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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몇 달 간의 흔적이 숨겨져 있는 책상 바로 위로, 지치지도 않고 차가운 에어콘 바람은 평평한 사각형으로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면서, 어떤 구조 속에 스스로 자신을 내몰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신을 내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삶 전체를 내몰지 않은 사람들에겐 철없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무책임하고 제멋대로 인간임을 인정하라며 세상은 강요한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우리를, 어떤 시스템 속으로 자신을 내몬 이들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책임질 생각도 없다. 강요하면서도 그 강요로 인한 결정로 생긴 좌절, 절망, 슬픔에 대해선, 네 잘못이라며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결국 세계는 피해자들로만 넘쳐난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다. 모든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떠밀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걱정하고 슬퍼하고 아파한다. 쉴새없이 아파하면서 스스로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똑같이 강요한다. 


애초 세상은 잘못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니 플라톤은 애초부터 '저 세상의 이데아'를 슬프게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태도만큼 잘못된 것도 없으니)


뫼르소도 조현병 환자였을까? 사람들은 '원인-결과'라는 인과율의 노예다. 자연과학에서 원인-결과의 인과율과 사회에서의 인과율은 전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자연과학을 대하듯 사회를, 사람을 대한다. 그렇다고 원인을 해결하지도, 해결할 의지도 없다. (더 불행한 건 지금 정권은 해결할 머리조차 없다.) 


영국의 EU탈퇴는 예견된 불확실성이다. 그러니 충분히 준비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호들갑은 무엇인가. 저 멀리 떨어진 유럽 대륙의 일이다. 직접적인 영향은 일부이고 대부분 간접적인 것들이다. 마치 스스로 무능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무능력함을 드러내 보인다고 할까.

 

아, 그러면 나도, 그런 건 아닐까. 기분 좋게 술 마실 일이 없다. 날 기분 좋게 할 사람 만날 일도 없다. 보링거는 적대적 세계에서는 추상이, 우호적 세계에선 감정이입의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추상의 거친 계절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원래 얼마 전 마신 와인 사진 한 장 올리려고 시작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주절주절 글이 씌어진다.




얄리다. 칠레 와인이다. 가성비가 좋은 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 기대했던 것엔 미치지 못했다. 카르메네르여서 그런가. 그동안 카베르네 쇼비뇽만 마셨으니까. 마트에서 손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가성비가 좋은 칠레 와인으로는 에라주리스, 디아블로, 얄리가 유명하다. 




술 마실 일도 줄었고 술 마시기도 겁 난다. 나이가 든 탓인지,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마음까지 무너진다. 세상이 슬프다거나 절망적이라든가 하는 식의 우울함이 아니라, 그냥 엄청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마약을 한 다음에 나타나는 무기력이 이런 걸까.


그래서 아주 무기력하게 술을 마시고 싶다. 술을 마시는 중간중간, 말러를 듣다가 밥 말리를 들으면 무기력해졌다가 잠시 유쾌해질 수 있을 것이다. 풀바디한 스페인 와인을 마시다가, 살짝 크리스탈 와인잔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유리 조각은 얇고 무겁게 바닥에 깔리며 빛이 나고, 붉은 색 와인은 옆 테이블에 혼자 앉은 여인의 가느다란 손가락 끄트머리에 가 부딪히면 좋을 일이다. 아마 베네치아의 카사노바가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무기력해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취하면서 누군가를 알게 되고, 그렇게 다음 날 다시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 ... 인생의 목적은 역시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것이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듯 우리 몸과 마음은 어떤 것들로 채워져야만 한다. 붉고 무거운 것들로 채워지면서 삶은 한껏 가볍고 우아해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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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고양이(靑猫)




이 아름다운 도시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건축을 사랑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모든 상냥한 여성을 찾기 위해

모든 고귀한 생활을 찾기 위해

이 도시에 와서 번화한 거리를 지나가는 것은 좋은 것이다.

