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안드로메다같은 일상의 연속

매우 피곤한 날들이 있었다. 마치 내 일상이 늦가을 낙엽처럼 사소한 바람에도 흔들려 떨어지는 것처럼, 떨어져 무심히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에 으깨지는 듯한 느낌의 날들이 있었다. 종일 사무실에서 이슈들이 난무하는 회의에, 까다로운 문서 작성에, 고객이나 대행사와의 전화에 시달리다가, 저녁에는 바짝 긴장해서 만나야만 하는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도수가 높은 술 한 잔에, 이어지는 2차에, ... ... 이런 날이 하루 이틀 연속되면,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쳐 거실 불을 켜놓은 채,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곤 했다. 책들로 어지러진 서재는 이미 책들을 수용할 자신의 역량을 한참을 벗어나, 거실에까지 책들이 어지렇게 널린 어느 빌라 4층, 오랜 독신 생활의 사내가 그렇게 잠에 들었다. 프로이트의 견해대로라면, 나는..

중독

요즘 부쩍, 자주, 곧잘, 심심치 않게, 흔하게, 우울해지곤 한다. 집 청소를 하지 못한지, 2주일 째. 냄비에 담긴 음식물은 미동도 없이 2주일 째 그대로 방치되었고, 금붕어들이 노는 어항의 물도 2주일 째, 그대로다. 일요일마다 배달되던 신문은 요금 미납으로 끊겼고 그 누구의 편지도 오지 않는 우편함에는 딱딱한 표정을 가진 고지서들만 쌓여가고 있다. 몇 주 전 사놓은 미국산 피노누아 와인은 어두운 찬장에서, 어떤 기분으로 무너져가고 있을 지. 다시 젊은 마음을 가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오래된 친구들 얼굴 깊은 곳에서 나이를 느낄 때의, 그 참담함이란. 참 이뻤던 친구가 무표정한 시선으로, 이 세상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할 때면,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까마득한 후배들과 아직도 종종 말이 통하지 ..

아트페어 준비와 구인

낮에는 Web Service 회사엘 다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여름에 할 아트페어(Korea Art Summer Festival 2009) 준비도 하고 있다.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트페어 준비는 주로 주말에 한다. 그러나 이것도 내가 시간이 빌 때에나 가능할 뿐. 사정이 이러다 보니, 아트페어 준비 일이 많이 밀렸다. 이런 연유로 아트페어 쪽 일을 도와줄 친구를 구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어렵다. 대학을 졸업한지 몇 년 이내인, 경험은 적으나 배우려는 열정이 넘치는 여자 친구로 뽑으려는 중인데, 막상 일이 어렵게 느껴진 탓인지 힘들게 뽑은 한 친구는 일을 좀 같이 해보려고 하니, 하기 어려울 것같다고 말한다. 아트페어 기획이나 운영을 한 번 경험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배울 수 있을..

봄날의 감기, 혹은 의견 불일치

갑자기 추워질 줄 몰랐다. 흰 셔츠만 입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이번 주는 연일 강행군이었다. 사무실에서 6시나 7시에 나왔지만, 밤에는 사람들을 만나 일 이야기만 했다. 겨우 하루 운동을 했는데, 그 때 쉬어야만 했던 걸까. 며칠 전부터 두통에 시달리더니, 어제 본격적으로 코가 막히기 시작했다. 혼자 오래 살다보면, 사소한 감기가 제일 기분 나쁘다. 집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집에 들어와 잠을 다시 잤다. 봄 햇살 아래서 자는 잠은 여지없이 달콤했지만, 감기는 내 얼굴 주변에서 떠나지 않았다. 요즘 이 나라를 보면, 검찰과 경찰의 국가인 듯 싶다. 놀라운 것은 정권이 바뀌고 1년 만에 이렇게 확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현 정부가 대단해 보이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냥 내질러버린다. ..

잡다한 일상

며칠 부모님께서 지난 주에 서울 오셨다가 어제 내려가셨다. 고향 집에 전화를 하고 난 다음, 운동을 했다. 거의 열흘 만에 운동을 했는데, 온 몸이 쑤셨다. 결국 아침 늦잠을 잤고 회사엔 지각을 했다. 몸이 피곤할 땐, 딸기와 같은 달콤함이 그리워지고 마음이 쓸쓸할 땐, 쓰디쓴 술이 그리워진다. 사무실에 와서 커피를 마신다. 집에선 버릴 책들을 꺼내놓는다. 몇 권은 이미 사라졌다. 쓴 술만 마신다. 러시아의 겨울을 견디고 한반도의 봄 속으로 들어온 보드카 두 병. 낡고 오래된 오렌지 쥬스와 만나,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이번 주말에는 전시 몇 개를 챙겨볼 예정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 다소 지칠 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한 객관화, 혹은 쑥스런 고백

최근에서야 비로소 내가 여성에게 썩 매력적이지 못한 남자임을 알게 되었다. 가령 나란 남자는 외형적으로는 이런 사람이다. 오래된 포크락이나, 재즈와 클래식을 즐겨들으며, 주말에는 갤러리나 미술관을 다니고, 와인을 즐겨마시며, 드립커피를 집에서, 사무실에서 만들어 마신다. 한 달에 책 5권 이상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이래저래 관여하고 있는 사업만 3 - 4개. 주말에도 일하고 평일에도 일하는 사람. 심지어 책 읽는 것도 일이고 갤러리나 미술관 가는 것도 일인 사람. 술을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기는가 하면, 동시에 서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책 읽기도 좋아한다. 이렇게만 보면 참 부드럽고 매력적이게 보이지만, 실상은 아래와 같다. 대화를 하다가, 한 가지 소재가 나오면, 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날, 그녀는 삭발을 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꽃잎이 분홍빛 눈처럼 떨어지고 우리의 젊음도 화려하게 미소짓는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편하지 않고 이 나라의 미래는 책임질 젊은이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나이든 이들에게 가난을 물으면, '우리 젊었을 땐 참 가난했지'라고 어김없이 말한다. 그리고 딱 한 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어.'라고. 그런데 그들은 1970년대의 가난과 2000년대의 가난을 비교하지 않는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성실성만을 강조할 뿐이다. 아무리 성실하게 하더라도 따라가질 못한 가난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1970년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들의 눈과 귀는 언제나 1970년대의, 그 아련했던 추억에 머물러있으며, 그 추억의 잣대로 현재를 평가하고..

오래된 카세트테잎으로 만든 추억의 인물들

모든 것이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만드는 것과는 무관하다. Iri5라는 예술가가 있다. 그녀는 오래된 책, 카세트테잎, 카드, 잡지, 신용카드 등으로 작품을 만들어 Flickr.com에 올린다. 진지한 작품 세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 오래되고 진기한 것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것에 열광하는 그녀의 작업들을 한 번 살펴보자. 출처: http://www.noiseaddicts.com/2009/03/celebrity-art-made-with-cassette-tapes/ http://www.flickr.com/photos/iri5/

일요일 아침의 피그말리온

오전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신문을 잠시 보다가, 9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 근처 분식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실은 오후 늦게 약속이 있는데, 과연 내 몸 상태가 그 약속을 소화시킬 정도인가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걷는 모습은 꾸부정하고 움직일 때마다 적당한 수준의 통증을 느꼈다. 결국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기 곤란한 상황이라, 나중에 전화를 다시 하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다. 집에 들어와,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 - 1764)의 '피그말리온 Pygmalion'을 들었다. 감미롭고도 슬픈 선율을 날 잠시 위로했다. 쓸쓸함이라든가 외로움이라든가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아플 땐 특히 더 그렇다. 원래는 운동을 하면 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