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15

격의 없는 대화의 중요성

항공기 충돌을 빚는 전형적인 인간역학은 열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종사들을 피곤하게 몰아붙인 탓에 유발되는 의사소통 단절이다(글래드웰Gladwell의 2008년 자료). 사고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유형은 사람이 빚은 실수가 연거푸 7번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가 지식이나 조종기술의 오류인 경우는 별로 없다. 팀워크와 의사소통의 오류이다. 1988년에서 1998년 사이 대한항공의 충돌사고는 항공업계 평균보다 17배나 더 많았다. 조사요원들은 한국의 사회적 상황이 조종석에 그대로 재연된 것이 근본원인임을 발견했다. 사회적으로 격이 높은 기장에게 다른 조종사들은 직설적이지 못하고 정중한 말로만 이야기했다. 결국 기장 혼자서 항공기를 조정하는 격이었다. 현대의 제트항공기들은 안전한 비행을 하려면 2~3명이..

10월 하늘, 닫힌 마음

(가지고 있는 폰으로 오늘 하늘을 찍은 사진임) 이 색깔은 ... 도시마다 다를까? 계절마다 다를까? 바람에 따라 달라지고,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까? 그래서 이 색깔은 계속 달라져 형체도 없이 사라질까?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닿지 못하는, 끝내 나를 향해 열어주지 않을 색으로 둘러쳐진 채, 말없이 흔들거렸다, 내 몸이.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들어오던 1970년대 후반의 창원 어딘가에서 가을 바람과 대화하는 법을 잃어버린 나는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 때면, 까닭없이 그립고 안타깝다. 어느 새 나도 닫히는 법만 배웠다, 거대하고 거친 도시에서. 닫힌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를 닫는 법만 배우는 우리는 이제 문을 여는 법, 마음을 여는 법, 대화를 여는 법을 잃어버렸고, 21세..

가을 어느 날, 커피의 사소한 위안

가을 햇살이 비스듬하게 바람 따라 나풀나풀거렸다. 커피 향이 거리 위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대비되는 빛깔끼리 대화하는 법이 없는 도시에는 외로움만 흘렀다. 투덜되는 쓸쓸함 앞에서 커피는 사소한 위안이 되었을 뿐, 결국엔 둥근 테이블 위에 오래 머물지 않고 푸른 하늘 위로 떠나버렸다. 가을이 왔다. 그리고 가을이 갈 것이다. 해마다 그랬듯이.

의도된 회화로서의 사진 - 이명호

이명호, Tree #1 -〈A Series of 'Tree'〉 among 〈Project, 'Photography-Act'>, 디지털 프린트, 2005 (Printed Date:2007) 트랜스 트렌드 매거진(trans trend magazine) 2008년 겨울 호에 젊은 사진작가 이명호와의 인터뷰가 실렸다. 흥미로운 그의 사진 작품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던 터라, 그가 말하는 사진 작업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의도하는 것이나, 평면 회화와 사진, 그리고 그 속에 담기는 존재(피사체)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이명호의 사진은 어떤 존재는 그 존재를 둘러싼 콘텍스트(context)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령 마르셀 뒤샹의 '샘'이 화장실에 있을 때는 변기이겠지만, 미술..

대화와 만남

행사가 끝나고 난 뒤, 많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술도 많이 마셨지만, 아직 행사 후유증이 계속 되고 있다. 나는 예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주위의 몇몇은 나를 매우 비즈니스적인 사람으로 이해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종종 내 취향이 특별하다고 여기지만, 일을 하면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제 갤러리에서 젊은 영국 작가들과 늘 가슴 설레게 하는 빌 비올라와 만났고 두아트서울에서는 정말 특별한 미술가인 온 카와라를 만났다. 성곡미술관에서는 색채를 활자처럼 읽어내는 척 클로즈를, 구 서울역사에서 진행되는 아시아프에는 거친 세상 앞에서 천천히 자신감을 잃어가는 젊은 작가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문득 내 이십 대를 떠올리자, 슬퍼졌다. 어느새 내 나이는 서른여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