거리를 따라 서 있는 벚나무 가로수

거기에도 무수한 참새들이 지저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 이 거대한 도시의 밤에 잠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마리의 우울한 고양이 그림자다

슬픈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고양이 그림자다

우리가 찾기를 그치지 않는 행복의 우울한 그림자다.

어떤 그림자를 찾기에

진눈깨비 내리는 날에도 우리는 도쿄(東京)를 그립다고 생각해

그곳 뒷골목 벽에 차갑게 기대어 있는

이 사람과 같은 거지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 하기와라 사쿠타로(1886 ~ 1942) (서재곤 역) 






점심 식사 대신 우울한 고양이를 만난다. 아, 어느 새 나는 술 취하고 싶은 한 마리 고양이 꿈을 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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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도 없다. 쓰거나 생각할 수도 없다. 여기에는 클라이맥스도 없다. 안락은 있다. 그러나 커피는 생각했던 것만큼 맛있지 않았다. 그리고 내 뇌는 소멸하고 말았다. – 1933 5 30, 버지니아 울프

 

며칠 전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를 샀다. 그리고 책 표지, 위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한국어판 출판 편집자의 의도겠지만, 마치 내가 쓴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향 집에는 아마 내가 고등학교 때 읽던 세월이 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이라고들 말하지만, 의식의 흐름이 아닌 소설이 어디 있었던가. 버지니아 울프,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는 소설가들 중의 한 명이다. 그리고 니체

음악이 없다면, 삶은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 니체



니체와 버지니아 울프 사이 어딘가의 은하계. 내 쓸쓸한 우울함을 숨겨 두고 싶은 어떤 우주. 그녀의 우주와도 같은 가슴. 혹은 부재의 단어.

 

 

 

 

몇 주() 간의 심각한 우울증이 이제 그만 날 괴롭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이번은 유독 너무 심해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 회사 워크샵이다. 7시에 사무실에 나와 워크샵 문서를 만들었다. 워크샵 토론 주제를 만들고 여러 공지 사항들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출근하기 전의 대표이사실에 놔두고 나왔다. 퇴직연금을 직원의 동의를 구해 계약을 할 예정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질투로 가득한 내 우울함은 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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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가 지나서야 사무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축축하게 처진 내 육체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피로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집에 도착해 바로 이부자리를 펴 누워, 종일 앞을 향하던 눈은 어둠 속에서 침묵을 배우고 내 영혼은 슬픈 상상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다.

 

늘 그렇듯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몇 번을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 여러 번 뒤척이다 보니, 어느 새 새벽이었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육체와 영혼의 문제를 떠나, 마치 미로와 같은 우주 한 복판에 혼자 멍하게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과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를 번갈아 들으며 밀린 세탁을 했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도나텔로와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 도판을 보았다. 실은 회사 일도 했다.

 

딱딱하고 건조하면서 건강한 일상을 지내고 싶지만, 내 정신적 상태는 종종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울을 창조적인 사람의 특성이라고 어느 책에선가 적고 있지만, 그건 우울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을 때에야 적용 가능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을 가르치던 이들이 쉽게 자기 반영성’, ‘분열된 자아따위를 이야기할 땐 나는 보이지 않는 증오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작가가 그것을 드러내어 뛰어난 문학성의 완결된 작품을 만들 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엘프레드 엘리네크의 소설을 읽으면 너무 잘 드러나는 속성이지만, 나는 엘리네크가 제 정신으로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소설을 읽어가면서 알게 된다. 마치 로맹 가리의 모든 소설들이 나는 자살할거야라는 결심의 동어반복인 것처럼.

 

요즘 자주 우울해지고 슬퍼지고 맥이 풀려 내 몸의 모든 것들이 조각나 은하계 전체로 퍼져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든다.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는 하루를 살고 있다. 무섭다. 나는 내가 무섭다. 나도 알지 못하는 내가.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다. 일 트로바토레. 마치 공상 소설처럼 펼쳐지는 스토리는 종종 우리의 맥을 빠지게 하지만, 이 반대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노래들은 베르디의 음악성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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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내 마음은 아무도 찾지 않은, 어두운 해변가로 나와 있었다. 행복했다고 여겨지던 추억은 이미 시든 낙엽이 되어 부서져버렸고 미래를 기약한 새로운 기억은 만들어지지 않은 채, 파도 소리만 요란했다. 텅~ 비워져 있었지만, 채울 것이 없었다. 저 끝없는 우주에는.

