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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예전에 나는 한 여자를 소유했었지, 아니 그녀가 나를 소유했다고 할 수도 있고, 그녀는 내게 그녀의 방을 구경시켜 줬어. 멋지지 않아? 노르웨이의 숲에서 그녀는 나에게 머물다 가길 권했고 어디 좀 앉으라고 말했어.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의자 하나 없었지. 양탄자 위에 앉아 시계를 흘끔거리며 와인을 홀짝이며 우리는 밤 두 시까지 이야기했어. 이윽고 그녀가 이러는 거야. "잠잘 시간이잖아." 그녀는 아침이면 흥분한다고 말했어. 그리곤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지. 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목욕탕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잤어. 눈을 떴을 때 난 혼자였어. 그 새는 날아가 버린 거야. 난 벽난로 불을 지폈어. 멋지지 않아? 노르웨이의 숲에서. 하루키를 읽다 보면 맥주 생각이 나고 혼자 음악 들으며 맥주 마시다 ..

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클라우스 휘브너

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솔 요코의 삶과 여러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담긴 이 책은 요코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그녀가 한 권의 책으로 담길 정도로 뛰어난 예술가이거나 우리들의 삶에 많은 귀감을 주는 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녀의 예술을 평가절하하거나 그녀의 삶을 폄하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그녀를 위대한 예술가나 뮤지션으로, 또는 거칠지만 정직한 삶을 산 여자로 평가하려는 이 책의 시도 때문이다. 이 책은 다양한 도판과 여러 자료들의 인용은 그녀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예술이 현대 미술에서 정확하게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전혀 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반쪽만 알게 되는 셈..

또다시

백수가 될 예정이다.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을 굳혔다. 다른 회사에서 오퍼가 들어왔는데, 고민 중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난 세상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상은 저 멀리 날아가고 있으며 인생에는 그 어떤 비밀도 가치도 숨기고 있지 않다고 믿어버리는 순간(* 논리적으로는 이 결말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현대의 비극이다) 난 생의 강물이 흘러가는 대로 그저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하루키에 대한 글을 길게 적을 생각이었나, 아주 짧게 적을 수 밖에 없을 것같다.

초겨울이었다

초겨울이었다. 95년 창원이었다. 그녀의 방에서 양말 하나를 놔두고 나왔다. 침대에서 뒹굴었지만 성공적이진 못했다. 술을 너무 마시고 나타난 그녀를 안고 그녀의 집까지 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술에 취해 침대에서 바로 곯아떨어지리라 생각했던 그녀가 덥석 날 껴안았을 때, 내일 오전까지 그녀와 있어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침대 옆 큰 창으로 새벽빛이 들어왔다. 새벽빛들이 그녀와 내 몸을 감싸고 지나쳤다. 텅빈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고 새벽 취객의 소리도 들렸다. 내 몸 위에서 그녀는 가슴을 두 손으로 모으면서 내 가슴 이쁘지 않아. 다들 이쁘대. 하지만 그녀와의 정사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술에 취한 그녀는 금방 지쳐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녀 옆에서 아침까지 누웠다 앉았다 담배를 피워댔다. ..

네모에 대하여

일렬로 늘어선 아파트들 위로 나즈막하게 몰려든 회색 빛 구름들이, 스스로의 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려는 찰라, 무슨 까닭이었을까. 이름지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생긴 구름 뭉치들이 네모반듯한 벽돌 모양으로 쪼개지더니, 아파트 단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실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한 구름의 무게가 늙어가면서 허공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다는 것쯤은 사랑에 빠지지 않은 이들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네모난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십년동안 클럽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구입한 상아 건반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네모', '네모','네모'라고 중얼거린다. 실은 네모난 건 너무 많다. 빨리 달려야만 지나갈 수 있다는 고속도로의 이정표들도 네모이고 그 곳을 지..

