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6

협상의 10계명, 전성철, 최철규(지음)

협상의 10계명 전성철, 최철규(지음), 웅진윙스 우리는 협상을 '가격 조정' 정도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무수한 협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협상들 속에서 우리는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감정이 상하기도 하며 관계가 엉망이 되기도 한다.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번번히 후회를 하곤 하지만, 마땅히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점에서, '협상의 10계명'은 꽤 유용한 지침을 주고 있다. 더구나 간단하게 외워서 실전, 아니 일상 생활에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대화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요구에 얽매이지 말고 욕구를 찾아라 -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창조적 대안을 개발하라 - 상대방의 숨겨진 욕구를 자극하라 - 윈윈 협상을 만들도..

와인 정치학, 타일러 콜만

와인 정치학 -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와인 애호가로서 나는 좋은 품질의 와인을 저렴하게 마시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그 바람이 단기간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하긴 와인도 하나의 비즈니스이지 않은가. 우리는 종종 예술가처럼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해 포도를 수확하고, 정성스럽게 와인을 만들고, 이렇게 생산된 와인에 대해 마치 예술작품인 것처럼 현란한 수사로 포장된 현학적 평가나 평론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와인 정치학은 종종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유명한 와인 제조업자는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 모든 노하우를 쏟아 붓겠지만 그들 ..

허난설헌, 김성남(지음)

허난설헌 - 김성남 지음/동문선 많은 기대를 하고 펼친 책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완성도는 너무 떨어졌다. 여기저기 쓴 논문들을 수정없이 모은 듯 보이는 이 책은 똑같은 내용이 책에 앞에 등장하기도 하고 뒤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결국엔 책의 내용까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처음에는 규방시인이 아니었다고 하다가, 뒤에는 규방시인 허난설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허난설헌의 천재성이나 독창성을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녀, 허균의 누이면서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 시인이면서, 유선시(遊仙詩)의 대가였다. 그녀는 시간와 공간을 잘못 타고 태어났으며, 그래서 그녀는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신선의 세계를 그리워했다. 박복한 운명의 주인공이었으며, 서른이 되기 전에 생을 마친 비운의 여인이었다. ..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민음사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꽤 큰 도전이다. 지금 그 도전을 하고 있다. 지난 주 내내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다. 이번 읽는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매번 읽을 때마다 시선이 가는 문장이 다르고 연극을 다르게 해석한다. 다음에 읽을 땐, 또 어떤 느낌일까. 과제물로 제출한 간단한 페이퍼를 올린다. 조금 형편없이 쓴 글이긴 하지만. **** 1막의 뽀조와 2막의 뽀조는 서로 대비되면서 마치 눈을 가린 현자, 혹은 운명의 여신처럼 보인다. 명령을 내리듯 말하고 모든 걸 아는 듯 단언적이다. 럭키는 이런 뽀조 옆에서 혼자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뽀조의 명령 체계 속에서 정해진 대로 움직일 뿐이다. 뽀조와 럭..

햄릿, 세익스피어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지음), 김재남(옮김), 하서 시청률의 노예가 되고 하나의 광고라도 더 받아야 하는, 처량한 TV 드라마의 시대에, 몇 세기가 지난 영국 작가의 희곡을 읽는 건, 참으로 터무니없어 보인다. 우리의 일상은 셰익스피어를 읽을 만큼, 고상하지도 않고 더구나 여유롭거나 한가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한다면, 그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끝까지 살아남아 이 비극의 전말을 후세에 남기게 될 호레이쇼에 대해 햄릿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햄릿 여보게 호레이쇼, 나는 스스로 영혼 속에 분별력이 생겨서 인간의 선과 악을 가릴 줄 알게 된 때부터 자네를 영혼의 벗으로 꼭 정해놓고 있네. 자네만은 인생의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뿐더러, 운명의 신의 상과 벌을 똑같이 감..

해석에 반대한다, 수잔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 수잔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이후 수잔 손택을 알게 된 것은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을 통해서였다. 가라타니 고진은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인용하면서 근대 일본 문학을 이야기했다. 아마 내가 문학 이론서를 읽으면서, 최초로 감탄했던 책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문학 비평가들의 책이 아니라. 한국의 문학 비평가들의 책을 종종 읽지만,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나, 작품의 결을 파악해 나가는 방식이나, 작품과는 무관하게 서술되거나 인용되는 이론들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긴 수작으로 평가받은 고진의 책이나 수잔 손택의 이 책과 비교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젊은 날의 수잔 손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 데이빗 린치 지음, 곽한주 옮김/그책 데이빗 린치의 광적인 팬이라면, 이 책은 강추다. 하지만 그냥 아무렇게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같은 이에겐 큰 즐거움을 주었던 독서는 아니었다. 차라리 로베르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이 훨씬 낫다. 하지만 로베르 브레송은 (요즘 사람들에게) 데이빗 린치만큼 유명하지 못하고, 브레송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거의 없고, 프랑스 영화 관련 전문 서적이나 영화사 책에나 이름이 나올 뿐이지만, 데이빗 린치는 얼마나 유명한가. 영화를 좀 본다는 사람치고, 그의 영화는 보았을 테고,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빈약한 독서 습관을 가진 우리 나라 사람들에겐 축복같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 ..

중심의 상실, 한스 제들마이어

중심의 상실 - 한스 제들마이어 지음, 박래경 옮김/문예출판사 제들마이어는 중세의 낙오병으로 그보다 훨씬 민감하고 환상을 보는 데에 도통한 점쟁이들을 모방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논의가 이처럼 코기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의 정말 탁월한 실례가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암시적이고 이해를 갈망하는 듯한 태도 때문인데, 그는 어떤 기호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우리를 팔꿈치로 슬쩍 찌르며 윙크를 한 다음 "당신에게도 보이죠?"라고 말한다. - 움베르코 에코, '철학의 위안'(새물결, 조형준 옮김), 116쪽 이 책은 한스 제들마이어라는 독일의 미술사학자가, 1948년도에 썼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낯설고 기묘하며, 반-현대적이며, 도덕적인 교설과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

강철군화, 잭 런던

강철군화 -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궁리 세계는 앞으로 가는 것일까? 아니면 정지해 있는 것일까? 혹은 뒤로 가는 것일까? 아마 사람들은 앞으로 간다고 믿고 싶겠지만, 실은 '앞으로 간다'라는 진보(혹은 진화)의 개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명확하게 떠오른 것은 18세기 이후부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는 것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 이후였다. 이 점에서 소설 '강철군화'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군의 사람들에 대해 적고 있다. 언젠가 평화로운 시위대를 폭도로 만드는, 아주 단순한 방법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방법인 즉슨, 시위대 속의, 눈에 잘 띄는 젊은 여자(이쁘고 연약하게 보이면 보일수록 좋다)에게 아주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폭력을 가하면 된다. 그러면 그 젊은 ..

프로페셔널의 조건, 피터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청림출판 몇 년 전에 이 책을 읽으려다 그만둔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성실한 인문학 전공자라면, 이 책은 읽는 건 꽤 고역일 듯 싶다. 가령 이런 문장들. 마르크스는 종종 다윈, 프로이트와 함께 현대 세계를 창조한 삼위일체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정말 정의한 것이 있다면 마르크스 대신 테일러를 그 자리에 앉혀야만 한다. 테일러가 그에 걸맞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단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100여 년 간의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선진 경제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지식을 작업에 적용한 테일러의 연구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다는 것은 매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