사람을 온라인에서 구하면, 바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방향이다. 이 경우에는 적극적인 오프라인 활동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오프라인 활동은 그 동안 자신의 주변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자신의 취미라든가 기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다양한 활동을 보여주는 취미 동호회를 보라), 정치적 활동(온라인 기반의 소비자 운동이나 NGO)이 된다. 이 때 중심이 되는 것은 돈을 향한 경제적 활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만족과 가치를 향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즉 정치적 활동이거나 문화 활동이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 발달한 온라인 게임이나 캐릭터 산업 등은 이러한 활동을 매개해주거나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기호와 취미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즉 문화 콘텐츠 산업은 이러한 활동을 매개해주거나 그러한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 결국 의사 표현은 문화적 방식 위에서 이루어진다.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콘텐츠,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가 먼저 있어야만 그것이 문화 콘텐츠 산업이 될 수 있다.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지향하고 이를 기호와 취미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외로움을 없애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거짓된 만족과 행복일 지라도 말이다.




위 내용 이외 무수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거의 기억 나지 않는다.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실은 이것에 강조점을 두고 이야기했다) 정부는 어떤 아이디어에 투자하지 말고 사람에 투자해야 된다고 했다. 1차적으로는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고, 2차적으로는 교육을 받은 인력과 필요로 하는 곳과의 매칭 사업 같은 걸 해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유행하는 SNS 플랫폼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까지.

요즘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읽을 책과 잡지까지 쌓여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이 글도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약 1시간 동안 썼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글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바빠졌는지. 보러 가야 할 전시도 몇 개 놓쳤다. 다음에 기회가 닿을 때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좀 더 길게, 분석적으로 적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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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독서모임을 시작한다. 요즘 ‘독서경영’이라는 단어가 유행이기도 했고, 보스와 여러 번의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실제 시작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혼자 팀원 몇 명과 작게 시작해볼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도 또 하나의 일이라 시작 시점을 계속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첫 모임으로 약 7년 이상 회사에서 직원들과 책 읽기를 해온 협력사 사장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영의 관점에서 ‘독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던 탓에 그 분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했고 새로웠다. 이에 오고 간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사내에서 독서 모임을 하고 싶다면, 아래의 관점을 고려해보도록 하자.

1.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반 강제적으로 시작하여,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얻어야 하는 가치를 알게 되었을 때, 그 독서모임은 정착될 수 있다. (정착의 징표로 직원들이 책 내용으로 농담을 할 때이다)

2. 세상에는 형편없는, 쓰레기 같은 책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은 있고, 이는 아예 목록으로 정리되어 공유되고 있다. 그러니 책을 고르는 기준 같은 것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3. 이랜드는 독서 경영의 대표적인 회사로, 승진 시험으로 ‘독서’가 활용될 정도다.

4. 최초 독서 모임의 반응은 이랬다. “다 아는 내용 아니예요”,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인데요.” 였다. 즉 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지지 못한다면, 책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5. 발제자를 정해야 된다. 그리고 발제자는 발제 자료를 준비해야 된다. 발제 자료가 없으면 농담만 하다 모임이 끝나기 일쑤다.

6. 독서모임은 1년에 1권 읽는 사람을 기준으로 기획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인다.

‘요즘 같은 스마트 시대에 책을 왜 읽을까’하는 질문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책을 ‘정보의 원천’으로만 받아들일 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단편적인 정보는 책보다 인터넷이 낫다. 하나의 정보는 다른 정보와 연결되어 있거나 두 개, 세 개 이상의 또 다른 정보로 쪼개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들의 관계다. 질서이고 문화다. 한 사람의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이루게 된 배경과 가치관, 세계관이 더 중요하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생각하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생각 좀 하고 살아라’고 훈계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위대한 철학자들이 했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게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 읽기는 사고력을 길러주며, 분석과 통찰을 가져다 준다. 이는 책에 담긴 내용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는 태도에 달려 있다. 좋은 책을 고르고 그 책을 깊이 있게 읽으며 서로 다른 주장들에 대해 심사숙고할 수 있으며,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기르는 것이다.

이는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고 받아들이며 서로 이해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행하고 추진하며 팀웍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도 책을 읽는 과정과 비슷한 것이다. 너무 심한 비약일까.