죽지 않기 위해 죽은 자의 노래를 듣는다.

오랜만에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은 언어를 지나 사랑에 가 닿았다. 쓸쓸한 사랑에.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고 여기고 있지만, 막상 표피가 두꺼워진 것 이외에 달라진 게 없었다. 비워져 가는 술잔, 늘어나는 술병 사이로 언어는 가치없이 뚝뚝 부서져 술집 나무 바닥에 가닿아 사라졌다.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왜 사람들이 낯선 죽음을 택하는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같다. 나는 영영 그런 죽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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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과 풍경 - 10점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엄지영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인상과 풍경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지음), 엄지영(옮김), 펭귄 클래식


독자 제위(諸位). 여러분이 이 책을 덮는 순간 안개와도 같은 우수(憂愁)가 마음속을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쓸쓸한 색채를 띠며 우울한 풍경으로 변해 가는지 보게 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지나가는 모든 장면들은 추억과 풍경,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나의 인상(印象)이다. 아마 현실이 눈 덮인 하얀 세상처럼 우리 앞에 분명히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 마음속에서 열정이 분출되기 시작하면, 환상은 이 세상에 영혼의 불을 지펴 작은 것들을 크게, 추한 것들을 고결하게 만든다. 마치 보름달의 빛이 들판으로 번져 나갈 때처럼 말이다. 이처럼 우리 영혼 속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9쪽)



참, 질투심 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1898년에 태어난 로르카는 정확하게 20년 후인 1918년에 최초의 산문집, ‘인상과 풍경’을 낸다. 그리고 위의 문장들은 그 산문집의 서문의 시작이다. 나는 자주 젊음의 낮고 우울하지만 흔들리면서 뜨거운 감성과 만날 때 전율을 느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개들이 애절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애처로운 탄식처럼 들리던 그 소리는 한밤의 정적 속에서 예언자의 목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개들은 주어진 모습과 운명을 슬퍼하며 누군가에게 소리쳐 애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서 솟아 나온 울분의 덩어리 같은 소리가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두려움을 흔들어 깨우자, 온몸에 전율이 지나갔다. 그 울부짖음은 마치, 여성스럽고 낭만적인 달빛이 별들 사이로 은은히 흐르는 무대의 비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독백처럼 들렸다. 한없는 슬픔에 취해 버린 영혼의 통곡, 대답 없는 냉정한 영혼을 향해 던지는 물음, 시름에 잠긴 구슬픈 화음의 노래, 동굴 속에 끝없이 메아리치는 섬뜩한 비명, 성경에나 나올 법한 음산한 저주,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단테풍의 화음(和音), 사유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상징의 카오스... ... 저 음산한 소리를 듣자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75쪽)



이 글은 이 책이 있음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그 어떤 표현이 더 필요할까). 혹자들이 보기엔 얇은 감상들로만 치장된 이 산문집에 내가 감동받는 것을 의아해 할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문장 깊은 곳에 숨겨지는 뜨거운 우울은 젊은 로르카가 살아가게 될 20세기 초반의 격변을, 그의 생각과 행동을, 그의 운명을 짐작케 했다. 그의 언어는 슬펐지만, 투명하고 아름다웠고 조용했지만, 격렬했다.


