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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Gmelin : 68년으로의 여행

Felix Gmelin, Farbtest, Die Rote Fahne II (Color Test, The Red Flag II), 2002. Installation view, 50th Venice Biennale, 2003. 서방 세계에서 1968년은 각별한 모양이다. 하긴 서부 유럽에서는 68 혁명이라고 부르니. Felix Gmelin은 1968년의 베를린과 2002년의 베를린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그들(또는 우리)의 현재를 되새기고 있다.(아, 그 때는 얼마나 그리운 시절인가!) 하지만 이것은 감상적인 향수의 대상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동시에 스쳐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Felix Gmelin에게도, 나에게도 이 폭력적이며 잔인하게 변해버린 현대 사회의 가속 페달을 막을..

예술의 우주 2003.12.12

Pervigilium Veneris

Pervigilium Veneris이라는 시이다. 오늘 읽은 그리스/로마 고전문학이라는 책에서는 99행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으로 찾은 시에는 94행이 전부다. 그리고 라틴어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영어 번역까지 있는 것을 찾아 겨우 옮겨본다. 기원 후 4세기이니, 로마의 번영과 영광은 끝나고 인간의 지성은 암흑을 건너며 신의 빛으로만 지탱해나가는 중세가 막 시작하는 무렵이다. (* 흔히 중세 시대를 암흑 시대라고 하는데, 이는 기원 후 3-4세기부터 13-4세기를 다 포함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기원 후 3-4세기에서 8-9세기 서부 유럽에만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이 때의 삶이란 수풀이 우거진 숲 속에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석조 건축물과 포장된 길이 있었지만, 그것은 고대의 유물이었고 실제 사람은 ..

술의 역사, 피에르 푸케/마르틴 드 보르드

술의 역사 피에르 푸케, 마르틴 드 보르드 지음 정승희 옮김, 한길사 (* 한길크세주 시리즈 15)* 그대는 감히 술이 정신을 흐리게 한다고 비난하려 드는가. 술보다 더 큰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것이 있다면 내게 말해보라. 똑똑히 보라. 술을 마시는 이는 부자요, 만사에 성공하고 모든 재판에서 이긴다. 그는 행복하며 친구를 돕는 사람이다. 자, 어서 내게 영혼을 듬뿍 적셔줄 술병을 가져오라. 내가 그것으로써 지혜를 구할 수 있도록. - 데모스테네스, ** 책의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잔뜩 기대시키는 저 문구는 얼마 읽지 않아, 요즘 세상에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즉 술을 좋아하는 독자가 이 책을 드는 건 썩 좋은 일로 보이진 않는다. 왜냐면 이 책은 술에 대한 감상적이고 ..

뭉크의 <절규>에 대한 의견

하나는 뭉크의, 그 유명한 이고 하나는 Krakatoa 화산 폭발을 그린 누군가의 그림이라고 한다. 집을 나서기전 뉴욕타임즈에 흥미로운 아티클을 읽었는데, 뭉크의 경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끝나지 않을 비명을 느낀 것은 역사상 기록된 가장 큰 화산 폭발로 알려진 1883년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의 무인도인 크라카다우 화산 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 때 이 폭발로 이 섬의 3분의 2가 날아갔으며 폭발로 인해 발생한 해일 등으로 삼만 육천명이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폭발에 관한 책이 단행본으로 나와있을 정도이니 이 화산 폭발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러니 북유럽에서도 이 폭발의 영향이 미쳤을 것도 같다. 문제는 뭉크가 작품 를 그리게 된 그 경험을 한 것이 몇 년도 인가하..

예술의 우주 2003.12.11

칸딘스키: '변명'의 시대

Composition IV 1911 ; Oil on canvas, 159.5 x 250.5 cm (62 7/8 x 98 5/8 in);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len, Dusseldorf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이며 영혼은 많은 울림줄을 가진 피아노이다. 미술가는 영혼에 진동을 주기 위해 한 건반 혹은 다른 건반을 두드리면서 연주하는 손이다." - 칸딘스키, 칸딘스키는 그의 그림보다, 어쩌면 그의 글이나 그의 말이 더 인상 깊을 지도 모르겠다. 칸딘스키 이후의 많은 현대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작가보다 우아한 문체로, 평론가보다 예리한 시각으로, 그리고 무용가보다 훨씬 세련된 몸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혹시 현대란 '변명의 시..

예술의 우주 2003.12.10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예술의 시작에 대해선 많은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이 의견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시작되었건 그것은 현대처럼 분화되어진 어떤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방'이면서 '마술'이고 '노동'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사용한 이 단어들, 모방, 마술, 노동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다. 심지어는 그들에게 언어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예술의 시작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추측이며 그저 그랬을 것이다 정도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그리고 아래의 내용도 그러하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들은 한결같이 어두운 동굴 속에, 요즘 사람들이 자세를 잡기도 힘든 공간 속에 그려져 있다. 구석기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현재의 우리들은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저 추측만 ..

알로이 리글(Alois Riegl)의 ‘Kunstwollen’에 대하여

우리는 종종 최근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경향의 작품을 보면서 경탄해 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Painting을 곧잘 사진과 비교해가며 대단하다는 표현을 금하지 못합니다. 아직까지도 Painting에 ‘발전’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은 사진에서 보여지는 바의 ‘사실적(realistic)’인, 그 어떤 것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인상주의의 등장이 사진술의 등장과 발달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 때 리글이 말하는 바의 ‘예술의욕’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진보와 퇴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피카소가 비슷하게 말한 바 있듯이 ‘..

레오나르도 다 빈치

St John the Baptist 1513-16 Oil on panel, 69 x 57 cm Musee du Louvre, Paris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고전적 이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생의 원리를 찾아가는 고전주의의 여정 속에서, 언뜻 그 여정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스푸마토(sfumato)는 의도적으로 색과 색 사이를 어둡게 하므로서 입가에 아스라한 여운을 주는 것이다. 저 세례 요한의 표정을 보라. 야릇한 미소 속에 생과 세상,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갈등이 엿보이는 듯 하지 않은가.

삼십세, 잉게보르크 바하만

, 잉게보르크 바하만(지음), 차경아(옮김), 문예출판사 1997년 가을에 이 책을 구입했으니까, 벌써 6년이 지나고 있는 셈이다. 대학 4학년이었으리라. 대학 도서관 구석진 곳에서 문고판으로 나와있는 이 책을 읽었다. 그 문고판 책에는 '오스트리아 어느 도시에서의 청춘'이 첫 번째로 실려 있었는데, 그 때, "쾌청한 10월, 라데츠키 가로부터 오노라면 우리는 시립 극장 옆에서 햇빛을 받고 있는 한 무리의 나무를 보게 된다. 열매를 맺지 않는 저 검붉은 태양의 벚나무 숲을 배경으로 하고 서 있는 첫 번째 나무는 가을과 함께 불타올라, 천사가 떨어뜨리고 간 횃불처럼, 어울리지 않게 금빛 찬란한 얼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바로 지금 나무는 불타고 있다. 그리고 가을 바람도 서리도 나무의 불을 끌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