읽을 만한 기사
토픽-독서경영으로 불황 뚫는다 http://er.asiae.co.kr/erview.htm?idxno=200901020757085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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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회사와 조직을 거치면서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던 것은 힘들게 유지하면서 끝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일들이었다.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고 변해야만 했다. 현재란 성공의 누적이 아니라 실패와 상처의 누적이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걸어오면서 성공이든 실패든 그러한 사업 경험이 축적되어 새로운 인력들에게 전수되어야 한다. 이를 지식 경영(knowledge management)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계적인 인사조직 컨설팅 회사인 헤이그룹’(Hay Group)과 경영지인 포춘에서는 해마다 가장 존경받는 기업(World's Most Admired Company)’를 조사해 발표한다. 이 리스트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아래의 항목들을 조사한다

1. 우수인력을 모집하고 유지하는 역량
2.
경영의 질
3.
상품 및 서비스의 질
4.
혁신성
5.
장기관점에서 투자가치
6.
재무적 건전성
7.
자산의 효율적 사용
8.
지역 사회 및 환경에 대한 사회책무성
9.
글로벌 비즈니스의 효과성


이러한 항목들은 모든 기업들에게 중요한 사항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헤이그룹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들에는 강하고 지속적인 전략, 전략과 연계된 조직, 조직 전반에 걸쳐 일을 어떻게 협동적으로 해야 한다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운영 모델, 그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리더가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즉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교롭게도 존경받는 기업들에서는 매트릭스 조직을 운영하는 곳이 많았다.


메트릭스 조직이란, 전통적인 직능 조직에다 프로젝트 조직을 함께 운영하는 운영 방식이다. 따라서 직능 조직의 부서장과 프로젝트(제품) 팀장에게 동시에 보고해야 하는 점, 이로 인한 의견 충돌이나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나, 동시에 이러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조직의 긴장감을 높이고 보다 높은 생산성, 효율성을 기대할 수도 있다.

혹시 내가 기업을 운영하게 된다면, 기업 문화, 그리고 조직 운영, 리더십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다. 예전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탁월해야 된다고 여겼으나, 평범한 비즈니스 모델이더라도 그것을 비범하고 창의적이며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모델로 변화시킬 사람, 조직,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비즈니스 모델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지만, 아무나 따라할 수 없다. 즉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비즈니스모델을 수행할 사람, 조직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들은 이러한 점에서 따라잡을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참고: http://www.haygroup.co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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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문화예술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한 세미나
2009년 3월 13일 금요일
국회 도서관 강당




지난 13일 금요일, 국회 도서관에 다녀왔다. '기업 문화 예술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한 세미나'라는 제법 거창한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다양한 참석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주로 내가 하는 분야에만  신경을 써다보니, 좀 넓은 시야에서 문화예술 정책이나 인프라에 대해서 고민할 일이 적었는데, 이 세미나로 인해 다소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세미나들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과연 투자할 수 있는 (순수)예술 분야가 있는가'이다. 불행하게도 (천박한) 자본주의 아래에서 투자라는 행위는 분명한 ROI(Return on Invest)가 나와야 하는 행위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도와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격한 의견이긴 하지만) 차라리 "그냥 멋지게 한 판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몇 해 전부터 유행하는 '문화마케팅'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문화마케팅'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문화'에는 비-상업적이거나 반-상업적인 목적의 연극, 미술, 퍼포먼스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리고 가난한 연극인들의 소규모 연극이거나 전시장 구하지 못하는 예술가의 작품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더구나 예술가나 작품이 강한 정치성을 띠거나 반-기업적 정서를 가진다면, 이건 '문화마케팅'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문화마케팅'이라는 단어 대신, 그냥 '문화를 활용한 기업(비즈니스) 마케팅'이라고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연합뉴스 편집위원이 강일중의 의견만이 내 생각과 비슷했다. 그는 기초 예술 분야가 취약하지, 상업성을 추구하는 문화 예술 장르는 제외해야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나 정치인들은 늘 성공 케이스를 찾고, 그 성공의 척도란, 수익성이거나 대중의 인지도와 비례하기 때문에, 늘 기초 순수 예술은 뒷전일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것처럼, '멋지게 한 판 도와주세요!'가 낫지 않을까?