침묵은 자신만의 음악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본질적으로 침묵의 음악이다...... 두렵기 그지없는 그 문제를 우리는 풀어야만 한다. 우리의 영혼은 찬란히 빛나는 들판 속으로 흐르는 고독을 느낀다. 상상 속에 펼쳐진 붉은 길을 따라 산발한 여인들이 지나간다. 그네들은 우리를 향해 미소 짓는다. 검은 입 속에서 그녀들은 우리의 영혼이 되고, 우리는 그 영혼을 따라 부으며, 언제 깨질지 모르는 꿈속의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미소 짓는다.(217쪽)



내가 이 책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찬사는, 끊임없이 이 책을 읽고 싶다는 것이다. 어느 덧 마흔을 향해 가는 내가, 어느 새 잃어버리고 있는 젊음 날의 뜨거운 우울을 이 책이 다시 가져다 줄 지도 모르는 희망을 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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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lling Players
1793
Oil on tinplate, 43 x 32 cm
Museo del Prado, Madrid


고야의 작품은 언제나 흥미롭고 격조있지만, 비극적이고 끔찍한 우울과 절망을 가리고 있다. 몇 년 전(2004년 6월), 어딘가에 올렸던 글을 다시 여기에 옮긴다.
 

낭만주의 시대(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최고의 예술가는 "프란시스코 고야"다. 그는 계몽주의가 남긴 혁명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허무와 거짓된 역사를 뚜렷하게 목격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이야기하곤 하는 사랑이라든가 환상, 또는 매혹의 도피 따윈 다 허위이거나 기만이고, 도리어 그 세계 속에서조차 우리는 삶의 허무나 죽음,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자끄 루이 다비드와 동시대인이면서 다비드가 계몽주의 신념 속에서 자만과 오만의 성을 쌓았다면 고야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계몽주의 세계가 만들어놓은 거짓, 그리고 우리가 끝내는 굴복하고 말 어떤 허무와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고야의 세계를 느끼게 될 때 그 이후의 모든 낭만주의자들이 시시해지고 19세기 초반의 낭만주의자들을 다시 보게 된다. (2004년 6월)


내가 스페인 마드리드를 가게 된다면, 아마 그것은 프라도 미술관 때문일 것이다. 여튼 이 짤막한 글을 올리고 난 다음, 아는 분의 긴 리플이 이어졌다. 여기에도 옮긴다. 미뇽님께선 어떻게 사시는지 무척 궁금하다. 건강하게 잘 계신지. 


미뇽 (2004/06/28 13:53)

프랑스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비하여 서정성이 부각되고 주제에 있어서 다양화되면서 어떤 것도 주제가 될 수 있었지만 대부분 사랑으로 귀착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자기 목소리로 시를 쓸 수 있었겠죠.
그러나 위고를 비롯해서 역사성을 띠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독특하죠.
그래서 서사시에 대하여 높은 가치를 두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미술에서는 계몽주의와 대비가 되어 낭만주의가 상관관계 속에 놓임으로써 그 특징이 비교되는 것이 일반적인가 봐요. 문학에서 낭만주의는 보통 고전주의와의 대비 속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지하련 (
2004/06/28 13:54)

빅토르 위고는 '후기 낭만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진보에 대한 열정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이 때부터 예술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논의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좀더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한 계급갈등. 도시의 급성장과 농촌의 피폐화. 자본주의 시스템 속으로 편입된 예술가의 지위에 대한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19세기 초의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은 18세기 계몽주의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는 곧바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특히 칸트에게서 두드러지는데, 칸트의 철학은 계몽주의이며 그의 미학은 낭만주의 미학입니다. 다른 관점으로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예술사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도 마찬가지이구요.


미뇽 (2004/06/29 18:16)

초기 낭만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물이라는 말은 개인의 해방과 자유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혁명의 이념과 낭만주의의 모토가 같은 뿌리라는 말로 이해되며 그 점은 저도 동감을 해요. 그러나 초기 낭만주의의 경우 이상한 점은 혁명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프랑스 낭만주의의 경우에는요.
왜냐하면 혁명기의 격동은 도리어 18세기의 낭만주의 예고자인 루소가 대표적으로 보여 준 새로운 감수성의 맥을 끊어 놓았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복고주의가 대두하고 문학의 모든 쟝르에 있어서 옛 형식이 그대로 지배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나폴레옹의 정권은 신 고전주의의 틀 속에 문학을 가두어 두려고 했으니까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새로운 감수성의 작가들이 생겨났고, 이들은 차라리 고립적, 예외적 존재들이었다할 수 있었어요. 이들(샤토브리앙, 스탈부인, 콩스탕, 세낭쿠르)을 소위 전기 낭만주의자들로 명명합니다.

