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41

기억 서사, 오카 마리

기억 서사오카 마리(지음), 김병구(옮김), 교유서가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비난하지만, 이스라엘 안에서도 전쟁을 하는 자신의 나라를 비난하고 그러지 말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주류 언론에선 그들을 다루지 않는다. 이는 일본도 비슷하다. 중국은 죽거나 추방당했다.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 영국이나 프랑스에 살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문화적 배경이나 지역적 차이와 무관하게) 대체로 자주 듣고 읽게 되는 것으로 편향되기 마련이다. 일종의 반복 학습이랄까, 그래서 아무리 사실을 그대로 옮기더라도 한 번 편향된 시선을 가지면  아래선 대부분의 것들은 잘못 이해되고 그것으로 인해 끔찍한 비극이 생기기도 한다(이를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 정의한 바 있다). 어쩌면 아우슈비츠도 그런 ..

지난 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 회고록

지난 날의 스케치 버지니아 울프(지음), 이미애(옮김), 민음사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는다. 그녀의 >을, ... 고등학교 때 읽은 후, 산문집 몇 편을 읽었을 뿐이다. 그녀의 소설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에 다시 시도하고 있지만, 겨우 읽은 게 이 짧은 회고록이다. 회고록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고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 왜 다 죽는 걸까.   인생이 우리가 계속 채워 가는 그릇이라면, 그렇다면 내 그릇은 의심할 바 없이 이 기억 위에 서 있다. 그것은 잠이 들락 말락 한 상태에서 세인트아이브스의 아이 방 침대에 누워 파도가 하나둘 하나둘 부서지며 해변에 밀려오고 노란 블라인드 뒤에서 하나둘 하나둘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다. 바람이 블라인드를 휘날리며 바닥의 작은 도토리를 끌..

말하는 보르헤스, 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

말하는 보르헤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지음), 송병선(옮김), 민음사  Scipta manet, verba volant 입에서 나온 말에는 날개가 있지만, 글로 쓰인 말은 그대로 있다. - 12쪽  꾸준히 보르헤스를 읽는다. 보르헤스를 만나는 동안, 무척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 주제에서 저 단어로 옮겨다니다. 영국 문학을 이야기하다가 독일 철학자를 꺼내고 다시 고전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문학을 이야기하다가 동시대 아르헨티나 작가를 꺼내기도 한다. 이런 여행은 보르헤스만이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다.    영국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적은 말수', 즉 사물에 대해 조금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익스피어는 과장이라는 은유법을 즐겨 사용하던 작가입니다. (20쪽) 전혀 영국스..

필요, 속도, 탐욕 - 비제이 바이테스워런

필요, 속도, 탐욕(Need, Speed, and Greed: How the New Rules of Innovation Can Transform Businesses, Propel Nations to Greatness, and Tame the World's Most Wicked Problems)비제이 바이테스워런(지음), 안진환(옮김), 한국경제신문     책을 읽다가 보면, 저자들이 참조하고 인용하는 책들을 알게 된다. 이 책도 그런 책들 중의 한 권이었다. 2012년도에 첫 출간되었고 이듬해에 번역되었다. 벌써 10년 전이다보니, 일부는 지금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인용이나 분석, 의견이 포함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적절한 분석이며 주장이다. 이 책은 여러 사례들을 바탕으로 기술된 혁신(innovation..

나와 마주하는 시간, 라이너 쿤체

나와 마주하는 시간라이너 쿤체(지음), 전영애, 박세인(옮김), 봄날의 책    오랜만에 쿤체의 시를 읽었다. 실은 잘 모르겠다. 몇 편의 시를 옮겨적긴 했으나, 노(老)시인의 독일어는 한국어로 옮겨져 나에게까지 왔으나, 그 거리는 꽤 멀게 느껴졌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검은 날개 달고 날아갔다, 빨간 까치밥 열매잎들에게 남은 날들은 헤아려져 있다. 인류는 이메일을 쓰고 나는 말을 찾고 있다, 더는 모르겠다는 말,없다는 것만 알 뿐   아니면 내 문제인가. 나에게 이제 시(詩)는 너무 멀리 있는 건가.    사물들이 말이 되던 때 내 유년의 곡식 밭에서밀은 여전히 밀이고, 호밀은 여전히 호밀이던 때,  추수를 끝낸 빈 밭에서나는 주웠다 어머니와 함께 이삭을 그리고 낱말들을 낱말들은 까끄라기가 짧기도..

