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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든 것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은 아래도 떨어지는 것일까? 10층 옥상에서 떨어지는 24살의 청년, 다리 난간을 부수고 떨어지는 스쿠프, 아니면 기력이 다한 봄 나무의 꽃잎. 과연 그것은 만유인력의 법칙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떨어지는 운동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로 밀어올리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일까? 다르게 생각해보자. 혹시 10층 옥상에서 떨어지는 24살의 청년은 땅에 부딪히는 순간, 그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발없는 새의 이야기. 그 새는 평생동안 땅에 닿지 못한다. 발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언제나 하늘에서 자고 하늘에서 먹고 하늘에서 산다. 그러나, 그러던 발없는 새도 생에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다. 죽음. 발없는 새와 반대로 우리는 ..

베르미르

베르메르Vermeer, 창해 ABC북 한낮의 기온도 영도를 넘기지 못한다. 겨울이다. 추운 겨울이다. 늦은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오전 뉴스를 보면서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때때로 소란스러움도 수면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종일 거리에서, 지하철 속에서, 를 읽고 보았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다음 아주 짧은, 그러나 깊고 자욱한 슬픔의 감정에 빠진다. 이 책의 표지그림인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고 어깨 너머로 관람자를 쳐다보는 소녀의 자세는 더할 수 없이 자연스럽’고 ‘눈동자에 반사되는 빛, 진주 속에 비친 창문의 영상, 아랫입술에 보일 듯 말 듯 반짝이는 윤기는 마치 이 소녀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이 ‘소녀의 윤곽은 빛과 색채의 효과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나 이 그..

오늘 아침

새벽 5시에 잠을 잤다. 그리고 힘들게 10시 40분에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1시. 무려 두 시간 넘게 씽크대 수도꼭지와 싸웠다. 물이 새면 기분이 나쁘다. 덕분에 스패너 하나를 사게 되었다. 이전 집에선 주로 보일러와 싸우고 여기에선 주로 수도꼭지와 싸운다. 그럼 다음 집에선 전기? 호.호. 그러면 전기 감전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 설마 전기 인간이 되는 건 아니겠지.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곧장 녹는다. 하지만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뚫고 땅 속으로 스며드는 눈은 몇 되지 않을 게다. 도시의 흙은 죽어버렸고 숨 쉬는 대지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에 끊어져 버렸다. 간밤에 김현의 를 뒤적거렸는데, 그는 소설이나 시 읽기를 좋아했을 뿐, 사유의 명석함이나 문장의 정확함을 추구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 아베 코보(지음), 김난주(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55 그는 소설이 끝나고 그 모래의 세계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 속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 속에서 그가 늙어죽고 그녀가 늙어죽고 그들이 살던 집이 모래로 뒤덮이는 것을 아베 코보가 보여주었다면 독자들은 무슨 말을 할까. 혹시 그녀처럼 ‘무슨 상관이에요. 그런, 남의 일이야 어떻게 되든!’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감동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 그저 쓸쓸할 뿐이다. 모래의 세계 속이나 낮고 높은 건물로 둘러쳐진 도시 속이나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다. 소설은 육체의 고립을 극대화했을 뿐이지, 소설 밖 우리들의 의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딘가에 갇혀있었다. 아베 코보는 갇혀있는 우리들의 한 면..

너바나

Alternative Rock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다. 원래 펄 잼은 꽤나 좋아했지만, ... 그러고 보면 사람은 자기가 보낸 20대를 계속 되새기면서 늙어가나보다. 음악도 그런 것같고 책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고 ... ... 컴퓨터를 켜놓고 벅스뮤직에 들어가 너바나의 여러 앨범을 들었다. 그들의 앨범이 나왔을 때 그들의 음악을 자주 듣지 않았는데. 오후 두 시다. 오늘은 뭘 하지. 요즘 내가 하는 일은 잠자기 뿐이다. 지난 금요일부터 해서 하루에 12시간 이상 잠만 잤다. 잠은 잘수록 계속 잠이 온다. 이러다가 '잠자는 김용섭'이 되는 건 아닐까. '시끄러운 도시 속 잠자는 김용섭'이라는 동화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동화? 아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화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또 잠을 자야..