지하련님이 위에서 지적하신 대로 고야에게서 초기 낭만주의 자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이들 모두가 18세기 이성이 약속해준 듯이 보였던 새로운 사회는 환상에 불과함을 인지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낭만주의는 크게 보수적, 진보적 낭만주의로 나누어지나, 이들의 고통된 점은 현실에 대한 혐오와 고전주의에 해단 반감으로 합결된다는 점에서 볼때, 외적으로는 대혁명의 연장선으로 이해되지만 내적으로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감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하련 (
2004/06/29 18:43)

흠. 제 리플에 오해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있군요.
19세기 낭만주의가 프랑스 혁명의 결과물이라고 한 것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 속에서 낭만주의가 생겼다는 뜻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미뇽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는..)

프랑스 혁명의 귀결은 이성주의가 아니라 감정주의였으며 나폴레옹이라는 독재자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몽주의가 내세웠던 이성의 결과라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낭만주의는 반합리주의, 비이성주의라는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의 반발이라고 볼 수 있죠. 즉 혁명 실패에 대한 결과인 셈이죠.

제가 프랑스 대혁명이나 계몽주의를 이야기한 것은 19세기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두 계기가 무척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낭만주의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그 당시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혁명의 열기, 그리고 그 혁명이 가져다 준 절망감, 공포, 독재에 대해선 별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 속에 자신의 성을 쌓고 안주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의 경우 사태가 좀더 심각하여 독일이라는 나라에는 아예 혁명이 가능하지도 않는 곳이라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의 이러한 고립감은 더욱 심각했으며 이것이 독일 이상주의를 만들게 됩니다.
루소의 경우 18세기, 19세기 초반을 지배했던 인물입니다. 이는 루소라는 인물 자체가 서로 모순되는 점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루소에게서는 이성주의적 성격과 비이성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파악해낼 수 있습니다. 전자는 프랑스 혁명으로 연결되지만, 후자의 경우 로코코 양식이나 낭만주의 양식으로 연결됩니다. 미뇽님이 생각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고야의 경우에는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도피한 곳을 보여주면서 그 곳마저도 현실의 절망이나 비극, 삶의 허무가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고야는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만큼 현대는 절망적인 인식을 하기 시작하는 시대이니깐요.

***
요즘 포스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집중할 시간이 없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다. 꽤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예전에 올렸던 글을 새로 올리면서 사소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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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프로젝트)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어떻게든 해주면 무조건 감사를 받을 수 있는 일,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 딱 노력한 만큼만 대가를 받는 일, 노력해도 본전치기이거나 도리어 욕먹을 일 등등.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구분할 능력도, 구분할 생각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몸은 늘 피곤하고 마음은 항상 가난한 것인가.

어제는 종일 두통에 시달렸고,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비 탓인지, 매우 우울하고 기운 빠지거나 기분만 상하던 날이라, 양재동 갤러리를 잠시 들른 후, 곧장 신촌으로 가 맥주 3병을 마셨다. 급하게 마신 탓인지 취기가 금세 올라, 카페에 들어간 지 한 시간 남짓 흐른 후 일어나 집으로 왔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전 잠자리에 들었으며, 오전 6시에 잠자리에 일어났다.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며, 아주 오래 전 사연을 지닌 쇼팽의 녹턴을 듣고 있다. 그 사이 새벽의 어둠은 사라지고 지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아침이 왔다. 잠시 티브이를 틀어 뉴스를 보았으나, 사건 사고로만 가득한 세상과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 뉴스뿐이었다. 내 삶이 다소 건조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혹은 매우 슬퍼졌다.

