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898

오스카 와일드, 페터 풍케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페터 풍케 지음, 한미희 옮김, 한길사 도덕적인 책이라든가 부도덕한 책이라든가 하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 잘 썼거나 잘못 쓴 책이 있을 뿐이다. 그뿐이다. 삶은 예술의 가장 뛰어난 제자인 동시에 유일한 제자이다. 예술이 삶을 모방하기보다는 삶이 예술을 훨씬 더 많이 모방한다. 자연이 그토록 불완전한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예술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비극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나는 나의 천재를 인생에 사용했으며, 작품에는 재능만을 사용했답니다. ***** 오스카 와일드가 여기저기 남긴 몇 마디의 문장은 심미주의(유미주의)의 분명한 정의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것은 로코코의..

명주, 방민호

명주 방민호 문학산문집, 생각의 나무 문학산문집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는 책은 김훈의 , , 기형도의 여행산문집이 전부다. 한 권을 더 붙인다면 김현의 정도가 있겠다. 지난 주말, 방민호라는 젊은 문학평론가의 라는 산문집을 읽었다. 굳이 사서 읽을 만한 책은 못 된다. 책의 장정이 아깝다. 그는 왜 이런 책을 내게 되었을까. 그가 쓴 몇몇 비평문은 근래에 보기 힘든 글들인데, 그의 비평적 눈은 자신의 산문집에 대해선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했나 보다. 그와 같은 학번, 80년대 중반에 대학 생활을 했던 이에게 이 책은 잠시나마 비릿한 추억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9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한 나에게도 이 책은 잠시나마 대학 생활을 떠올리게 하였으니까. 내 대학 동기들은 뭘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별..

현대 프랑스 지성사, H.S.휴즈

현대 프랑스 지성사 (부제 : 차단된 통로 : 절마의 시대에 있어서의 사회사상) H.S.휴즈 지음, 김병익 옮김 문학과 지성사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는 알아도, 이 영화의 원작자인 조르주 베르나노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실은 브레송보다 더 유명하고 더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한 소설가에 대해선. 이런 편식은 비단 문학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1960년대 구조주의의 열풍, 또는 그 이후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 이 구조주의 학자들이 젊은 시절에 누구를 만났는가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못해 무식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학자들에게 사르트르가, 말로가, 생 떽쥐베리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프랑소와 모리악과 더불어 양차 대전 중간기에 가장 영향력 큰 두 카톨릭 ..

나의 서양미술순례,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순례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창작과비평사 대학원 시험을 번번히 떨어지고 학업을 하기엔 좀 지난 나이인 서른하나가 되었지만, 이미 책읽기와 그림보기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려 어쩌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원래 창작과비평사의 문고판으로 나온 책이었다. 그러다가 작년 초에 도판도 칼라로 싣고 하드커버로 장정하여 깔끔하게 새롭게 출판되었다. 1. 화제를 바꾸려는 듯이 사내가 물었다. "일본 사람이오?" 언제나처럼 나는 대답했다. "아니, 한국인이오." 그러자 사내는 다시 수다스러워져서 지껄이는 것이었다. "오, 한국인이요? 요새 야단인가 보던데? 학생들이 매일같이 소란을 피운다던데, 어때요?" - 94쪽 그는 재일한국인이다. 한국말보다 일본말이 더 익숙한 사람이다. 미술책을 읽으면서 정체성에 ..