이 점에서 기초 순수 예술에 대한 기업 관계자나 정치인들의 인식 부족이 심각해 보인다. 하지만 이 인식 부족은 일반 대중의 인식 부족과 비례한다. 국립 오페라 합창단의 해고 문제는 아무런 여론의 호응도 받지 못한다. 도대체 이 나라에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이가 몇 명 쯤 될 것 같은가? 도리어 가진 자들의 취미라고 홀대받는 건 아닐까? 

사회 전반적으로 기초 순수 예술에 대한 인식과 저변이 탄탄해져야 한다. 발제를 맡은 오픈옥션의 이금룡 회장의 말은, 매우 당연한 표현이지만, 우리가 곧잘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드웨어는 돈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돈이 있어도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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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지 이제 이 년이 다 되어간다. 마시는 술의 종류에 따라, 술 마시는 공간, 먹거리, 분위기가 달라진다. 분위기로 보자면 겨울의 사케가 단연코 1위다. 여름의 차가운 화이트와인도 좋지만. 시원한 생맥주 또한 괜찮다. 그렇다고 지글지글 고기 안주에 소주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와인만큼 그 나름대로의 격식과 문화를 가진 술이 있을까. 이러한 '격식과 문화'가 작은 문화를 산업으로 만들고 관련 시장을 확대시키고, 전문가와 관련 아카데미를 만든다. 그리고 현재 전세계 인구 100명 중 1명이 와인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술이라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관대한 한국이 왜 술 마시는 것과 관련해 와인 만큼의 문화나 산업이 없는 것일까.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소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걸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조선 시대 선비는 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꿀물을 탄 따뜻한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난 뒤, 일과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의 소주와는 다른 소주이지만.

또한 쌀로 빚는 술이라, 흉년에는 금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각 고을마다, 집안마다 특색있는 소주가 있었고 이것이 전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잊혀지고 말았다. 한국은 뛰어난 전통문화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가 가진 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들 중의 한 곳이다. OECD 나라들 중에서 유일한 나라다.

술 마시는 것도 일종의 문화다. 그리고 그 문화를 통해 나라를 알리고 시장을 만들고 산업을 만든다. 이것이 문화가 가진 힘이다. 와인의 역사가 기원전 5,000년 경까지 올라가지만, 와인을 격식 있는 문화로,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불과 몇 세기 되지 않는다. 와인 산업을 문화 산업으로 볼 수 있을까 싶지만, 와인 산업의 성장에는 와인 문화가 일조 했음에는 틀림 없다. 가치 있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된다.

이는 술 마시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든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문화예술만 관련된 것에만 '문화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모든 제조산업에 다 그 나름의 창조적이며 특수한 문화를 만들어야 지속적인 성장과 창의적인 혁신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이가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한국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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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문화혁신전략(The Corporate Culture Survival Guide)
에드거 H.샤인(지음),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옮김), 일빛



기업 규모와는 상관없이, 경영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시장은 이미 글로벌 시장 하나로 통합되었고, 이제 국가의 인프라를 구성하는 몇몇 제품이나 서비스 시장만 개방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 시장마저 개방될 것이다. 자금 압박은 심해지고 위기 상황을 타개할 속 시원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짐 콜린스가 말한 바 있는 위대한 기업은 중소기업, 신생(대)기업에게는 신기루에 가깝지 않을까. 또한 짐 콜린스는 이런 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람(people)’이라고 하는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요즘 필요한 사람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고, 현재 있는 사람마저도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업 문화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리더와 구성원 간의 마음가짐(mind-set)의 공유가 이루어지고 구성원들 간의 결속력/자부심과도 관련되는 기업 문화. 그리고 이 기업문화는 기업의 경영/관리 시스템 곳곳에 녹아 들어있는 살아있는 실체이다. 한 기업이 탄생하여 장기 지속을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기업 문화의 관리/유지이다.


