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 34

바니타스 Vanitas

제프 쿤스도 그렇고 데미안 허스트도 그렇고 현대 미술에서 잘 나가는 스타 예술가들을 보면, 진지함보다는 번뜩이는 재치와 탁월한 유머와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과 만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풍부한 비평적 언어와 적절한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소재/주제를 제시하고 어느 공간에서나 어울리면서 그 중심에 예술 작품이 위치할 수 있도록 만든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궁금하게 한다. 예술작품 앞에선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사람이 무조건 한 두 마디를 말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데미안 허스트는 실패하지 않는 작가가 된다. 다른, 심각하고 진지한 예술가 앞에 서서 현대 미술을 주도하는 예술가가 되는 셈이다. 현대를 가벼움으로 만드는 것은 아마 현대의 공기일 것이다. 느린 속도는 태도의 진지함을 부르고..

미술 작품 구입에 대하여

어느 블로그에 들어가 주말에 전시를 보았다는 글을 보고, 전시를 보러다니는 사람은 많은데, 왜 미술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적을까, 짧게 생각하고 적었다. 아직도 작가들을 만나면 작품 가격 높이지 말고 일년 생활비, 작품 제작 기간을 고려해서 최대한 낮은 가격에 팔면서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작품이 소장될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하지만, 그게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또한 잘 알기에, 말하곤 후회한다. 어찌되었건 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고 떠나온 미술계에 대해선 아직도 관심이 가고 수시로 전시를 보러가고 작가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탓에, 미술작품을 판매하는 것이나 구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대중화시키는 건 참 멀리 있는 일이라는 게, 힘 빠지게 한다. 미술작품을 사기 위해선 여러 제반 조건이 ..

올림픽과 예술 - JR (프랑스 예술가)

리오데자네이루의 어느 아파트 위에 설치된 높이뛰기 선수의 모습. 전형적인 프로퍼간다(propaganda)이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건 작품 자체가 가지는 완성도 때문일 게다. 프랑스 예술가인 JR은 이미 이 분야에선 세계적인 명성을 지녔다. 올해 봄, 그의 장기인 눈속임으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이렇게 만들었다. 루브르 광장 앞 피라미드에 아래와 같이 작업한 것이다. 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1989년 미국인 건축가 I.M.페이에 의해 만들어진 투명 피라미드는 17세기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된 루브르 궁와 묘한 대비를 이루면서 근대와 대비되는 현대의 정신을 보여준다고 할까. JR는 이 투명 피라미드를 살짝 지우면서, 다시 이 유리와 철로 이루어진 피라미드에 담긴 어떤 태도를 되새기길 원하는 것이다..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설 읽기란, 묘한 느낌을 준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 속에서, 현실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떨어져있고, 허구와 사실은 서로 혼재되어 혼란스럽게 한다. 시간마저 겹쳐 흐르며 외부는 모호해진다. 어쩌면 현대 소설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치 처럼. 제발트는 소설 중간중간 사진들이 인용하는데, 마치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다'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허구와 사실 사이를 오가며, 소설은 대화의 인용으로 이루어진다. 문장의 호흡은 길고 묘사는 서정적이면서 치밀하고, 등장인물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슬프기만 하다. 과거는 추억이 되지..

이불 LEE BUL,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이불 LEE BUL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2014.9.30 – 2015.3.1 (현대자동차 http://brand.hyundai.com/ko/main.do) 그 공간에 서면, 작품 한 가운데 서면, ‘여긴 어디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빨리 나가거나 계속 머무르거나. 에서. 2014년 이불은 현대자동차의 지원을 받아 국립현대미술관에 2개의 작품을 전시한다. 와 . 둘 다 기계적 초현실주의, 혹은 실험주의라고 할까.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나 실험주의라고 하면, 반-기계적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이탈리아의 F.T.마리네티Marinetti는 미래주의를 주장하면서 기계적 특징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하지만 그 흐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금세 반-기계주의로 기울었지만. 내..

