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162

단색회화의 매력 - 조엘 킹 전시, 그림손갤러리

조엘 킹 Joel King Intervals 2011. 5. 4 - 17 Grimson Gallery 번잡스러운 인사동 길을 지나가다가 수도약국 골목으로 조금 올라가면 그림손 갤러리가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고다 공원에서부터 안국동 방향으로만 갈 뿐입니다. 하지만 잠시 알 수 없는 골목길로 한 번 걸어 들어가 보면, 작고 아담한 까페라든가, 도심 한 가운데의 고요한 갤러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사동입니다. 아주 잠시, 짧은 거리의 모험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도심의 근사한 침묵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침묵처럼 조엘 킹의 작품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단색조의 회화를 ‘모노크롬(Monochrome)’이라고 합니다. 이 회화 양..

재능있는 감독의 흥미로운 악취미 - 블랙 스완 Black Swan

블랙스완 Black Swan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나탈리 포트만, 벵상 카셀, 밀라 쿠니스 2011년, 미국 한 편의 잔인한 심리극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닮았다기 보다는 차이코프스키를 닮았다. 비밀스러운 동성애자이면서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차이코프스키를 닮아 있었다. 이 영화는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 역할을 한 발레리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아름답지 않고 도리어 처절하고 안타깝고 슬프기만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의도적인 악취미를 보는 것 같아 편하지 못했다. 내 속에 있는 나와 너, 밝음과 어둠, 흰 색과 검정 색, 태양과 달, …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이분법은 우리 영혼 속에서부터 이미 각인되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외부의 이분법으로 ..

봄날 오후, 맥주 한 잔과 즐기는 알랭 마이에라스 트리오 Alain Mayeras Trio

Alain Mayeras Trio - Tenderly - 알랭 마이에라스 트리오 (Alain Mayeras Trio) 노래/강앤뮤직 (Kang & Music) 오랜만에 듣는 부드러움이었다. 음반이 많아지다 보면, 몇 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 하는 음반이 생긴다. 결국 1년에 듣는 음반들을 세어보면, 100장 남짓 되려나 싶다. 그런데 사람 욕심이라는 게 말처럼 제어하기 힘들어, 다 읽은 책을 버리지 못하고 음반도 버리지 못한다. 어느 때는 내가 이 책도 가지고 있었구나, 이 음반도 있네 하는 식이 된다. 참 미련스럽게도,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습성을 보면, 내 직업은 딱 수집가, 그것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의 직원이 딱 인데. 어제 서재를 정리하면서 음반들도 함께 정리했다. 그러다가 한 두 번 가볍게 들..

실크로드와 둔황,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 혜초와 함께 하는 서역 기행 2010.12.18 - 2011.4.3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www.silkroad2010.com 오랜만에 고고학 향기가 풍기는 전시를 보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하러 왔다. 전시 규모도 제법 컸으며, 전시된 유물들도 좋았다. 실크로드(비단길)에 대해서 다들 알고 있겠지만, 실제 유물을 보는 것은 TV 다큐멘터리가 아니고선 어려운 일이다. 사막의 먼지 속에서 발굴되어진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은 한 때는 비옥했으나, 지금은 말라버린 사막으로 뒤덮인 중앙아시아의 고대 문명을 떠오르기에 충분했다. 유럽이 그리스-로마 문명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을 때, 실크로드 위로 번성한 여러 도시 국가들의 흔적은 문명의 쇠락을 가슴을 느끼게 해주기 충분했다...

신소영 전, 이화익갤러리

Moments in Continuous Change 신소영 Shin, SoYoung 전 이화익 갤러리. 2011. 3. 2 - 3. 15 어린 아이의 얼굴만 봐도 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누구의 시였던가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의 시 '무지개'에서 나온 문구네요. 시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번역본을 구하지 못한 관계로..) The Rainbow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수보드 굽타 Subodh Gupta 展, 아라리오 갤러리

수보드 굽타 Subodh Gupta Seoul. 1 Sept - 10 Oct, 2010 Arario Gallery 현대 미술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을까? 아직까지 우리들은 서구에서 인정받아야만 대단해지는 걸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수보드 굽타의 작품 앞에서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었다. 니콜라 부리오의 지적처럼, 그의 작품들은 '문화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개념적인 함정'일지도 모른다. 이 철제 오브제는 당신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소재이자 하나의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이 오브제가 갖는 의미는 서구 세계에서 본 관점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죠. 인도에서 이 오브제는 일상 생활의 일부로서 대중 문화를 상징합니다. 반면 ‘서구’라는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서는 그 번쩍거림이 사치스..

조안 미첼 Joan Mitchell - Drawings

조안 미첼 Joan Mitchell - Drawings October 22 to November 22, 2009 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출처: http://www.upliftmagazine.com/uplift/tag/joan-mitchell/ “나는 내 안에 지니고 있는 풍경을 기억해 내어 그립니다. 그러는 동안 그것들은 변모되기도 합니다. 자연은 그 자체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나는 그것을 더 낫게 그리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그대로 표현할 능력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나는 그저 자연이 내게 남기는 것을 그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니, 추상 미술의 역사는 채 100년을 넘어서고 있을 뿐이다. 등장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혁명적인 접근이었다. 하지만 어느 추상 미술은 그 자리를..

김잔디, 윤상윤, 조문기

김잔디, 윤상윤, 조문기 2011. 1. 20 - 2. 17 GYM Project (청담동 네이처포엠 빌딩) 별 생각 없이 들린 작은 갤러리에서 눈이 환해지는 작품들을 만날 때만큼 기분 좋아지는 일도 없다. 네이처포엠이 있는 작은 갤러리, GYM Project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로 그 진지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에 내가 본 전시는 김잔디, 윤상윤, 조문기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설명문에 담긴 작가 소개는 아래와 같다. - 김잔디는 장소에 관한 특정한 경험에 자신의 상상을 더하여 그 장소를 황량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장소’는 사회적 경험에서 나온 작가 개인의 기억이다. 이처럼 작가가 갖는 장소에 대한 애착은 장소의 근원적인 성격에 대한 탐구로 진행되었고, ..

흐릿하게 흔들리는 우리들: 앤디 댄즐러 전, 마이클 슐츠 갤러리

Andy Denzler ‘Freeze Frame Paintings’ 2011.1.27 – 2.27 Michael Schultz Gallery Seoul www.andydenzler.com 늦겨울 햇살이 건조한 바람에 희미하게 갈라졌다. 오랜만에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 들렸다. 청담 사거리에 있는 네이처 포엠 빌딩에 갈 때면 빠뜨리지 않고 방문하는 갤러리로,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에도 갤러리가 있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몇 년 전 마이클 슐츠 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서로 명함을 주고 받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는 우리에게 갤러리스트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탁월한 안목을 꼽았다.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찾아 그 작품을 원하는 고객에서 소개할 수 있는 안목. 나는 그 말을 듣고..

백남준 굿, 최재영 사진전, 아트링크

백남준 굿 최재영 사진전 2011. 1. 25 - 2. 13, 아트링크 www.artlink.co.kr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므로 민속학적 지식의 재료가 되는 '세부들'을 단번에 보여준다. - 롤랑 바르트 1952년생인 최재영은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 동안 미디어에서 사진 기자 생활을 해온 터라, 평생을 카메라를 들고 다녔으나, 개인전이라고 할 만한 전시를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첫 개인전으로 백남준을 내세웠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사진은, 2006년 1월 29일 작고한 백남준의 5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최초로 공개하는 백남준의 퍼포먼스 기록 사진이다. 1990년 7월 20일, 백남준의 생일이기도 한 이 날, 백남준은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