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7

대중의 지혜, 제임스 서로위키

대중의 지혜 - 제임스 서로위키 지음, 홍대운 외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대중의 지적 수준은 최악이다. 그 집단의 일부 우수한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이렇게 한탄했다. 그리고 대다수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까. 1841년 찰스 맥케이(Charles Mackay)는 ‘대중의 미망과 광기 Extraordinary Popular Delusions and Madness of Crowds’라는 책을 통해, “예로부터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생각한다고 했다. 군중은 집단적으로 미쳤다가 나중에야 천천히 지각을 되찾게 된다.”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판단이나 의사결정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글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의 판단이나 의사결정이..

낭만주의에 대하여

특집 ‘올바른 낭만주의의 이해를 위하여’(『세계의 문학』, 2002년 겨울호) -「지금 우리에게 낭만주의란 무엇인가?―문학적 절대」, 필립 라쿠 라바르트, 장뤽 낭시 -「소설에 관한 편지」, 쉴레겔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 김진수 지음/책세상 김진수,『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책세상 앙리 뻬르는 그의 책 에서 ‘고전주의는 불안정하며 일시적인 ‘평형상태’이며, 곧 뒤이어 무질서와 불안이 뒤따르고 있으며 고전주의 자체도 혼란과 무질서의 시기에 뒤이어 온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즉 그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낭만주의는 혼란과 무질서의 시기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미적 태도들을 통칭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고전주의의 입장에서 본 것일 뿐, 낭만주의 내에서 본다..

소설의 방법, 오에 겐자부로

소설의 방법 - 오에 겐자부로 지음, 노영희.명진숙 옮김/소화 하루 종일 밖을 떠돌다, 겨우 들어온 집은 아늑함을 가지지 못했다. 너무 거칠어, 마치 여기저기 각을 세운 채 모래먼지로 무너지는 사막 같았다. 어느새 내 작은 전세 집은 지친 몸과 마음을 뉘일 공간이 아니라, 또다른 전쟁터였고 내 마음은 새로운 전투에 임해야만 했다. 결국 도망치듯 책으로 달아났지만, ... ... 간단하게 서평을 올리고자 몇 달 전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다시 꺼내 읽으려 했다. 몇 달 전에도 힘겹게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의 방법'. 그러나 그 때의 기억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오에의, 이 오래된 책은 낯설고 또 힘겨웠다. 내 요즘의 일상처럼. 한때 소설 쓰기를 배웠고 소설가가 된 선후배가 즐비한 지금. 심지어 올..

헤르메스적 세계, 혹은 새로운 철학적 신화학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 H. 롬바흐 지음, 전동진 옮김, 서광사 이미 품절된 책, 그리고 헌책방에서조차 구하기 어려울 책이 된 롬바흐의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는 마치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아폴론 – 디오니소스) 아래에서 아폴론과 헤르메스를 대비시키며 현대적 신화학, 혹은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을 시도한다. 하지만 많은 현대철학자들에 의해 철학은 이미 미학화되었고 이 책도 그 지평을 따라 서사(신화)와 미적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책들 중의 한 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서양의 지적이며 미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들의 여러 사례들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사유를 설명해 가는 롬바흐의 서술은 이 책을 읽는 예상치 못한 즐..

보수적 문화사가로서의 부르크하르트

혁명 시대의 역사 서문 외 야콥 부르크하르트 지음, 최성철 옮김, 책세상 이 책은 역사학자이자 문화사학자인 야콥 크리스토프 부르크하르트Jacob Christoph Burckhardt(1818~1897)의 글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부르크하르트는 역사학자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르네상스Renaissance’로 더 알려진 학자일 것이다. (여기에서 ‘일반인’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지지만) ‘그리스 문화사 서문’, ‘여행 안내서의 16세기 회화 중에서’, ‘혁명시대의 역사 서문’, ‘세계사적 고찰 서문’ 등이 실린 이 책은 부르크하르트의 학문적 태도에 대해 알 수 있기에 매우 유용하다. 문화사는 과거 인류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그들이 어떻게 존재했고, 원했고, 생각했고, 관찰했고, 할 수 있었는지..

