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50

39(2), 아트선재센터

39(2) 아트선재센터, 2008.12.6 - 2009. 2. 15 헌법 2장, 39조 2항에는 "누구든지 병역의 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문항이 있다. 지난 2월에 끝난 이 전시의 제목은 위 문항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 국가에 사는 국민으로, 군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터널 속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9(2)”는 동시대 한국사진전시로 한국사회에 깊이 파고 들어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흔적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5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되었다. 김규식, 노순택, 백승우, 이용훈, 전재홍 등 5명의 사진작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한국 사회에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

의도된 회화로서의 사진 - 이명호

이명호, Tree #1 -〈A Series of 'Tree'〉 among 〈Project, 'Photography-Act'>, 디지털 프린트, 2005 (Printed Date:2007) 트랜스 트렌드 매거진(trans trend magazine) 2008년 겨울 호에 젊은 사진작가 이명호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흥미로운 그의 사진 작품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던 터라, 그가 말하는 사진 작업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의도하는 것이나, 평면 회화와 사진, 그리고 그 속에 담기는 존재(피사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이명호의 사진은 어떤 존재는 그 존재를 둘러싼 콘텍스트(context)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령 마르셀 뒤샹의 '샘'이 화장실에 있을 때는 변기이겠지만, 미술..

계단 위의 봄

계단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어딘가 올라간다는 것은 언젠간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람이 불었다. 궁궐 건물 아치형 입구 옆으로 살짝 비켜 불어들어온 바람은 실내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따가운 햇살에 푸석푸석해진 머리칼을 스다듬어 올렸다. 이마 살갗이 거친 손바닥에 밀렸다. 따끔거렸다. 환상은 쓸쓸함 사이에 깃들고 공상은 한 잔 술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은 잡을 수 없는 파도였고 내 곁에 머무는 모든 것들의 존재는 느낄 순 있었으나, 소유할 순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먼 미래를 회상해본다. 앞으로 다가올 것이지만, 이미 경험했던 어떤 것들의 변형이거나 알레고리에 가까울 것이다. 어느 새 봄은 왔고 내 육체는 봄 향기에 지쳐 쉽게 피로해지고 있었다.

사진 정리 중 - 파리 풍경

사진 정리를 거의 못하고 있었다. 급한 일 하나를 끝내고 사진 정리를 한다.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다. 지난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흔들, 흔들 거린다. 갤러리 프레드릭 모아상의 입구. 17세에 지어진 건물 1층에 자리잡은 갤러리다. 갤러리 입구에서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의 풍경. 비가 왔다. 차창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정시키고 찰칵.

김아타의 '온 에어(On Air) 프로젝트:뉴욕 타임스 스퀘어'

* 회화가 단색회화(모노크롬)와 텅 빈 캔버스를 지나쳐서, 더 이상 사유하기(thinking & meditation)를 그만두었다면, 이제 사진과 비디오가 그 사유와 명상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회화는 계속 사유하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가 비디오로 명상하는 경우를 보여준다면, 김아타의 저 사진은 사진의 명상을 보여준다. *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의 범위는 비주얼 콘텐츠 뿐만 아니라, 그 콘텐츠를 담고 있는 TV 브라운관이나 낡은 TV 외장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백남준 이후의 비디오 아티스트들은 비디오를 사유의 매체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으나, 백남준은 그와는 달리 비디오/TV 라는 그 매체 자체에 매료당했다. 그래서 정신없고 현란한 백남준의 비디오 콘..

예술의 우주 2007.11.15

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

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지음), 심은진(옮김), 마음산책 자기 전에 소피 칼을 만나다. 그녀가 만든 이미지들 사이로 흐르는 활자들. 하지만 서사적이기 보다는 회화적이길 원하는 그녀의 텍스트들 앞에 서서 이미지들이 움직였다. 섬세하면서도 단조로운 그녀의 산문은 이미지들과 겹쳐져 사뿐하고 경쾌한 운율을 만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보면서, 박상순과 롤랑 바르트를 떠올렸다. 한 명은 시어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고 한 명은 이미지들로 통해 놀라운 현대적 사유를 보여주었던 사람이었다. 한 명의 시집을 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한 명은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소피 칼의 이미지들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진실된 이야기 - 소피 칼 지음, 심은진 옮김/마음산책

William Wegman, 'Funney & Strange', 성곡미술관

토요일 오후의 성곡미술관 William Wegman (윌리엄 웨그만) '"Funney & Strange" 2007. 3. 30 - 7. 22 * 웨그만의 최근 사진으로 바로 가기 * 성곡미술관에 가면 흥미로운 작품들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흥미의 정체는 무엇일까. 희극적인 연출의 사진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곤 무표정한 개의 멍한 시선이거나 그 개를 바라보는 우리들이다. 미술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온통 개들이다. 빙 둘러 개들만 있다. 아마 웨그만은 별 생각 없이 그의 애완견 '만 레이'를 출연시킨 일련의 사진들을 제작했을 것이고, 이 사진들을 본 이들의 별 생각 없는 열광적인 찬사 속에서 그의 예술 활동을 지속시켰을 것이다. 나도 별 생각없이 이 전시를 보았는데, 보고 난 뒤 계속 ..

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알렉스 커쇼

로버트 카파 - 알렉스 커쇼 지음, 윤미경 옮김/강 로버트 카파 -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알렉스 커쇼(지음), 윤미경(옮김), 강, 2006 사진이란 무엇일까. 사진가란 누구일까. 로버트 카파의 사진은 여러 번 책을 통해 보았으나, 놀랍게도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고 말았다(그의 ‘쓰러지는 병사’라는 사진은 기억에 있지만). 카파의 사진은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술가적 삶을 산 것처럼 보이나, 뚜렷한 예술관을 가졌다기보다는 정처 없이 이 곳 저 곳을 떠돌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언제나 카메라가 있었다. 그의 몸에 붙은 듯한 그 카메라는 그의 튼튼한 두 다리처럼 그가 가는 곳마다..

토요일 오후, 모험을 떠나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자화상 그 때 푼크툼은 마치 영상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 바깥으로 욕망을 내던져 버리는 것처럼, 일종의 미묘한 장외의 것이 된다. 나체의 '나머지 부분'을 향해서뿐 아니라, 하나의 실천의 환각을 향해서 그것은 욕망을 내던진다. 팔을 곧게 뻗고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청년은 - 그의 아름다움은 결코 현학적이 아니고, 화면의 한쪽으로 몰려서 사진으로부터 반쯤 튀어나와 있지만 - 일종의 경쾌한 성애를 구현한다. 이 사진은 나로 하여금 포르노 사진의 욕망인 무거운 욕망과 성애사진의 욕망인 가벼운 욕망을 구별하게 한다. 결국 아마도 이것은 '행운'의 문제일 것이다. 사진가는 이 청년(메이플소프 자신이라고 생각되는데)의 팔을 조리개 구멍의 알맞은 각도와 자연스러운 밀도 속에 고정시켰다. 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