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이마트여행

포도주 2병에 간단한 먹을 거리를 사서 버스를 탔다. 심야의 버스 속에서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밀란 쿤데라였던가. 아니면 존 파울즈였던가. 타고난 작가의 눈이라는 표현을 쓴 이가. 그러나 다행히 그들은 작가가 되었으니, 그들 스스로 그것이 불행으로 여기던 여기지 않던 별 상관없을 테니지만, 나같은 이에게 가끔 밀어닥치는 그런 순간, 매우 견디기 힘들다. 이제 소설을 쓸 때가 온 것일까. 아마 그 때가 된 모양이다.

From 11:00 P.M. to 0:00 A.M.

오후 11시부터 자정까지 운동을 했다. 근육질 몸매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것도, 그걸 원하는 것같지도 않다. 그저 운동을 하고 나면 몸이 편해지고 편해진 몸을 따라 마음도 따라 편해진다. 불편함들이 혹사시킨 육체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잠에 들었다. 하지만 활짝 깨어있는 봄밤의 육체는 쉬이 잠에 들지 못했고 육체는 깨어있고 정신은 수면을 향해 내려앉을 때, 반드시 가위에 눌린다. 가위에 눌리지 않기 위해 음악을 틀어놓았지만, 새벽, 한 두 차례 잠에서 깼고 흐릿한 대기 위로 내 바램들이 사라지는 걸 기억해낼 수 밖에 없었다.

misc - 2006. 04. 16

마산 창동거리에서 어시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 동성동인가, 남성동 어디쯤 있었던 레코드점에 들어가 구한 음반이 쳇 베이커였다. 그게 94년 가을이거나 그 이듬해 봄이었을 게다. 그 때 우연히 구한 LP로 인해 나는 재즈에 빠져들고 있었고 수중에 조금의 돈이라도 들어오면 곧장 음반가게로 가선 음반을 사곤 했다. 어제 종일 쳇 베이커 시디를 틀어놓고 방 안을 뒹굴었다. 뒹굴거리면서 스물두 살이 되기 전 세 번 정도 손목을 그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치열함이라든가 진정성 같은 거라든가. 스무살 가득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탓일까. 아직까지 인생이 어떤 무늬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아무 것도 모르겠다. 문학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집트 예술가의 진정성과 현대 예술가의 진정..

우울氏의 一日

비가 온다고 하더니, 하늘은 흐리기만 할 뿐 기척이 없다. 하루 사무실에서 엎드려 잠을 잤더니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듯 하다. 세수를 하고 진한 커피 한 잔을 해 마신다. 그리고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3곡을 무한 반복시켜 놓고 4월 1일 토요일의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젠 술이 고파,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많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가서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샀다. 그리고 오늘 책들이 쌓여있는 구석에서 함민복의 '우울氏의 一日'을 꺼낸다. 1990년 10월 초판, 1991년 1월 2쇄. 이 때만 해도 시집이 잘 나갔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얇게 웃는다.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번 못 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

Vivre sa Vie

Vivre sa Vie Jean-Luc Godard. 1962. (자기만의 인생 또는 'My life to live', 'It's my life') Un Bistrort - Nana Veut Abandonner - Paul - L'appareil a sous (술집 - 나나 떠날려고 한다 - 폴 - 절망한다) 그녀가 담배를 피운다. 커피를 마신다. 영화를 본다. 포도주를 마신다. 눈물을 흘린다. 키스를 한다. 옷을 벗는다. 거리를 걷는다. 날 쳐다본다. 그리고 …… 그리고 …… 죽는다. 『Vivre sa Vie』는 죽음에 대한 영화다. 한 여자의 죽음. 한 사랑의 죽음. 한 인생의 죽음. 한 단어의 죽음. 그 죽음은 분절되어진 12개의 부분들로 이루어 져 걸어가고, 소리는 끊어졌다 음악으로 이어지고, 그..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

술에 잔뜩 취해 필름이 끊어진 나이많은 국회의원과 그 옆에 앉은 젊은 여기자. 그리고 그 안의 다른 많은 사람들. 다들 술에 취해 노느라 정신없는 이들. 그러다가 이 여기자 소리를 지르며 나간다? ---- 내가 궁금한 건 최연희 의원이 성추행했는가, 하지 않았는가가 아니다. 필름이 끊어진 상태에서 노래방 문화에 익숙한 나이가 지긋한 한국 남자가 바로 옆자리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으면 누구라고 생각하겠는가? 결론은 '이런 문화를 없애자'이거나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국회의원 자격을 박탈하자'로 모아지고 있다. 아무도 '노래방 문화'에 대해 지적하거나 '필름이 끊어질 정도로 술 마시는 문화'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는다. 더구나 왜 *당 주요 관계자들과 *일보사 ..

돈 컴 노킹

샘 셰퍼드, 그가 그렇게 늙었는지 몰랐다. 영화 속에서, 내 기억 속에서 그는 계속 중년인 채로 머물러 있었다. 무뚝뚝한 인상이지만, 그가 내미는 손을 잡으면 끝없이 따뜻한 애정이 묻어나올 것만 같은. 그가 나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막스 프리쉬의 원작 를 영화화한 (감독: 폴커 쉘렌도르프, 주연: 샘 셰퍼드, 줄리 델피)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샘 셰퍼드와 줄리 델피의 팬이 되어 버렸으며 막스 프리쉬의 원작을 찾아 헌책방을 찾아헤매었다. 아주 오래 전 외국문학전집에 들어있었던 호모 파베르. 그리고 영화 OST도 LP로 구할 수 있었다. 빔 벤더스는 를 보고 반해버렸다. 이 영화를 보곤 나스타샤 킨스키에 빠졌다. 참 슬픈 로드 무비. 그리고 라이 쿠더의 음악이 매력적인 영화. 이 영화의 O..

기싱과 커피

교보문고에서 폰 카메라로 찍음. 안방에 나란히 붙은 베란다에, 작은 화분들을 일렬로 내다 놓는다. 3월 햇살 속으로, 광합성 유영. 그리고 대기 속으로 날아오르는 식물들의 숨소리. 하루가 가고. 하루가 가고. 어느새 월요일. 몇 주째 '기싱의 고백'을 읽고 있다. 이 수필을 쓰기 위해 아파했을 기싱을 떠올리면, 뭉클해진다. 희망이 없다거나 미래가 없다거나 하는 말을 하기 위해 시골 구석으로 물러나 생을 마무리하는 어느 소설가. 노년의 쓸쓸함을 알리기 위해 아름다운 문장을 만든다는 건 참 감동적이다. 아마 19세기 이후부터였을까. '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란 전혀 없다'는 걸 알리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죽어가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건. 과연 현대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Modernity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