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6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카포티

인 콜드 블러드 -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1. 주기적으로,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살인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방송과 신문들은 그 사건을 연일 다룬다. 사람들의 궁금함을 풀어주기 위함이지만, 실은 자신들의 수익모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자신들의 전문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그 사건의 의미와 해석을 쏟아낸다. 실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와 피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에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며, 아무런 예방 효과도 가지지 못하는 이야기만 떠들어댈 뿐이다. 먼 훗날, 사람들은 그런 사건들을 기억할까? 아마 정신이 나간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전쟁 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며, 애써 그런 사건들의 의미를 축소시킬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통..

한국형 블로그 마케팅, 세이하쿠(지음)

한국형 블로그 마케팅 - 세이하쿠 지음/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주식회사) 블로그를 사용한 지 매우 오래되었지만, 이를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블로그의 비즈니스적 효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정말 효과있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블로그는 해야만 하는 어떤 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 관련 원고를 준비하면서 블로그가 비즈니스를 위한 마케팅의 효과적인 툴임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러한 블로그 마케팅의 핵심을 잘 요약하고 있다. 블로그를 열심히 운영하고 블로그 관리나 운영에 대한 여러 지식들을 가지고 있는 독자에게는 다소 식상할 지도 모르겠지만, 블로그를 오직 퍼온 글 모음으..

세계화의 폭력성,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프랑스의 사회학자. '시뮬라시옹'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중심에 서있었던 학자이다. 나는 장 보드리야르의 암울한 사회 분석을 싫어했으며, 그것이 진실로 드러났을 때의 끔찍함을 무시하면서 장 보드리야르를 전파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경멸했다. 그들 대부분이 의지하는 책이나 이론은 오직 시뮬레이션 이론이었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극단적인 반-플라톤주의자이면서, (우호적으로 평가하자면) 마키아벨리와 같은 전도된 이상주의자였을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20세기 후반 이후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희석되고,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은 사라지고 미디어들에 의해 새롭게 조작된 것들이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하이퍼-리얼리..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송영진(편역)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 앙리 베르그송 지음, 송영진 옮겨엮음/서광사 이 책은 질 들뢰즈(Giles Deleuze)가 "베르그송주의"(PUF,1968년)을 내고 8년이 지난 후에, 베르그송의 저작들 중에서 선별한 원문들로 구성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한 권으로 베르그송의 사상 전반에 대해서 일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이미 국내에는 베르그송의 저작들이 많이 번역 소개되어 있다. 특히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창조적 진화"도 번역되어 있으니, 베르그송에 대한 척박한 환경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베르그송의 여러 저작들을 읽기 전에, 혹은 읽은 후에, 이 책은 요긴한 선집이 될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베르그송의 철학 세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

위기의 경제, 유종일

위기의 경제 - 유종일 지음/생각의나무 위기의 경제 - 금융위기와 한국경제 유종일(지음), 생각의 나무, 2008 얼마 전 일어났던 용산의 불행한 사건이 나에게는 마치 앞으로 닥칠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의 서막처럼 보여졌다. 전제 군주가 나라를 다스렸던 조선 시대에도 아무런 권력도 없이 그저 가난하기만 백성들의 말을 귀담아 듣기 위해 노력했다.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김철 옮김, 이숲, 2008)을 보면, '조선 정부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긴 했으나 그래도 그때까지 말할 자유를 막은 적은 거의 없었다'라고 언급하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적인 신분 제도에,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조선 시대에도, 백성들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고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참조:http://..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

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부키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 부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주문하려다가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리고 오래전에 쓴 리뷰를 한 번 찾아보았다. 장하준의 첫 번째 책인 '사다리 걷어차기'는 대중적인 책이기 보다는 학술 서적에 가깝다. 하지만 선진국, 개발도상국, 후진국 사이의 문제를 집요하고 충실한 논거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지만, 일반독자가 읽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자면,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쉽게 읽힌다. 하지만 이 책은 요즘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노무현 정부 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이 인터뷰 책은..

현대미술, 이자벨 드 메종 루주(지음)

현대미술 - 이자벨 드 메종 루주 지음, 최애리 옮김/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현대미술 이자벨 드 메종 루주(지음), 최애리(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온갖 논의가 있어왔고 개중에는 상반된 것도 많다. 현대미술은 이렇다, 현대미술은 저렇다 하는 식의 주장은 끝이 없다. 예컨대 현대미술은 이해할 수 없다, 현대미술은 볼 것이 없다, 현대미술은 유파가 하도 많아 정신이 없다, 현대미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현대미술은 엘리트의 전유물이다, 현대미술은 참여적이다, 현대미술은 정치적이다, 현대미술은 의미를 배제한다, 현대미술은 해괴하다, 현대미술은 공격적이다, 현대미술은 추하다, 현대미술은 아름답다, 현대미술은 기쁨을 준다, 현대미술은 거슬린다, 현대미술은 부당한 보조금을 받는다, 현대미술..

흡혈귀의 비상, 미셸 투르니에

흡혈귀의 비상 -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은주 옮김/현대문학 흡혈귀의 비상, 미셸 투르니에(지음), 이은주(옮김), 현대문학 '독서노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이 한국적 상황 속에서 온전한 의미의 '독서노트'로 읽혔으면 좋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문학평론가들이 써대고 있는 비평문들이 미셸 투르니에의 독서노트 수준이라도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최근 내 기억에 그런 평론은 없었다. 도리어 난삽하고 정의되지 않는 개념어들의 나열이고 시덥잖은 작가의 작품을 띄워주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다. (젊은 평론가일 수록 이런 경향 더 심해지니 어찌할 노릇인지.) 이 책을 읽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독자에겐 이 책은 어렵고 지루하며 도통 모르는 작가들과 작품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러..

아르네가 남긴 것, 지크프리트 렌츠

아르네가 남긴 것 -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사계절출판사 아르네가 남긴 것 지크프리트 렌츠(지음), 박종대(옮김), 사계절 아래 인용이 이 소설과 관련될 수 있을까. 아마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킬 인용이 되지 않을까. '아르네'라는 유약하고 비범한 재능을 가진 소년을 등장시켰을 뿐이지, 이 소설은 '왕따'에 대한 내용이며, '무책임한 아이들'에 대한 초상화이다. 어린이의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은 도덕적 천함을 나타내줄 뿐이다. 보쉬에는 단호하다: "어린이는 짐승의 삶이다." 베륄은 가능한 더 멀리 간다. : "어린이의 상태는 죽음 다음으로 인간 본성의 가장 상스럽고 천한 상태이다." 파스칼로 말하자면, 그는 추론에 의하여 - 섬세한 정신인가 기하학적 정신인가? - 어린이의 상태의 끔찍함을 ..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

일본의 재구성 -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마티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지음), 노시내(옮김), 마티, 2008 1. 일본과 한국, 그 닮음에 대해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리고 읽었던 일본인은 이 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하긴 나도 박노자의 책을 읽고 우리 한국인들, 우리들의 가치관, 그리고 우리들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뜨끔했다. 한국인 스스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박노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서양 세계의 가치관대로,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트릭 스미스의 이 책은 박노자가 한국, 한국인에 대해 묻는 것 이상으로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분석하고 따져 묻는다. 그리고 많은 문헌들과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은 그 동안 나왔던 일본학이 얼마나 허구적이며 오리엔탈리즘에 젖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