잠자는 뮤즈, 브랑쿠시Brancusi

출처: http://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8458 잠을 자고 있는 두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거의 20년 이상 몰두했다. '잠자는 뮤즈'를 구상하고 작업할 때, 그는 근본적인 형태와 단순화된 세부를 위해 개념들(ideas)을 줄여나갔으며, 이를 위해 극적인 요소와 디테일을 피했다. 그는 관성으로 인해 무겁게 내려앉은, 그러면서 평화롭게 쉬는, 바닥에 엎드린 머리의 모습으로, 나른함(languor)의 본질을 만들었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설명을 번역함. * * 저런 잠이라면, 영원할 것만 같다. 1910년, 브랑쿠시는 왜 저런 잠을 꿈꾸었을까. 잠은 죽음과 맞닿아있고 꿈과 연결된다. 삶은 멈추고 운동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네 태양..

죽음을 향한 침묵

2015년, 기억해둘 만한 해가 되었다. 2016년, 아직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고 주말에 쉰 적이 없다. 스트레스로 인한 폭음 뒤, 몸져 누워 나가지 않은 때를 제외하곤. WLB(Work & Life Balance)라는 단어를 이야기했던 때가 부끄러워졌다. 일요일 출근 전, 르 클레지오를 짧게 읽었다.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동떨어진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스물 여덟 무렵, 자신만만하게 젊은 날의 르 클레지오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놀라웠던 데뷔작, , 그 이후의 슬프고 감미로웠던 , , ... 십 수년이 지나고 노년의 르 클레지오는 서울에 와서 살기도 하고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이제 르 클레지오는 내 일상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내 탓도, 세상 탓도 아니다. 애초에 이렇게..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 예술: 치유와 혁명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1921 - 1986) 요셉 보이스를 조금 안다고 여겼는데, 나는 전혀 그를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실제로 분명히 봤을텐데, 그 기억은 나지 않고 작품 스틸 이미지만 머리에 맴돌 뿐이다. Joseph Beuys. 1976년 출처: http://uk.phaidon.com/agenda/art/articles/2014/march/03/why-joseph-beuys-and-his-dead-hare-live-on/ 그의 예술 세계는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시작해, 치유와 회복, 특정 매체에 대한 집중, 은유, 알레고리, 예술과 삶,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진취적 모험에까지 이른다. 심지어 그는 실제 정치 활동까지 한다. 이런 다양성 밑에..

로니 혼Roni Horn, 국제갤러리. 2041.5.20 - 6.22

로니 혼 Roni Horn 5.20 - 6. 22. 2014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늦은 봄, 관람했던 전시에 대한 소개를 지금 올리는 건 너무 태만한 짓인가. 실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몸도 피곤하다. 해야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로니 혼Roni Horn.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나하나 작품을 기억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졌다는 건, 그만큼 관심사에 멀어졌다는 이야기다. 형편없어진 '이미지에 대한 기억'력. (현대는 원하지 않는, 그러나 범람하는 이미지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는 건 아닐까.) 로니 혼은 작가 특유의 공간에 대한 감성으로 시간, 기억 그리고 지각이라는 주제들을 탐색하며 강력하고, 절묘할 만큼 아름다운 시각적 명상 속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부드럽지만 힘있게 이끌고 나..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리움, 2012.10-2013.2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2012.10.25 - 2013.2.8 삼성미술관 Leeum 황량한 현대 미술의 첨단에 카푸어가 불과 몇 명의 위대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우뚝 서 있음은 하나의 구원이다. 시각의 초월적인 기능, 아트의 건전한 엘레멘트의 구사, 풍요로운 표현방식, 긍정적인 미지의 암시 등으로, 그 환기력의 유효성을 정면에서 입증해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이우환 * * (리움에서 출간된 아니쉬 카푸어 도록. 잘 만든 도록이다) 전시를 본 것은 일 여년 전이지만, 아니쉬 카푸어는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상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아니쉬 카푸어의 도록 탓도 있었지만, 전시 공간 안에서 보여주는 놀라움과 경이는 현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도록 -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