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키노

키노가 폐간한다. 폐간호 하나를 구입했다. 창간호와 폐간호를 가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 전 일이다. 창간호를 산 것도. 창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은 키노 모니터 기자에 응모하기도 했다. 그 땐 멋 부린다고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꼭 나이트 웨이터같은 '이진'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정성일 투가 좋아 키노 모니터 기자들 잡지가 나왔을 때, 그 투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키노를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는데, 이유는 말이 되지도 않는 글들 때문이었다. 아무 상관관계도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심각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 너무 심각해지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선했지만, 지적인 독자를 잡지 못하는, 지적 허영에 가득..

내 머리 속의 휘익.휘익.

몇 주 만인가. 아니 몇 달 만인가. 토요일 오후, 내 사각의 방에 앉아 청승을 떨어본 것이. 다행히 ‘낙타과음’이라는 글 속에서 시인 김수영이 ‘어쨌든 근 두 달 동안이나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얻긴 했지만.1) 술잔가에 맺힌 물방울 모양이 계속 머리 속을 휘익휘익 밀려다니는 걸 보면 꽤나 나도 술에 쩔어있었구나. 종일 라면 두 개와 초코파이 두 개로 보내고 에머슨레이크앤팔머의 세라비와 조용필 베스트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방바닥을 뒹군다. 요즘은 오래된 우리나라 노래가 좋다. 나이가 든 탓일까. 오래 전에 재미없게 읽었던 김수영의 산문이 오늘 재미있게 읽히는 것도 그렇고 정종 생각이 나는 것도 그렇고. 창 밖에선 어느 남자가 술에 취해 장인에게, 변명 반, 싸움 반으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다섯 번째 계절

서양의 기후 학자는 korea의 계절을 다섯 개로 나누고 그 속에 장마(우기)를 집어넣는다. 장마 속에서, 잠시 비를 그친 도시의 도로는 한적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바람은 낮고 낮은만큼 하늘도 낮고 구름도 낮고 그녀의 시선도 낮았다. 어느 새 점심식사 대용으로 가져다 놓은 머그 잔 속의 까페라떼는 허연 자신의 가슴 바닥을 들어내고 정오의 고요 속으로 몸을 묻는다. 어느 검색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은 에릭 사티의 짐노패디를 들으면서 그간 슬프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너무 슬프게 살아왔었다. 두 달 정도 충격 속에 빠져 지내왔다. 부모님의 결혼에 대한 강요는 견디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사랑은 없지만 결혼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사회의 시스템이 바뀌면 결혼도 바뀌는데, 시스템 속에 있는 이..

앤디 워홀

머리가 무척 아프고 몸이 무겁다. 낮게 깔린 하늘 탓인가. 아니면 지쳐가는 세상 탓인가. 오늘 오후 혼자 이리저리 방황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어제 밤 늦게라도 맥주를 마실 걸 그랬나. 그런데 오늘은 어디 가서 혼자 노나. 책이라곤 하이엔드오디오컴플릿가이드만 들고 왔는데 말이다. 갑자기 허공을 감싸고 있는 공기의 무게가 느껴진다. 공기의 무게가. 날 짖누르는 공기 알갱이들의 무게가. Andy Warhol (1930-1987) Self-Portrait 1979 Instant Color Print 20" x 24"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출처: http://www.zootpatrol.com/index.php/2009/12/andy-warhol-polaroids-..

문학동네

오후에 잠시 머문 영풍문고에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람이 등단한 것을 계간 문학동네에서 발견했다. 시모임에서 잠시 얼굴을 익혔을 뿐, 친분이라곤 전혀 없는 선배가 30중반의 나이에 등단한 것을 보았다. 거참. 직업이 무얼까 하는 생각이 얼른 스친다. 잠시 사소한 희망을 품어본다. 사무실에 나가 노트북에 일할 것들을 챙겨 집으로 와서 오늘 구한 캔우드 리시버에 스피커 물리고 시디피를 물려 음악을 듣는다. 빈티지라 라디오 하난 기막히게 나온다. 크기도 적당하고 돌리면서 전파를 잡는 게 느낌이 참 좋다. 피아노소리가 들린다. 오늘 잠 자긴 틀렸다. 들어와서 일을 할 작정이었는데, 이것저것 하면서 빈둥대다 보니, 벌써 한 시다. 이제 일을 해볼까나.

