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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일요일에 낯선 사람들과 술을 마셨는데, 썩 행복하지 못했다. 그들이 날 낯설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이 낯설었다. 내가 누군가를 낯설어하듯이 누군가도 나를 낯설어할 것이다. 낯설다는 느낌은 '근대'에 새롭게 발견되어 주목한 느낌이다. 낯설다는 건 우리의 삶이 모험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도시는 난리다. 거리는 사람으로 넘쳐나고 차들은 거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영풍 문고에서 몇 권의 책을 샀고 밤 늦게 통닭과 케익과 맥주 한 잔을 마실 계획이다. 아주 조금만 먹어야지.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건 따뜻해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낯설게 느낀다는 건 스산하거나 쌀쌀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같기도 한데,..

불멸, 베르메르, 칸트

* 보라매공원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가지고 간 책들을 읽었다. 쿤데라의 을 다 읽었고 창해 ABC북 시리즈의 한 권인 와 지성의 샘에서 나온 아담한 사이즈의 를 읽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를 읽는 몇 십분 동안 너무 집중을 한 탓인지, 지금 머리가 무척 아프다. 여기 몇 가지를 메모해 둔다. 1. 불멸 밀란 쿤데라의 소설 이름이다. 바흐친이 말한 다성성, 또는 카니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가 등장하는 이유는 허구와 실재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매우 철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는데, 형이상학에서 문제되는 가상과 본질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는 다시 변증법적 순환과 연결된다. 2. 베르메르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관능적이다. 이러한 관능성은 로코코와..

청담동 나비

나비에서 술을 마셨다. 지하 1층이었는데, 더 밑에 조성모 작업실이 있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는 문 앞에 여학생들이 서있다. 여학생들이라. 회사가 없어지고 난 무직자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프거나 두렵거나 ... 그렇지 않다. 도리어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우며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음에 기뻐하고 있다. 토요일이다. 종일 잠을 잤다.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다들 헤어지고 난 다음, 집 근처에 와서 혼자 술을 마셨다.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춤을 춰서 피곤할 뿐이다.

우울증

검은 음표들이 아래로 떨어지면 거리는 순백의 빛깔로 빛나고 내 초라한 청춘의 섹스는 그녀의 신음소리로 옷을 갈아입는다. 투명한 유리창은 몰락의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 가브리엘 같았고 말없이 내리는 저 흰 눈은 그대 슬픈 눈동자를 닮아있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내 정액도, 그대 신음소리도, 우리 살갗 위를 흐르고 있는 땀방울 하나하나 대기 속으로 녹아 사라질 때, 보드라운 입술로 내 혀를 감싸며 내 별 두 개 가슴에 달고 있는 그대, 내 온 몸을 받아준 그대, 젖은 목소리로 그대 사랑을 노래했지. 로코코를 닮은 그대 사랑을. * * 언제 적었는지도 모를만큼 가물가물한 소설 한 모퉁이 구절이다. 적다 말고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 때부터 멈춘 이 소설은 꽤나 나이를 먹었다. 며칠 전, 잔뜩 쌓인 종이들을 뒤지..

<불멸>과 관련된 짧은 노트

밀란 쿤데라의 이라는 작품을 읽고 있다. 이 유쾌하지만 슬픈 이 독서 중에 떠오른 몇 개를 노트해본다. 노트란 내 기억력의 또다른 방식이다. 1. '투쟁'의 마지막 부분, 소설의 묘사가 연극 무대의 묘사로 바뀌는 부분이 있다. 독자는 소설 속에서 빠져나와 연극 무대 바깥에 있는 관객으로 변한다.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의 의지에 의해. 이러한 방식은 독자에게 소설에 너무 빠지지 말고 소설 속 풍경을 보다 객관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는 소설가의 의도이다. 그만큼 독자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는 소설가가 의도적으로 객관화를 시켜줘야만 객관화를 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다. 2. '소외'란, 독일어로는 Entfremdung, 영어로는 Alienation, 불어로는 Alie'nation으로 표기한다. 이..

몇 편의 영화들

1. "극장에 가서 영화 보기", 내가 자주 하는 행동이 아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극장에 가는 일이 생긴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그렇다면 나는 극장을 싫어하는 것인가, 영화를 싫어하는 것인가, ... 실제로는 극장을 싫어하지도 영화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극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강요하고 어떤 표정 짓기를 요구하며 그 속에 난 어떤 말없는 폭력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는 무척 현대적인 표현양식이라는 것을 시간이 지날 수록 깨닫고 있다. 소설 양식에서 '소격효과'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2. 스타워즈 - 클론의 습격 이 영화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무척 좋다. 별 생각없이 볼 수 있다. ..

정치와 지식인

되도록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면 어느 것이 옳다고 쉽게 판단내릴 능력도, 판단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되, 충분히, 그리고 사려깊게 비판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비판적인 태도가 냉소적인 태도로 흘러가면 안 된다. "미국의 기만적 논리를 충직한 앵무새처럼 복창하는 지식인들이 버젓이 행세하는 사회를 미국이 새삼 존중할 리 없다." 한국일보 4일자, 어느 칼럼에 실린 문장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집에서 조선, 중앙, 동아일보를 받아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조선일보는. 나는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회의적이고 비판적일 때, 지식인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질 수 있을 것이다. 보머Baume..

사무실, 아침

일어나니 9시 10분이었다. 세수를 하고 아침식사를 했다. 지난 여름 때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아침밥을 겨울에 다시 먹게 되었다. 실은 내일 새벽 동생이 캐나다에서 귀국한다. 그 때문에 어머님께서 올라오셨다. 집에서 나오니, 10시였다. 출근시간이 10시까지인데, 집에서 10시에 나왔다. 11시가 다 되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라곤 짐 정리와 커피 마시기, 웹 서핑, MSN 쪽지질이 전부다. 온라인서점에서 책 두 권과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눈고양이 다이어리가 와있다. 눈고양이, 사람들은 이 녀석을 스노우캣으로 알고 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라면 '365일의 반찬백과'라고 했을 텐데. 스노우캣. 영 상상력이 부족한 단어다. 나라면? 글쎄. '몽블랑을 입에 문 노란 고양이', 음, 이건 아..

마담 보바리

며칠에 걸쳐 읽었다.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풍부한 묘사와 상황설명이 있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한국 소설들을 읽어보면 대사가 너무 많고 묘사는 거의 없다. 이런 경우 쓰레기가 되거나 감동은 오래 가지 않는다. 요즘 작가들은 참 형편없이 글을 쓴다. 번역이 안 되어서 노벨문학상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는 순 거짓말이다. 마담 보바리도 불어로 읽고 싶다.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쉬지 않고 해야하는데, 너무 게으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