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11

보수와 능력주의

낮에 잠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급여 격차에 대해서 멤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이 급여 격차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적게 받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이니, 도리어 설득력이 없거나 자격지심 같은 것이고 대기업에 다니는 이들이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보수적이지 않냐고 말을 덧붙였다. 그 땐 보수와 그것이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대선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재명을 지지 않다고 좌파라는 지적을 받았는데, 정보의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정치인 이재명 주위에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저 저주받을 한국 언론들이 만들어낸 프레임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건, 이 나라..

샤이닝, 욘 포세

샤이닝욘 포세(지음), 손화수(옮김), 문학동네 어느새 눈이 앞 차창을 온통 덮어버렸다, 나는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이제 보니 눈은 그쳤고 앞에 보이는 땅은 하얀 눈으로 덮였다, 숲 속 나무가지에는 하얀 눈이 쌓였다. 아름다웠다. 하얀 나무, 하얀 땅. 이제 차 안이 기분 좋게 따뜻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차 안에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19쪽) 하얀 눈 속에 갇히면 어떨까. 온통 하얀 세상. 그 하얀 공간 속에서 혼자 고립되어 잠들어갈 때, 어떨까. 이 짧은 소설이 주는 여운은 꽤 단단하고 슬프다. 결국은 가족 뿐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가족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상처 입고 있는데 말이다. 세상은 하얗고 서로가 있다는 걸 알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일을 잘 한다는 것

일을 잘 한다고 평가할 때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그런데 일을 잘 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 중 일부는 배려심이 없고 갈등을 만들며 자신의 것만을 지키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 경우 확실하게 일을 못한다고 평가한다. 업무를 수행하고 난 다음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좋았다면 다음 기회를 노려볼 수 있지만, 결과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과정이 엉망이라면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없다. 왜냐면 그 업무를 수행해던 멤버들 대부분은 뿔뿔히 흩어질 테니까. 결과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접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의 일만을 고르게 된다. 불투명하고 명확하지 않은 일은 배제한다. 위험이 보이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그리..

봄날의 쓸쓸함

도심의 봄은 쓸쓸하고 고요하다. 부산스러운 자동차 소리가 바닥을 스칠 때, 떨어진 분홍 꽃이파리들이 살짝 살짝 좌우로 물결치며 외로운 연인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사랑하지 않았다. 근대적 고독과 동시대적 고립은 하나의 쌍이 되어, 이젠 연인들마저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제 다들 챗지피티에게 사랑을 묻고 사랑에 답하며 실연의 슬픔을 위로 받는다. 어쩌면 앞으로 이어질 끔찍한 봄날의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봄날의 쓸쓸함이 가을날의 외로움으로 이어지겠지. 그렇게 봄 꽃잎이 지고 가을 낙엽마저 쌓여 흙으로 사라질 때, 그 때 그 사람을 그리워하겠지. 늘 후회는 예상보다 빨리 와선, 나를, 우리를 고통스러운 겨울밤의 고뇌 속으로 더 깊이 밀어넣겠지. 아마도, 언제나 그랬듯이.

알프레드 지로 Alfred Giraud 테이스팅 클래스 후기

알프레드 지로Alfred Giraud 테이스팅 클래스에 우연히 참가했다. 프랑스 위스키는 난생 처음이다. 프랑스 와인이야 늘 마시는 것이지만, 위스키는 ... 그러고 보니, 프랑스는 왜 위스키가 없지. 와인이나 코냑이 너무 막강해서 그런 건가. 그런데 이번 클래스에 참가하면서 전 세계 1인당 위스키 소비량은 프랑스가 1위라고 한다(그래서 프랑스 애들이 가면 갈수록 와인을 마시지 않는 건가). 또한 위스키의 재료가 되는 맥아(몰트)의 생산량은 세계 2위라고 하니. 물이 좀 나쁜 거 빼곤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추어져 있는 셈인데. 물도 알프스 쪽으로 가면 괜찮은 걸로 알고 있으니까, 의외로 위스키 시장의 숨겨진 인재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보리로 술을 담그는 문화를 나폴레옹 때부터 금지시켰다고 한다. 그..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아메데오 발비

