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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의 비밀

1. 얼마 전 ***의 포르노가 돌았을 때, 우리 시대가 불순한 관음증으로 도배된 사회라는 것을 또다시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잘못인가? 정말 우리 시대의 잘못일까? 노출증과 관음증. 이 단어는 후대의 역사가나 예술사가들이 우리 시대를 정의 내릴 때 사용하게 될 몇 안 되는 단어들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제프 쿤스는 노골적으로 스스로를 노출증 환자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Dirty - Jeff on Top, 1991 Jeff Koons. 제프 쿤스는 대담하게,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자신의 성행위를 보여준다. 이 대담한 예술가는 왜 사람들이 타인의 성행위에 관심을 가지는가에 대해 반문하면서 미술관 전체를 한 권의 포르노 잡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는다. '과연 내 성행위..

백과전서, 마들렌 피노

, 마들렌 피노 지음. 한길 크세주 5권 이 책은 전적으로 라는 방대한 책의 서지적 사항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문학사나 사상사에서 곧잘 등장하는 ‘백과전서파’라는 단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혹은 내가 ‘백과전서파’에 대해 필요치 않은 중요함을 부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17권의 본문책들과 11권의 도판책으로 이루어진 는 그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한다는 의미에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달랑베르는 서문에서 ‘우리가 시작한(그리고 완성하기를 원하는) 이 저서는 두 목표를 갖는다. 이 저서는 백과사전처럼 인간 지식의 질서와 맥락을 가능한 한 설명해야 한다. 과학과 기술, 공예에 관한 이론적 사건처럼 이 저서는 인문적인 것이든 기술적인 것이든 각각의 학문과 기술에 관해 ..

바리사이 여인, 프랑스와 모리악

프랑스와 모리악, 『바리사이 여인』, 안응렬 옮김, 삼성출판사, 1988. 우리는 우리의 불같은 정념이 우리의 삶에 어떤 고통을 안길 것임을 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얼음 같은 이성도 우리의 삶에 그러할 것임을 안다. 그러니 우리의 삶 전체는 어떤 고통의 그림자로 덮여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그림자를 깨닫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의 믿음이 유한한 인간의 어리석음에 기초하고 있고 우리의 사랑이 자신의 씨를 퍼뜨리기 위한 본능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끔찍한 불행인가. 타인을 알기 힘든 만큼, 아니 그것보다 자신을 알기란 더 힘든 것이다. 자신의 믿음은 더욱더. 인생의 황혼이 어떤 고독과 고요함 속에 묻히는 이유는 자신의 거짓을 하나하나 깨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리지뜨의 강철같은 믿음은 얼마..

카프카의 아포리즘

『카프카의 아포리즘』, 이윤택 엮음, 청하, 1989. 아포리즘을 가지고 뭔가 논리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왜냐면 아포리즘으로 문학적 완성도를 논할 수 없으며 단지 작가의 세계에 대한 짤막한 평만을 할 수 있는데, 이것마저도 다른 작품들을 거론함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작품이 주가 되고 이 아포리즘은 참조 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고작 책에 대한 값어치 없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때때로 길을 가다 자신과 똑같은 버릇이나 습관을 지닌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이들은 서로의 공통적인 버릇이나 습관을 발견하는 순간 어리석은 그물로 그들의 영혼을 둘둘 만다.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말해주며 이 ..

불안의 개념, 쇠렌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 쇠렌 키에르케고르 지음/한길사쇠렌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Begrebet Angest)』, 임규정 옮김, 한길사, 1999.비트겐슈타인이 키에르케고르를 두고 ‘진실로 종교적’이며, 자기에겐 ‘너무 심오하다’라고 말했을 때, 여기에서 우리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세계의 한 단면을 알아차릴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언제나 ‘신앙’이었고 그 신앙으로 자신이 구원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가. 그가 ‘확신과 내면성은 사실상 주체성이다’(p. 365)라고 말했을 때 난 이미 확신과 내면성을 내 속에서 몰아내고 있었으며, 그가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다’(p. 397)라고 말했을 때 난 불안을 앞에 두고 ‘고개 돌리기’와 ‘눈감기’를 ..

구스타프 김의 슬픈 바다

- 문화일보 2000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읽고 난 다음 커피를 끓이고 있는 동안, 그 짧은 동안 이 소설에 대한 나의 평가는 달라졌다. 아니 그것보다는 막상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이나마 짧게 기록해두기 위해 자리에 앉는 순간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읽고 난 다음에는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생각했으나 지금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대중소설들의 '표피적 재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표피적 재미로 따지자면 엄청난 자본력으로 만들어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가장 재미있을 것이며 매일 저녁마다 집집의 티브이 브라운관을 채우는 오락 프로그램들도 표피적 재미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그래서 소설이 이런 뉴의 문화들과 ..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탈로 칼비노

존재하지 않는 기사 -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민음사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탈로 칼비노, 민음사 1. 모든 것들이 '희극'으로 결론 나는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면 '존재하지 않는 자'에 의해 존재하는 자들(우리들)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자로 인해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그 의미란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소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기만'이라 하더라도 '사랑'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현대란 보이는 세계의 화려함과 편리함, 또는 현란함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에 의해서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이 아슬아슬한 지탱이 얼마 가지 못할 것임을 알..

바람 속의 네 사람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는 사람과 가슴에 많은 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 손가락 하나 사랑하는 이 가슴에다 심어주고 온 사람, 그렇게 세 명이서 만났다. 원래 네 명이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한 명은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고개'에게 손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개'는 웃기 시작했고, '가슴 구멍'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도 웃었다. 웃으면서 '고개'는 계속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고 '가슴 구멍'은 등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에 나 있는 구멍들을 통과해 나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손을 앞가슴 쪽에다 갖다대었다. 갑자기 돌풍이 몰아쳤고 '가슴구멍'의 몸에서 바람소리가 멜로디를 만들었다. '고개'는 너무 고개를 많이 돌려 목에서 이상한 소리..

음모이론 넘어서기

음모이론 넘어서기 - 서사구조와 그 한계 1. 몇 년전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라는 말로 듣는 사람을 갑자기 소름 돋게 만든 이야기가 있었다. 승강기 안에서 들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엄마로 변신한 귀신의 아찔한 대화. 하지만 이 이야기를 그저 그런 공포담으로 받아넘기기엔 어딘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어머니마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순간 우리들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대신 귀신을 등장시키는 이 공포이야기는 '가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믿음이나 가치가 상실되었고, '부모들'에 대한 아이들의 숨겨진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안쓰러운 이야기 속에서 요즘의 우리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

바로크와 로코코

바로크(Baroque)와 로코코(Rococo)를 분리된 예술사조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면 로코코는 자신감 넘치던 바로크의 숨겨진 이면을 예술가 스스로가 깨닫게 된 것에 불과하니깐. 그리고 예술사에서도 흔히 로코코를 바로크 예술의 후기 경향으로 분류한다. 바로크 예술가로는 바흐, 베르니니, 카라바지오, 렘브란트, 푸생, 루벤스, 베르미르 등등이 속한다. 음악에서는 통저음과 변주의 형식이 등장하고 미술에서는 인간적인 면모의 강조와 빛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형식에 있어서의 고전주의적 화풍은 확고한 질서 속에 대상들을 위치시키길 원하지만 바로크는 끊임없이 변하고 운동하는 이 세상의 우연 속에다 대상들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나 병들어 죽는 풍경을 자신만만하게 묘사하기도 하고,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