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소설 20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육후연 옮김/인디북(인디아이) 도련님나쓰메 소세키(지음), 육후연(옮김), 인디북 - 이 소설에 대해 간단한 평을 쓰려고 인터넷서점을 검색해보았더니, 나쓰메 소세키 전집이 나오고 있었다. 그 전집을 보고 있으니, 이젠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오에 겐자부로 소설 전집이 떠오른다. 그 때 그, 오에 전집을 다 사둘 걸,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살 생각은 없다. 이미 소세키의 소설 다수를 구입한 터라, 소세키를 읽을 때마다 사서 읽는 편이 좋을 게다. 이 책은 소세키의 소설들 중 가장 대중적인 책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꽤 유쾌하고 작은 소극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대로 소세키의 다른 소설들에서 보여주었던 바, 지식인의 고뇌, 현대적 삶의 쓸쓸함, ..

마음, 나쓰메 소세키

마음 -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문예출판사 마음, 나쓰메 소세키(지음), 김성기(옮김), 이레 1.나쓰메 소세키, 무려 1세기 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시대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근대성(modernity)의 본질을 간파한 것이리라. 이번 소설도, 내가 이전에 읽었던 소설과 비슷하게, 큰 사건이 없이 한 편의 풍경화처럼 이야기는 조용히 흘러간다. 소설의 전반부는 나와 선생님이 만나고 가깝게 되는 과정을, 소설의 후반부는 선생님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즉 한 부분은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나머지 한 부분은 독백에 가까운 편지로만 구성된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대화가 아닌 '글로 씌어진 편지'에 의지하게 되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리고 ..

그 후, 그들의 사랑은 아마도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민음사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세워서 자연을 억지로라도 자기의 계획에 맞추려드는 고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계획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연을 거역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건 버림받은 아내가 이혼장을 방패 삼아 부부 관계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228쪽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된다. 적어도 다이스케에게 있어선 그랬다. 그는 자연의 이치대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 일도 기획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외부 세계와는 무관한 듯 그렇게. 다이스케는 책상 위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약간 열려있는 툇마루의..

고목탄, 나카가미 겐지

고목탄 - 나카가미 겐지 지음, 허호 옮김/문학동네 고목탄(枯木灘) 나카가미 겐지(지음), 허호(옮김), 문학동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이복동생 히데오를 돌로 내리쳐 죽이고 감옥에서 살다가 나온 아키유키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카가미 겐지는 알고 있을까? 하긴 알든 모르든 내 삶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런 류의 소설은 좋지 않다. 누군가의 비밀스럽고 슬프고 고통스런 삶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런 소설은, 일본의 신화에서 기인한 스토리라는 평자의 의견을 무색하게 만들며, 결국 뒤죽박죽인 가계도에서 벌어지기 마련인 갑작스런 파국을 소설의 말미에 배치함으로써 희망이란 피묻은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강요하듯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싫다. 그..

행인行人, 나쓰메 소세키

행인行人 나쓰메 소세키(지음), 유숙자(옮김), 문학과지성사 인생은 쓸쓸한 거다.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연인은 떠나가고, 마음 한 켠에 남은 상처는 새벽 네 시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마냥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지는 것이 현대식 사랑이다. 그러니 다치지 않기 위해 사랑은 한 켠으로 밀어 놓은 지 오래. 하얀 눈이 보기 드문 겨울이 가고 황사 가득한 봄이 오고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과 만나게 된다. 어떤 확신처럼, ‘인생은 쓸쓸한 거다’라고 읊조리지만, 그것을 확인할 때면 가슴 한 쪽이 아려오는 건 어쩌지 못한다. 방 안은 촛불로 인해 소용돌이치듯 동요했다. 나도 형수도 눈살을 찌푸리고 타오르는 불꽃 끝을 응시했다. 그리고 불안한 쓸쓸함이라 형용..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 호시노 도모유키

