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이 나라의 비극

검찰이라는 조직의 무서움을 알겠다. 보수언론의 힘도 알겠다. 그리고 현 정권의 정치적 노림수도 알겠다. 하지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라고 배우지만, 어떤 사람들은 과거를 꿈꾸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과거로 고통스럽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도 어리석고 어두웠던 과거로. 세상 사람들은 알까? 국민들은 알까? 과격해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만, 과격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일도 있는 법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죄송합니다. (너무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

금요일이 가지는 어떤 공포

금요일, 5시에 일어났다. 아직 어두울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도시는 환해 있었다. 2주 정도 청소를 하지 못한 탓에, 한 명, 옐로우빛깔 사내가 푸른 곰팡이처럼 서식하는 작은 빌라에는, 온통, 낡은 먼지들과, 이리저리 나뒹구는 시디들과, 이미 그 존재의 위력을 잃어버린 LP들, 읽다만 하이데거, 여러 권의 미술 잡지와 도록들로 채워져 있었다. 마치 형이상학적 대기의 밀림 같이 느껴졌다. 지난 계절 벽에 걸어놓은, 철 지난 겨울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사각형으로 구획지어진 밀림 속에서, 한 달, 두 달 밀린 여러 고지서들을 한 쪽에다 밀어제치곤, 브람스와 슈베르트를 들었다. 이른 아침, 낮게 깔리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향이 진한 커피를 마셨다. 육체는 그간 쌓인 피로를 못 견뎌했으며, 정신은 얇게 흐..

사진 몇 장

점심 식사를 했다. 사무실 근처에서의 점심 식사는 대체로 무의미하거나 우울하거나 쓸쓸하다. 하루 종일 기획서를 쓰고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고객이나 파트너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를 협의한다. 어젠 신사동에 있는 어느 갤러리에 들렸다. 그 갤러리의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한다. 회사 일에, 아트페어 준비에, 이젠 갤러리 일까지 해야 하는 건가. 흥미가 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 몇 장을 올린다.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100%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일요일 오전이 전부다. 마지막 연애도 오래 전에 1년을 지났고 이젠 2년을 향해 달려간다. 일상을 꽉 짜여져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가끔은 치명적인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이 지상에서 살아온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비..

와인 애호

지난 주부터 매일 술을 마시고 있다. 다시 오늘만 약속이 없고. 수, 목, 금, 토, 계속 약속이 잡혔다. 갑자기 사정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사는 게 무척 터프하게 변해버렸다. 여간해선 요즘에 술 마시고 실수하지 않는데, 어젠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렸다. 그리고 술 잔뜩 취한 채 몇 명에 전화를 했다.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데 말이다. 근사한 와인 마시고 싶은 열망이 요즘 부쩍 심해졌다. 결국 와인 동호회 활동을 좀 열심히 하기로 했다. 아는 사람들끼리 와인 소모임 만드려고 했으나, 일정을 잡아서 정해진 시간에 만난다는 것이 예사 일이 아니라서, 그만 두었다. 그리고 주변에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도 드물고 해서. 오늘 저녁은 집 근처에서 운동하고 집에서 쉬는 모드다. 오랜만에 집 청..

바쁜 주말

15일 스승의 날이라, 아트페어 준비 행사를 끝내자 마자 바로 수서까지 내려갔다. 수서에서 새벽까지 있다가 홍대로 넘어와,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집으로 왔다. 토요일엔 오랜만에 오후까지 잠을 잤다. 그리고 밤에 다시 간단하게 맥주와 와인을 마셨다. 오늘, 일요일 아침에는 일찍 가평에 있는 쁘띠 프랑스엘 다녀왔다. 너무 먼 거리인지라, 아침 9시 반에 출발했으나, 그 곳에서 일을 보고 넘어오니 오후 4시 가까이 되었다. DSLR 카메라를 들고 갔으나, 사진을 찍을 여유는 없었다. 저녁에 잠시 잠을 잤다가, 밤 9시에 일어나 라면 하나를 끓여먹곤 지저분한 내 방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미네르바 기사를 프린트해서 몇 구절 읽었다. http://www.nytimes.com/2009/05/16/..

게임 이론과 삶의 긴장

'게임'이란 전략으로 상호 독립적인 상황이다. 즉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어느 정도는 다른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움직임'은 의사결정자가 하는 선택이고, '플레이어'는 모든 의사결정자다. '제로섬 게임'은 누군가의 소득이 오직 다른 사람의 손실이 있을 때만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라이벌'은 게임에 참가한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이다. - 권춘오, '게임이론으로 보는 전략의 기술', 동아비즈니스리뷰, 4월1호 게임 이론에 대해선 몇 편의 아티클들을 읽었으나, 이를 내 일상에 적용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슬슬 적용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은 내가 속해있는 여러 조직에서 내 책임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이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하며, 그 권한을 행사함으로, 다른..

환상 버리기

종종 살아가다 보면,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결과 앞에서 좌절할 수도 있고, 곤혹스런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만드는 건 외부적인 요인 보다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경우가 더 많더라. 오늘 오후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휴대폰 전화는 계속 오고 몇 가지의 일을 동시에 신경 써야만 했다. 멀티태스킹의 환상을 버린지 오래,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충실히 하려고 하고 있다. 대기가 투명할 땐, 서재 정리하면 참 좋은데 말이다. 대체로 오래된 고정 관념이나 습관, 그리고 환상을 버리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일민미술관 안에서 밖을 찍은 풍경.

미완성교향곡

몇 주 동안 저녁마다 약속이 있었다. 이번 주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약속이 있었으나, 캔슬되었을 뿐. 내일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내내 약속들이다. 그 사이 몸은 열기로 가득차,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흘렸다. 어렸을 땐, 몸이 차가웠는데, 나이가 들고 난 다음 후끈후끈거린다. 특히 여름엔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 속의 열기와 땀으로 견디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전 리뷰에서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을 좀 혹평하긴 했지만,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들에겐 추천해주면 좋을 책이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친 문장을 인용한다. 이처럼 한 영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영화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거나, 영화가 사람들의..

현실 정치, 장자연, 그리고 나

요즘 한국을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낯설고 힘들까 곰곰히 따져보았더니, 92학번인 나는 사회생활을 IMF 때 시작해 DJ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에도 현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피부에 와닿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이론적인 수준이었고 현실 정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사회 생활을 해보니, 견고하고 철저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고 마르크스주의를 새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대학 시절, 데모 하지 않는다고 다른 친구들을 왕따시키고 공격하던 이들 대부분은 지금 너무 평범하게 변해버려, 너무 낯설고 도리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좌파라는 건 아니다. 나는 확실히..

메이데이의 출근, 그리고 연휴

천천히 집을 나섰다. 지난 밤 숙취가 풀리지 않아서였고, 노동절이라는 핑계로 다소 여유를 부리고 싶어서였다. 지하철 대신 김포공항에서 삼성동까지 오는 공항버스를 탔다. 역시 연휴의 시작인지라, 88도로는 꽉 막혔고(여의도 구간은 현재 공사 중이라 한 차선을 막아놓아 더 막히고 있다), 강변북로도 사정은 비슷했다. 마치 연휴의 시작이 아닌, 그저 평범한 금요일 오전 같았다. 혼자서, 나이가 이만큼 들고 보니, 긴 연휴가 불편하기만 하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벗들도 결혼을 하든지, 연애를 하든지, 외국으로 나가든지 한 탓에, 누군가를 불러 술 한 잔 마신다는 것도 불편한 일이 되었다. 어디 혼자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있을까 싶다. 오전에 한강 변을 지나는데, 하늘을 나는 브이자로 나는 새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