텔레만

영풍문고 지하에서 3장에 만원하는 클래식 시디를 사왔다. 녹음의 질은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꽤나 유명한 앨범들도 여럿 있는 레이블이다. 내 기억으로는 국내 수입음반사에서 라이센스로 수입한 지 얼마 안 되어 IMF가 터진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그 쯤이었을 거다. 텔레만은 처음 듣는데, 무척 좋다.(* 왜 난 좋을 때, '무척 좋다'라는 표현 밖에 쓰지 못하는 것일까) 일요일 오전, 이 음악... 상쾌해진다. 텔레만의 다른 음반도 사야겠다. 뭘 사지.

음악 듣기

삼만원 주고 산 캔우드 리시버에 청계천표 묻지마스피커를 연결하고 포터블 시디피에 연결해서 들어보고 워크맨에다 연결해서 들어보고 심지어 DVD 롬이 달려있는 노트북에다 연결해서 들어보는 짓을 했다. 캔우드 리시버에 Loudness 단자가 있어서 이걸 선택해놓고 들으니 재즈가 매우 부드럽게 들린다. 영국 사운드는 맑다면 일본은 부드럽다.(* 들어본 기기는 몇 개 되지 않지만) 자기 전에 아이정전도 보고 U2의 래틀앤흠을 보고 브에나비스타쇼셜클럽도 봤다. 띄엄띄엄. 방은 시디와 LP, 뒹구는 스피커와 앰프로 뒤죽박죽이 되어있다. 그러나 무척 좋았다. 시 한 편 쓰면 딱 좋을 방 모습이다. 글쎄, 살아간다는 게 뭘까. 살아간다는 건, 죽을 때까지 지쳐간다는 건 아닐까. 그리고 확실히 지쳤을 때 죽는다는 거. 햇..

K에게

참 오랫만이군요. 언제였던가요. 제가 K씨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꽤 오래 전 제가 환기미술관 근처에서 살 때였지요. 그 때 컴퓨터로 쓰고 그 편지를 프린트해서 빨간 수성펜으로 수정하고 다시 쓰고, 그걸 PC 통신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글을 써서 그걸 프린트해 수정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일은 종종 사무실에서 벌어지죠. 잔뜩 작성해놓은 프리젠테이션 문서를 프린트해서 수정하는. 어느 새 밤은 내리고 거리는 불빛과 허무로 가득찹니다. 창 건너편으로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이 보이고 그 새 제 나이는 서른 하나가 되었군요. 환기미술관 근처에 가지 않은 것도 벌써 이 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미술관에 간 것이라곤 5번도 채 ..

이상한 과일

김진묵이 쓴 재즈 에세이 제목이다. 아직 사지 않았지만, 난 그의 글을 좋아한다. 중앙대 음대를 나왔으니,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그는 경기도 어디 외딴 곳에서 혼자 산다. 결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외딴 곳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이다. 사무실에 늦게 남아 일을 하고 있다. 올해 초 누군가가 나에게 점쟁이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올해 내 운세가 가히 좋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좋지 않은 듯하다. 이런 삶이 되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최근 한 달은 지옥이었다. 그 사이 즐거운 추억도 있긴 했지만, 그 추억으로 빠져들기엔 내 인생은 너무 슬픈 빛깔로 채색되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오디오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쉽게 빠져들지는 못했다. 그런데 요..

오디오에 미쳐가는 나

요즘 msn 닉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 "오디오에 미쳐 가는 나". ************** 사무실에 나와보니, 썰렁하다. 토요 휴무라 많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다. 지하철 객차 안에서 "상징주의"라는 책을 읽었다. "예술이 인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 "나는 타고난 천재성을 삶 속에 전부 쏟아부었고, 작품에는 단순한 재주만 부렸을 뿐이다." 오후에 서점에 들려 오스카 와일드(* 한길 로로로)를 사야겠다. 19세기의 극단적인 탐미주의적 세계 속으로. ************** 어제 신천 거리를 걷다 우연히 들어간 레코드 샵에서 몇 개의 시디를 구했다. Candid 레이블에서 나온 재즈 시리즈인데, 어떻게 된 건지, 국내에선 리스트에 올라와있지도 않는 레이블이다. 첨부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