깨어나라고 인어는 노래한다 호시노 도모유키 지음, 김옥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전기가 흐르고 있는 듯한 밤이었다. 하늘 높이 매달려 있는 달은 거대한 백열전구가 되어 붉은 흙이 드러나 보이는 고원과 억새 들판을 빙하색으로 비추고 있었다. 개구리를 대신해 울기 시작한 가을 벌레가 지지직 하고 전자파를 보내, 나를 사로잡아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다. 군청색의 투명한 대기를 뚫고 서늘한 공기가 섞인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 백금색으로 빛나는 억새 이삭을 흔들어, 밀려오는 파도와도 흡사한 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다. - 7쪽 미쓰오가 지금 빨고 있는 내 가슴도 오랫동안 냉장고에 넣어둔 과일처럼 생기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미쓰오는 눈치채지 못한다. 나는 화가 나, 좀더 나를 물체처럼 다루어달라고 낮은 목소리..

하루키, 또는 현대적 삶

하루키, 또는 현대적 삶 모든 것은 지나쳐간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들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다시 말해서, 개인주의의 어두운 면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의 초점 이동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높낮이 없이] 덤덤하게 되고 협소해진다. 우리의 삶은 갈수록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우리는 타인의 삶이나 사회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진다. - 찰스 테일러, 1. 하루키 신드롬 아직도 하루키 신드롬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하루키는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있으니 말이다. 꽤 오래 전엔 매우 시끄러웠다. 여기저기 저널에서, 문학잡지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키를 표절했다느니, 패러디했다느니 하는 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고 서로 ..

사양, 다자이 오사무

사양(斜陽)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소화. 둘이서 소리 내어 웃었지만, 웃고 나서 한없이 쓸쓸해졌다 - 25쪽 책을 읽다 졸음이 왔다. 휴대용 커피 한 봉지를 뜯어 탄 흐릿한 빛깔의 커피 한 잔을 마시자마자 졸음이 밀려왔다. 오래된 독일산 듀얼 턴테이블에 척 맨지오니의 레코드판을 걸어두고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으면서 졸음을 느꼈다. 그리고 잠을 잤다. 일요일 오후 몇 주째 엉망인 사각의 방 구석에서 선풍기 바람 속에서 낮잠을 잤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밖으로 블랙 커피 빛깔로 변해 있었고 다시 사양을 펼치면서 지는 해 사이에 서있는 가즈코를 생각했다. 스물 아홉의 가즈코. 지금 일본 열도 어느 구석에선 장차 문학을 하리라 꿈꾸는 짧은 머리의 청년이 배낭을 싸고난 다음 지도를 꺼내 간단하..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 아베 코보(지음), 김난주(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55 그는 소설이 끝나고 그 모래의 세계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 속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 속에서 그가 늙어죽고 그녀가 늙어죽고 그들이 살던 집이 모래로 뒤덮이는 것을 아베 코보가 보여주었다면 독자들은 무슨 말을 할까. 혹시 그녀처럼 ‘무슨 상관이에요. 그런, 남의 일이야 어떻게 되든!’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감동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 그저 쓸쓸할 뿐이다. 모래의 세계 속이나 낮고 높은 건물로 둘러쳐진 도시 속이나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다. 소설은 육체의 고립을 극대화했을 뿐이지, 소설 밖 우리들의 의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딘가에 갇혀있었다. 아베 코보는 갇혀있는 우리들의 한 면..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웅진출판, 1995 (* 시리즈의 열번째 권). 1. 이 소설에 대한 감상문으로 적당한 문장은 이러하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라는 일본의 변태적 허구를 즐기는 작가가 쓴 소설을 읽었는데 말이야,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녀석 소설 하나를 잘 쓰더군. 뭐,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소설을 읽고 잘 쓴다라는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다카하시 겐이치로라는 녀석이 ‘변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런 문장은 이 소설을 소개하는 글의 문장으론 적당하지 않다. 2. 소설 뒤에 붙은 박유하 교수의 해설은 이 소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