그 후, 그들의 사랑은 아마도

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민음사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세워서 자연을 억지로라도 자기의 계획에 맞추려드는 고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계획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연을 거역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건 버림받은 아내가 이혼장을 방패 삼아 부부 관계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228쪽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된다. 적어도 다이스케에게 있어선 그랬다. 그는 자연의 이치대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 일도 기획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외부 세계와는 무관한 듯 그렇게. 다이스케는 책상 위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약간 열려있는 툇마루의..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사랑의 피부에 미끄러지는 사랑의 말처럼 수련꽃 무더기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의 비늘처럼 요동치는 수없이 미끄러지는 햇빛들 어떤 애절한 심정이 저렇듯 반짝이며 미끄러지기만 할까?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를 섞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 토요일 오전 서재 청소를 하면서 읽은 또 한 편의 시다. 2002년도에 나온 시집이니, 벌써 7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에게도 몇 번의 사랑이 있었듯 싶지만, 이젠 흔적마저 없는 폐허일 뿐이다. 채호기의 시집은 사랑에 빠졌을 때, 적당한데, 나에게도 그러한 호사가 올까? 호사스러운 겨울이 오고 파아란 새 잎 돋는 봄이 오면, 내 마음의 폐허에도 따스한 온기로 넘쳐날 수 있을까. 아니..

광고판이 붙은 버스, 최승호

아침에 일어나 서재 정리를 하면서 방바닥에 뒹구는 시집 한 권을 펼쳐 들어, 몇 편 읽었다. 최승호의 1991년도 시집이다. 이 때 시집 가격은 2,500원. 하긴 그 때 학교 앞 식당에서 김치볶음밥 가격이 1,8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나는 한 끼 굶고 시집을 샀다. 요즘엔 새 시집을 거의 사지도, 읽지도 않지만. 확실히 현대란, 서사시의 시대이지, 서정시의 시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대 문학을 보면 서사시도, 서정시도 드물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포스트모더니즘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불투명하고 모호해진 현대 세계 때문일까. 최승호의 ‘세속도시의 즐거움’(세계사, 1991년)에 실린 시다. 마치 정권 바뀐 후의 우리 일상을 보여주는 듯해, 마음이 아리다. 광고판이 붙은 버스 운전사..

후기 마르크스주의

후기 마르크스주의 -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한길사 후기마르크스주의 Late Marxism 프레드릭 제임슨 지음, 김유동 옮김, 한길그레이트북스 몇 달 전에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서평을 쓰지 못했다. 딱딱하고 압축적이며 추상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이론서를 읽기에는, 내 독서 태도가 성실하지 못했다. 어떻게 겨우겨우 완독하기는 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아도르노에 대한 편애로 가득 찬 프레드릭 제임슨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속하지만, 아도르노는 자신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벤야민에게서 영향 받았겠지만, 실은 벤야민의 독특함 이상이다. 벤야민에 대한 이상한 선호(대중적 인기)로 인해, 아도르노는 종종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는 (프레..

르네상스, 제라르 르그랑

르네상스 - 제라르 르그랑 지음, 정숙현 옮김/생각의나무 아마 서양 역사에 대한 책들 중 가장 많이 번역되거나 국내 저자에 의해 책으로 나온 시대를 말하라고 하면, 그것은 20세기(근현대)와 르네상스가 될 것이다. 서양 미술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정도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텐데, 이 3명의 예술가도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었다. 출판된 책들이나 우리들에게 알려진 인물들로 보나, 르네상스는 서양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대이다. 이 책은 그 시대 예술에 대한 입문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책은 대체로 재미가 없고 난삽하기 십상이다(그래서 쓰기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천연색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