리더와 리더십, 워렌 베니스, 버트 나누스

리더와 리더십 워렌 베니스, 버트 나누스(지음), 김원석(옮김), 황금부엉이   1985년에 나온 책을 2024년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읽으면서, 그토록 많은 리더십 책을 읽었는데, 아직도 제대로 된 리더가 아니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고 리더십에 대한 통찰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구나 생각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누군가 나에게 '너무 사람을 믿지 말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을 맡기기 전에 먼저 신뢰가 우선이다. 나는 신뢰하고 신뢰를 구하기 위해 일을 주고 권한을 준다"라고 말했다. 원칙은 맞을 지 모르지만, 그 이유로 나는 몇 년 고생했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신뢰했고 일을 할 역량이 없는 사람에게 일과 권한을 주었다. 내가 가진 대원칙이 너무 강해, 나머지 관리 스킬이 무용지물이 된 ..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헬레나 로젠블랫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헬레나 로젠블랫(지음), 김승진(옮김), 니케북스   1.독서모임 '빡센'에서 선정해 읽은 책이다.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들과 관련없는 책이 선정되고 강제적으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독서모임에서 읽은 하이에크의 >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유감스럽게도 '자유주의'였다. 자유주의를 영어로 옮기면 리버럴리즘(liberalism)이며, 미국에서 리버럴은 진보 성향을 의미하는데, 하이에크가 '리버럴'인가 하는 의문을 이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선 '자유주의'라고 하면 보수 우파를 연상시킨다. 가령 '자유총연맹'같은 조직을 떠올리게 한다고 할까. 도대체 '자유주의'란 무엇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책이 선정되었고 이번에 읽었다. (메이너드 케인스에겐..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전쟁일기올가 그레벤니크(지음, 글/그림), 정소은(옮김), 이야기장수   전쟁의 끔찍함을 말해서 뭐할까. 얼마 전 봤던 짧은 동영상이 떠오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했었던 시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를 브리핑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다 듣고 난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임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https://youtube.com/shorts/LQq5RkL1egc?si=zIB81u1yWoy8QKxX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나는 우크라이나 정치 상황을 한 번 훑어본 적이 있었다. 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부터 간헐적으로 반복되어져 왔고, 그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

위대한 사상들, 윌 듀란트

위대한 사상들윌 듀란트(지음), 김승욱(옮김), 민음사   바로 뻔뻔한 영웅 숭배. 모든 것을 평준화하고 아무것도 우러러보지 않는 시대에 나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인 토머스 칼라일과 같은 자리에 서서, 플라톤의 그림 앞에 선 조반니 미란돌라(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철학자)처럼 위인들의 신전에서 촛불을 켠다. (17쪽)  이 문장을 읽으며 웃었다. 뻔뻔하긴 하다. 보통선거의 시대.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시대. 아무리 불평등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평준화되고 아무것도 우러러보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그래서 영웅이 사라지는 시대인가. 아니면 그 영웅의 자리에 팝 가수나 배우들이 자리잡은 시대인가.  이런 역사관에 누구보다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카를 마르크스다. ..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욘 포세(지음), 박경희(옮김), 문학동네   > 이후 두 번째로 읽는 욘 포세의 소설이다. 비슷한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그리고 페테르는 성냥갑을 집어 건넨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 사람은, 요한네스와 페테르는, 나란히 앉아 담배를 비우며 바다 저멀리 서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돌멩이 두 개가 페테르의 몸을 그냥 통과해 날아가다니 몹시 이상한 일이군, 아니 그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나, 그냥 착시현상이겠지,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는 걸,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페테르에게 그의 몸을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봐야 하려나, 그럴 수는 없어, 페테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지 그렇게까지는 못하지, 페테르에게 몸을 만져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