당신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다 - 생명체, 우주여행, 행성 식민지를 둘러싼 과학의 유감아메데오 발비(지음), 장윤주(옮김), 황호성(감수), 북인어박스  "우리는 달을 탐험하기 위해 이 모든 길을 헤쳐왔지만,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건 지구였다." - 윌리엄 앤더스(William Anders, 1933~), 1968년 12월 유인 탐사선 아폴로 8호를 타고 달 궤도에 도달함.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화성으로 떠날 수 없는 우리와 현재의 과학 수준을 진단하고 있다. 아무리 머스크가 화성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소설가와 영화감독들이 '화성'을 노래해도 우리는 화성으로 갈 수 없다. 이 책은 왜 불가능한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존재하는지 말이다.  '예를..

볼스 Bols 칵테일 클래스 후기 - 칵테일 세계로의 초대

칵테일을 마실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심지어 얼음도 넣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요즘 그렇다는 말이다. 위스키는, 뭐랄까, 타격감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드러운 셰리 위스키보다 묵직한 피트 위스키로만 마신다. 이런 점에서 접근성이 좋은 탈리스커는 아웃이다. 라가불린도 살짝 위험하다. 이런 내가 칵테일 클래스라니.  주류 수입사에서는 마케팅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하긴 일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실제 관계자가 어려움을 토로하는 걸 들으니 새삼스러웠다.. 성인 대상의 마케팅으로, 다양한 법적 규제 속에서 제한적인 마케팅을 할 수 밖에 없는 대표적인 상품이 술과 담배다. 그 다음이 의료 부문인데, 상당히 까다롭다. 그..

AGI의 시대, 한상기

AGI의 시대한상기(지음), 한빛미디어   "우리는 우리보다 더 똑똑한 사물이 생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본 적이 없습니다." - 제프리 힌턴 아직까지 사람들은 AI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긴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리 따라가기도 벅차다. 얼마 전 세미나 발표 때, 나는 이것이 산업혁명 이후 진정한 새로운 혁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기농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이것. AI가 만들어낼 어떤 세계. 그리고 산업혁명 때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듯 AI가 새롭게 열어놓은 어떤 세계 속에서 우리 인류가 마주하게 될 상황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 테니, 바짝 긴장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시의..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하는 알고리즘 이야기, 문병로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하는 알고리즘 이야기문병로(지음), 김영사  얇은 책이지만, 나같이 컴퓨터공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업무로 인해 지금도 공학을 전공한 개발자와 이야기하고 데이터베이스 구조나 프로그램 로직 설계를 같이 검토하지만, 뭔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최근에는 파이썬 책까지 샀다.  알고리즘Algorithm은 무함마드 이븐 무사 알 콰리즈미라는, 9세기 이란 아바스 왕조 시대 대수학의 고전을 쓴 학자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때의 아랍은 정말이지, 넘사벽이었다. 이 책은 알고리즘의 학문적 배경을 이야기하면서 간단하게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가를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노트한 걸 옮겨놓는다.  여행하는 세일즈맨 문제 traveling sal..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편 사용자 가이드', 그리고 관세 전쟁

스티븐 미런(Stephen Miran)이 쓴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을 읽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바보같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가 벌이고 있는 '관세 전쟁'은 궁극적으로 미국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이것이 성공할 지, 아니면 미국의 우방으로 여겨졌던 대부분의 나라들과 등을 돌려 그 나라들이 중국과 협력하게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지는 모를 일이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지만,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 생각없이 저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걸 스티븐 미런이 쓴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요즘 AI는 참 좋아서 긴 글도 핵심만 따박따박 옮겨준다. 아래는 AI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