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38

베르사이유와 제프 쿤스

화창한 일요일, 베르사이유 궁전에 갔다 왔다. 동양에서는 매우 익숙한 '중앙집권'이 서양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전성기 로마를 제외하곤 서양에서 중앙 집권 국가는 근대에 들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과 무관하게 그의 일상은 참 피곤한 것이었다. 그의 식사는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였으며, 그에게 비밀스러운 일이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오래 살지 못했고 그의 가문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라졌다. 프랑스의 일부 사람들은 루이 왕가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하긴 조선 왕조 복권을 꿈꾸고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화려하면서도 절제와 규율을 지키는 바로크 고전주의..

예술의 우주 2008.10.20

파블로 카잘스, 바흐, 흐린 일요일 아침

Pablo Casals- The 6 Cello Suites - 바흐 (J. S. Bach) 작곡,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 연주/굿인터내셔널(* 현재 절판된 상태임) [수입] Pablo Casals - J.S.Bach / Cello Suites -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 연주/이엠아이(EMI)(* 현재 구할 수 있는 음반이나, 가지고 있지 않음) 파블로 카잘스, 바흐, 흐린 일요일 아침 거친 호흡을 연신 해대며, 겨우 담배 한 개피를 피웠을 뿐이었다. 잠시 나의 삶은 살아가면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아주 현실적인 절망 한가운데 있었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창 틈으로 늦겨울의 한기가 아침 햇살 속으로 밀려들었다. 그 사이, 굵고 낮은 첼로 소리가 내 마음의 낮은 물가를 ..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갑자기 찾아든 가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육체와 영혼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진정시키란 구름이 가뜩 끼어있는 서울 하늘에서 별빛을 발견하는 것처럼 어려운 종류의 일이었다. 갑작스런 계절의 변화는 자주 격렬한 심리적 불안과 섬세하고 민감한 우울을 동반한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초월적 실체, 또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시대는 니체와 프로이드로부터도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의 니체만큼 신을 갈구했던 이도 없었을 것이다. 프로이드는 아예 영혼의 신비를 없애버렸으며, 젊은 루카치는 심리학의 발달을 비난했다. 하지만 ‘종교는 아편’이라며 공격했던 마르크스는 종종 나에게 그만큼 종교적인 사람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하지만 종교와 함께 ..

두 얼굴의 ‘숲’

두 얼굴의 '숲' 문명화된 숲 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마을 뒷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의, 내 호기심을 자극하던 뒷산 너머에 있을 그 무언가, 미지의 세계. 거대한 바다가 있거나 반짝이는 조명으로 찬란한 대도시이거나, 아니면 내가 세계 최초로 발견하게 되는 외계인 마을이거나. 그리고 결국 나는 뒷산에 오르고 만다. 오전 일찍 집을 나선 나는 마을 뒤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키에 적당한 길이로 나무 가지를 꺾어 지팡이로 사용하면서. 그렇게 몇 시간을 올라갔을까. 산 정상은 보이지 않고 좁은 길 흔적마저도 사라진 채,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 소리만 들리고, 눈앞에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 속으로 가느다랗게 내려앉은 햇빛뿐. 이..

바로크, 신정아

바로크 신정아(지음), 살림지식총서143 이런 책에 대한 리뷰를 쓴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바로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 때, 이 단어에 대한 정의와 해설을 해주는 책이 있다는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저 책이 있다는 것일 뿐, 이 책의 저자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도 읽지 않은 듯 보인다. 그래서 바로크의 전 양식인 매너리즘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으며, 고전주의적 바로크와 낭만적 바로크에 대한 구분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바로크 음악에 대해선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전문 연구자가 아닌 필자의 전문 서적 집필이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책을 만들 생각을 할까? 정말 난감..

바로크 예술

* 를 쓰기 전에 적어놓은 노트입니다. 바로크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로크: 근대성Modernity의 시작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떤 세계일까?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꼭 이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든가 '살아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특징을 부각시켜서 말하거나 아예 이 물음에 대한 답에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너무 거대한 질문이라 실제 우리의 삶과는 무관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본다면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지금 이 세계에 대해서 자주 듣게 되는 단어들,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포스트모..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살라메아 시장,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살라메아 시장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Pedro Calderon de la Barca(지음), 김선욱(옮김), 책세상 인생은 꿈, 삶은 한 편의 연극, 우리들은 태어날 때 각자 배역 하나를 맡고 죽을 때까지 성심성의껏 연기한 후 죽는다. 죽은 후 얼마나 잘 연기를 수행했는가에 따라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맡은 바 배역을 제대로 연기해야만 할 것이다. 17세기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이 생각은 바로크 특유의 허무적 미학을 만든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은 이러한 허무적 미학을 종교적인 메시지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러한 연극을 ‘성찬신비극’이라고 한다. 이 연극 형식에 대해 이해하려면 먼저 성찬에 대한 의미부터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죽기 ..

바로크 정물화

병에 담긴 접시꽃들과 다른 꽃들(Hollyhocks and Other Flowers in a Vase), 1710 Oil on canvas, 62*62cm National Gallery, London Jan van Huysum의 작품이다. 18세기 초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했던 이 화가는 17세기부터 본격화된 정물화(Still-Life)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대체로 정물화는 Vanitas(생의 허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시계, 불이 꺼진 양초, 시들어가는 꽃, 해골 등을 그림 속에 담아내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이후로 갈수록 진기하고 보기 드물며 값비싸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변해간다. 생의 허무에 대한 공포가 보이는 곳..

귀도 레니 Guido RENI

Guido RENI의 작품. 바로크 초기의 작품이다. 성 세실리아는 3세기 초의 동정성녀로, 음악과 음악가들의 수호성인이다.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하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온갖 악기를 다룰 줄 알았으며 오르간을 발명해 하느님께 헌정하였다고 전해진다. 성 세실리아를 상징할 때는 오르간이 주로 사용되며 여러 그림 속에서 악기를 들고 있거나 연주에 귀 기울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귀도 레니의 이 작품 속에서는 바이올린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