IBM의 전 CEO였던 루 거스너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란 문서를 주고 받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구성원의 몸과 마음이 함께 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문화는 조직이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내부의 관계를 다루며, 학습하게 되는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가정이다. 문화의 본질적인 요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인식하지 못한다. 일단 조직이 문화를 갖게 되면 문화를 구성하는 공유하는 암묵적 가정은 조직 내 모든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미션, 전략, 사용하는 수단, 평가제도, 교정제도, 언어, 내재되거나 배제된 집단의 규범들, 지위와 보상 제도, 시간, 공간, 업무 및 사람에 대한 개념은 모두 문화에 반영된다. 또한 문화는 업무와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것들은 독자적인 요소로 결코 분리될 수 없다.

그리고 기존의 기업 문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 이를 바로 잡기란 매우 어렵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전에 기존의 것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모든 문화의 변화는 혁신적이다. 기존의 것을 버린다는 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변화에 저항하는 원인이 된다.

이 책은 현재 기업 문화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적절한 가이드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도리어 어떻게 물어보고 탐구하는가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 어떤 문화가 기업의 장기 지속이나 경쟁 우위의 유지에 도움되는지에 대해서 그 어떤 언급도 없다. 



참고: 얼마 전 중앙일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아마 기업 문화가 기업 핵심 경쟁력의 원천/환경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지식 창조 시대 … 4대 그룹 기업문화는 (중앙일보, 2007.1.9)







기업문화 혁신전략 - 10점
에드거 H. 샤인 지음, 딜로이트컨설팅코리아 옮김/일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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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연구입문 - 10점
그래엄 터너 지음/한나래


         
문화 연구 입문

그래엄 터너 지음(김연종 옮김)   한나래
          


         
          이 책의 원제는 <<British Cultural Studies>>이다. 즉,  제목 그대
       로 영국의 문화 연구 전통에 대한 입문서이다. 그러나,  입문서라고 해
       서 그렇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한 마디로 요약서이기 때문에, 꼼
       꼼히 읽을 필요가 있기도 하다.
        
          이 책의 구성은 제 1부  기본 원칙들-<제 1 장 문화  연구의 이념>,
       <제 2 장 영국의 전통:간략한 역사>. 제 2 부 중심 범주-<제 3 장 텍스
       트와 맥락>,<제 4 장 수용자>,<제 5 장 민속지학, 역사학, 그리고 사회
       학>,<제 6 장 이데올로기>. <결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 문화연구(혹은 문화이론)에 대한 교양강좌가  각 대학교(원)나
       사설 교육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 곳에
       서 이루어지는 강의는 절대로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난
       다면, 그건 강의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견해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동안 '문화연구(문화이론)'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적
       이 있었음으로해서 몇 권의 책과 여러 강의에도 가보았지만, 알  수 없
       는 묘한 반감같은 것이 있었다. 그 당시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
       만, 최근에 들어 약간의 가닥을 잡았다. 이 가닥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
       하기로 하고, 먼저 '문화이론의 세 가지 기본적인 특징'을 적어보겠다.
         
          1. 기호는 독자의 또 다른 세계/현실이다.
          2. 텍스트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3. 담론은 권력이다.
         
          어느 강의에서 적은 것으로 기억되는  이 세 가지 기본적인  특징은
       전적으로 구조주의적이며, 정치적이다. 첫  번째의 '기호는 독자의  또
       다른 세계/현실이다'라는 문장에서의 '기호'란  꼭 글자 뿐만  아니라,
       영상기호, 패션, 건물, 도시공간, 모든 기호학적인 논의가 가능한 것들
       을 의미한다. 즉, 문화이론의 대상은 우리가(* 독자) 살고  있는 지금/
       여기(* 시간적인, 공간적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연구  대상으로 한
       다. 두 번째의 '텍스트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구
       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텍스트를 얼마만큼 분석해낼 수 있을까, 또한 과연 세상의 모든 것들을
       텍스트는 담고 있을까? 세 번째 '담론은 권력이다'라는 문장에서의 '담
       론'이라는 단어와 '권력'이라는 단어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렇
       다면, '담론discourse'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인가?
         
          "담론들은 그것이 형성되는 제도와 사회적 실천의 종류에  의해, 그
       리고 말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말을 하는 상대의 위치(position)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담론의 영역은 동질적이지 않다. 담론은 사회적이다.
       어디서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진술이 만들어지고 단어와 단어의 의미가
       사용된다. (... ...) 모든 제도(institution)에는 개인에게  배당된 담
       론이 있고, 담론의 위계질서(hierarchy)가 있다."
          - <<담론이란 무엇인가>> 다이안 맥도넬(임상훈 역. 한울) 11쪽에서
       12쪽.
         
