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897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지음), 안규남(옮김), 동녘, 2013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뒤늦게 읽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2013년에 번역되었으니, 이 무렵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그 동안 나는 이 문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언제나 쫓기듯 살아왔다. 어쩌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럴 것이다. 저 거대한 외부 세계가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이해가 점차 옅어지고, 관심 마저도 둔해져 하루하루, 혹은 한주한주 벌어지는 회사 일에 치여 멍청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저 세계에서의 사소한 변화가 우리 개개인이 살아가는 이 작고 소중한 일상에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이 책이 씌여..

불의(Injustice)와 경제적 불평등

모든 아동의 7분의 1은 오늘날 비행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취급받고, 모든 가계의 6분의 1은 사회 기준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사람들의 5분의 1은 그럭저럭 살아가기도 버겁다. 약 25퍼센트 사람들이 생필품을 감추지 못하거나 어렵게 구한다. 이렇게 풍족한 시대에! 이제 3분의 1은 식구 중 누군가가 정신질환을 앓는 가정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그 선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려준다. - 다니엘 돌링, , 21세기북스, 2012년, 405쪽 2011년 영국에서 나온 책을 2022년 한국 서울에서 읽는다. 불평등에 대한 책이다. 좀 뒤늦게 읽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도리어 그 불평등함은 더 심해졌다. 어쩌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논의는 신자유주의에..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피터 자이한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The Accidental Superpower 피터 자이한 Peter Zeihan(지음), 홍지수, 정훈(옮김), 김앤김북스 세 네시간 정도면 다 읽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두 세배는 걸린 것같다. 이것도 노트를 거의 하지 않으면서 읽었는데도 저 정도가 걸렸으니, 의외로 빡빡한 책이었다. 그냥 전 세계를 아우르며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소양도 상당해야 한다. 다만 피터 자이한의 말대로 세상이 돌아가게 될 것인지를 두고 볼 일이다 라고 적고 싶지만, 그가 예상한 대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미국이 슬슬 중동지역에서 발을 빼고 있으며, 세계경찰국가로서의 역할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 그냥 미국 보수주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

스티브 잡스 네 번의 삶, 다니엘 이치비아

스티브 잡스 네 번의 삶 다니엘 이치비아(지음), 위민복, 정유진(옮김), 에이콘 이 책을 뒤늦게 읽으며, 내가 스티브 잡스가 창업했던 그 당시의 애플이 아니라 존 스컬리의 애플-진정한 의미의 애플이라고 보기 어려운 - 부터 알았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또한 서른도 되기 전에 위즈니악과 같이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라웠다. 그러니까 이미 그는 20대에 한 번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으며, 그 이후 작은 실패들은 있었으나 지속적으로 자신의 사업 역량을 보여주었다. 채식주의자였으며 영적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인도 여행을 가서 말 못할 고생을 했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나는 잡스에게서 사업가의 모습보다는 예술가에 더 가까운 면모를 느꼈다. 그래서일까, 책 내내 그가 일을 추..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지음), 문학동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가끔 내가 작가의 길로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조금 끔찍해진다. 분명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가 되었다면 하는 생각을 요즘에도 잠시 하곤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국내 작가가 쓴 책보다 외국 작가의 번역된 책을 읽게 된다. 어찌 되었건 이미 검증을 받은 이들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이유로 한국어 번역까지 이루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된 책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국내 작가에 대해선 더욱 더 인색해진다. 작년 겨울 교보문고 강남점에 갔다가 이 책을 우연히 보았다. 교보문고의 문학 담당 MD의 추..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이영주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이영주,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532 낭만적인 자리 그는 소파에 앉아 있다. 길고 아름다운 다리를 접고 있다. 나는 가만히 본다. 나는 서 있고. 이곳은 지하인가.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그는 지하가 되었다. 어두우면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둠이 동그란 형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을 깨려면 서야 한다. 나는 귀퉁이에 서 있다. 형태를 만져 볼 수 있을까. 나는 공기 중에 서 있다. 동그란 귓속에서 돌이 빠져나온다. 나는 어지럽게 서 있다. 지하를 지탱하는 힘. 그는 아름다운 자신의 다리를 자꾸만 부순다. 앉아서, 일어날 수가 없잖아. 다리에서 돌이 빠져나온다. 우리는 10년 만에 만났지. 그는 걷다가 돌아왔다. 걸어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귀퉁이에 내가 앉아 있었다. 이 곳은 ..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 짐 로저스

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 짐 로저스(지음), 전경아(옮김), 리더스북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가 만든 퀀텀 펀드 출신의 투자가이다. 최근 몇 해전부터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투자 전망을 이야기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아마 이 책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온 책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내용이 나쁜 건 아니다. 투자를 하고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이 책은 독서의 가치를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알아두어야 할 점은 이 책은 짐 로저스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일본인 편집자들이 짐 로저스와 인터뷰를 하여 원고를 정리하기도 하고 짐 로저스가 쓴 칼럼들을 모으기도 하여 낸 편집본에 가깝다. 그렇다고 짐 로저스가 쓰지 않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짐..

타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Il deserti dei Tartari 디노 부차티Dino Buzzati(지음), 한리나(옮김), 문학동네 "저야 알 도리가 없지요.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으리란 건 다들 압니다. 하지만 사령관이신 대령님이 배운 카드점에 따르면, 아직까지 타타르인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옛 부대에서 잔류한 타타르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말이지요." (69쪽) 사막 너머 타타르인들이 살고 있으며, 언젠가 우리를 침략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있고 지키고 있는 이 요새는 그 예정된 전쟁을 막기 위한 최전선이다. 그 곳에 새로 부임한 신참 장교 조반니 드로고도 결국 그 전쟁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요새를 지키다가 떠나간 많은 군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날..

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러셀 저코비

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The Last Intellectuals - American Culture in the Age of Arademe 러셀 저코비Russell Jacoby(지음), 유나영(옮김), 고유서가 지식인의 위기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던 지식인들이 사라졌다. 어떤 이유로 사라진 것일까. 이 책은 미국 지식인 사회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으나, 한국 뿐만 아니라 서유럽 국가나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도 해당될 것이다. 각국마다 사정을 다를 테지만, 예전과 달리 다양한 시사 문제에 대해 글을 써서 공적인 담론을 형성하며 비판적 여론을 불러일으키던 지식인들이 천천히 사라졌다. 저자는 이러한 '공적 문화의 빈곤화'를 이야기하며 아..

리추얼의 힘, 캐스퍼 터 카일

리추얼의 힘 The Power of Ritual 캐스퍼 터 카일(지음), 박선령(옮김), 마인드빌딩 우연히 집어 든 책에 금세 빨려 들었다. 리추얼Ritual, 음, '제의적인 것의 힘'이라고 옮겨야 할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폭넓은 의미로 해석되기에 그냥 리추얼의 힘으로 옮겼을 것이다. '제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제사를 떠올리는데, 교회 예배나 성당의 미사, 절의 법회 등도 일종의 제사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서는 신성한 것, 영적인 것을 떠올리고 이와 관련된, 정기적이고 반복되는 모든 활동을 리추얼로 해석한다. 따라서 혼자 영적인 것을 떠올리며 명상에 빠지는 것도 리추얼이 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이러한 리추얼과 관련된 활동들이 사라지거나 공동체에서 많이 희석되어 여러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는..