북마크가 된 어느 일본 갤러리에 들렸더니, 베를린에서 귄터 워커(Gunther Uecker) 전시를 내년 초까지 하였다. 올해 만났던 작가들 중에서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들었던 작가였다. 그의 캔버스 위에 촘촘히 박힌 못은, (그의 생각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마치 내 가슴을 파고 드는 듯, 아팠다.

 
 
Gunther Uecker
Grosser Wald (Large Forest)
1988/1991
seven parts, wood and nailsheight
110-170 x diameter 80 cm
이미지 출처: http://www.akiraikedagallery.com/berlin.htm 


다행이다. 지치고 아프더라도 사람은 늘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거친 세상의 방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몇 통의 메일을 보내고 운동을 하고 종일 집에 있을 생각이다. 상처입지 않기 위해 무수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지만, 놀랍게도 상처 입는 건 나 혼자 뿐이더라.

요즘 글 한 편 쓰고 있는데, '눈 속에 갇힌 남자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남자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이 남자 생각만 하면 안타깝고 화 나고 아플 뿐이다. 그래서 내가 픽션을 쓰지 못하는 것이리라.




Yundi Li plays Chopin Nocturne Op. 9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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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작가 중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로 꼽히는 대미언 허스트(43.영국)가 세계 미술경매사에 새 기록을 경신했다.

허스트는 15일(현지시각) 오후 7시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개최한 단독경매에서 하루 저녁에 7054만5100파운드(수수료 포함금액, 한화 약1383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기염을 토했다. 이같은 낙찰액은 단일작가 경매로는 사상 초유의 금액이다.

소더비 런던 관계자는 “지난 1993년 피카소의 작품 88점을 경매에 부쳐 총 6230만파운드(약1277억원)의 낙찰액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허스트 작품은 어제 경매에서 56점에 불과했는 데도 이를 가뿐히 경신했다”고 전했다.

헤럴드경제: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09/16/200809160196.asp 


뭐, 딱히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말하기 시작하면 길어질 것같다. 미술 시장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지만, 힘 없는 미술 시장 관계자가 나서서 이야기해봤자, 푸념 밖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대미언 허스트의 탁월한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감각은 놀랍다. 하지만 그것에 맞장구를 쳐주는 콜렉터들은 더 놀랍다. 하지만 자신의 집에 대미언 허스트의 놀랍고 기괴하며, 때론 충격적이고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이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그리고 집에 오는 손님들한테 연신 자랑을 해댈 것이다. 아마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3~4년 전의 나라면 전혀 이해하지도,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것이었다. 묵묵히 성실하게 고전적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름없는 가난한 전 세계의 예술가들을 떠올린다면, 다소 불쾌하고 다소 끔찍한 현실이지만, 이런 일들은 고대 로마에도 있었고, 고딕 시대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어져 온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서,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용기를 얻기 보다는 현대에 대한 자조 섞인 푸념만 늘고 우울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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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uspymd 2008.09.17 03:55 신고

    데미안 허스트가
    지 똥을 내다 팔아도,

    100억원은 훌쩍 넘지 않을까 하네요.

    다만 냄새가 심할테니
    냉동 처리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포름 알데히드는 사양하렵니다.
    똥하곤 상극일 것 같거든요.

    • 똥을 팔지는 않을 것같아요. 왜냐면 이미 똥을 판 작가들이 있거든요. ㅡ_ㅡ;; 몇 십년 전에 길버트&조지가 전시 중에 캔에 담긴 똥을 몇 파운드에 팔았어요. 아마 사간 관람객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크~. 그래도 데미안 허스트가 똥을 내다 놓으면 분명 팔릴 겁니다. 쩝.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울'을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징으로 보았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꼴리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맞닿아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우울'은 병든 자의 몫이다. 사회적 질병이 되어버린 '우울증'은 약물 치료와 정기적인 정신과 방문을 요구한다.