내 생일날의 고독, 에밀 시오랑

(원제 : 태어남의 잘못에 대하여) 에밀 시오랑 지음, 전성자 옮김, 에디터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평생을 미혼으로 남은 채 파리 어느 다락방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현대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에 휩싸인 어떤 매력을 풍긴다. 또한 그의 프랑스어는 어느 잡지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지난 세기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 문장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매력, 그의 문장만으로 그를 좋아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가 가지는 인생에 대한 태도에 있다. 가령 이런 문장들,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유일한 사항은 생에 기대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니라 태어났다는 재앙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그 재앙에..

방향

칼 포퍼의 를 읽고 있다. 그의 생각들이 지극히 현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베 코보의 도 읽고 있다. 이 소설이 실존주의적이지만, 그것보다 차라리 현대적 에로티시즘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니 실존적 에로티시즘 말이다. 모래 언덕에 의해 갇혀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이 경우 에로티시즘보다 실존주의가 먼저이겠지만, 아베 코보가 인정하듯이 30대란 참 어정쩡한 나이다. 아베 코보의 단편집이 번역되어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을 구해야겠다.

MOU

양해각서(MOU : Memorandom of Understanding)는 일반적으로 기존 협정에서 합의된 내용의 뜻을 명확하게 하거나 기존 협정의 후속조치와 관련된 내용을 규정하는 절차다. 본래 국가간에 문서 형태로 된 합의를 의미하며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과 같은 효력을 갖는것이지만 최근에는 그 범위와 뜻이 넓어져 정부간, 국가 기관간, 일반 기관간, 일반 기업간에 상호 제휴와 협력 등을 위해 맺는 다양한 형태의 문서로 된 합의사항을 MOU로 표현한다. 즉, 당사자간의 교섭 결과 서로 양해된 사항을 확인, 기록하는 것이 양해각서다. 이에 따라 양해각서가 갖는 구속력의 범위도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으며 현재에는 통상적으로 법적인 강제성은 없으나 타당한 근거없이 양해각서를 위반할 경우 도덕적인 비난이 따르..

양화소록, 강희안

양화소록 - 강희안 지음, 서윤희 외 옮김, 김태정 사진.감수/눌와 양화소록(養花小錄) 강희안 지음 (서윤희/이경록 옮김, 김태정 사진/감수), 눌와, 1999 작년 여름 붉은 꽃이 피어있는 서양난 하나를 구해 기르게 된 적이 있었다. 처음 꽃을 기르게 되었다는 반가움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 빛깔의 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꽃도 떨어지고 채 몇 주 지나지 않아 그대로 죽어버렸다. 다시 꽃을 사서 기르리라 생각 했지만, 바쁜 직장 생활 와중에 그런 생각은 가끔 말라죽어있는 난을 볼 때뿐이었고 그 사이 해가 바뀌어 버렸다. 해가 바뀌는 동안 나는 강희안(姜希顔:1418-1465)의 을 읽게 되었다. 나에게는 라는 그림으로 알려진 조선 초의 선비 화가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그림에만 뛰어났던 것이..

젊음이라는 이름의 병

기괴하면서 어쩐지 슬픈 기분에 나는 젖어 있었다. 인생은 나를 구름 속에 머물게 하는 일종의 대좌(臺座) 위에서 내 눈에 비치고 있었다. 대지에 닿고 싶다고 강력히 바라고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지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젊었다 - 는 것은 결국 내가 자신의 착오를 사랑했으며, 그 주제에 남으로부터 그것을 지적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피했었다는 뜻이다.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그것을 바란다는 그 청춘기의 병(病), 그 병이 솔직히 말해서 나의 내부에서는 거의 미친 듯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을 피로하게 하고, 벌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리고 달아나고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일찌기 없었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