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187

르네 마그리트 전

Rene' Magritte, Empire of Dreams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전 2006.12.20 ~ 2007.4.1 서울시립미술관 대화는 계속 단절되었다. 그는 어떤 수법, 어떤 사고와 논리, 바꿔치기, 말과 그림 사이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사랑의 아픔, 인생의 공허와 쓸쓸함, 쫓기는 듯한 일상에의 두려움에 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철부지 소년처럼 우리의 시선을 낯설게 하는 어떤 기법, 끊임없이 신기함을 환기시키는 어떤 그림에만 관심을 보였고 그것들만 보여주었다. 나는 그의 철부지 같은 태도에 실망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무수한 미술애호가들과 비평가들이 두 손을 들고 떠받치는, 현대미..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에프라임 키숀(지음), 반성완(옮김), 디자인하우스, 1996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작품 앞에서 절망감을 느꼈을까. 혹은 그 절망감을 뒤로 숨기고 열광적인 반응, 자신의 영혼 가닥가닥이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전율했다는 식의 거짓된 반응을 보였을까. 우리 모두는 정말 이랬던 적이 없었는가 한 번 돌이켜볼 일이다. 하지만 키숀의 ‘반-추상주의’를 이해하면서도 나의 ‘추상주의’를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브 클라인의 푸른 색은 언제나 날 즐겁게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숀의 견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의 견해는 매우 옳고 정확하다. 심지어 그가 요셉 보이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도. 나 또한 많은 현대 미술에 대한 비평문들을 읽어왔지만, 그런 비평문을 ..

명화를 보는 눈, 다카시나 슈지

명화를 보는 눈 다카시나 슈지 지음, 신미원 옮김, 눌와 각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면서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적절하게 역사적인 배경을 언급하고 다른 시대의 작품과의 비교, 다른 예술가의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누가 읽어도 괜찮은 책이다. 개별 작품들 위주로 강의하는 수업에서 교재로 사용하기도 적당한 책이다. 각 작품들에 대해 이 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미술 작품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궁극적인 결론은 하나일 수도 있지만(만일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둘만한 문장 몇 개를 적어본다. 산드로 보티첼리, “사실 이 그림의 구성은 언뜻 보아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21쪽) 산..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 진중권 지음, 웅진닷컴 그림도 하나의 세계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의 인생, 각자가 처한 세계에 대해 각기 다른 느낌과 이해를 가지고 있듯이 그림의 세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그림에 대한 해석은 시대마다 틀리고 개인마다 틀린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니 특정 그림에 대한 개인의 감상에 대해 ‘너의 견해는 틀렸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경우 우리는 ‘그림에 대한 정해진 해석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미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현대 미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끊임없이 사회적 차별이나 금기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

Chaim Soutine의 자화상

Chaim Soutine (시암 쑤띤)의 자화상이다. 1916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꽤 심각할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 내지는 혐오를 가지고 있었나 보다. 추상 표현주의의 윌렘 드 쿠닝은 시암 쑤띤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시암 쑤띤의 첫 번째 대형 전시를 뉴욕에서, 그것도 그가 죽고 난 10년 정도가 흐른 뒤에 열렸고 이 때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가던 무렵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무척 재미있다. 잭슨 폴록이 현대 미술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파리에서는 이에 질세라 타피에스, 뒤뷔페를 중심으로 한 앵포르멜이 유행하고 있었다. 쑤띤 작품은 세계에 대한 혐오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추상 표현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그의 생애가 두 개의 전쟁 속에 있었고 유태인이..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마리 앤 스타니스제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Believing is Seeing 마리 앤 스타니스제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현실문화연구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두 번 적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적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책에 대한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는데, 다들 찬사 일변도여서 이건 아닌 것같아 여러 번 고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라면 원고지 10장 정도의 분량과 슬라이드 20개만 있으면 이 책에서 다루어진 내용의 다섯 배 많은 내용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그러고 보면 다들 현대 미술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피카소 - 성스러운 어릿광대

피카소 - 성스러운 어릿광대 Picasso, le sage et le fou 마리 로르 베르나다크 Marie-Laure Bernadac 폴 뒤 부셰 Paule du Bouchet 시공디스커버리 018 종종 내 스스로에게 묻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는 예술향유자가 되었는가’라는 물음이다. 그리곤 ‘예술작품을 통해 난 진짜 감동을 받고 있는 건가’라고 묻는다. 이런 물음을 미술관에 온 모든 이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억지스런 물음을 하고 싶은 까닭은 허위적인 냄새가 너무 많이 풍기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내가 그런 곳에 살고 있음을 슬퍼할 수 밖에. 피카소만큼 대중적인 예술가도 없겠지만, 피카소만큼 대단하고 난감한 예술가도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이 작은 책은 피카소를 향..

68년으로의 여행

Felix Gmelin, Farbtest, Die Rote Fahne II (Color Test, The Red Flag II), 2002. Installation view, 50th Venice Biennale, 2003. 서방 세계에서 1968년은 각별한 모양이다. 하긴 서부 유럽에서는 68 혁명이라고 부르니. Felix Gmelin은 1968년의 베를린과 2002년의 베를린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그들(또는 우리)의 현재를 되새기고 있다.(아, 그 때는 얼마나 그리운 시절인가!) 하지만 이것은 감상적인 향수의 대상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동시에 스쳐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Felix Gmelin에게도, 나에게도 이 폭력적이며 잔인하게 변해버린 현대 사회의 가속 페달을 막을..

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클라우스 휘브너

오노 요코 - 마녀에서 예술가로 클라우스 휘브너 지음, 장혜경 옮김, 솔 요코의 삶과 여러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담긴 이 책은 요코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그녀가 한 권의 책으로 담길 정도로 뛰어난 예술가이거나 우리들의 삶에 많은 귀감을 주는 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녀의 예술을 평가절하하거나 그녀의 삶을 폄하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그녀를 위대한 예술가나 뮤지션으로, 또는 거칠지만 정직한 삶을 산 여자로 평가하려는 이 책의 시도 때문이다. 이 책은 다양한 도판과 여러 자료들의 인용은 그녀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예술이 현대 미술에서 정확하게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전혀 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반쪽만 알게 되는 셈..

새 근원수필, 김용준

새 근원수필 (보급판) - 김용준 지음/열화당 새 근원수필(近園隨筆) (근원 김용준 전집 1권), 열화당 며칠이고 조용히 앉아 길게 읽을 책을 띄엄띄엄 산만하게 읽은 탓일까, 기억나는 것이라곤 오늘 읽은 술 이야기 밖에 없다. “예술가의 특성이란 대개 애주와 방만함과 세사(世事)에 등한한 것쯤인데, 이러한 애주와 방만함과 세사에 등한한 기질이 없고서는 흔히 그 작품이 또한 자유롭고 대담하게 방일(放逸)한 기개를 갖추기 어려운 것이다.” “술에 의하여 예술가의 감정이 정화되고, 창작심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은 예술가에 있어 한낱 지대(至大)의 기쁨이 아니 될 수 없을 것이다.” (199쪽) 내가 기억나는 문장이 이렇다 보니, 인상적이었던 단어 또한 매화음(梅花飮)이었다. 뜻은 매화가 핌을 기뻐하여 베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