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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문자 메시지

군대를 벗어난 지도 벌써 9년이 지났다. 어느새 민방위이다. 넓은 영등포 구민 회관 입구 쓰레기통에다 민방위 관련 책자를 놔두고 왔다. 강당 앞쪽에 앉아 있는데, 몇 통의 전화가 왔고 몇 개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신기한 일이다. 각기 다른 곳에서 온 전화와 문자메시지. 보통 때라면 오지 않았을. 바람은 너울치듯이 나무가지 앉았다가 지붕에 앉았다가 전신주에 앉았다가, 그렇게 봄을 심어놓으면서 지나가고 도시의 퀘퀘한 매연 틈 속에서 햇살은 곧게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후 두 시 반. 주머니 속의 핸드폰으로 문제 메시지 하나가 와있었다. "그대에게로 향하는 나의 마음이 멍에가 되어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 같아 미안하구요." 낯선 전화번호. 누구일까. 누구였을까. 그리고 민방위 교육 사이 쉬는 시간, 누구신가..

Edmund Burke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를 읽고 싶어졌다. 보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버크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이 비관적이며 냉정한 합리주의자로부터 시작된 보수주의는 버크 이후, 버크의 논의를 뛰어넘은 이가 없다고 한다. 그가 지적했던 지점들에서 많은 자유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머뭇거리는 듯 보인다. 반동분자가 아니였던 버크는 프랑스 혁명 전에 프랑스 혁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예언하였고 영국 사회를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 그가 근본에 있어 비관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모든 사람이 여기 이 지상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 " (* 크레인 브린튼, , 475쪽) **** 올해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한 책이다.에드먼드 버크의

서양 사상의 역사, 크레인 브린튼

서양 사상의 역사 Ideas and Men - The story of western thought 크레인 브린튼 지음, 을유문화사 살아가면서 어떤 인생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모색을 하게 된다. 아주 사소한 문제들에서부터 거대한 문제들(Big Questions)까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인류의 역사는 문제 해결의 역사이고 욕구 충족의 역사였다. 그러나 아직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고 욕구가 충족되려면 먼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할 듯이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에 대한 책이다. 그래서 유리창에 금이 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선택하게..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Man's Worldly Goods - 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 리오 휴버먼 지음, 장상환 옮김, 책벌레 지금 당장 서점(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으로 가서 이 책을 구입해서 읽으라. 그리고 난 다음 이 세계를 한 번 둘러보라. 그러면 이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이 좀 더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몇 년간의 직장 경험은 나에게 무척 소중한 통찰을 가져다 주었다. 돈은 돈을 찾아 움직이며 실물 경제는 화폐경제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 이제 경제 성장이 일반 서민의 안락한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 반대로 경제가 악화되면 가장 먼저 서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다고 해서 자본가와 정치가 사이의 결..

르네상스, 월터 페이터

르네상스 - 월터 페이터 지음, 이시영 옮김/학고재 르네상스 Renaissance 월터 페이터 지음, 이시영 옮김, 학고재 모든 시대는 동등하다. 그러나 천재는 항상 그의 시대를 초월한다 - 월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 월터 페이터의 르네상스는 르네상스 개론서라기 보다는 그의 관심을 끌었던 르네상스적 인물들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의 배경이나 특징, 주요 사건들이나 인물 등과 같은 르네상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구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19세기 말의 뛰어난 비평가였던 페이터의 심미안이나 그의 비평언어에 대해선 찬사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책의 서문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비평가 지망생들에게는 꼭 읽으라고 하고 싶은 구절이 있다. "따라서..

사회변동의 이론, 리차드 아펠바움

사회변동의 이론 Theories of Social Change 리차드 아펠바움 R.P.Appelbaum 지음, 김지화 옮김, 한울 오래된 책이라 지금 시중 서점에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문학 전공자라면 꼭 읽을 책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집에 온 사람 중에 사회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친 분이 있었는데, 방에 꽂힌 하버마스 책을 보고는 '이런 책도 읽어요'하면서 묻던 것이 기억난다. 도리어 난 그 물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상식으로는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역사서와 철학서는 기본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문화이론서니 기타 비평서들을 읽어야 한다. 그러니깐 기본적인 책은 다 읽어줘야 한다. 대학에서, 대학원에서 이런 상식적인 것을 가르치지 않으니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

대중과 카라바지오

바로크 예술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되는 양식이다. 이는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천동설을 버리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믿으며 무한한 우주에 보잘 것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는 순간 시작되는 예술이다. 이 인정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번민과 불안, 걱정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 이후의 현대 양식), 무한한 신이 만들었다는 이 지구와 우주에 대한 기하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랑과 자만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이제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인간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나타났다. 17세기 해부학이 인기 학문이 된 이유의 배경에는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한순간 일어나는 것이 아..

비잔틴 세계의 미술, 데이빗 탈보트 라이스

비잔틴 세계의 미술 데이빗 탈보트 라이스 David Talbot Rice 지음, 김지의/김화자 옮김 미진사, 1989. 지금 1989년에 번역, 출판된 이 책을 보기 위해선 도서관이나 헌책방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류의 책들, 이미 국내에 번역되었지만 현재는 구할 수 없는 책들은 매우 많다. 가령 베르그송의 가 대표적인데, 오래 전에는 박영사 문고판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원서나 영어 번역본으로 밖엔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이는 미술사뿐만 아니라 인문학 관련 출판 시장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미술 관련 프로그램이나 전시가 활성화되어 있는 듯 하지만, 돈벌이를 위한 요란함만 있을 뿐 인문학이나 문화예술을 위한 실속 있는 움직임은 미미하거나 있다 하더라도 대..

마르크스의 유령, 자끄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Spectres de Marx Jacques Derrida 지음, 양운덕 옭김, 한뜻, 1996 이 책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나의 앎이 부족한 탓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데리다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다. 그 두 번째는 데리다의 문장에 있다. 철학을 문학으로 여기는 그의 문장은 난해하다기 보다는 '문학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싶다. 그런데 이 책의 역자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마저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는 이 책은 마르크스에 대한 책이 아니라 데리다에 대한 책이라는 느낌마저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이라는 후쿠야마의 책으로 세계는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