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우리에게 선거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경제가 어렵고 나라의 미래가 보이질 않을 땐, 정부를 욕하고 정치권을 욕합니다. 정작 자신들이 선택하였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말입니다. 정작 스스로 선택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욕하기만 바쁩니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나라가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요? 현재 나라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일련의 신자유주의 정책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때에는 임기 내에 IMF 졸업을 위해 무분별한 경기 부양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카드 정책입니다. 이 때 양극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나라 경제 시스템은 신자유주의 속에 깊숙하게 빠져든 ..

차 향기 가득한 일요일 밤

어두워진 뒤에야 합정동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늘 일에 밀려다니지만, 가끔 여유를 부릴 줄 아는 배짱도 가져야 된다. 차를 좋아한 나머지, 아예 전공을 해버린 이의 집에 들려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녀와 함께 홍차(다즐링)를 마셨고 중국 무이산의 대홍포를 마셨다. 홍차는 감미로왔고 대홍포, 특히 어린 차잎을 따서 바로 얼린 대홍포는 깊은 바위산의 바위향과 이끼향, 그리고 그 공간을 감싸고 있었던 대기의 느낌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했다. 그 다음은 말린 대홍포를 마셨는데, 차를 마시고 공부하는 이들이 기준으로 삼는다는 대단한 차라고 하였다. 하지만 내 입에는 어색한 걸 보니, 아직 난 차에는 익숙치 못한 듯 했다. 다기를 사서 차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던 생각인데,..

일요일

방에서 뒹굴뒹굴 거리다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서울 시립 미술관에 가서 피카소전을 보았다. 한불수교120주년 기념 전시다. 그래서 피카소 작품들이 들어왔다. ‘솔레르씨 가족’이라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전율 같은 게 일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정도의 전율을 일으키는 작품은 없었다. 대신 내 눈에 띄는 건 온통 연애 하러 나온 남녀만 눈에 띌 뿐이었다. 어쩌다가 미술관이 연애의 공간으로 변한 것일까. 하긴 연애라면 남부럽지 않았던 피카소 탓일 지도 모르겠다. 혼자 미술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후기작들은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이들이 매체 미술과 미니멀한 경향으로 내닫고 있을 때, 피카소는 여전히 입체파적인 경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 점에서 피카소보다 마티스가 난 좋다. 마티..

앤디 워홀과 마티스

용산 삼각지 근처 화랑에서 액자를 해온 앤디 워홀의 '꽃' 하지만 걸어둘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방바닥에 세워져 있다. 택시 뒷 자리에도 들어가지 않아 뒤에 매달고 겨우 집까지 가져왔는데. 오늘 시립미술관 아트샵에 사온 마티스 액자(프린트물을 액자에 넣은)를 걸고 보니 묘한 대조가 흥미롭다. 값비싼 진품은 방바닥에 포장도 뜯지 못한 채 뒹굴고 값싼 모조품은 벽에 걸려 있는 가난한 자의 방은 이렇게 진품과 모조품을 차별을 두는 모양이다.

푸석푸석해질 주말이여

점심 식사를 했다. 하얀 밥 위로 까칠까칠하고 푸석푸석한 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곤 피식 웃었다. 너무 못 생겼다. 봄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꺼칠꺼칠하고 매력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봄 햇살과 비슷했다. 지난 주부터 안 좋은 일들이 터져 매우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였고 고객사에 넘길 보고서 하나를 펑크냈다. 겨우겨우 이번 주 안으로 수습하겠지만, 이번 주 주말, 국립 중앙 도서관에 가야 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인데. 낯선 곳에 가서 길이나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 요즘 내 정신 상태를 보건대, 그 곳에 가서 길을 잃을 확률이 110%이기 때문이다.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데, 가끔, 퍼엉, 퍼엉, 터지는 심리적 불안정 상태로 인해 힘들다. 오랫만에 즐겁고 유쾌한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바..

까칠까칠. 내 인생

요즘. 밤이. 무서워. 라디오를 틀어놓고. 잔다.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 제작되어 출시된 캔우드리시버에 물려놓은 작은 에어로 스피커로. 어느 허름한 빌라 4층 방 새벽. 라디오는 계속 이어진다. 잠을 자다 문득 놀라 잠에서 깰 때. 혼자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그렇게 밤 곁에 라디오 소리가 흐른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계속 하루가 가면. 상처는 아물고 새 피부가 돋고 나이를 먹겠지. 그러면서 잊혀지고 잊혀지고 잊혀져서 결국 잊어버리게 되겠지. 하지만 잊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늘 옆에서 생생하게, 생동하는 것들이 있다. 잊고 싶은 내 의지와는 무관, 아니 반비례하여 더욱 커지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럴 때일 수록 내 마음은 까칠까칠해지고 내 ..

어떤 기적의 풍경

사무실 옆 아파트 화단에 분홍 빛깔 꽃들이 봄바람에 흔들, 흔들, 흔들거렸다. 내 마음도 흔들, 흔들, 흔들거렸다. 흔들, 흔들, 흔들거리며 집에 들어와 잠을 잤을 게다. 어쩌면 집에 들어와 울었을 지도 모르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을 지도 모른다. 내가 어떻게 집에 왔는지,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 기억에 없으니 말이다. 그 날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소주를 마셨고 태어나서 그렇게 쉽게 소주가 들어가는 날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소주 몇 병을 마시고 자리를 옮겨 위스키 두 병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사무실에 나가지 못했다. 내가 술에 취해 잠을 자는 동안, 세상은 몇 번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어떤 과거에 시선을 두고 있는 사이,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인정하려고도, 인정할 생각..

증오

가슴 깊이 증오의 느낌이 꽃처럼 피어오를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배우지 못한 탓에 그냥 가만히 앉아있다. 지난 가을 몇 달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았고 올해 봄 어느 날, 사각의 방 밖을 나가지 않고 있다. 때때로 지나간 과거가 발 목을 잡고 어떤 이의 현재를 산산조각낼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 법도 있다. 그리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면서 거울을 보며 활짝 웃으며 '넌 머저리야'라고 이야기하고 난 다음 잊을 계획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잊혀지면 과거가 되었겠는가. 내 인생의 확신이 몇 개 없었는데. 왜 인생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어떤 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그리고 내 인생에 두 번째로 자살하는, 죽는 나를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죽지 못했으므로 세 번째나 네 번째는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