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 1048

비 오는 화요일 새벽

지난 회사에서도 월요일이면 정신이 없었는데, 이번 회사도 월요일이면 정신이 없다. 오늘은 종일 회의를 했고 여기 저기 제안서와 견적서를, 현재 품질에 문제가 생긴 프로젝트의 이슈 보고서를, 내일 예정된 주간 미팅의 변경과 신규 미팅 요청 등을 하고 나니, ... 벌써 새벽 2시다. 끝나지 않는 일 마냥 내 생활도 윤택해지고 사랑스러워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바람은 그저 바람으로 머물 뿐. 장마 비 오는 화요일 새벽, 포티쉐드의 음악을 듣는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 마신 것도 수 년이 지났다. 그 때라면, 새벽 퇴근길에 맥주 한 잔 할 공간이, 같이 마실 사람이 있었는데 ... ...

불편한 공포,들.

계절이 사라진 자리에 마음의 불편함만이 자리 잡는다. 건너고 싶지 않은 저 다리의 이름은 시간. 혹은 계절. 내 허약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느껴지는, 서늘한 공포. 커피의 향이 사무실 책상 위를 가득 채우지만, 초여름 바람이 열린 창틈으로 들어와선 낚아 채어간다. 향기는 사라지고 어수선한 책상 위 서류더미는 내 마음 같다. 혹은 그대 마음. 해소되지 않은 채 쌓여가는 정신적 모던의 유산들. 불편한 언어들. 그리고 공포. *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

월요일 아침

혼자 있을 시간이 사라졌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니 말이다. 주말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고 늦봄 꽃 향기에 취했다. 그 향긋한 내음 사이로 아이는 웃고 뛰었다. 그리고 월요일이다. 주말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다시 월요일을 시작한다. 지난 금요일에 면접을 봤던 웹 개발자는 출근하지 않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 문자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꽤 상심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된다. 혼자 고민해야 될 문제는 아니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만 신경 쓰기도 바쁜데 말이지. 다시 월요일이다. 그리고 비가 온다. 비를 맞으며 출근 했다. 팻 메쓰니의 음반을 뮤직 사이트에서 찾아보았으나, 없다. 비오는 날, 나는 팻 메쓰니의 New Chaut..

2013년 부처님 오신 날 - 국립현충원 호국지장사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신 - 초월적 존재 - 를 부정하지 않으나, 칸트의 생각처럼 우리의 시대는 저 먼 세계와 거대한 단절이 있고 그 사이를 왕래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탓에, 무교에 가까운 나에게 절은 그저 관광지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부처님 오신 날, 아내가 절에 가자고 했다. 작년엔 뭘 했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절이라~ ... 하긴 긴 연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한 나에게 선택지란 없는 걸까. 국립 현충원 안에 제법 큰 절이 있다고 했다. 국립 현충원은 입구만 보았을 뿐이고 그 안의 절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호국지장사' ... 부처님 오신 날이라 사람들로 가득했다. 불심 가득한 신자들도 있었고 믿을만한 것들이 사라지는 21세기 어느 반도의 봄,..

흩날리는 봄날의 문장.들.

아직도 오열을 터뜨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가 아니라 오로지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 뿐이다. ... ... 따라서 모든 강박 관념과 상반된다 할지라도 이같은 가증스러운 추함이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 과연 그럴까? 하긴 아름다움은 오열을 터뜨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로 인한 상처는 오열을 불러올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바타이유의 말이 맞는 걸까. 그렇게 동의하는 나는 그러한 퇴폐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일까. ... 아련한 봄날, 외부 미팅을 끝내고 잠시 걸었다. 부서지듯 반짝이는 봄 햇살 사이로 지나가는 도심 속 화물열차. 바쁜 사람들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오는 속도처럼 느리게 지나쳤다. 그 사이로 사람들과 자동..

해마다 벚꽃이 핀다.

해마다 벚꽃이 피지만, 벚꽃을 대하는 내 마음은 ... 세월의 바람 따라 변한다. 오늘 아침 늦게 출근하면서 거리의 벚꽃을 찍어 올린다. 여유가 사라지고 마음은 비좁아지고 있다. 고민거리는 늘어나고 글을 쓸 시간은 거의 없다. 지금 읽고 있는 김경주의 '밀어'도 몇 주째 들고 다니기만 하고 있다. 초반의 독서 즐거움은 금세 지루함으로 바뀌고 블랑쇼나 투르니에 수준의 산문을 기대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김경주의 산문은 별같이 반짝이는 몇 부분을 제외하곤 그의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봄이다. 주말에는 근교 교외로 놀러 나가야 겠다. 봄의 따스한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전에 내 육체 속에 그런 따스함을 밀어넣어야 겠다.

비 오는 토요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 식사를 하며, 소주를 마시며, ... 토요일 출근 풍경은 이루어졌다. 어찌된 일인지, 직급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내가 떠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접적인 불만은 아니고, 일이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 원칙을 떠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종의 압박 비슷한 것이다. 그만큼 불만이 많은 셈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한 달에 두 세 권 이상의 책을 읽고 다양한 잡지와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습득하려고 노력하는데, 입사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놀면서도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읽는 경우에는 가벼운 소설책이거나 자기계발서가 전부다. 아찔하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문적인 능력이 아니라, 전문적인 능력을 언제 어디에서나 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