오노 요코

"미술관에 있다 나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겁니다" 지금은 절판된 곰브리치와의 대담집 한 모퉁이에서 읽은 문장이다. 그 책에 실린 말들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직 철이 덜 든 게 분명해 보인다. 요코를 만나고 난 다음, 존 케이지, 백남준, 요셉 보이스 등과 같은 이들의 작품를 보고 싶어졌다. 동시에 탈출하고 싶어졌다. 인생으로부터... 멀리, 멀리, 멀리. 날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며칠째 심리적으로 무척 고통스럽다. 내 속의 '엘랑 비탈e'lan vitale' 때문일까. 그러므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 하루 종일. 오래동안. ... 그렇게 갈증을 느끼고 있다.

새 근원수필, 김용준

새 근원수필 (보급판) - 김용준 지음/열화당 새 근원수필(近園隨筆) (근원 김용준 전집 1권), 열화당 며칠이고 조용히 앉아 길게 읽을 책을 띄엄띄엄 산만하게 읽은 탓일까, 기억나는 것이라곤 오늘 읽은 술 이야기 밖에 없다. “예술가의 특성이란 대개 애주와 방만함과 세사(世事)에 등한한 것쯤인데, 이러한 애주와 방만함과 세사에 등한한 기질이 없고서는 흔히 그 작품이 또한 자유롭고 대담하게 방일(放逸)한 기개를 갖추기 어려운 것이다.” “술에 의하여 예술가의 감정이 정화되고, 창작심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은 예술가에 있어 한낱 지대(至大)의 기쁨이 아니 될 수 없을 것이다.” (199쪽) 내가 기억나는 문장이 이렇다 보니, 인상적이었던 단어 또한 매화음(梅花飮)이었다. 뜻은 매화가 핌을 기뻐하여 베푸는..

위대한 회화의 시대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위대한 회화의 시대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The Age of Rembrandt - 17th Century Dutch Painting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의 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은 비록 1천여점에 불과하지만, 렘브란트, 베르미르, 루벤스, 반 다이크 등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유럽의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작품의 수준에 걸맞는 작품관리와 보존의 원칙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그림 수송과정으로 이어졌다. 또한 조도 역시 회화 전시의 통상적인 기준보다 더 낮은 150룩스 이하로 설정되었고 온도와 습도는 하루 24시간 내내 체크되어 매우 헤이그로 보고되고 있다.” - Art in Culture, 2003.9. 64쪽 하지만 너무 ..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

이덕일 지음, 웅진닷컴 잊혀져버린 이들, 한국의 아나키스트. 이런 감상적인 문장은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대부분의 이들이 우리에겐 낯설며, 그 이유가 그들이 아나키스트라는 데에 있다. 오직 단재 신채호만이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 그도 그럴 것이 아나키스트들은 좌우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제목*을 가진 이 책을 무슨 이유로 구입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오전에 읽기 시작하며 단숨에 다 읽어버렸으니, 책 읽는 재미가 없다고 할 수 없으리라. 이 책은 명문가 출신의 이회영과 그들 가족이, 그를 둘러싼 여러 아나키스트들이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그러나..

YES YOKO ONO, 로댕갤러리

YES YOKO ONO, 로댕갤러리 전시 #1 젊은 예술가에게 결혼은 생의 급변, 또는 파국을 뜻한다. 그러므로 결혼한 예술가에게 남는 건 파탄이거나 사라짐이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집단 무의식에 기반해 있는 듯하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행위를 사회교과서에서는 ‘일탈’로 표현한다. 추석 당일 밤 기차로 서울에 왔고 그 주 토요일 로댕갤러리에 갔다. 오후 4시... 소란스러운 실내.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관람객. 이번이 마지막 전시 관람인 남녀 대학생. 실내에서 버젓이 사진을 찍는 이들까지. 순간 역겨움과 구토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중간까지 가지도 못한 채 몇 분 만에 그냥 휙 한 바퀴 돌고 나왔다. 나올 때쯤 등에서 땀이 났고 손이 약간 떨렸으며 속은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