작은 사건들,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Incidents 작은 사건들, 동문선, 2003 검은 피부의 청년, 그가 입은 연두색 바지와 박하 크림색의 셔츠, 오렌지색 양말, 그리고 눈에 띄게 부드러워 보이는 빨간 구두 - 34쪽, 작은 사건들 그가 호모섹슈얼이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1979년 9월 17일 일요일인 어제, 올리비에 G가 점심을 먹으러 왔다. 나는 그를 기다리고 맞이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 나의 태도는 내가 사랑에 빠져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점심을 먹을 때부터 그의 수줍은 태도, 혹은 거리감이 날 두렵게 만들었다. 우리 관계에는 이제 어떤 행복감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잠시 낮잠을 즐길 동안 내 침대 곁에, 내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상냥스럽게 다가온 그는 침대가..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문학과 지성사 '은밀한 생' 이후 읽는 키냐르의 두 번째 소설이다. 전체가 거의 다 하얗게 보이는 드라이포인트. 빛에 잠식된 난간의 받침살들 뒤로 한 형상이 보인다. 나이 든 남자의 모습이다. 지그시 감은 두 눈, 흰 턱수염, 다리 사이에 들어가 있는 손, 테라스 위, 로마, 황혼녘, 하루 중 제 3의 시간, 저무는 태양의 황금빛 광휘에 휩싸여, 그는 자유로움과 살아있다는 행복에 흠뻑 취해 있다. 포도주의 몽상 사이에. (78쪽) 기대한 만큼 감동적이지 않고 프랑스 내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점이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그가 바로크 시대를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그의 소설은 전혀 바로크적이지 않다. 극중 주인공의 판화 속에서..

꿈의 노벨레, 아르투어 슈니틀러

꿈의 노벨레 아르투어 슈니틀러, 자유출판사 “내 생각에는 우리가 그 모든 모험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게 한 - 실제와 그리고 꿈 속의 모험에서 - 운명에 감사해야 될 것 같아요.” 라고 알베르티네는 말하지만,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 알베르티네나 프리돌린 같은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SF영화를 만들고 있는 워쇼츠키 형제가 키아누 리버스라는 배우에게 장 보드리야르의 을 읽게 했다는 사실은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경험하게 되는 모험이나 꿈에 대해 우리가 갖게 되는 태도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슈니틀러의 매혹적인 문장 속에서 세기말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이 평범한 부부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알베르티네가 낯선 남자에게서 느끼는 성적인 매혹과 프리돌린이 벌이는 흥미..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창해 ABC북 ‘상징주의 미학은 이상주의를 맹렬하게 주장하면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현실세계를 초월하기 위해 암시, 모호함, 신비, 내성(內省) 등을 중시하는 표현 양식을 추구하였다.’ 우리는 이 한 단락만으로 이들 예술 양식이 가진 비극적 세계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들 양식 속에서 염세주의는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비극적 사랑에 대한 추구는 뽈 베르렌느와 랭보에게서 그 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페르난트 크노프의 어둡고 우울한 색조의 작품들이나 말라르메의 모호하고 암시적이며 함축적인 언어들은 여기에서 실망한 이의 저기를 향한 염원을 담고 있다. “상징주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결코 사랑은 격한 감정이나 쓰라림, 혼란, 회한 등과 결합되지 않았다”(* 에르네스 레노, 1864~..

서기 1000년과 서기 2000년 그 두려움의 흔적들, 조르주 뒤비

, 조르주 뒤비(지음), 양영란(옮김), 동문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세계도 확실히 존재할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와 동등한 힘을 지녔다고 믿었던 사회의 맥을 짚어보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현대와 중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현대인들 중 일부는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중세적 믿음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믿음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중세인들과 비슷한 연유에서 기인한다. 즉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언제나 곡식은 부족하고 전염병이 돌고 생활 환경이 극히 나쁠 때, 혹은 어떤 정신적인 이유로 인해 세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뒤덮여 있을 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고수한다. 조르주 뒤비의 이 책은 간단하게..

벌거벗은 내 마음, 샤를 보들레르

벌거벗은 내 마음 - 샤를 보들레르/문학과지성사 , 샤를 보들레르 이건수 옮김, 문학과 지성사 종종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구한다. 이럴 때는 우리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모순으로 가득차있다고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다. 사랑하는 아내의 키스를 받고 나선 사내의 트럭이 얼마 가지 못한 채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나 사람과 부딪히거나 몇 년 동안 준비해온 사업이 사소한 법률 조항 하나 때문이거나 어떤 이의 꾐에 의해 모든 걸 날려버리게 될 때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구하기 마련이다. 과연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이 책은 현명한 답을 주지 못한다. 예술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고작 이 책의 저자는, “세상은 오해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