요 며칠 우울하다. 내부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외부적인 영향도 크다. 도로 한 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린 어린 강아지와 그 강아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강아지 바로 앞에서 멈추는 마을버스며, 소형 트럭이며, 자동차들이 낸 키익키익 소리가 내 귀에서 점점 멀어지는 풍경이며, 6호선 공덕역에서 역 안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로 몸을 던지는 젊은 사내며, 다리 하나가 없는 슈나우저가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며, ... 나를 어둡게 했다.

하나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 싸움의 원칙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 싸움에서 이겨, 그 싸움의 규칙을 정해야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이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로 나누는 것은 그가 현실에서 희망과 비전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는 이 세계관 속에서 깊어지고 성숙해지고, 결국 우울해진다. 위대한 고전 희극 작품이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자신을 추스리고 신념과 각오를 다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주의의 위대한 비극 작품이 가지는 힘이고 매혹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힘을 가지는 것은 희곡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신탁을 끝까지 거부하며 싸웠던 오이디푸스의 신념과 각오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운명(moira)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끝까지 저항하고 지켜내기 때문이다. 

오늘, 종일 바쁘다. 적당하게 우울하고 쿨한 음악은 힘이 되기도 한다.


George Benson, Golden Slumbers/You Never Give Me Your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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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깔랭 - 내 생의 동반자 이야기.
에밀 아자르 지음. 지정숙 옮김.
동문선.



외롭지 않아? 그냥 고백하는 게 어때. 외롭고 쓸쓸하다고. 늘 누군가를 원하고 있다고. 실은 난 뱀을 키우고 있지 않았어. 그로 깔랭, 그건 내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야. 내 다른 모습. 길고 매끈하지만,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내 모습이었어.

드레퓌스양을 사랑하고 있지만, 드레퓌스양에겐 말하지 않았어. 말하지 못한 거지. 그렇지만 난 그녀의 눈빛만 봐도 그녀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껴. 그래, 그녀와 난 엘리베이터에서만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 한 두 마디. 그 뿐이긴 하지만, 난 알 수 있어. 그리고 창녀로 만나긴 했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었지.

그로 깔랭을 동물원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바뀐 건 아니야. 외롭고 쓸쓸하다는 걸 숨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을 뿐. 그리고 보면 그로 깔랭을 키우면서 난 날 숨기고 있었던 셈이군. 내 외로움을, 내 사랑을, 내 의도를, 내 진심을, ...

****

참 슬픈 소설이다. 말을 하지 못하는 뱀 - 그로 깔랭을 키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실은 뱀이 이 소설의 중심 주제는 아니다. 에밀 아자르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을 나누는 삶이 파리라는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하는 곳은 창녀집이다. 그 곳에서 이 주인공은 그가 사랑하는 드레퓌스양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이 하룻밤 이후 그는 그로 깔랭과 떨어질 수 있게 된다.

그 정도로 거대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일까. 그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가 왜 권총 자살로 자신의 인생을 끝내었는지 알 수 있을 것같다. 이 책 가득한 유머는 실은 '나 너무 외롭고 쓸쓸해'의 동어반복이며 주인공이 키우는 그로 깔랭이라는 이름의 뱀 또한 실은 주인공의 숨겨진 '반영물'이다. 즉 '꾸쟁(주인공이름) = 그로 깔랭', '인간 = 뱀'의 등식이 성립한다.

유쾌한 유머를 가장하고는 소설은 나에게 결정타를 날리며 끝을 맺는다.

"빠리 같은 커다란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결코 허전함을 느낄 걱정이 없다."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지. 결코 허전함을 느낄 걱정이 없어.허전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미 온 몸 가득 허전함 속에 파묻혀 있으니, 허전함을 알기나 하겠어.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맹 가리처럼 서울에서도 권총 자살로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겠구나. 나도 뱀 한 마리를 키우면서 미니스커트만 입는 여자를 사랑해볼까.)



* 문학동네에서 새로운 번역이 나왔습니다.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는 지독히 우울한 작가라는 것만 기억해두면 좋을 것같네요. ~. 오랜만에 로맹 가리의 소설을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2010년 6월)

그로칼랭 - 10점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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