          간략하게 인용하였지만, 인용된 부분을 통해서  보자면, '담론'이라
       는 단어가 지극히 정치적으로 이해됨을 알 수 있다(*  '권력'이라는 단
       어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즉,세 번째  문장인 '담론
       은 권력이다'라는 말은 한 마디로 '지배담론을 쥐고 있는  자에게 권력
       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 이론이 우리 인문학의  주된 흐름
       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는 것일까?
         
          먼저, 문화연구는 유럽의 학문이라는 점이다.
         
          "전체성, 그리고 분리되고 복잡한 부분들을 연결시키는 합리적 틀에
       기초한 설명이 위대한 대륙적 사고 체계의 특징이다."(이안 챔버스. 25
       쪽. 재인용)
         
          "위대한 대륙적 사고"라니? 즉, 문화연구는 유럽적 학문의  한 경향
       이며, 그것을 수용하는 우리의 입장은 달라야 한다. 먼저 '문화연구'를
       수입함에 있어 저 꼴 사나운  '위대한 대륙적 사고'라는 것부터  비판,
       분석하여 없애는 일부터 필요하리라.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의 인문학연구자들은 서구의 그것을 무비판적
       으로 수용하려는 경향이 심하다. 한 예로, 영국의 문화 연구에서 '하위
       문화sub-culture'에 대한 연구가 매우 비중있게 다루어짐으로해서 국내
       연구자들도 우리의 하위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영국의 하위문화와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
       을까? 폭주족(?), 혹은 건달(?) 양아치(?)로 구분되어질 수  있는 부류
       의 문화가 그들의 하위문화일까? 내가 보기엔 전적으로  다르다고 생각
       된다. 영국의 하위문화적 전통은  젊은 세대의 부모세대에게도  있었던
       것이며, 그 이전 세대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폭주족 문
       화는 팝문화영향 때문이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폭주족이었거나, 혹은
       그 비슷한 문화를 향유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하위문화에 대해 너무  쉽게
       연구를 하려는 것같아 안타깝다.(* 연구를 하려면,  먼저 하위문화라는
       단어 자체부터 우리 실정에 맞게 새로 정의내려야 할 것이며,  또한 그
       것은 역사학이나 문화인류학 등 여러 학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은 영국의  문화연구는
       그들의 인문학전통, 특히 영문학  전통에서 벗어나 이루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영국 문화연구자들이  이전엔 문학연구자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적인 이유때문이었다(* 영국의 문화연구자들은 좌
       파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문화연구는 전통 때문이라기 보
       다는 전적으로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할 경우엔
       임상훈처럼 문학을  부르조아 이데올로기로  해석한다(;<<문학연구에서
       문화연구>> 역자서문에서)). 하지만, 그 정치적인 이유는  이미 퇴색되
       어졌다. <<문화과학>>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문화'에 대해서 공개적
       인 채널을 통해 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문화
       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문화과학>>이 노렸던 정치
       적인 목적은 이루어진 것같지 않으며, 문화담론들은 지배권력의 이데올
       로기로 이용되거나, 상업자본의 그것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이 사
       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가 순수예술이다(* 필자의  순수예술에 대한
       사랑을 용서하시라). 여기에 대해선 다분히 감정적인 어조로 <<K에게>>
       라는 글에서 언급했음으로 그냥 넘어가겠다.
         
          글이 서평적인 성격을 넘어서버리고 말았다. 읽는 사람 각자 나름대
       로 읽어주었으면 싶다. 혹시, 현재 이야기되는 '문화연구'에 대해서 알
       고 싶다면, 그래엄 터너의 <<문화이론입문>>이 도움이 될 것이다.
         
          * 문화이론, 문화연구 라는 말을 섞어 사용하였다. 이 두 단어의 차
       이란 거의 없다. 단지 문화연구라고 했을 때에는 영국의 그것을  더 상
       기시키기는 하지만, 별 차이를 두지 않고 사용하였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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