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겨울의 시작

소곤소곤한 12월의 낯선 월요일 오후가 저 멀리 떠있는 한낮 달의 인력에 이끌려 밀려다니는 찬 파도처럼 내 눈 앞을 지나쳐간다. 오후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불길한 추억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다섯, 여섯, 여섯, 여섯,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중단시킬 수 없는 과거, 또는 미래의 어두움이여. 축 쳐진 어깨 위에 앉은 흰 날개의 소녀는 간밤의 악몽 속에서 머문 채 눈물을 흘리고 오래된 커피 믹스로 탄 머그잔의 커피는 낡은 먼지 향을 풍기며 온기를 잃어간다. 이번 겨울,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찬 별빛들이 우수수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우울한 영혼들의 슬픈 축제들로 만들어질 모양이다.

공포

넓은 사각의 창, 우울한 흰색 블라인드를 올리고 어둑해지는 파란 하늘을 보며 잠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밥을 먹으니 졸린 것 뿐이었다. 잠이 든 사이 고객사 담당자에게 문자가 와있고 그 사이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어두워진 일요일 밤하늘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휩싸였다. 결국 월요일 아침이 시작되고 별 일 없었다는 듯 해가 뜨지만 일요일 밤 그 쓸쓸한 공포와 두려움은 견디기 너무 어렵다. 카프카가 그리워진다. 그를 만나더라도 그와 나눌 이야기가 많지 않겠지만. 자기 전 말러를 들어야겠다. 종종 구스타브 말러는 견디기 힘든 우울함을 견딜 수 있는 우울함으로 치환시켜주기도 한다. 말러를 같이 들을 수 있는 우울한 사람 한 두명 같이 있으면 좋겠다. 이 어두운 일요..

근황

근황이랄 것도 없다. 너무 바쁘다. 올 초 플러스 인생으로의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것과는 반대로 다시 마이너스 인생을 향해 가고 있는 연말이다. 연애에의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지만, 연애란 의지와는 무관하고, 싫다는 여자는 끈질지게 쫓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마음으로는 관심 있음에도 불구하고, 툭 싫다고 말하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하긴 그런 여자도 없었군). 이해를 해야만 된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싫다고 말하는 여자를 쫓아다니는 건 별로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연애 코칭을 자처하고 나서는 이들 모두 나의 이 태도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지만, 역시나 난 내키지 않는다. 결국 내가 듣는 소리란, '결혼하셨어요?', '애는 있으세요?', '아니 어쩌다가 아직 솔로세요?'라는 끔찍한 말들 뿐이..

일요일 밤의 노래

종일 내 마음 속에서 자라나는 어두움과 싸웠다. 향긋하며 매혹적인 어두움은 한낮의 침묵과, 소년의 허한 미소와, 거친 대기의 호흡을 먹고 자라났다. 내 영혼의 칼날은 너무 얇고 날카로와, 어두움을 지나칠 뿐, 저리로 밀어내지 못하고 무겁고 침침한 빛깔로 마음이 물드는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참혹했다. 참혹한 밤이 오고 말았다. 다가올 미래가 희망에서 공포로 바뀌는 건 내 심장과는 무관한 일이다. 예정된 패배를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아직 젊고 무분별하다. 하지만 패배와 청춘은 무관하고 11월의 밤은 길기만 하다. 어느 새 침묵은 내 곁에 다가와 속삭이며 영혼의 칼날을 내려놓으라고 노래부르네. 그래, 이젠 쉴 시간이긴 하지. 영원히 쉴 시간. 아주 영원히.

