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44

비토레 크리벨리,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라는 템페라화로 베네치아의 화가 비토레 크리벨리(Vittore Crivelli, 1444 ~ 1501/1502)의 작품이다. 149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후기 고딕의 자연주의와 초기 르네상스의 화풍이 드러난다. 실은 양식상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서,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다. 지역적으로 이탈리아에 속한 관계로 초기 르네상스 작품으로 보아야 하지만, 자연주의적 표현이 두드러지긴 하나, 인물의 표현에 있어서 르네상스 특유의 생동감은 다소 떨어진다. 그래서 고딕 자연주의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해야 할까. 성 카타리나는 4세기 경의 카톨릭 순교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알렉산드리아 총독의 딸로서 학자이며 카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카톨릭 박해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를 그리워할 것이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그는 나에게 현대소설을 가르쳐 주었다. 소설론 수업이 아니라 쿤데라의 소설이!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형편없는 문학강사들과 평론가들은 하일지의 소설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들이 왜 로브-그리예나 미셸 뷔토르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늘 밀란 쿤데라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궁금했다.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는, 안타깝게도 체코에서는 조국을 버리고 떠난 이방인일 뿐이었다. 의 보후밀 흐라발이 체코에 남아 그 곳에서 싸우며 글을 쓴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토니 주트는 20세기를 회고한 책에서 그의 체코 친구들은 밀란 쿤데라가 서방에서 인정받고 인기가 많은 것에 대..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두 인물이 있는 수영장)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캔버스 위에 아크릴물감, 210cm*300cm, 1972년도 작품 외로움에 대한 작품이라고 하면 어떨까, 아니면 그리움에 대한 작품이라고 한다면. 이건 동성 연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면서 인상주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30대 중반의 데이비드 호크니는 동성 연인과의 헤어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회화와 사진 사이를 오가며 원근법에 대한 회화적 고찰을 이어나간 작품이기도 하다. 전자의 측면에서 외로움에 대한 작품이며, 후자의 측면에서 인상주의자들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작품인 셈이다. 카메라의 등장으로 인상주의가 사진이 가지는 환영주의를..

성 바르톨로메오 조각상

마르코 다그라테(Marco d'Agrate, 1504-1574)의 조각상 은 밀라노 두오모 성당 안에 있다. 내가 왜 이 작품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보고 끔찍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사제 중 한 명인 바르톨로메오 성인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지는 형을 당하며 십자가에 묶인 채 순교하였다. 그래서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상징은 벗겨진 살가죽과 칼이다. 아래 조각상에서 몸을 두르고 있는 것이 바로 벗겨진 살가죽이다. 그래서 몸은 처참할 정도로 드러나 보는 이를 아프게 한다. 전형적인 매너리즘(*) 작품으로 흔들리는 신앙을 잡기 위한 처절함이 드러난다. 16세기는 심리적 차원에서 중세적 세계관과 근대적 세계관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시대다. 양식적으로는 근대로 넘..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자화상(Self-portrait)

우연히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의 자화상들을 보았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이지만, 그의 작품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과의 그 결이 다르다. 예술의 역사를 공부할 때, 지역적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이런 점에서 뒤러는 참 특별한 화가다. 그의 작품들에는 르네상스 세속주의도 드러나지만, 그와 함께 그 당시까지 남아있던 후기 고딕적 요소에서 자유롭지 못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The Arnolfini Portrait (or The Arnolfini Wedding, The Arnolfini Marriage, the 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 or other titles) Jan van Eyck,..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알랭 레네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L'annee derneire a Marienbad (Last Year At Marienbad) 알랭 레네(Alain Resnais)감독, 알랭 로브그리예 Alain Robbe-Grillet 극작 Giorgio Albertazzi, Delphine Seyrig, Sascha Pitoeff 출연 실은 이 정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들마저도 이 영화 와 비교한다면, 정말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상당수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역대 최악의 영화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화평론가들과 애호가들은 이 영화를 누벨 바그 최고의 영화로 평가하지만, 막상 직접 본다면, 더구나 지금, 2023년에 보았다면,..

Arvo Part, The Collection

Arvo Part, The Collection, Brilliant Classics “나의 칼레비포에그(Kalevipoeg)*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아르보 페르트 습관적으로 음반을 올리고 플레이 버튼를 누른다. 사각의 방은 어느 새 단조로운 음들로 가득차고, 마음은 가라앉고 대기는 숨을 죽이며 공기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건조한 피부로 느껴진다. 이 때 아르보 페르트가 바라던 어떤 영성이 내려앉는다. 적대적인 느낌을 풍기며 나를 옥죄던 저 세상이 어느 새 감사한 곳으로 변하며 한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아픔들마저도 나를 끝끝내 성장시킨 어떤 고비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는, 20세기 후반 이후 최고의 작곡가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정확히 2..

작은 방주 - 최우람 전, 국립현대미술관, 2022.09.

작은 방주 - 최우람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2.09.09 ~ 2023.02.26 최우람은 국내에선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한 작가이다. 자주 만날 수 있는 작가이다. 다만 이번 전시처럼 큰 작품을 자주 보기란 쉽진 않지만. 기계에 영혼을 불어넣는다고 할까. 그렇다고 기계가 따스해지는 건 아니다. 반대로 따스한 생명체의 느낌을 차가운 메카닉으로 표현하였을 때의 낯설음, 기괴함, 아름다움, 그리고 차가움으로 이어지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더구나 현대적인 느낌보다는 고대적인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것은 반복적인 기계 운동이 마치 고대 주술사의 몸짓처럼 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 탓일까. '기계의 주술성'의 관점에서 최우람의 작품 세계를 모색해보아야 상당히 흥미로울 것같다. 그래도 일..

앙리 마티스, 앉아있는 분홍빛 누드 Pink Nude Seated

늘 그렇지만, 앙리 마티스는 언제나 옳다. 가끔 모더니즘을 낭만주의로 오해하곤 하는데, 절정기의 모더니즘은 확실히 고전주의적이다. 앙리 마티스의 부드러운 선과 감미로운 색채는 우리로 하여금 심리적 안정과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준다. 마치 그가 마지막으로 공을 드렸던 로자리오 성당을 떠올리게 만드는 평안함이다. 현대적이며 고전적인 감성은 이전 고전주의가 사용했던 환영주의가 아니라 기하학적 추상을 불러들이며 현대 문명을 반영한다. 기하학적 진보를, 상대성 이론을, 양자역학을. 과거와의 단절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꿈과 미래를 노래한다. 이런 점에서 20세기 후반의 팝아트와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현대 과학은 급격하게 낭만주의로 기운다. 토마스 쿤의 도 확실한 낭만주의적 텍스트인 셈이다. 여기에서 딱딱하..

영웅

영웅 윤제균 감독, 정성화, 김고은 주연, 2022년 12월 개봉 뮤지컬을 거의 보지 않는다. 실은 좋아하지 않는다. 뮤지컬 음악이 좋다고는 하나, 따라 부르기도 쉽지 않고 일반 가요나 팝만큼 대중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고전 오페라처럼 대단한 음악성을 가진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아서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들과의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요즘 내 문화 생활은 몇 달에 한 번 전시 보러가는 경우가 전부라, 뭐라 말하기 부끄럽기도 하다. 아들과 함께 을 보았다. 악극이라는 사실은 영화 첫 시작에서야 알았다. 배우들의 연기나 노래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영화라는 점이 다소 아쉬웠을 뿐. 뮤지컬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영화를 조금 지루했고 어딘가 다소 과잉된 듯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