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철학 공부를 하는 이유 - 아포리즘 철학

결국 철학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말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오랜 철학적 탐구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철학은 기껏해야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왜 모를 수 밖에 없는지, 새로운 앎은 어느 지점에서 개시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줄 뿐이다. 이것이 몽테뉴가 말한 바 "내가 무엇을 아는가?"의 의미이다. 따라서 철학은 우리에게 겸허하라고 말한다. 오랜 탐구 끝에 우리는 기껏해야 우리가 큰 무지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또한 무지에 잠기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다. 위대했던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신과 관련해 "무지無知의 지知"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조중걸, '아포리즘 철학', 서문 중에서, 한권의 책 아포리즘..

독자의 태도

일년 반 정도 모 통신사의 사보 편집장 했는데, 유명하다는 몇몇 필자들의 형편없는 원고를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다. 결국엔 일반 독자에게 어필해야 된다는 것이니, 나에겐 요원한 일이다. 제대로 된 글을 읽으려면, 그만큼 독자도 준비해야 된다. 바둑판을 읽을 수 없으면서 바둑을 두겠다고 하는 것이나, 글의 품격을 알지도 못하면서 글을 읽으려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2011년 책 읽기의 기록

마흔 권 정도 읽을 것같은데... 글쎄다. 빠진 책들도 있는 듯 하고. 잡지나 논문은 제외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이런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한 듯 싶지만, 올해 읽은 몇 권의 책은 나에게 최고의 감동을 안겨 주었다. 추천하는 책은 파란 색으로 별도로 표시하였다. 아, 읽고 너무 어렵다고, 혹은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고 핀잔주지 않기를. 이 기록은 나의 아주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다. - 고민하는 힘, 강상중(지음), 이경덕(옮김), 사계절 -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이제이북스 -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권창은 외 지음/고려대학교출판부 - 계몽의 변증법,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지음), 김유동(옮김), 문학..

책들의 우주 2012.01.13

이사, 혹은 책들과의 전쟁

이사를 했다. 늘 나에게 이사는 ... 힘들다. 첫 번째는 많은 LP와 시디 때문이고 두 번째는 책들 때문이다. (갤럭시S로 찍었는데, 영~화질이~..) 다행히 서재 창 밖 풍경이 좋다. 수백장의 시디는 책상과 서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아두고 수 백장의 LP는 창고로 들어가고 책들도 서가 여기저기 쌓아두고 ... 이제 천천히 정리를 해야 한다. 베란다 창밖으로 가을은 깊어가, 겨울을 향하는 듯하다.

독서모임 빡센BaakSen에서 읽어온 책들의 기록

제가 속해있는 독서모임입니다. 제가 까페 운영자이기도 하고요. 벌써 2년을 향해가네요~. 인원도 적고 읽는 책들마다 한숨 소리만 나오는 것들이라 한달에 한 번 모이는 자리에 나오는 사람은 10명이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많으면 7명.. 그것도 매달 바뀌니.. ㅋㅋ 하지만 아래 책들을 보니, 뿌듯해지네요. 저도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지 못했을 책들입니다. 직장생활도 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기도 해야 하고 .. 제 블로그에 독서모임 빡센(http://cafe.naver.com/spacewine)을 한 번 올려봅니다. ~ 책과 세계 강유원 저 책이라는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 인류가 남긴 고전의 중요성은 바로 우리가 가볼 수 없는 세계를 글자라는 매개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는 ..

책들의 우주 2011.10.18

세계 경제 위기, 전망, 극복을 위한 책 목록

거의 매일 책이 나온다. 수십 년 전엔 읽을 책이 없다고, 또는 최신 트렌드를 짚을 책이 없다는 말이 통했을 지 모르지만, 이젠 어떻게 시간을 활용해 책을 읽을 것인가가 화두다. 특히 나 같이 이 쪽 저 쪽 책을 읽어대는 이에겐 더욱더. 최근 나온 여러 경제경영서적 중에서, 세계 경제/금융 위기 이후 나름대로의 해석과 진단, 그리고 그 전망에 대해 서술한 책 몇 권을 리스팅해본다. 10년 후 미래 대니얼 앨트먼 저/고영태 역 이 책의 저자 대니엘 앨트먼는 '딥 팩트'(deep factor)에 의해 세계 경제, 한 나라의 경제적 수준이 결정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이 딥 팩트는 '지리학, 문화, 철학, 법적인 틀, 사업 관행' 같은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기업의 경쟁 우위를 만드는 기술력, 원가 ..

독서 경영에 대하여

회사에서 독서모임을 시작한다. 요즘 ‘독서경영’이라는 단어가 유행이기도 했고, 보스와 여러 번의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실제 시작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혼자 팀원 몇 명과 작게 시작해볼 생각은 가지고 있었으나, 이것도 또 하나의 일이라 시작 시점을 계속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첫 모임으로 약 7년 이상 회사에서 직원들과 책 읽기를 해온 협력사 사장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영의 관점에서 ‘독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던 탓에 그 분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했고 새로웠다. 이에 오고 간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해본다. 사내에서 독서 모임을 하고 싶다면, 아래의 관점을 고려해보도록 하자. 1. 시간적 여유가 없는 ..

책향기 맡기Smelling the Books는 가슴 떨리는 첫 키스

In Omnibus requei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in angulo cum libro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photograph by Michael Schmelling http://www.eyeheartbrains.org/index.php?/project/smelling-the-books/ 올해 29살인 그녀는 도서관에서 일한다. 뉴욕의 MoMa 도서관(The Museum of Modern Art Library). 2010년 초 그녀의 이 아름다운 프로젝트 ‘Smelling the Books’는 시작되었다. 책들로 빼곡한 서가, 창 밖 햇살이..

예술의 우주 2011.03.25

제가 가지고 있던 책을 나누어 드립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면, 한강이 보입니다. 아침 출근길, 동쪽으로부터 몰려온 햇살에 밝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육삼빌딩을 뒤로 하고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사를 했습니다. 예기치 못했던 이사였습니다. 그리고 38년의 생을 힘겹게 지탱해주던 책들의 상당수는 이번 이사에 동행하지 못했습니다. 무지개 빛깔이 숨겨진, 어떤 면에선 당황스러운 감도 없지 않은 이사였고, 책들의 입장에선 책임감 없는 주인을 만난 탓이겠지요. 그 책들은, 내게는 물질적 욕망을 향한 폭풍우 같은 자본주의 세계가 요구하는 사고력과 실행력이 없었던 나의 아슬아슬한 삶을 증명하고 변명하던 사유의 물리적 성벽과도 같았습니다. 어쩌면 그 성벽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가상이었으며, 일루전이었고,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별과 같다고 여겼는지도 ..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 이유선 지음/라티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이유선 지음, 라티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는 참 좋은 책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철학에 대한 아무런 깊이도 통찰도 가지지 못한 얼치기 문학평론가들이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사용하며 적어대는 문학 평론보다 백 배는 더 나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과 문학을 서로 엇대어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글들은 설득력을 가지면서 소개되는 문학작품의 맛을 살리고 있다. 서로가 모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현실화될 때, 여기에서 관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용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오고, 관용은 같이 살기(공존)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관용이 이성에서 나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