토요일 하루

늦게 집에 들어온 탓에 오늘, 토요일 오전 늦게까지 잠을 자리라 예상했는데, 채 9시도 되기 전에 눈을 떴다. 그리고 2시간 동안 세탁기 돌리고 설겆이 하고 청소기에, 걸레로 다 닦았다. 심지어 오븐 옆에 눌러 붙은 기름 때까지 제거해버렸다. 몇 주만에 헬스 클럽엘 가, 1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오후 늦게는 면접이라는 걸 봤다. (* 면접, 늘 익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저녁은 홍대 근처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지금은 사무실이다. 월요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남아있기에. 노트북을 들고 집으로 가, 내일 종일 일에 매달릴 계획이다. 이런 밤, 술에 취해 헤롱헤롱 대면 기분이 꽤 좋아질텐데. 요 며칠 술을 많이 마신 듯하다. (* 집에 이제 와인이 8병이 되었다. 연말 모임 때 한 병씩 들고 나가 마실 ..

라 트라비아타

초겨울 어둠이 사각사각 방 구석에 놓인 오디오를 물들이는 시각은 늘 밤 11시 20분이다. 나는 불가능한 포즈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언제나 태양이 높이 떠서 하늘 한 가운데에 박힌 가을날 붉은 장미꽃 잎파리 같은 손짓을 흉내내며, 시디 플레이어에 음반 하나를 올린다. 그리고 작게, 점점 크게 울리는 가녀린 여자의 울부짖음. 마리아 칼라스의 '비올레타' 지난 일요일 예술의 전당에 가서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연주회나 공연은 거의 보지 않는 편에 속해, 이번 오페라 관람은 난생 처음이었다. 극 초반 비올레타로 나온 스테파냐 본파델리는 오페라에 완전히 몰입되지 못한 채 무대에 올라, 실망스러웠다. 대신 알프레도와 제르몽으로 나선 두 성악가의 노래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극 후반..

바람, 그리고

시간들이 색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 이들은 바로 인상주의자들이다. 시간 따라 변하는 색채의 현란함, 그 현란함이 가지는 찰라의 쓸쓸함, 그리고 쓸쓸함이 현대인들의 피부를 파고 들어 삶의 양식이 되었음을 깨닫게 해준 이들은 인상주의 이후의 모더니스트들이다. 그리고 그 쓸쓸함은 본래적인 것이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견고한 피부를 만들고자 한 이들이 초기의 모더니스트들이라면, 그 쓸쓸함으로부터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며 순간의 희열 속에 온 몸을 던지는 것이 후기(post)의 모더니스트들이 아닐까. 고객사를 가다 오는 길에 어느 집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붉은 잎사귀를 찍는다. 하나는 내 혓바닥 같다. 다른 하나는 누구의 혓바닥일까. 지금 나는 누군가의 혓..

La Vie

1. 존재의 여백을 드러낸 와인병 바닥의 침묵. 아무도 깃들지 못하는 빌라 4층 거실에 판을 펴고 달콤한 크래커 한 조각, 와인 세트와 함께 구한 유리 와인잔, 그리고 생테밀리옹 출신의 레드-와인. 생테밀리옹에서 나와 한국까지 건너온, 그리고 30중반의 총각에게까지 흘러들어온 사연 속에서 나는 술 취한 모나드가 되어간다. 이 와인, 처음 열었을 때의 숙성되지 못한 거친 향은 사라지고 개봉하고 며칠 지나니 놀라울 정도의 부드러움으로 사람을 매혹시켰다. 대기만성이라고 해야 하나. 2. 오래 전, 혼자 아트선재센터에 가서 영화 '바스키아'를 보았다. 그 이후로 아트선재센터에 자주 갔다. 전시를 보러 간 횟수보다 사업 때문에 자주 갔다. 운이 좋았다면 뭔가 하고 있었을 텐데, 운도 없었고 인연도 없었다. 바스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크~. 안경테를 뿔테로 바꾸었다.살아있음을 알리는 셀프카메라. 일요일 오후 늦게 국제갤러리에 갔다.바스키아의 작품 앞에서, 바스키아라는 인물이 나와 무척 친했던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생에 친구로 지냈나?)그의 작품이 낯설지 않고 친숙해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런데 바스키아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가. ㅡ_ㅡ;;;그런데 왜 나와 인연 닿는 이는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